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오순 2009. 10. 21. 21:54
말 한마디 안 통하는 데 가서도 잘 버텨서 여기서도 잘 버틸 줄 알았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그래도 내일은 오늘보다 좀 낫겠지 하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보내고 있다.

영국에서 공부하는 친구가 내가 영국에 오기 전에 영국에서 받을 문화충격에 대해 겁을 많이 줬었는데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느낀 충격은 날씨이다. 내 친구는 영국의 이런 날씨가 좋다고 그랬는데 난 아무리 노력해도 영국의 날씨와 친구가 될 것 같지 않다. 거의 날마다 비다. 물론 비온 다음 날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등교할 때 그 행복감이 이루 말할 수 없지만 말이다. 그래서 우산은 필수다.

저녁 늦게 연구실에 있으면 몸이 으실으실 추운데 반소매에 남자같은 근육을 자랑하는 영국처자에게 히터를 틀겠다는 말을 난 도저히 못한다. 여긴 옷차림들이 정말 제각각이다. 거의 다 벗은 차림에 한겨울 방한 차림까지 다양해 옷차림만 보고는 계절을 가늠하기 힘들다. 나는 현재 약 83%정도 겨울 옷차림이다. 체감추위가 극한에 다다를 때 100%에 근접한 겨울옷을 입을 예정이다. 그래봤자 몇개 더 끼워입는 수준이겠지만...옷차림이 자유로워서 그런 건지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사고도 생활모습도 참으로 자유로워 보인다.

그리고 제일 큰 충격이라고 할 수 있는 게 학생들의 사교방식이다. 일본에서는 학교 선생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내게 지금 무슨 연구를 하고 있는지 묻지 않았다. 어느 나라 출신이냐, 학교는 어디 다니냐, 전공은 뭐냐, 이게 전부였다. 한국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여기서는 아무도 내게 처음부터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 묻지 않는다. 지금 어떤 연구를 하느냐가 첫 질문이다. 그리고나서 대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연구를 곧 그 사람의 정체성으로 파악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내가 하는 연구를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말할 수 있어야 사람 사귐이 가능하다. 강의가 끝나고 파티 비스무리한 게 많은데 간단하게 차를 마시면서 오늘 들은 강의에 대해 이야기도 나누고 서로의 연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게 여기 문화인 것 같다. 미국에서 공부하시는 분이 내가 유학길에 오를 때 실력과 성실함만 있으면 영국에 가서 성공할 수 있다고 그러셨는데 그분이 말씀하신 '성공'의 의미가 뭔지 모르겠지만 짧은 경험으로 보면 실력과 성실함에다 연구정체성이 포함되어야 할 것 같다.

오늘도 리셉션이 포함된 강의가 하나 있다. 똑똑하고 재미있는 연구자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