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24: 일본/사람들
인연(1)
윤오순
2007. 10. 21. 15:55
일본에서 스티븐 호킹 같은 사람을 만났다. <오체불만족>의 주인공이자 저자인 오토다케는 사지가 아예 없지만 이 사람은 있어도 사용을 못하는 사람이다. 머리는 비상해 회사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윈도우 오피스 프로그램을 다 다룬다. 컴퓨터는 독특한 키보드를 사용하는데 내겐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어머니랑 같이 살고 있는데 어머니의 상황도 거의 비슷하다.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혼자 식사도 못하신다. 물론 화장실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갈 수 없다. 문득 사람은 언제까지 살아야 하나, 의문을 가질 때가 많다. 혼자 먹지도 못하고 볼 일도 못 보고 사는 이유를 전혀 모를 때도 숨이 붙어있으면 그냥 살아야 하나, 하면서...
집안에 장기간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하나 있으면 가정이 완전히 풍비박산 나는 경우를 여러 번 봤다. 한국이라면 가족의 도움없이 이런 사람들이 살기 힘들 텐데 일본은 이런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어 부럽다. 집에는 전문 스탭이 항상 상주한다. 하다 못해 청소를 하고 밥을 하러 오는 사람들도 자격증을 갖추어야 한다. 최근에 일본도 젊은 사람들이 이런 일을 귀찮아 해 필리핀 사람들이 이 일에 많이 뛰어들고 있다고 한다.
자격도 자격이지만 마음 없이 이 일을 하긴 쉽지가 않은 것 같다. 옆에서 보살피는 사람들을 보면 감동이 물밀듯 밀려온다. 이 사람 집에 오는 사람들만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가족에게 하듯이 이 두 사람 대하는 모습을 보면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진다.
각설하고, 자격도 없는 내가 이 사람들을 돕게 되었다. 장학금 타게 된 기념으로 시작했는데 '참 잘했어요' 라는 도장을 받아도 될 것 같다. 일 끝나고 돌아오는 길은 늘 기분이 좋다. 애초 자원봉사를 생각했는데 '스티븐 호킹'이 그럴 필요 없다고 해서 졸지에 아르바이트가 되어버렸다. 일을 시작한 지 한달이 채 안됐는데 내가 가는 날은 이 사람들이 밥도 안 먹고 기다린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인연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