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오순 2012. 4. 10. 18:52

2010년 봄 어느날이었다. 연구실 내 뒷자리에 앉아 늘 페북삼매경에 빠져있던 1년차 박사과정생이 뜬금없이 내게 묻는다. 너네 나라는 중국어를 사용하느냐고. 이 무식한 인간 같으니라고. 간신히 분노를 참았었지, 아마.


2012년 봄 어느날이다. 같은 연구실에 있는 박사 3년차 학생 두명이 네가 책을 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어떻게 하면 그 책을 읽어 볼 수 있느냐고 물었다. 혹시 번역해서 출판할 계획은 없느냐고도 물었다. 그래서 그랬지. 난 당분간 시간이 없을 테니 너네가 한국어를 배워서 읽어보는 건 어떨까라고. 


그냥 웃고 말 줄 알았던 이 친구들이 한국어 배우기 어렵냐고 뜬금없이 묻는다. 마침 화이트보드가 보이길래 한번 배워볼래 하고 물었다. 둘다 그렇게 간단히 배울수 있는 언어냐고 의아해한다. 너네들이 총명하다면 30분만에 한글을 읽고 쓸 수 있는 규칙을 내 친히 가르쳐주마 하고 일단 자음과 모음을 알려줬다. 음가가 없는 이응은 '가짜이응'이라는 식으로 가급적 문법을 배제하면서 자모음을 어떻게 결합하는지 기본만 알려줬다. 정말 기본만. 오올~~~. 이 총명한 애들은 정말 30분도 안되어 지들 이름과 내 이름을 한글로 쓰고 읽을 수 있었다. 


특히 모음에는 하늘, 사람, 땅이라는 철학적인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고 설명하면서 요 세가지로 스물한가지 모음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했더니 탄복을 금하지 못했다는...아, 세종대왕 만세다. 너네가 로마자로 되어있는 언어만 중시해서 한글의 위대함을 모르는 것 같은데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창제자가 누구인지, 어떤 원리로 글자가 만들어졌는지 알수 있는 언어이며, 방금 경험했듯이 굉장히 과학적인 소리글자라고 설명해줬다. 완전 감동하는 그 모습이라니. 루트리지(Routledge) 출판사(아주 유명한 출판사다)에서 <Fifty Key Thinkers on Language and Linguistics>라는 책이 출판되었는데 여기에 세종대왕 이야기가 있으니 시간날때 사서 읽어보라 그랬다. 


한국이 세계에 자랑할만한 많은 것들(?) 중에 아주 독보적인 게 나는 이 한글이라고 생각한다. F나 V처럼 이미 사라진 자음들도 있지만 소리가 확실하다면 모두 문자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게 한국인인 내게도 여전히 신기하다. 세종대왕은 어떻게 그 시대에 이런 문자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감동이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한국에 있을 때는 내가 쓰는 모국어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없었지만 밖에 나와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내가 읽고 쓰는 우리말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세종대왕이 이룩한 많은 기적같은 일 중에 한글창제는 당연 갑(甲)이다. 감사하며 바르게 사용하는 게 우리 몫이고 또 책임일 것이다.


맛보기로 이 친구들에게 '주세요'라는 말을 알려줬는데 벌써 응용하기 시작했다. 두명의 친한파가 탄생한 역사적인 날을 기념하면서 몇자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