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사 풍경 - 퇴실
작년 9월에 유학생활을 시작했던 학생들이 과정을 마치고 떠나는 시즌이 돌아왔다. 대규모로 왔기 때문에 대규모로 떠난다. 그 중에는 오는 9월에 학부 또는 대학원 과정에 입학하기 위해 다시 엑시터를 찾는 학생들도 있다. 이번엔 어떤 학생들이 올 지 궁금하다.
기숙사 사감의 업무 중에 하나가 떠나는 학생들 방을 체크아웃 하는 일인데 이때 재미있는 광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인도나 파키스탄, 중동에서 온 학생들 중에는 생활하면서 가끔 학생들끼리 주종관계를 보여주기도 하는데 체크아웃 할 때도 마찬가지다. 네다섯 명의 학생이 한 방에 찾아 와 떠나는 친구의 짐을 싸주고, 떠나는 친구는 주인처럼 그걸 지켜보기만 한다. 파키스탄에서 온 학생 하나가 아프다고 해서 새벽 3시쯤 방문한 적이 있는데 세 명의 학생들이 그 시간에 아프다는 친구 옆에 있었다. 남학생 방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는데 옷장안 마저도 광고에 나오는 것처럼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상황은 구급차를 부를 정도로 위태로웠는데 한 학생은 옷장에서 아픈 친구의 겉옷을 챙겼고, 또 한 학생은 서랍에서 여권이랑 신분증을 챙겼다. 둘 다 아주 익숙해 보였다. 학생 둘이 구급차에 동행하기로 했고, 나머지 학생은 그 방에 남아 있는다고 해서, 규정상 방 주인 없이 머물 수 없다고 쫓아내야 했다. 며칠 전 체크아웃 하면서 그와 비슷한 광경을 또 만났다. 인도에서 온 학생이 방 주인이었는데 여자 친구까지 네명의 학생이 작은 방에서 짐을 챙기며 체크아웃을 기다리고 있었다. 떠날 때 보니 그 친구는 장지갑만 달랑 들었고, 나머지 학생들이 그 친구의 커다란 수트케이스를 끌고 갔다.
위에서 언급한 학생들은 예외적인 상황이고, 체크아웃 할 때 방에 가 보면 대개 떠나는 학생 혼자인 경우가 많다. 둘이 부엌을 사용하는 트윈 스튜디오의 경우 한 사람이 떠날 때 남아 있는 학생이 배웅을 해 줄 것 같지만, 그건 내 생각일 뿐이다. 거의 1년을 함께 했을 텐데 나와 보지도 않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낑낑대고 가방을 드는데 손이 모자라는 학생들을 위해 엘리베이터를 잡아주고, 건물 밖에까지 나가 배웅해주는 게 어느새 내 몫이 되었다. 사감 하나가 하필이면 이렇게 바쁜 시즌에 휴가를 내는 바람에 그 사감이 담당하는 구역까지 가서 체크아웃을 해야 하는데 중국인 학생 하나가 눈에 띄었다. 내가 체크아웃 하는 방 여러 곳에 짐을 들어주러 자주 나타나는 것이다. 나와 같은 동에 살지만 내가 담당하는 학생은 아니고, 중국에서 왔다는 것만 안다. 중국인 친구들도 있을 텐데 그런 방에는 안 오고 아제르바이잔, 우크라이나, 이탈리아 등, 유독 외국인 학생들의 방에만 나타나 관심이 동했다. 남학생인데 어찌나 살갑게 굴면서 배웅을 하는지 소심하고 게으른 내 유학생활과 비교가 되었다. 문득 그 학생은 유학생활을 아주 바쁘게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