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런두런
1.
눈이 문제가 있어 안과에 다녀왔다. 왜 안과 의사들은 키보드 치던 손을 소독도 안하고 가뜩이나 눈 때문에 온 환자 눈을 그대로 만지는 지 모르겠다. 한두 번이 아니다. 기본이 안된 의사한테 내가 지금 치료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없던 병도 더 생길 것 같다. 그래도 바보처럼 시키는대로 턱 붙이시고요, 이마도요, 시키는대로 다 해줬다. 병원 갈 때는 도로에서 뿜어져나오는 미세먼지 때문에 눈이 더 안 좋아질 지도 몰라, 하면서 전철을 타고 갔는데 돌아올 때는 씩씩거리며 그냥 걸어왔다.
2.
서울대에 다니는 외국인 유학생이 전입신고 시기를 놓쳤고, 보험가입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른다고 해서 두 가지 문제해결을 도와주러 서울대 외국인 유학생센터를 방문한 적이 있다. 직원들은 여럿 보이는데 나와 학생이 담당자를 찾아 쭈볏거려도 아무도 아는 척을 안한다. 그러다 어느 분이 일을 담당하시는지 모르겠는데, 하면서 상황을 설명했다. 나는 나름 조근조근 설명을 한다고 했는데 갑자기 담당자라는 여자가 일어서더니 얼굴을 붉히며 인터넷 찾아보면 다 나오고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할 때 나눠 준 책자에 영어로 설명이 다 되어 있다는 말만 몇 번이나 반복을 하는 게 아닌가. 10년이 넘는 유학생활 동안 운좋게도 친절한 유학생 담당자들만 만났던 내게는 좀 당황스런 상황이기도 해서, 그렇게 다 자료를 나눠줬는데도 일을 못 하고 있으면 뭐가 문제인지 먼저 알아봐야 하는 것 아니냐, 내가 지금 이러고 그냥 돌아가면 결국 인터넷으로 정보를 다시 찾아야 하는 것 아니냐, 하면서 언성을 높이는 상황에 이르렀다. 외국인이 영어를 다 잘 하는 것도 아니고, 인터넷과 영어가 무슨 바이블이나 되는 것처럼 반복하는데 그럴 바에야 서울대는 직원을 왜 그 자리에 앉혔는지 궁금해질 지경이 되었다. 그냥 안내책자에 인터넷 찾아보라고 할 것이지 말이다. 결국 거길 나오자마자 화가나서 서울대 관련부서에 직원교육 똑바로 시키라는 연락을 했고, 삼자대면이 필요하면 다시 가겠다고까지 했다. 직원이 임신을 해서 예민해져서 그랬다는 말 같지도 않은 답이 대외협력처에서 왔는데 임신을 해서 제대로 업무처리를 못 할 거면 휴직을 하던지. 그날 일부러 시간내서 유학생 센터까지 찾아갔지만 제대로 된 정보를 못 얻고, 인터넷을 다시 뒤져 학생에게 정보를 찾아줘야 했다. 둘러보면 이런 공무원들 너무 많지 않나? 그럴 때 다들 그냥 분을 삭히고 마는지.
3.
영국에서 기숙사 생활을 오래 했는데 나를 가장 짜증나게 만들었던 일이 바로 시도 때도 없이 울리던 화재경보기였다. 경보기가 워낙 민감해 담배연기나 촛불을 감지하면 당연히 울렸고, 화장실 문을 안 닫고 샤워를 해도 여지없이 울렸다. 어떤 학생들은 고무장갑 같은 걸 경보기 위에 씌워놓고 담배를 피우기도 했는데 기숙사에서는 단순한 기숙사 규칙위반이 아니라 범법행위로 다뤘다. 바보처럼 쏘시지나 피자 같은 음식을 전자렌지에 넣고 20분 이상씩 넣고 돌리는, 개념없는 학생들이 많은 동은 하루에도 몇번씩 화재경보기 때문에 입주자들은 밖에 나와야 했다. 새벽에도 예외는 없없다. 경보기가 울리고 4분 이내에 밖으로 나와 미리 지정된 장소에 모여야 하는데 늦으면 벌금이 30파운드 정도 되었다. 게으른 친구들은 밖으로 나오기 싫어 침대나 옷장, 화장실 등에 숨기도 하는데 불시에 검사해서 걸리면 마찬가지로 30파운드 벌금. 비가 많은 곳이라 비오는 새벽에 화재경보기가 울리면 정말 숨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데 나는 그럴 위치도 안 되었고, 경보기 소리가 워낙 요란해 밖으로 나갈 수 밖에 없다. 한국에 와서 제일 좋았던 점 하나가 시도 때도 없이 화재경보기가 울리는 일이 더 이상 없다는 거였는데 이게 사실은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 때문이니 마냥 좋다고만은 할 수 없는 일 아닌가.
4.
기숙사 사감 일을 한 덕에 화재나 재난시 대피훈련 요령, 다양한 소화기 사용 요령, 심폐소생술 등을 배울 수 있었는데, 큰 배 하나가 300명이 넘는 사람들과 함께 속절없이 침몰하고나서야 부랴부랴 혼자 사는 엄마한테 소화기 사용 요령을 알려줬다. 찌개를 올려놓고, 베란다에서 화초를 다듬느라 냄비가 다 타는 것도 몰랐던 적이 두 번이나 있었다고 했고, 한번은 나도 같이 있을 때였다. 온 집에 연기가 가득 찼는데도 경보기 같은 건 울리지 않았다. 그 생각이 들어 두툼한 담요(군용담요가 딱 좋다)를 부엌 옆에 보관하고 있다가 불이 나면 물에 적셔서 덮으라고도 알려줬다. 영국이나 일본 기숙사에는 부엌 조리기구 옆에 그게 항상 있었는데 그런 걸 상비하고 있는 집은 한국에서 아직 구경을 못했다.
5.
텔레비전을 안 보는데 요즘 저녁 9시만 되면 인터넷을 통해 손석희 옹이 진행하는 JTBC 9시 뉴스를 경건한 마음으로 시청하고 있다. 요즘 세월호 침몰 사고를 계속 복기하고 있는 중인데 도대체 어느 선까지 파헤칠까 궁금하다. 그러면서 많이 아쉽고 그렇다. 아이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그냥 다 뛰쳐나와 바다에 뛰어들기만 했어도...하는 생각이 드니 더 그렇다. 멍청한 지도자는 사고현장에 나타나 애들이 구명조끼를 입었다는데 왜 못구하느냐는 헛소리나 하고. 스마트한 면이 많이 부족한 사람인 건 알았는데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여기가 바닥이면 좋겠는데 지하실이 나타날까 걱정이다. 배가 침몰하고 사람들이 평범한 일상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었다는 건 좋은데 부디 이번 일은 오래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개인이 너도나도 아고라 같은 데서 모금운동 따위 모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거 모아봤자 어떻게 쓰이는 줄도 잘 모르지 않나. 이건 어디까지나 국가가 '보상'이 아니라 '배상'을 해야할 문제다. 돈 조금 내고 나도 이번 일로 뭐 하나 했다는 안도감이 필요한 분들은 그냥 감시활동 잘 하는 비영리기구들에 정기회원이 되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6.
온 나라가 어수선하지만 우리는 또 우리 할 일을 해야하지 않겠나. 나 처럼 눈이 아픈 사람들은 눈 치료도 받고. 마음이 아픈 사람들은 심리치료도 받고. 노래를 하거나 춤을 춰야 먹고 사는 사람들은 또 그렇게하게 도와줘야 하고. 차라리 조문기간을 둬서 조문기간이 끝나면 사람들이 죄책감없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면 좋으련만 우리의 지도자님은 조문정국에도 영생을 기원하며 밝은 파랑색을 선택하시는 분이라 그런 배려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 같다. '각자도생'이라지만 그래도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테지, 하는 희망을 가져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