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24: 중국/사람들

계림 양수오의 뱀부하우스 가족

윤오순 2007. 5. 13. 11:29
드디어 계림, 눈에 넣다

중국에서 백두산보다 더 가고 싶었던 곳이 사실, 계림이었다. 중국 역사책에서 얻은 정보 때문이라기보다는 사진을 통해 본 계림을 보고 그곳이 그렇게 가고 싶었다. 그곳에 가면 뭔가 꼭 있을 거란 생각이 문득, 그래, 문득 들었다. 내가 가 본 그곳엔 하늘도 있었고 자연이 만들어 놓은 근사한 풍광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따뜻한 사람들이 있었다.


새벽 6시에 계림역에 도착을 했다. 여행할 때 여행 책자 같은 것 없이 주로 다니는데 그렇게 다니기에 중국은 아직 많이 힘든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여행문화가 잘 정착된 곳도 아니라서 숙소 잡기도 너무 힘들고 호객행위가 정말 장난이 아닌 나라다. 큰 도시를 가 봐도 그렇고 관광지는 특히 정도가 심하다.

리강을 유람하고 흥평이라는 데서 자전거 하이킹을 하는 게 여행 목적이었는데 새벽 6시에 도착한 계림역은 너무 황량했다. 양수오까지 가야 배를 탄다는 얘기를 어디서 들은 것 같은데 이거 참 막막하기 그지없다. 저 많은 호객꾼들 중 누구 하나를 골라야 하지만 무리수도 이만저만 무리수가 아니다. 아무나 찍었는데 바가지를 옴팡 씌우려 작정을 한 게 보인다. 계림 같은 곳도 이런데 오지는 말해 뭐하겠나. 계림역에서 양수오까지 가는 버스를 타야한다. 바가지 안 쓰고 저 많은 사람들 중에 누구를 선택해야 할 지 참으로 갈등이로다. 결국 나는 탔고 5원이면 가는 곳을 25원 부르는 바람에 새벽 댓바람부터 한 바탕 하고는 5원을 던져줬다. 비가 부슬부슬 오는데 양수오까지 가는 버스에서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계림의 냄새를 조금 맡을 수 있었다.

양수오는 이미 서양 관광객들이 넘쳐나는 곳이었다. 도로이름에 웨스턴 스트리트도 있을 만큼 양키화가 돼버렸다. 중국에서 중국을 잃어버린 동네에 도착한 이방인은 숙소부터 찾아야 하기 때문에 흥정을 시작하러 돌아다녔다. 10원이면 하룻밤 잔다는데 무조건 40원 50원이다. 한 집을 딱 골라, 내 오늘밤 너네 집에서 잘 테니 배낭이나 맡겨 달라고 하고는 얼른 리강 유람에 들어갔다. 대 여섯 시간씩 배를 타고 리강을 도는 사람들도 있는가 본데 두 시간 정도면 넉넉한 것 같다. 같은 풍경이 계속 반복되기 때문에 한 시간 지나면 졸리기 시작한다.

400원짜리 리강 유람을 50원에
유람을 하는데 단체로 가면 싸다고 해서 프랑스 여행객들이랑 같이 움직이는데 가격을 물어보니 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다. 외국인과 내국인에게 이중요금을 적용한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어쨌거나 난 50원을 냈는데 다른 친구들과 금액이 달랐다. 그 두 배인 친구들도 있었고. 중국이 이런 나라다.

이중 요금 하니까 생각이 난다. 홍콩 옆의 광주에서 계림으로 넘어 올 때다. 광주역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버스 터미널이 있는 줄도 모르고 역 가까운 데에 있는 매표소에서 계림까지 버스표를 샀다. 버스라고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버스와 다르게 내부가 침대차로 꾸며져 있다. 한 침대에 둘씩 누워 여행을 하는데 옆 사람 잘 못 만나면 그 여행이 또 고역이다. 뭐 그렇게 말할 필요까지 있겠느냐 하겠지만 이동하는데 10시간이 넘을 때도 있기 때문에 쉽게 말할 게 못 된다. 일명 닭장차를 타겠다고 90원짜리 표를 끊어서 버스를 타려다가 공용터미널에서 혹시 몰라 티켓 가격을 물어봤더니 68원이다. 또 속았다. 속지말자 아무리 다짐을 해도 중국 사람들의 상술을 당해내지 못한다. 버스를 타서는 침대칸 하나에 자리를 잡았는데 옆자리에 예쁘장한 아줌마가 탔다. 이번 여행은 편하겠다 싶었다. 언젠가 탄 버스에 아줌마가 어찌나 잠을 험하게 자는지 원. 또 궁금해서 물어봤지. 얼마짜리 표예요. 자기는 자주 버스를 이용하는데 10원짜리란다. 이건 말도 안 된다. 광주에서 계림까지 그 거리가 얼만데. 하지만 사실인걸. 혹시 중국 여행을 계획하고 계신 분들이 있으면 참고하시기를.


50원짜리 크루즈를 하려고 하는데 또 그게 쉽지 않았다. 갑자기 배가 뜨지를 않는단다. 하늘이 저렇게 맑은데 왜 안 되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관에서 나와서 위험하다고 오늘 배를 띄우지 말라고 했단다. 다들 일정이 있는지라 안 된다 사정을 해도 투어 책임자는 어쩔 수 없다는 말 밖에 안한다. 다시 사정을 했더니 하는 말이 400원을 주면 할 수 있단다. 싼 배는 못 움직이고 400원 짜리는 배를 띄울 수 있단다. 우리 팀 14명 중에 중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나 밖에 없었던지라 타지말자, 라는 팀의 의지를(?) 투어 책임자한테 전했다. 그래서.... 그날 50원 짜리 리강 유람을 했다. 결국 또 바가지를 씌우려던 거였다.


양수오 뱀부하우스에서 1박 2일

리강 유람이 끝나자 또 걱정이 일기 시작했다. 오늘 밤은 어디서 자야하나. 배낭 맡아 준 집 가격이 영 맘에 들지가 않았다. 숙소 잡기 전쟁이다. 사정을 얘기하고는 그 집을 나왔다. 뒤통수가 부끄러웠지만 전날 좋은 잠은 다음 여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니 어쩔 수 없다. 배낭을 짊어지고 여기저기 찾다, 그러다 발견한 곳이 뱀부하우스였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이곳은 한국 여행 책자에도 소개가 된 유명한 곳이었다. 손님이 많지는 않았지만 깨끗한 곳이라 짐을 풀기로 했다. 매트리스가 다섯 개 놓여있는 도미토리 스타일의 옥탑방이었다.


방에 올라갔더니 스무 살짜리 프랑스 남자애가 일주일 째 묵고 있다면서 반갑게 인사를 한다. 웃으면서 인사 할 때만 해도 이 친구가 새벽까지 나를 피곤하게 할 줄은 정말 몰랐다. 저녁을 먹고 들어왔더니 이 친구가 말도 못하고 벌벌 떨기만 하는 거다. 일명 냉방병이었다. 고열에 시달리면서도 병원은 죽어라고 안 가겠다 그러고. 영어도 못하고 중국어도 못하는 이 친구가 계속 하는 말은 내일 아침이면 괜찮아질 거란다.  할 수 없이 배낭에서 수건을 꺼내 열을 식혀보겠다고 애를 썼는데 헛수고였다. 세 시간을 그렇게 물수건으로 고열을 내려보겠다고 용을 쓰다가 뱀부하우스 식구들을 불렀다. 그래도 병원은 죽어도 안 가겠단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돈 때문이었다. 나도 여행을 좋아하지만 배낭여행객들 주머니는 늘 넉넉하지 않다. 그래서 그랬던 거였다. 중국 침 한 방이면 쑤욱 열이 내려가는 것을. 무려 세 시간이나 이방인을 간호해준 덕분에 뱀부하우스에서는 15원 짜리 방비를 10원으로 할인해 주는 호의를 내게 베풀었다.


아침이다. 떠나야 한다. 자전거를 꼭 한 번 타고 싶은데. 갈등을 했다. 산드라 블록을 닮은 여주인의 시동생이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한다.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자전거를 타고 양수오 일대를 다 돌았다. 엄마 사는 곳도 데려가 주고 동네 사람들 사는데도 데려가 주었다. 죽어라 사진 안 찍겠다고 했는데도 양수오를 찾아오는 여행객들이 반드시 사진을 찍는다는 곳에 나를 세워 놓고 카메라를 빼앗아 사진을 찍어줬다. 자전거를 타고 발목까지 물이 올라오는 시내를 가로 질러 본 사람들은 그 기분이 어떠한지를 알리라. 즐거웠다. 내가 여행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새까맣게 다 탔다. 태양이랑 마주친 살이란 살들은 전부 타서 시뻘개져 있었다. 시장에서 수박을 두 통 샀더니 뭐하려고 두 통씩이나 사냐고 그런다. 파티를 하려면 두 통은 필요할 것 같아 큼직한 걸로 두 통을 샀다.

 

다시 뱀부하우스. 그 사이 식구들이 많아졌다. 산드라 블록을 닮은 여주인, 남편, 딸, 꼭 한국인처럼 생긴 남편 친구, 일 거들어 주는 아가씨, 주방 아줌마, 열 내려간 프랑스 친구 등등. 화상을 입어 따가워 죽겠다 그랬더니 식구들이 다 달라붙어 감자를 저며 붙여줬다. 수박 잘라서 나눠 먹자고 했더니 칼로 잘게 잘라 입에 넣어 준다. 양 팔에 감자를 잔뜩 붙여서 팔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옆에서는 자꾸만 하루 더 묵고 가란다. 열 내려간 프랑스 남자애는 눈치만 보고 있고. 가야한다 그랬더니 샤워라도 하고 가란다. 그럴 수 없다 그랬는데 난 더 이상 이 집 손님이 아니란다. 중국이 또 이런 나라다.

 

누군가를 죽도록 그리워하면서 살 팔자

여주인 보고 산드라 블록을 닮았다고 했더니 그게 누구냐고 그런다. 내가 그 여자 나오는 영화를 선물하겠다고 하고 여기저기 VCD 파는 가게를 다 뒤졌는데도 그 여자 나오는 영화를 찾을 수가 없었다. 한국에 그 흔한 ‘스피드’가 한 장도 안 보인다. 달랑 내 성만 알고 있는 그 사람들을 만나러 언젠가 또 양수오에 갈 것이다. 카펜터즈를 좋아하는 그 여주인한테 노래 CD랑 산드라 블록이 나오는 영화 CD를 들고 나의 봄날에 다시 한 번 가 보리라. 살이 벌겋게 익어도 또 가서 자전거를 타 보리라. 형이 소개시켜 주는 홍콩 회사에 취직하려면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내 가이드는 홍콩에서 취직이 됐을까. 밤새 부산을 떨게 만들었던 그 프랑스 친구는 또 어떻게 살고 있나. 주소 적어 달라고 그럴 때 이메일 주소라도 알려 줄걸. 내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나는 누군가를 죽도록 그리워하면서 살 팔자라고 어떤 사람이 그랬었는데 그 말이 맞나.

 

(여행시기: 20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