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24: 중국/중국문화기행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네

윤오순 2007. 4. 14. 15:35

연길행 비행기 하얼빈에 불시착 

중국말을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중국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선물처럼 생겼다. 여권을 다시 만들고 대사관에 가서 중국 방문 비자를 받으면서 처음부터 일이 순조롭게 풀리지는 않았지만 무사히 인천공항에서 서해를 가로 지르는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상해에서부터 시작해 천진, 북경으로 북상하는 동안 큰 문제는 없었다. 북경에서 마지막 목적지를 향하면서 드디어 문제가 발생했다. 연길로 가야 하는 비행기가 기류 불안정으로 하얼빈에 불시착했다. 출발할 때부터 한 시간 반이나 연착을 한 비행기가 결국 목적지에 도착을 못한 것이다. 비행기 연착은 경험해 봤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내심 불안해하고 있는데 기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내려야 하나, 아니면 기내에서 마냥 기다려야 하나. 짐을 챙겨 내릴 준비를 하는 승객들도 있었지만 마냥 기다려야 했다.


전세계를 웃음으로 강타했던 코믹물인 '미스터 빈' 시리즈를 기내에서 보면서 흥분지수를 낮추고, 낮게 깔리는 등려군이라는 대만 가수의 노래에 다시 한번 흥분상태를 점검하는 동안 무려 네 시간이 흘렀다. 쉴 새 없이 떠들고 쉴 새 없이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던 승객들도 이제 지쳤는지 기내가 잠잠해질 무렵 드디어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가나보다.

새벽 한 시 연길시 풍경
연길에 도착하니 새벽 한 시가 넘었다. 이미 잠들어 있는 도시는 어디가 어딘지 분간도 못하겠는데 우리 팀을 인솔하는 조선족 가이드 아가씨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직무를 수행했다. 좌측으로 보이는 강은 해란강으로 어쩌구 저쩌구. 중간에 쉬지 않고 호텔에 도착해도 새벽 두 시는 좋히 넘을 텐데 프로그램상 준비된 저녁이 있으니 가야 한단다. 우측으로 보이는 큰 대로는 어쩌구 저쩌구. 시야가 캄캄해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시커먼 새벽이었다. 예정시간보다 무려 여섯 시간이나 늦게 식당에 도착했다. 새벽 두 시 반에 한국 방문객들을 위해 준비된 전주비빔밥을 먹고 나서야 호텔로 이동할 수 있었다.

이미 시간은 새벽 세 시를 훌쩍 넘긴 상태였다. 아침 일곱 시 출발이다. 무조건 자 둬야 했다. 이렇게 일이 술술 안 풀리는데 과연 내일 그 곳에 도착할 수 있을까, 일행들은 또 불안해했다.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내일 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삼대가 복을 지어야 한다는 얘기도 있고 선한 마음이어야 가능하다는 얘기도 있는데 다 하늘에 맡길 노릇이다.


밤새 불안해 한 것에 비하면 날씨가 무척이나 좋았다. 여섯 시간 동안 차를 타고 정말 쉬지 않고 달렸다. 그 사이 비가 뿌렸다가 해가 다시 나오기를 여러 번. 점퍼를 꺼내 입었다가 다시 벗기를 또 여러 번. 이상한 간판도 보였고 이상한 풍경도 보였다. 자다 깨기를 반복하다 매표소 입구에서 접혔던 뼈들을 풀어주고 있는데 지프차가 도착했다. 여섯 명씩 조를 짜서 승차를 해야 했다. 완전 자동차 랠리다. 고산지대에서나 볼 수 있는 식물들이 눈앞으로 휙휙 지나갔다. 제대로 풍광을 볼 사이도 없이 순식간에 정상에 도착하고야 말았다.

해발 고도 2,700m 지프차 타고 랠리
민족의 영산, 백두산이다. 중국 사람들은 장백산이라고 부르는 그 백두산에 드디어 도착했다. 구름이 쉴 새 없이 머물다 떠나기를 반복해서 사진으로만 보았던 그 천지를 좀처럼 카메라에 담아내기가 힘들었다. 가이드 아가씨의 형식적인 인사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팀 앞에 여섯 팀이 다녀갔는데 이만큼이라도 천지를 보는 사람들은 우리가 처음이란다. 해발고도 2,700m가 넘는 정상은 날씨가 불안정해 두툼한 점퍼를 입은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누워보기도 하고 손을 들어 보이기도 하면서 이런저런 다양한 자세로 사람들은 산을 맞이하기보다 산을 담아 놓기 바빴다. 카메라가 없는 사람들은 머릿속에 천지를 담아 놓을 수밖에 없었다. 푸르다 못해 검기까지 한 천지의 물 빛깔은 말 그대로 장관이었다. 말이나 글로 눈으로 직접 본 자연의 모습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역시 인간은 자연보다는 한참 하수인지도 모르겠다.


내려오면서 천지로부터 흘러 내려오는 가는 물줄기에 손을 담가볼 수 있었다. 손을 대자마자 어찌나 차가운지 바로 손가락 마디들이 벌개졌다. 장백 폭포를 보려고 이동한 장소에서는 내려오는 물의 온도가 섭씨 82도나 되어서 그 물에 달걀과 옥수수를 쪄서 파는 상인들도 보였다. 실로 진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겁 없이 손을 담갔더니 이번에도 손가락 마디들이 벌개졌다. 1도 화상이다. 천지에서 흘러 내려오는 손을 댈 수도 없이 차갑고도 뜨거운 물들이 태극처럼 모여 산을 타고 들을 타고 내려와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 우리 산하를 적시고 있었다. 문득 이쪽 중국이 아닌 저쪽 북한으로 올라가는 백두산은 어떤지 궁금했다.


우리 나라 관광지라면 어디든지 흔히 볼 수 있는 토종닭집, 보리밥집 같은 음식점들이 보이지 않아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다. 수려한 풍광을 배경으로 지어진 러브호텔도 보이지 않았고 현란한 나이트클럽 간판도, 노래방 간판도 보이지 않았다. 아직은 그랬다. 산에서 나는 작은 돌멩이 하나도 외부 유출이 금지되어 있었고 자연을 훼손하면 사회주의 국가다운 엄청난 처벌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방문객들은 오롯이 그 곳에서만 자연을 즐겨야 했다. 하산하면서 들른 식당의 화장실에서 사용하는 물들은 온통 80도가 넘는 백두산 온천수였다.


다시, 여섯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왔던 길을 되짚어 달렸다. 아직은 열 두 시간 정도 고행을 해야 이쪽 중국에서 백두산을 올라갈 수가 있다. 날은 이미 어두워져서 이상한 간판도 이상한 풍경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백두산을 저만큼 뒤로 하고 그저 그 산이 정말 거기에 있었다는 기억만 가져 올 수밖에 없었다. (2002.7~8 외교통상부 후원 한중수교 10주년 기념 방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