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24: 영국/영국유학이야기
에티오피아 현지조사 준비
윤오순
2011. 2. 17. 07:18
이제 슬슬 에티오피아 갈 준비를 해야한다. 한국에서 간 적도 있고, 일본에서 간 적도 있는데 영국에서는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에서는 주변에 에티오피아 가는 방법을 아는 사람들이 없어 혼자 다 알아봐야해서 엄청 스트레스가 많았다. 인터넷을 찾아도 에티오피아 여행갔다 온 사람들 정보가 거의 없어 결국 외교통상부 홈페이지에 들어가 거기에 있는 자료를 참고해야했다. 가기 전에 이런저런 주사를 많이 맞아야 했는데 무조건 출발 열흘 전에만 맞으면 되는 줄 알고 국립의료원에 갔더니 그게 아니었다. 시간이 없어 한꺼번에 맞으라는 주사를 다 맞았더니 정신을 못차릴 지경이 되어버렸다. 의사가 주사 맞은 후 30분 정도 기다렸다 집에 가라고 해서 처음에 왜 그러나 했더니 간혹 쇼크 때문에 쓰러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란다. 나도 한꺼번에 여러 종류의 주사를 맞은 후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는 줄 알았다. 집에 와서도 그날 저녁 제대로 잠을 못 잤다. 황열병 같은 건 한번 맞으면 10년은 다시 안 맞아도 되는데 다른 주사들은 유효기간이 어떤 건 3년, 어떤 건 5년 제각각이라서 그런 것도 다 확인해 유효기간 넘은 건 다시 맞아야 한다. 참고로 말라리아는 주사가 아니라 알약을 복용해야한다.
일본에서 갈 때는 예방접종과 관련해 따로 문제될 게 없었다. 대부분 유효기간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내가 관광객 신분이 아니고 연구자 신분으로 에티오피아에 가는 거라서 연구허가를 받기 위한 절차가 아주 복잡했다. 지도교수가 아프리카 지역연구 전문가라서 이런저런 현지조사 팁을 개인적으로 얻긴 했지만 아쉽기는 한국에서와 마찬가지였다.
영국으로 유학와서 생활환경에 관해서는 마음에 안드는 부분이 여전히 많지만 내가 공부하는 지리학과의 연구지원 시스템은 아주 훌륭하다고 자부한다. 엑시터에 도착하자마자 난 내가 당장 살 방도 못 구한 처지였지만 내가 공부할 연구실에는 책상과 컴퓨터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현지조사 부분도 항공권 구입에서부터 비자, 예방접종 등 개발도상국, 특히 아프리카로 떠나는 연구자들을 위해 필요한 준비과정을 학교에서 전부 도와주고 있다. 과거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경영하면서 영국이 체득한 노하우들이 이렇게 학문분야에서 빛을 보는 것일 지도 모르지만 솔직히 부럽다. 우리나라는 언제 이런 시스템 속에서 지역연구하는 학생들이 편하게 현지조사 준비를 할 수 있을지...지도교수도 여기저기 필요한 레터를 벌써 몇 장이나 작성했는지 모른다. 현지조사하면서 인터뷰에 필요한 레터들, 비자서류에 필요한 레터들, 연구허가를 위해 필요한 레터들 등등. 짜증낼 만도 한데 전혀 그런 내색없이 언제든 필요하면 얘기하라고 해서 부탁은 하고 있는데 미안하기 짝이없다. 나를 만나는 지도교수들은 어쩔 수가 없나보다. 일본에서 공부할 때 내 지도교수도 매 학기 나를 위해 써야하는 추천서가 무지하게 많았다. 당시 내가 꾸던 꿈 중에 하나가 다른 사람을 통해 나를 보증할 필요없이 내가 나 스스로를 보증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그 꿈이 아직도 실현이 안된 것이다.
한국에서 맞았던 주사들 중 황열병 빼고는 전부 유효기간이 지나 요즘 계속 주사를 맞고 있다. 현지조사 떠나기 몇달 전부터 상담을 하라고 한 덕분에 시간상으로 넉넉한 상태지만, 여기서는 학생의 시간이 빠듯하더라도 위험하기 때문에 한번에 주사를 다 놔주지는 않는단다. 한국에서 한번에 다 맞았다고 했더니 아주 깜짝 놀란다. 가기 전에 맞아야 할 주사 중에는 한번에 끝나는 주사도 있고, 3주에 걸쳐 나눠 맞는 주사도 있는데 맞을 때도 너무 아프고 맞고 나서도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다. 간염 A와 간염 B 주사는 아주 끝장이다. 맞을 때 근육이 끊어지는 것 같고, 주사 맞은 날은 온 종일 기운이 없다. 몇년에 한번씩 맞기 망정이지 갈 때마다 맞는 거라면 아, 정말 못할 짓이다. 주사 맞으면서 다음에는 아프리카가 아니라 아무 준비없이 비행기 티켓만 끊으면 되는 나라로 연구지역을 바꿀까, 그런 생각을 했다.
현재 에티오피아 연구자의 길을 걷고 있지만 솔직하게 난 그다지 에티오피아에 대한 애정이 없다. 지금 연구하는 주제인 에티오피아에서의 커피 투어리즘이 재미있어 계속 공부하고 있을 뿐이지 이 나라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안타깝고, 어떻게든 도왔으면 좋겠고, 뭐 그런 가슴 절절한 이유들이 잘 안생긴다. 그 때문인지 에티오피아에 대해 마치 전생에 거기서 살다가 온 사람처럼 무한한 애정을 드러내며, 내가 도와주지않으면 에티오피아가 곧 멸망이라도 할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속내가 궁금하긴 하다. 진정성이 의심갈 때도 있고. 일본에서 에티오피아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는데 그런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했다. 좋아하는 사람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 따라가지 못한다고 하지 않나.
난 아직도 에티오피아에 가면 그들의 주식인 인제라를 손으로 먹는 거에 주저한다. 친한 일본인 연구자는 내가 인제라 앞에서 고뇌할 때 늘 나를 이해할 수 없다고 그러는데 나도 나를 잘 이해 못하겠다. 어쩌면 그건 그 문화안에 나를 완전히 던지지 못했다는 증거이면서, 내가 결코 에티오피아 지역전문가가 될 수 없는 이유일 수도 있다. 그러나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식민지를 겪지 않은 나라라서 역사가 쉬지않고 흘러왔으며, 우리 기준으로 생각하면 독특하다고 할 만한 것들이 많은 나라라서 공부를 하면 할 수록 재미있다. 그리고 커피 투어리즘이라는 테마는 파도파도 계속 재미있는 게 나와서 도저히 멈추지를 못할 지경이다.
난 처음부터 에티오피아를 가난한 나라니 우리가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평등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관점은 에티오피아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를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다. 잘 산다고 사대할 필요도 없고, 우리보다 가난하다고 우습게 볼 이유도 없는 것이다. 이 관점은 지금도 유지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도 헤어지는데, 나처럼 대상에 대한 애정도 없이 하는 공부가 언제까지 지속 될 지 지금은 잘 모르겠다. "아, 에티오피아 지겹다. 이제 그만 할랜다." 이럴 날이 오지말라는 법도 없지 않나. 그래도 당분간은 에티오피아에 대해 계속 공부를 하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난 언제나 재미있는 것만 찾아 그걸 아주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는데 현재까지는 에티오피아에 대한 공부가 굉장히 재미있다. 현지에 가려면 아픈 주사도 여러 대 맞아야 하고, 준비할 게 아주 복잡한 나라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