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빨리
우리나라 문화 중 제일 좋아하는 것 하나가 바로 배달문화이다. 늦은 밤에도, 밖에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는 날에도 전화 한통이면 음식을 배달해 먹을 수 있고, 주문한 책들도 대개 하루 안에 받을 수 있다. 시도때도 없이 사람을 혹사시키는 문화지만 서비스를 이용하는 입장에서는 이 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물건을 보내고 받을 때도 다양한 서비스가 있어 골라서 이용할 수 있고, 게다가 가격도 저렴하다. 일본도 영국도 선진국으로 분류되지만 배달과 관련해서는 한국을 따라잡기 힘들 것 같다. 일단 비슷한 서비스들이 있다고 해도 비용이 너무 비싸고, 절차도 복잡해서 이용할 때마다 분노게이지가 높아진다. 그런 복잡한 내용이나 느린 절차를 마주할 때마다 왜 이 나라 사람들은 이런 서비스가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불만일 때가 있다.
내 오랜 유학생활은 신청서 만들기로 점철된 세월이라고 할 수 있는데 대개 접수하면 발표가 나기까지 6개월 이상을 기다려야하는 경우가 많았다. 영국유학준비처럼 한달도 안되어 뚝딱 결과가 나온 경우도 있지만 일본국제교류기금 프로그램도 거의 그 정도 기다렸고, 프로그램 시작까지 따지면 거의 1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한국은 배달문화만큼 공고/공모 문화도 이 보다 빠를 수 없는데, 느닷없이 발표해서 순식간에 결과를 매듭지어버린다. 공고 후 접수마감까지가 일주일이 안되는 경우가 태반인데, 이런 '빨리빨리' 문화 덕분에 결과까지 빨리 알 수 있어 초조해하는 시간이 길지 않아 좋기는 하다. 한국정부기관에서 초청하는 6개월짜리 연수 프로그램을 소개해 마침내 한국에 가게된 외국인 친구가 있는데 공고, 접수, 면접, 발표, 파견이 한해에 다 이루어져 그 친구도 나도 아주 놀라했더랬다. 이런 프로그램이 있는데 한국에 가볼래, 한 게 엊그제인데 그 친구 벌써 한국대학의 한국어학당에서 한국말 배우는 중이란다.
한국의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내용과 상관없이 피드백도 빠르다. 뭐 궁금해서 메일을 띄우면 하루를 넘기지 않고 답을 보내준다. 운전면허 합격하고 사진까지 들어간 운전면허증을 그날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외국 친구들은 놀라 자빠진다. 물론 다 빠른 건 아니다. 예외도 더러 있는데 바로 대학교수들이다. 궁금하다고 자기네들이 먼저 연락해서 이것저것 잔뜩 물어봐 나도 반가운 마음에 이것저것 답변을 해주면 그걸로 끝이다. 메일을 잘 받았다, 다음에 또 연락하겠다, 아니면 이건 이해가 잘 안가니 다시 설명을 해달라, 뭐 이런 게 없다. 그냥 답 받으면 그걸로 끝이다. 그런 사람들 통해서 또 다른 사람들이 연락을 해 오는 것 보면 내 메일을 받은 것 같긴 한데 왜 함흥차사인지 모르겠다. 메일 잘 받았는냐 또 연락하긴 그렇고, 메일 쓰느라 시간투자한 것 생각하면 좀 억울하기도 하고. 그래서 대학교수라고 소개하고 연락오는 사람들은 별로 반갑지가 않다.
일본은 우리와 좀 비슷해 공공기관의 피드백이 빠른 편이고 (실제 일처리는 엄청 느리지만...), 영국도 업무관련한 내용들은 대개 48시간 이내 답을 해 주는 게 문화인 것 같다. 내 지도교수도 별 내용없는 내 이메일에 네 메일 읽었다, 식으로 달랑 한줄이라도 꼭 답변을 보내주신다. 프로젝트 같은 데도 요구조항에 보면 48시간 이내에 답변할 것이 포함되는 경우가 있고, 그렇게 못할 경우 대개 부재중 메시지를 띄운다. 현재 부재중이라 빨리 답장을 못하지만 돌아오는대로 바로 연락해주겠다, 등등. '빨리빨리'에 익숙해있다가 게으른 문화와 조우하면 몹시 당황하게 되는데 한국교수들과의 이메일 소통이 그런 예 중에 하나다. 물론 이런 분들 중에도 예외가 있으니, 최근 일로는 경희대 아태국제대학원의 김준엽 교수가 그 예다. 문의사항이 있어 메일을 띄웠는데 상세한 내용으로 바로 답장을 보내주셔서 깜짝 놀랐다. 게다가 답변받고 감사하다고 연락을 했더니 그 메일을 잘 받았다는 연락도 바로 해주시는 게 아닌가. 당연한 일인데도 그동안 그런 사례가 없어 혼자 감동까지 하게 되었다는 슬픈....이럴 때 다시 답장을 하는 건 오버고 거기서 멈추는 게 이메일 에티켓이다.
며칠 전 산책을 다녀오다 네잎클로버를 발견했는데 오늘 아침 다른 자리에서 또 발견했다. 토끼풀 많은 곳에서 일부러 네잎클로버를 찾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이상하게 그냥 걷다가 잘 만난다. 두툼한 책이 있어 두 장 모두 거기에 넣어놨다. 잘 말라야 할 텐데...사실 이 이야기를 쓰려고 로그인을 했는데 딴 이야기를 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