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24: 일본/일본유학이야기
2008년 화두
윤오순
2008. 1. 15. 01:24
늘 나는 바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바쁜 건 너무 당연한 일인 것처럼. 그 덕분(?)에 가족 행사는 형제들에게 떠 넘기고 친구들 모임은 나 아닌 다른 친구들이 있으니까, 하고 몰라라하고. 그렇게 아주 밥맛 떨어지게 오래도 살았다. 그렇다고 내 인생이 썩 좋았느냐, 그러면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결론이 나버린다.
가족들도 친구들도 내가 바쁜 사람이라고 인정을 아예 해버려서 가족들 친구들 생일도 한참이 지난 후에 알고 명절도 연말연시도 이젠 남의 일이 되어버렸다. 내가 그렇게 형편없이 살고 있다는 그 사실을 나보다 더 바쁜 사람들을 만나고 알게 되었다. 그런 게 아무 의미가 없다는 사실도. 친구들과 적당히 엉겨가며 우정도 차곡차곡 쌓아가고 가족들과 친밀감도 유지해가는 그런 삶이 의미가 있는 거지 닥친 일에 코박고 하루하루 넘기는 게 이게 결코 사람 할 짓이 못 된다는 것도.
친구들이 블로그를 하나씩 오픈했다. 작년까지만해도 좁아터진 플톡 안에서 놀다가 다들 지쳤는지 교류 장소를 옮겼다. 덕분에 이제 친구들 일상을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누가 언제 생일이고, 누구네 애기가 얼마나 컸고, 눈이 왔는지, 비가 왔는지 친구들의 소소한 일상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블로그에 마실 갔다가 혼자 웃기도 하고 감동해서 찔찔짜기도 하면서 내가 마늘이랑 쑥도 안 먹고 며칠 만에 사람이 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2월부터는 가족들이 일본에 오게 될 것 같다. 내가 못 가니 오는 거지만 자꾸 만날 기회를 만들 계획이다.
사람은 결국 혼자지만 혼자 살 수 없는 동물 아닌가. 그래서 나도 내 소소한 일상을 가족들, 친구들과 자주 공유하리라 마음 먹었다.
2008년 내 화두는 그 무엇도 아닌 사람이다.
사진: 하라르 올드시티 골목에서 만난 꼬마들. 다리찢기를 비롯해 아주 다양한 곡예를 10분 정도 보여 준 후 지쳐있길래 초콜릿을 하나씩 나줘준 후 자세를 정비하고 한 컷 찍었다. 이 꼬마들은 내가 지나가면 나를 '태권도'라고 불렀다. 어릴 때 나랑 놀던 친구들은 지금 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내가 사람이 된 걸 아는지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