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24: 한국/사람들
서울방문-손선생님
윤오순
2009. 8. 19. 07:07
일본에 있으니 한국에 자주오라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마음은 수백번이라도 다녀오고 싶은데 그게 참 맘처럼 안된다. 비행기값 생각하면 오늘이라도 훌쩍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은데 한번 가려면 '마음'을 비롯해 준비할 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돌아오고 나면 또 그리움에 한동안 시달려야하기도 하고. 오랜 객지생활에도 그것만은 쉽게 바뀌지가 않는다. 내가 사람이란 증거인가. 고민하다가 결국 올 여름방학에도 내가 사는 기숙사 8층을 혼자 지키고 있다.
이름은 기억안나는데 요즘 젊은 여성들에게 아~주 인기 메뉴란다. 음료도 따라나온다 해서 이걸 둘이 하나씩 시켰다. 선생님은 한국에 오면 정말 맛있는 거 사주고 싶었는데 이런 흔한 거 사줘 계속 미안하다 그러셨다. 그러나 나한테는 굉장히 색다르고 맛있는 거였다. 메뉴판에 있는 사진만 보고 덜컥 시켰는데 막상 나온 걸 보고 도대체 어떻게 먹어야 폼이 나나 잠깐 생각했던 것 같다. 나, 정말 문명과 너무 동떨어지게, 게다가 그렇게 너무 오래 살았나보다.
그리고 이게 이 요리의 최후의 모습이란다. 먹는 건 자유지만 대부분 예쁜 여자들은 이렇게 마무리를 한다고 선생님은 강조하셨다. 요렇게 먹고 차를 한잔 마시고 일어나면 되는 거였다.
이건 수년간 일품요리에 길들여진 가난한 유학생이 잠깐 휴식을 취할 때 찍은 사진이다. 물론 난 남김없이 다 먹어줬다.
석사논문을 제출하고 박사과정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은 후 큰맘 먹고 한국에 다녀왔다. 다녀와서 거의 3개월을 거지처럼 지내야했다. 한국에 가면 서점에 가서 읽고 싶었던 책도 많이 읽고, 또 많이 사오고 싶었는데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남한산성이랑 경주에 다녀오고 싶었는데 그것도 못했다. 도착한 다음날부터 부지런히 친구들 만나느라 좀처럼 시간을 낼 수 없었다. 목표한 많은 것들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일본으로 돌아왔지만 그리 나쁜 여행은 아니었다.
그 와중에 늘 바쁘신 손선생님을 만났다. 내가 한국예술종합학교 다닐 때 문화정책을 강의하셨던 선생님이시다. 선생님한테 딱 한학기, 그 한과목을 배웠는데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선생님 말고도 소중한 인연을 많이 만들어주셨고, 마음이 따뜻한 분이시라 선생님이랑 같이 있으면 참 편하다. 2007년 여름에 도쿄에도 잠깐 오셨는데 다녀가신 증거를 확실하게 남겨주신 덕분에 선생님 만나고 난 후 한동안이 아주 즐거웠다.
하시는 일이 많아 오래 시간 내기 힘드시다고 하셔서 이번에도 잠깐 만났다. 버스노선이 바뀐데다 만날 장소 건물이 개축을 하는 바람에 5분이나 지각을 했다. 그날 식당가를 몇바퀴나 돌았지만 자리가 없어 결국 카페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선생님은 영국에서 유학을 하셨는데, 가난한 유학생 심정을 너무나 잘아신다. 오늘 사진 정리하다가 문득 그날 찍은 사진이 눈에 들어와 포스팅한다.
그런데 이렇게 먹는 거였다. 좀 폼난다.
일본에 돌아온 후 만들어보려고 한번 시도했었는데 결국 실패했다. 다음에 한국에 나가면 저기가서 한번 더 먹어줘야 겠다. 그날 당부말씀도 많았고, 위로말씀도 많았는데 사진보니 잠시 그날로 돌아간 기분이다. 한국에서 다른 사진은 거의 안찍고 내가 먹은 음식들 사진만 잔뜩 찍어왔는데 이게 나를 추억으로 데려다줄 줄 그때는 몰랐다. 손선생님은 여전히 건강하신지 궁금하다. 당장 메일이라도 날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