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에티오피아 서남쪽 한 지역에서 7년간 숲과 커피를 연구하고 있는 JICA(일본국제협력기구) 전문가를 만났다. 같은 날 Fair Trade(공정무역) 관련 일만 15년간 해온 한 NGO 관계자도 만났는데 무엇이 이 사람들을 이런 일에 매달리게 했을까 무척 궁금했다. 얘기를 하면서 내가 너무 피상적으로 커피연구에 접근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빨리 펀딩문제가 해결되어서 현지로 떠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동안 너무 편하게 지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커피 생산지하면 대규모 농장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은데 에티오피아의 고원지역에서는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으로 커피를 재배하고 있다. 이 전통적인 방식이라는 건 울창한 나무 아래에서 커피를 키우는 것이다. 2,000M 이상의 고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집 앞 텃밭에 커피를 키우기도 한다. 브라질이나 콜럼비아를 비롯해 대규모로 커피를 생산하는 지역들은 광대한 토지에 마치 포도밭처럼 커피나무를 심어 기계로 커피를 수확하지만 에티오피아의 고원지역에서는 숲에서 키운 커피를 사람들이 일일이 손으로 수확하고 있다. 당연히 유기농재배일 수밖에 없다. 커피 포장지에 Rainforest Alliance 혹은 Bird Friendly라는 인증마크가 있는 경우 거의가 이렇게 재배된 커피들이다. 좀 아이러니하지만 이런 인증마크는 커피를 재배한 사람들이 아닌 미국의 한 NGO와 연구센터를 통해 돈을 내고 받아야한다. 


2006년에 방문했을 때 눈여겨보지않았던 장소였는데 자이카 전문가가 연구하는 지역이 이 지역이 아닐까 싶다. 차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한참이나 달려 도착한 곳이었는데 아프리카의 이미지와 전혀 어울리지않는 울창한 숲에 온천이 있는 곳이었다. 자이카 전문가가 말한, 에티오피아에 3%밖에 남아있지 않다는 숲이 문득 이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동물도감에서나 보는 희귀한 동물들이 이곳에 많이 살고 있다. 움직임을 제대로 포착하지못해 사진이 죄다 흐리게 나왔다.


평지(라고 하지만 해발 1,500M 이상인 곳이다.)에서 숲속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섭씨 85도 정도 되는 온천이 말그대로 콸콸콸 흐르고 있다. 온천지역이라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을 이곳에서도 볼 수 있다. 온천수에 달걀을 삶아 파는 사람들, 물온도가 낮은 곳에서 몸을 담그고 있는 사람들 등등. 홀랑 벗고 앉아 천연덕스럽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해서 카메라를 들고 있던 내가 몹시 당황해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몇장 찍었다.


숲 안에 이런 야외 온천수영장이 있다. 브라질 국기가 보이지만 분명 에티오피아이다. 가난한 나라도 돈 있는 사람들은 주말에 이런 곳에 와서 망중한을 즐기나 보다. 트래킹 코스가 있다고 해서 참가한다고 했더니 그냥 동네 꼬마랑 뒷산에 잠깐 올라갔다 내려오는 것이 프로그램 전부였다. 내가 꼬마에게 준 팁의 일부는 그 프로그램을 기획(?)한 어른이 가져갈 게 분명했지만 재미있었다. 그 꼬마는 돈을 모아 나중에 여행사를 차리고 싶다고 했는데 그 꿈 관리를 잘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나무그늘에서 자라는 커피나무. 커피열매는 이런 나무에서 자란다. 에티오피아에는 아직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고원지역에 이런 커피나무들이 자생한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커피를 재배하려면 나무를 먼저 키워야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농사꾼은 수년을 기다려야 한다. 그 사이 커피값이 폭락할 수도 있고, 따로 밥벌이 수단이 없으면 이런 방법을 고수하며 커피를 재배하기가 힘들다. 대규모로 커피를 생산하는 지역들이 농장에서 대량으로 농약을 살포해가며 커피를 재배하는 이유다. 기계로 쉽게 커피농사를 짓더라도 우리가 커피 한잔을 마시기까지의 공정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한달후 떠난 여행에서 커피체리는 벌써 이렇게 익고 있었다. 대부분의 개발도상국 커피농가에서는 이런 커피열매를 일일이 손으로 따낸다. 그래서 커피수확시기가 되면 아이들은 학교를 쉬어야 한다. 커피를 따는 것으로 공정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건조해서 우량품종을 골라낸 후 포대에 담아 시장에 내놨을 때 품질을 제대로 인정받아야 한다. 그렇게 테스트를 무사히 통과한 커피들은 배에 실려 이나라저나라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선적된 커피가 우리가 바로 마실 수 있는 커피의 최종 모습은 아니다. 로스팅과 그라인딩이라는 중요한 과정이 남아있는데 에티오피아의 경우 설비가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아 커피에서 뽑아낼 수 있는 많은 부가가치를 이쯤에서 대부분 포기한다. 로스팅을 비롯해 커피에서 가능한 부가가치는 싼 로부스타와 비싼 아라비카를 적절하게 섞어 파는 등의 상술로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이는 네슬레(네스카페 제조사)나 크래프트(맥심, 맥스웰 제조사) 등의 인스턴트 커피 제조회사, 커피가 아니라 문화라며 커피 10그램으로 4,5천원씩 돈을 벌어들이는 스타벅스 등의 대형 커피숍 체인에서 전부 만들어내고 있는 실정이다.

농사를 지어본 적도 없는 내가 커피농사꾼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지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이미 나와있는 자료들을 짜깁기해서 한편의 논문을 뚝딱 만들어내고 싶은 마음도 없다. 펀딩에 성공하면 일단 사진 속의 지역을 방문해 현지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자이카 전문가가 내 연구에 지대한 관심을 표명하며 현지에 오기 전에 연락을 하라며 신신당부를 했다. 수도 아디스 아바바에서 짐마(아라비카 커피의 고향 Kaffa가 있는 곳)까지 비행기를 타거나 버스를 타고 도착할 수 있지만 거기에서 현재 체류하고 있는 지역까지는 대중교통수단이 없어 자가용 밖에 못 들어간단다. 그러니 꼭 연락을 달란다. 그 사람 말고도 일본의 연구자 몇명이 수년간 그 곳에서 커피연구를 하고 있다니 심심하지는 않을 것 같다. 산골마을에 혼자가서 방얻어 지낼 생각을 하니 사실 좀 막막했었다. 조사지가 확실히 결정되고 현지조사가 시작되면 이곳에 열심히 포스팅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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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