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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4.05 용감한 신입생 3
  2. 2009.09.12 영국유학 이야기를 시작하며 4
봄이 안 오는 줄 알았다. 아니 여긴 봄이 없는 줄 알았다. 그러나 자연은 거스를 수 없는 법. 꽃망울들이 하나씩 툭툭 터지고 있다. 3월 초만해도 새파란 싹만 보여주던 수선화가 캠퍼스 곳곳에 노랗게 만개했다. 그리고 난 두번째 방학을 맞이했고, 요즘 객국생활 10년을 회고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 주말에 다음학기 신입생 세명이 기숙사에 입주했다. 전부 중국인이었다. 한 사람은 영국의 다른 곳에 있다가 학교를 옮기면서 이곳으로 이사한 학생이었다. 밤 늦게 도착해 걱정했는데 만나보니 영어도 잘하는 것 같고 별로 내 도움이 필요없어 보였다. 두번째 학생은 오전에 도착했는데 영어가 완전 초보수준이었다. 계약서를 보여주면서 잘 읽어보고 싸인하라고 했더니 오케오케 하더니 바로 싸인을 해버린다. 엑시터가 아닌 다른 도시에 사는 친구 둘을 데리고 왔는데 그 둘은 영국에 좀 오래 산 것처럼 내가 무슨 말을 하면 다 아는 것처럼 추임새를 넣는다. 그래 얘네들이 이 친구를 도와주면 되겠다 싶어 안심했다. 

그리고 마지막. 문제의 학생이다. 밤 10시가 다 되어 긴급할 때만 연락하는 번호가 뜨면서 전화가 왔다. 학생 하나가 택시를 타고 기숙사로 가고 있으니 안내를 해달란다. 서류들 들고 튀어나갔는데 택시에서 낑낑대며 짐을 내리는 몸이 갸냘픈 여학생 하나가 보였다. 택시기사가 영어를 못해 오는데 혼났단다. 사무실에서 보낸 택시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인사를 했는데 무슨 말만 하면 땡큐였다. 이 학생이 아는 유일한 영어였다.

한개에 40킬로그램은 나가는(전문가 소견이다.) 큰 짐가방이 두개였다. 그리고 작은 가방 세개. 그 중 두개는 공항에서 짐이 많아 나눠 담느라 새로 산 것 같다. 짐가방은 아주 비싸보이는데 작은 가방들은 깨끗한데다 상표도 안 떨어져있었다. 이것들을 다 들고 혼자 여기까지 어떻게 왔나 참 대견했다. 중국 대도시에서 비행기를 타고 직항으로 왔더라도 런던에 내린 후 기차를 몇번 갈아타야 했을 텐데 참 대단하단 생각뿐이었다.

이 학생이 새로 살 집은 3층이었는데 큰 짐가방 두개는 둘이서 도저히 들어 옮길 수가 없었다. 작은짐도 들어보니 아주 묵직했다. 결국 다른 남자 레지덴셜 튜터를 불러 짐을 옮겨줬다. 그리고 안내를 해줬다. 그동안 중국어를 안써서 단어들이 생각이 안났는데 이 친구가 딱 감을 잡더니 내가 무슨 말을 하면 제대로 된 표현을 바로 중국어로 해줬다. 그래 그래 그거. 부엌은 어떻게 사용하고 쓰레기는 어떻게 버리고 우편물은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건물을 이동하면서 하나씩 설명해줬다. 설명이 끝날때마다 무조건 땡큐였다.

근처에 친구가 있느냐고 했더니 아무도 없단다. 다음주 화요일까지는 부활절 휴가기간이라 학교도 문닫고 시내 대부분 가게들이 문을 닫는데 먹을 건 있느냐고 했더니 없단다. 내가 빵이나 라면같은 게 있는데 좀 줄까 했더니 머뭇거린다. 그러더니 사무실에서 받은 과자가 좀 있고, 오늘만 버티면 내일 다른 도시에서 오는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으니 걱정하지 말란다.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하라고 하고 내려오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안 편했다. 다시 올라가 옆방의 중국인을 미안하다면서 깨운 후 새로 온 사람이라고 신입생을 소개해줬다. 문제가 생기면 네가 선배니까 직접와서 얘기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자기랑 다른 친구들이 오리엔테이션 해줄테니까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고 가서 자란다.

마지막에 도착한 여학생을 보면서 10년도 전에 중국에 처음 유학갔을 때 생각이 났다. 나도 무거운 짐가방을 들고 혼자 북경에 도착했었다. 물론 나는 고맙다는 의미의 씨에씨에도 몰랐으니 이 여학생이 나보다 좀 낫다고 할 수 있다. 어제 저녁 혹시나 해서 안심이 안되는 그 여학생한테 가보려고 했더니 방에 불이 꺼져 있었다. 자는 건지 아니면 친구들을 만나 안 들어온 건지 모르겠다. 오늘은 좀더 일찍 들러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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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그간 내가 가진 영국의 이미지는 태양이 지지않는 나라가 아닌 태양이 자주 뜨지않는 나라였다. 지금부터 10여년전에 방문했던 영국은 하늘이 낮고 또 어두운 날들이 며칠씩 계속되었으며 한 여름인데도 날씨는 내가 가진 옷으로 막아내기에 너무 추웠다. 사실 따지고 보면 불친절한게 아니었는데도 영국인들이 뱉어내는 차갑고 무뚝뚝하게 들리는 발음들은 이방인을 심하게 외롭게 만들었다. 두툼한 털스웨터를 입고 다니는 사람도 쉽게 볼 수 있었고 추위에 떨던 나는 결국 최선의 선택으로 목도리를 장만해야했다. 버스터미널 화장실에서도 돈을 내고 볼일을 봐야하는, 우리 정서로는 많이 야박한 나라였고, 음식에 관해서도 영국은 내게 선진국이 아니었다. 광우병 영향도 있어 먹을 것 챙겨먹는데 신경이 많이 쓰였지만 선택의 폭을 생각한다면 여행객 입장에서 확실히 먹을 게 없는 그런 나라였다. 당시에는 말이다.


런던을 구경하고 캠브리지와 옥스포드 사이에서 갈등하다 캠브리지를 택했고 버스를 타고 몇시간을 달려 캠브리지대학의 캠퍼스에 도착했다.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기운이 감돌면서 이곳에서는 공부밖에 할 게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 대학생으로, 비탈에 위치해있던 인문대교실과 도서관을 격한 운동하는 심정으로 날마다 왕복해야했던 나는 평지 일색인 캠브지리대학 캠퍼스가 참 많이도 부러웠다.

그리고 북상하면서 에딘버러 페스티벌도 구경하고 당시 별볼일 없던 글라스고에도 들렀다. 맥도날드가 배안에 있을 만큼 규모가 큰 페리를 타고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에 갔었고, 아래로 아래로 내려오면서 아일랜드의 더블린, 코크를 거쳐 프랑스로 이동했다. 

그후 영국에 갈 일이 없었는데 이번에 다시 가게 되었다. 내 연구테마로 영어권 국가에서 공부를 하면 어떻겠냐는 의
견들이 자꾸 나와서 간 한번 보자 하는 심정으로 영국의 여러 학교에 연구계획서를 보냈다. 생각보다 반응들이 너무 좋았지만 박사과정 내내의 학비며 생활비가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연구계획서를 보낸 학교 중의 한 교수가 상당히 적극적으로 내게 컨택을 해왔다. 보통 학생이 나를 받아달라는 입장으로 열심히 학교에 컨택을 하는데 나는 그 반대였다. 두번째 메일에서 장학금 오퍼이야기가 나왔고 네가 바보같은 선택을 하지않았으면 좋겠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메일을 이어서 받았고, 그 다음부터는 내가 마치 그곳에 갈 것처럼 안내하는 메일들이 속속 도착했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아는 학교는 내 연구를 지도해줄만한 교수가 없었고, 설사 합격을 해도 당장 연구를 시작할 수 있는 형편이 안되었다. 도서관 자료가 풍성한 학교, 아프리카 연구가 활발한 학교는 내가 지원이 너무 늦어서 장학금 찾기가 힘드니 같이 한번 찾아보자는 연락들 일색이었다. 지금도 몇몇의 선생들은 장학금을 찾고 계시다.

그런데 다 포기하고 영국 서남부의 엑시터 대학(University of Exeter)에서 공부하기로 최종 결정을 내렸다. 이곳에서 박사과정을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장학금에 흔들린 건 사실이지만, 내겐 최상의 연구환경을 제공할 학교라는 확신이 들었고, 무엇보다 향후 내 지도교수가 될 클로크 교수의 적극성에 다른 학교는 미련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이 교수가 영국의 한 기관으로부터 펠로십 받을 때의 프로필과 사진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그걸 보고 아예 마음을 굳혔다. 슈렉 탈을 쓴 사람인형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클로크 교수 사진 아래에는 연구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건 내 사랑하는 두 딸과 아내, 기르고 있는 개라는 내용이 있었다. 보통 제한된 지면에 프로필을 적어야 할 때 사람들은 자기의 이력을 과대포장 하려고 바쁜데 어떻게 보면 프로페셔널하지 않을 수 있는 프로필과 푸근하게 웃고 있는 아저씨 같은 이 교수가 나는 마음에 들었다. 

영국의 입학 오퍼에는 언컨디셔널 오퍼와 컨디셔널 오퍼가 있는데 대학이 제시하는 조건에 하나라도 부합하지 않으면 합격을 하더라도 언컨디셔널 오퍼가 나오지 않는다. 이건 상당히 중요한데 컨디셔널 오퍼만으로는 영국비자신청이 안되기 때문이다. 지원서류에 필요한 게 다 있었는데 영어시험 성적표가 없었다. 한번 보려면 일본돈으로 26,000엔이 넘는 비싼 시험이다. 내가 외국인이라서 영어성적표는 입학사정에 필요한 중요한 서류 중의 하나였지만 내가 이 학교에 올 생각이 있으면 그것 없이 언컨디셔널 오퍼를 줄 것이며, 내가 오케이하면 올해 10월부터 공부를 시작할 수 있단다. 제공되는 장학금이 올해 10월에 반드시 학위 프로그램을 시작해야한다는 조건이 붙은 거라서 빨리 선택을 하라셨다.

유학에 대해 처음 고민할 때 영국 대학들이 대부분 가을에 학기를 시작하니 빨라도 내년 가을에나 유학을 갈 거라 생각했다. 박사과정의 경우 1월, 4월에도 시작할 수 있다고 하니 빠르면 그 중 하나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너무 빨리 유학이 결정됐다. 어제 드디어 언컨디셔널 오퍼를 받았고 그 학교에 가서 공부하겠다는 답을 보냈다. 학교에서도 최대한 서둘러 내가 영국입국에 필요한 서류들을 보내준다고 했는데 특급우편으로 장학금 관련 서류를 비롯해 비자신청 서류들이 도착하고 있다. 

도쿄에서 지낸 지 올해가 3년째인데 이제 보름도 채 남지않은 기간동안 여기 생활을 다 정리해야 한다. 기내로 혹은 수하물로 내가 가져갈 수 있는 짐의 무게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나머지는 미련없이 버려야한다. 일본 올 때 단출했었는데 그 사이 살림살이들이 엄청나게 늘었다. 그래도 다 버려야한다. 아무 준비없이 일본유학을 왔었는데 또 아무 준비없이 영국에 가게 되었다. 그간 이곳에서 겪었던 개고생들이 그곳에서의 시행착오를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진출처
위: http://rosskendall.com/photos/scenery/misty-morning-view-of-cambridge-university
아래: 엑시터 대학 홈페이지 http://huss.exeter.ac.uk/international/studying.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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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