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오순 2010. 4. 5. 20:37
봄이 안 오는 줄 알았다. 아니 여긴 봄이 없는 줄 알았다. 그러나 자연은 거스를 수 없는 법. 꽃망울들이 하나씩 툭툭 터지고 있다. 3월 초만해도 새파란 싹만 보여주던 수선화가 캠퍼스 곳곳에 노랗게 만개했다. 그리고 난 두번째 방학을 맞이했고, 요즘 객국생활 10년을 회고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 주말에 다음학기 신입생 세명이 기숙사에 입주했다. 전부 중국인이었다. 한 사람은 영국의 다른 곳에 있다가 학교를 옮기면서 이곳으로 이사한 학생이었다. 밤 늦게 도착해 걱정했는데 만나보니 영어도 잘하는 것 같고 별로 내 도움이 필요없어 보였다. 두번째 학생은 오전에 도착했는데 영어가 완전 초보수준이었다. 계약서를 보여주면서 잘 읽어보고 싸인하라고 했더니 오케오케 하더니 바로 싸인을 해버린다. 엑시터가 아닌 다른 도시에 사는 친구 둘을 데리고 왔는데 그 둘은 영국에 좀 오래 산 것처럼 내가 무슨 말을 하면 다 아는 것처럼 추임새를 넣는다. 그래 얘네들이 이 친구를 도와주면 되겠다 싶어 안심했다. 

그리고 마지막. 문제의 학생이다. 밤 10시가 다 되어 긴급할 때만 연락하는 번호가 뜨면서 전화가 왔다. 학생 하나가 택시를 타고 기숙사로 가고 있으니 안내를 해달란다. 서류들 들고 튀어나갔는데 택시에서 낑낑대며 짐을 내리는 몸이 갸냘픈 여학생 하나가 보였다. 택시기사가 영어를 못해 오는데 혼났단다. 사무실에서 보낸 택시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인사를 했는데 무슨 말만 하면 땡큐였다. 이 학생이 아는 유일한 영어였다.

한개에 40킬로그램은 나가는(전문가 소견이다.) 큰 짐가방이 두개였다. 그리고 작은 가방 세개. 그 중 두개는 공항에서 짐이 많아 나눠 담느라 새로 산 것 같다. 짐가방은 아주 비싸보이는데 작은 가방들은 깨끗한데다 상표도 안 떨어져있었다. 이것들을 다 들고 혼자 여기까지 어떻게 왔나 참 대견했다. 중국 대도시에서 비행기를 타고 직항으로 왔더라도 런던에 내린 후 기차를 몇번 갈아타야 했을 텐데 참 대단하단 생각뿐이었다.

이 학생이 새로 살 집은 3층이었는데 큰 짐가방 두개는 둘이서 도저히 들어 옮길 수가 없었다. 작은짐도 들어보니 아주 묵직했다. 결국 다른 남자 레지덴셜 튜터를 불러 짐을 옮겨줬다. 그리고 안내를 해줬다. 그동안 중국어를 안써서 단어들이 생각이 안났는데 이 친구가 딱 감을 잡더니 내가 무슨 말을 하면 제대로 된 표현을 바로 중국어로 해줬다. 그래 그래 그거. 부엌은 어떻게 사용하고 쓰레기는 어떻게 버리고 우편물은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건물을 이동하면서 하나씩 설명해줬다. 설명이 끝날때마다 무조건 땡큐였다.

근처에 친구가 있느냐고 했더니 아무도 없단다. 다음주 화요일까지는 부활절 휴가기간이라 학교도 문닫고 시내 대부분 가게들이 문을 닫는데 먹을 건 있느냐고 했더니 없단다. 내가 빵이나 라면같은 게 있는데 좀 줄까 했더니 머뭇거린다. 그러더니 사무실에서 받은 과자가 좀 있고, 오늘만 버티면 내일 다른 도시에서 오는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으니 걱정하지 말란다.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하라고 하고 내려오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안 편했다. 다시 올라가 옆방의 중국인을 미안하다면서 깨운 후 새로 온 사람이라고 신입생을 소개해줬다. 문제가 생기면 네가 선배니까 직접와서 얘기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자기랑 다른 친구들이 오리엔테이션 해줄테니까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고 가서 자란다.

마지막에 도착한 여학생을 보면서 10년도 전에 중국에 처음 유학갔을 때 생각이 났다. 나도 무거운 짐가방을 들고 혼자 북경에 도착했었다. 물론 나는 고맙다는 의미의 씨에씨에도 몰랐으니 이 여학생이 나보다 좀 낫다고 할 수 있다. 어제 저녁 혹시나 해서 안심이 안되는 그 여학생한테 가보려고 했더니 방에 불이 꺼져 있었다. 자는 건지 아니면 친구들을 만나 안 들어온 건지 모르겠다. 오늘은 좀더 일찍 들러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