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몽고행 기차 안에서
중국 원조 라면, 란저우(蘭州) 라미엔
인스턴트 라면을 비롯해 우리가 지금 먹는 라면의 원조는 일본이다. 중국의 국수가 마르코 폴로 덕분에 서양으로 건너가 스파게티가 되었고, 그 국수가 한국을 거쳐 일본에 가서는 라면이 되었다. 중국에도 맛이 다른 이 라면이 있다. 우리가 흔히 수퍼에서 사다먹는 라면도 있지만 중국에서 보통 라면(拉面, '라미엔'이라고 읽는다.)이라고 하면 손으로 뽑은 면을 각 종 재료로 끓인 걸 말한다. 소고기가 좀 들어가면 소고기 라면이고 닭고기가 들어가면 닭고기 라면이 되는 것이다. 길게 잡아 늘릴 라(拉, 한국식으로 읽으면 ‘납’), 면자는 우리가 쓰는 글자랑 다른 면(面, '미엔'이라고 읽는다.)이다.
이 라면이 제일 맛있는 곳이 란저우(蘭州)라는 곳이다. 베이징에서도 아침 시장에서 소고기 라미엔을 1원씩 주고 먹어 봤지만 란저우 라미엔은 정말 맛있다. 우리도 원조 원조 하는데 중국도 마찬가지다. 라미엔집 상호에 란저우가 들어가 있는 집이 많다. 물론 본고장 란저우에 가면 여기저기 원조 라미엔 천지다.
원조 라미엔을 먹고 란저우에서 은추완((銀川, 한글로 은천인데 이름이 참 예쁘지 않은가?)을 지나 내몽고로 향할 때였다. 서른 시간 넘게 타고 다니는 기차 여행에 익숙해지니까 열 대여섯 시간 입석은 이제 할 만하다. 청량리역에서 춘천까지 두 시간 거리, 좌석이 없으면 다음 기차로 미루던 때가 있었는데 나 원 참이다.
photo by Yann Layma
은추완에서 내몽고 후허하오트어(呼和浩特)역으로
은추완에서 내몽고 후허하오트어(呼和浩特)역까지 9시간인데 발디딜틈 없이 사람들이 많았다. 어디 기대지도 못하고 꼬박 서서 가야할 판이다. 뻔뻔한 사람들은 앉아있는 아가씨 옆으로 가서 자꾸만 자기 엉덩이를 들이밀지만 그걸 가지고 뭐라는 사람이 없다. 참 이상한 나라다. 나 말고는 주변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다. 임어당의 글에서 본 기억이 나는데 그게 다 민족성 때문이란다. 여기저기 관심 많은 사람 치고 잘 된 경우 없고, 그냥 내 일에만 관심 갖고 살면 세상 살기 편해서란다.
새벽 한 시. 낮엔 가끔 사막이라도 볼 수 있었는데, 기암절벽도 볼 수 있었는데, 푸른 초원도 볼 수 있었는데, 깜깜해지니까 창에 어린 나 밖에 볼 수가 없다. 친구도 생각하고 가족도 생각하고 옛날 생각도 하고 앞으로 살 날 생각도 하고 그러면서 달리는 기차에 나를 내버려두고 있었다.
정확한 보통화를 구사하는 아주머니가 나를 자기 옆으로 앉으라고 그런다.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는데 안돼보였는지 그래도 자꾸만 부른다. 그럴 때 누가 앉겠느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대 여섯 시간 만원 기차에서 서서 가다보면 바닥이라도 앉고 싶어진다. 내가 한국인인 걸 알아 본 거다. 서서 오는 내내 나를 모른 척했던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갑자기 주인공이 되어버렸다. 정말 갑자기, 느닷없이, 순식간에.
안재욱을 얘기해 줘야 했고 김희선이 진짜 봐도 예쁜지 설명해 줘야 했고 HOT의 멤버를 얘기해 줘야 하는데 난 걔네들 이름도 모른다. 어쨌거나 한국 사람이면 그 정도는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계속 희망을 이어 줘야 했다. 내가 신고 다니는 발목 올라오는 신발을 보고 한국 애들은 다 그런 걸 신느냐 물으면 대답해 줘야 했고(사실 그 신발은 중국에서 산 건데.), 쓰고 있는 모자를 한 번만 써 봐도 되겠냐는 맞은 편 남학생한테 어색해하며 그 모자를 건네줘야 했다. 이게 아닌데 속으로 계속 되뇌어보지만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 순간 소설가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중국말을 아주 유창하게 하는.
자리를 양보한 아주머니는 금방 일어나셨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입석으로 표를 끊어도 왔다갔다 하는 객차승무원이랑 말이 잘 되면 침대차로도 표를 바꿀 수가 있다는 거다. 은추완에서 베이징을 왔다갔다 하며 장사를 하신다는 그 아주머니는 시골 사투리를 구사하는 사람들 말을 통 알아듣지 못하는 이방인에게 친절하게 순차통역을 해 주셨다. 젊을 때 이렇게 자유롭게 여행을 할 수 있는 한국이란 나라가 정말 부럽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여행 조심하라고는 떠나셨다.
아직도 중국은 여권 발급이 자유롭지 않고, 또 가려는 나라의 비자 문제가 매끄럽지 않다. 그래서 여권이랑 비자 문제 때문에 한국으로 들어오려는 중국 교포들이 브로커들한테 고액의 돈을 바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기차에서 만난 용감한 형제
후허하오트어에는 왜 가냐고 앞에 앉아 있는, 베이징에서 대학을 다닌다는 학생이 자꾸 물어본다. 사막을 보러 간다고. 초원을 보러 간다고. 그런 걸 왜 보러 가냐고 그런다. 그냥.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좀 더 근사한 말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장학생으로 대학을 간다는 이 시골 청년은 베이징에 대한 환상이 굉장히 컸다. 태어나서 처음 타보는 기차도 신기하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외국인과 얘기를 해 본다고 그 또한 신기해했다.
옆 좌석에는 이미 베이징에서 2년이나 대학을 다니고 있는 형이 있었는데 전공이 무용이라면서 뜬금없이 한국의 댄스 가수들에 대한 계보를 죽 읊어대는 게 아닌가. 한국에서 불리는 이름이랑 중국에서 그들이 부르는 이름이 한자만 같지 발음이 달라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었는데 그 형이란 친구는 그런 나를 이해할 수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참고로 안재욱은 중국에서 안자이쉐로 발음을 한다. 어떻게 한국에 살면서 그렇게 유명한 애들을 모를 수가 있느냐는 형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난다. 난 HOT 멤버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떼로 나와서 노래하는 팀의 멤버들 이름은 지금도 여전히 잘 모른다.
새벽 한 시가 넘었는데 출출하다면서 건네는 컵라면을 그날 나는 먹지 못했다. 한국에서 새벽 네 시에도 먹었던 라면이 도무지 당기지를 않아서였다. 수북이 쌓아놓고 먹으라는 해바라기씨도 먹지 못했다. 원래 호박씨든 해바라기씨든 까먹는 건 감질나서 잘 안 먹는 편인데 새벽, 그 시간에는 더더욱 못 먹는다. 자기 동네에서 제일 맛있는 제과점에서 사 온 빵이라면서 건네는 빵도 물론 못 먹었다. 그럼 포도는 어떠냐고 권하는데 그것도 역시 못 먹었다. 그 새벽, 그 기차 안에서 난 그 어떤 호의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지금도 참으로 미안하다.
원래 용간한 친구들인지 외국인인 나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는지 모르겠지만 형제들은 입석표를 가진 나와 다른 여자 승객한테 둘 다 자리를 양보했다. 나야 서 너 시간 후면 내몽고 역에서 내리지만 그들은 베이징까지 아직도 열 시간을 넘게 가야 하는데 말이다.
동생은 지금쯤 졸업을 했을 테고 여자친구가 혹 있을지도 모르겠다. 새벽 두 시 근방에 내몽고역에서 내리려는 나를 끝까지 배웅하던 친구였다. 머리 위까지 올라오는 무거운 배낭 메는 걸 도와주고 안 먹겠다고 고집피우던 음식들을 따로 비닐에 담아 손에 걸어주면서 문까지 따라와 인사하던 참으로 가슴이 따뜻한 친구들이었다. 이름도 모르는 이 친구들을 나는 그저 용감한 형제로 기억하고 있다. 은추완에서 내몽고로 가는 기차안에서 만난 용감한 형제로.
(여행시기: 20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