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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4.15 여기는 에티오피아 2
  2. 2008.01.12 다시 도쿄 11
  3. 2007.12.19 다시 에티오피아
  4. 2007.11.08 다시 인연(2) 4
  5. 2007.04.14 아프리카의 허브, 에티오피아를 아시나요... 3
무사히 잘 도착해 보름쯤 지난 것 같습니다. 아디스아바바는 도시화와 현대화가 동시에 진행중이라 그런지 여기저기가 온통 공사중으로 아주 난리입니다. 도시 자체가 조금 커진 느낌입니다. 교통비를 비롯해 물가가 2008년에 비해 두세배 오른 것 같습니다.  전에는 한국 식당이 하나 뿐이었는데 그 사이 두개가 더 생겼고, 저는 그중에서 요즘 대박행진 중인 '대장금'이라는 식당에 몇번 갔었습니다. 일본식당도 생겼다고 하는데 쉐프가 일본인이 아니면서 가격이 엄청 비싸다고 해서 아직 방문을 못했습니다. 

2006년에 이곳에 왔을때 만났던 한국인들과 일본인들을 만나 이번에도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정말 기대도 안했는데 우연히 만나게 되어 놀랍기도 하고 기분이 참 묘합니다. 좀 외진 곳에 자리잡은 중국식당에 간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같은 해에 곤다르라는 곳에서 만난 일본인 연구자를 만났습니다. 그때도 그 친구를 만나려고 했던 게 아니라 택시기사가 다짜고짜 친구가 있는 곳으로 안내하겠다고 데려가서 만났는데 세상 참 좁지요? 그 사이 박사과정을 마치고 전문가가 되어 에티오피아를 다시 방문했다고 하는데 덕분에 알짜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었습니다.

2008년에 묵었던 호텔에서 묵고 있는데 그때 클리너 한명이 가족처럼 따뜻하게 대해줘 혹시 지금도 일을 하고 있을까 도착하자마자 계속 찾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러다 며칠 전에 호텔 리셉션 앞에서 우연히 만났습니다. 어찌나 반갑던지요. 아직도 저를 기억하고 있더군요. 방값이 많이 올라 전에 지내던 방보다 못한 방에서 지낸다고 했더니 안쓰러워하더군요. 그녀는 처음 투숙하던날 제방에 꽃병을 하나 가져왔습니다. 꽃병이라고했자 1리터짜리 플라스틱 물병의 윗부분을 잘라 만든 것인데 호텔주변에 핀 여러가지 꽃을 꺾어 거기에 담아 왔더랬습니다. 방도 후지고 이제 네 꽃도 볼 수 없다고 했는데 바로 그날 저녁에 똑같은 꽃병 하나가 배달되었고, 날마다 꽃들이 바뀌고 있습니다.

이곳에 오기 전엔 6개월을 어떻게 보낼까 조금 걱정이 되었는데 오며가며 만난 마음 따뜻한 사람들 덕분에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예전에 비해 인터넷 카페는 많이 생긴 것 같은데 전력사정이 안좋아 접속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왠일인지 정전도 안되고 인터넷 속도도 좋아 오랜만에 에티오피아 소식 남깁니다.  저는 이제 슬슬 저녁 먹으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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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남한산성  (3) 2008.01.14
Posted by 윤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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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하라르의 올드시티에는 골목이 300개가 넘는다. 300개가 넘는 골목에 다 이름이 있는데 그 골목을 훑고 다니다 이 소녀를 만났다.


다시 이틀 동안 비행기를 타고 아디스 아바바, 두바이, 간사이를 거쳐 도쿄에 도착했다. 아디스 아바바 공항에서 오사카 예술대학 교수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오느라 그리 심심하지는 않았다. 기내에서 읽을 책을 따로 준비했는데 꺼낼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60대 노교수였는데 좌석이 떨어져 있어 아쉬워하길레 스튜어디스에게 부탁했다. 엄마인데 같이 앉아가게 해 달라고.

하라르에서는 심하게 아파서 병원에도 가고, 우선 피부터 뽑자고 해서 안된다고 버티다 웃기는 사람 취급을 받기도 했고, 며칠을 먹지도 못하고 누워 있으니 호텔에서 메뉴에도 없는 음식들을 만들어 주어서 사람사는 곳이 다르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어쨌거나 내겐 이런저런 기억이 많이 남는 도시가 되었다.

아디스 아바바에서는 같은 호텔에서 4명의 한국인을 만나 연말을 함께 보낼 수 있었다. 하도 시끄러워서 밥만 먹고 헤어졌지만. 그 짧은 시간에 통성명을 비롯해 신상조사를 심하게 하는 바람에 내가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에티오피아가 싫다면서 식당 종업원들에게 어찌나 함부로 대하는지 내 얼굴이 다 뜨거워져서 일본인으로 행세하고 싶었다.

에티오피아의 마지막 황제인 하일레 셀라시에가 사용하던 방에 가서 몰래 사진 찍다 걸려서 얻어 맞고 경찰서에 끌려갈 뻔했는데 사진을 삭제하는 선에서 일이 마무리가 되었다. 다 지운 줄 알고 호텔에 와서 확인했는데 화장실의 비대 사진이 딱 한장 남아 있다. 황제라서 그런지 그 시대에 참으로 화려하게 살았다. 10년 후, 아니 20년 후 에티오피아에 관한 기록사진들을 공개할 일이 있을 때 황제가 사용하던 비데 사진을 공개할 예정이다.

에티오피아 시간으로 이제 밤 12시가 다 되어가니 잠이 들어야 하는데 아직도 잠이 안 온다. 큰 일이다. 내일은 지난 여름에 참가했던 지역개발 프로그램 보고회가 예정되어 있는데 아, 돌아버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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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지난 10일 월요일 도쿄를 출발, 간사이와 두바이를 거쳐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도착했습니다. 계절은 냉건기라서 낮에는 무지하게 뜨겁고 밤에는 두툼한 자켓이 필요할 만큼 아주 춥네요. 우리나라 교육부에 해당하는 일본의 문부과학성이 제가 다니는 학교에 학생 지원 프로그램을 하나 제공했고, 제가 첫 수혜자가 되어 이번에 에티오피아를 다시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좀 앓았습니다. 기후탓인지 고산지대라서 그런지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호텔에서 그저 잠만 잤는데 역시나 몸이 안 좋을 때는 수면탕이 최고더군요. 끊어놓은 비행기표를 변경할 수가 없어 몸을 대충 추슬러 지난 주말에 하라르라는 곳으로 이동했습니다. 아디스아바바(Addis Ababa)에서 디레다와(Dire Dawa)라는 에티오피아의 제 2도시까지 비행기를 탔고, 디레다와에서 버스로 다시 하라르까지 왔습니다. 아디스아바바에서 하라르까지 버스가 다니지만 저 같은 외국인이 혼자 가기에는 위험하다고 해서 일부 노선만 비행기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디레다와는 작년 여름에 홍수피해가 심해서 사람들이 많이 죽은 곳입니다. 작년에 TV에서 헬기로 유엔 구호물자가 도착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아주 평화롭네요. 참고로 디레다와는 에티오피아의 국내 도시지만 디레다와행 비행기는 국제선 청사를 이용해야 합니다.

비행기에서 독일인 친구를 만났는데 기내에서 제공한 빵과 주스를 먹는 저를 아주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더군요. 사실 작년에 저도 저걸 어떻게 먹나 그랬었거든요. 1년 반을 이곳에 있었다면서 암하릭어로 숫자를 10까지 세어 주면서 중요하니 배우라고 해서 제가 100까지 세어줬습니다. 디레다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호객꾼들과 실랑이를 벌여야 했지만 뭐 이젠 많이 익숙해져서 괜찮습니다. 공항에서 디레다와 시내까지 가는데 40birr(1USD≒9.04birr)를 요구해서 못 들은척 하고는 결국 10birr에 해결을 했습니다. 차를 타고 버스터미널까지 왔는데 친절한 젊은 친구가 가방을 들어주길래 고마워했더니 하라르행 버스에 가방을 싣자마자 20birr를 내라고 하네요. 음…5birr 줬습니다. 가방이 무거우니 두 사람 몫의 차비를 달라고 해서 가방이 차지하는 공간이 크지 않고, 나보다 가볍다고 그냥 20birr만 내고 배째라고 했습니다. 디레다와에서 하라르까지 버스 요금은 11birr.

얼마 되지도 않는 금액을 그냥 주고 말지 그러느냐고요? 이 사람들이 너무 쉽게 돈 버는 것도 원하지 않고, 제 연구지역이 이곳이기 때문에 앞으로 여기서 지낼 날이 몇 년이 될 지 모르거든요. 처음부터 포지셔닝을 잘 하지 않으면 밑빠진 독에 계속 돈을 쏟아 부어야 할 겁니다. 디레다와에서 하라르까지는 중국인들이 도로를 싹 포장해놔서 그냥 씽씽 달렸는데 중간에 타이어가 터지는 바람에 그만 차도 길 바닥에 퍼져버렸습니다. 도로에서 한참을 서성거리고 있었는데 동네 사람들이 다 나와 저를 구경하더군요. 같이 차를 타고 온 사람들이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데 그냥 포즈 잡아줬습니다.

두어 시간을 땡볕에 서 있었는데 딱 한자리, 빈 좌석이 남은 차가 와서 누구 탈 사람 없느냐고 하는데 같이 길에서 서성이던 사람들이 전부 저를 먼저 보내야 한다면서 양보를 하더군요. 제게는 돈 다시 낼 필요 없고, 잊지 말고 이 친구를 호텔에 내려주라고 운전기사에게 당부까지 해주었습니다. 이렇게 친절한 사람들이 에티오피아에는 많습니다. 정부에서 운영한다는 호텔에 투숙을 하기로 했는데 방에 전화도 없고 물도 전기도 제한적으로 공급이 됩니다. 밤마다 바퀴벌레와 기타 등등의 벌레들이 제 신발바닥과 조우를 해야 하고요.

왜 거기 가서 그렇게 고생하느냐고요? 아직은 불편한 게 많지만 에티오피아, 정말 매력적인 곳이거든요.
Posted by 윤오순
채널24: 일본/사람들2007. 11. 8. 21:08

작년에 에티오피아에서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날이었다. 여행 중에 만났던 사람들을 아디스 아바바에 하나 뿐인 한국 식당 '레인보우'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시간 맞춰 나갔는데 왠걸, 다들 30분 이상씩 지각을 하는 바람에 혼자 예약석에 멍청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대각선으로 보이는 테이블에 정말 아무 대화도 없이 메뉴판만 들여다보며 앉아 있는 아시아인 둘이 있었다. 한국인인지 중국인인지, 아니면 일본인인지 도무지 감을 못 잡았다. 그러다 일행들이 와서 왁자지껄 떠들면서 아무튼 실컷 먹고 일어나다가 대각선 테이블로 눈이 갔다. 일본인들이었다. 내 일행 중에 메뉴판만 읽고 있던 아시아인들의 일행을 아는 사람들이 있어 졸지에 서로 인사를 하게 됐고 그리고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짐을 싸기 위해 숙소로 돌아왔다.

그런데 떠나는 날 오전에 전화가 왔다. 나를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주소만 들고 무작정 찾아 갔는데 거기에 그 아시아인 둘이 있는 거다. 세계 배낭여행 중인 일본인 여대생들이었다. 하나는 와세다대, 또 하나는 츠쿠바대에 재학 중이었다. 국제관계 관련 공부를 하고 있다는데 아프리카를 다 훑고 이제 중동으로 넘어가는 중이었다. 이야기 하던 중에 내가 유학을 준비 중인데 학교를 교토대에서 도쿄에 있는 곳으로 옮기려고 하고 있다, 도쿄에 어디가 내가 전공하려는 학교로 적당한 지 정보를 좀 달라, 이런 부탁을 하게 됐다. 대뜸 지금 다니고 있는 히토쓰바시대학(一橋大學)을 추천해 주는 게 아닌가. 당시는 정말 듣도보도 못한 웃긴 이름의 대학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오자마자 강원도 화천으로 가서 산천어축제 홍보팀장으로 정말 눈코뜰새없이 바쁘게 지내면서 퇴근 후에는 유학 갈 준비를 했다. 남들은 몇 년을 준비해서 유학을 떠나는데 난 그럴 상황이 못 되었다. 그간 준비한 교토대에는 못가게 되어 미안하다는 연락을 정중히 해 놓고 도쿄에 있는 학교를 거의 날마다 검색해서 결국 찾아 낸 게 신기하게도 히토쓰바시대학(一橋大學)이었다. 당시는 몰랐는데 내 지도교수는 위키피디아 검색으로도 튀어나오는 아프리카 전문학자이다. 한국에서는 발음하기도 힘든 이 학교가 일본에서는 우수한 인재들이 다니는 명문학교라는 것도 오고 나서야 알았다. 분위기는 우리나라 카이스트나 포항공대 이미지다. 지도교수와 첫 면담하는 자리에서 바보처럼 이 학교가 그렇게 유명하다면서요, 이런 질문을 날렸다. 몹시 난처해 하면서 많이 유명하지, 이러시는 게 아닌가. 내 지도 교수는 정치하는 것도 싫어하고 학생밖에 모르는, 그냥 현대판 선비 이미지의 교수다. 이것도 다 내 복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인 선배가 얘기하기를 내가 합격했다는 소식에 지도교수가 몹시 기뻐했다는데 이유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지난 10월 31일이 입학금, 수업료 마감일이었다. 이 학교는 입학금 수업료를 좀 늦게내도 된다는 소문을 듣고 버텼는데 더 이상 기다려줄 수 없다는 최후의 통첩이 날라왔다. 유학 와서 생활비 대느라 아주 정신이 없어 그냥 입학금 수업료는 남의 이야기처럼 살았는데 이제 그럴 수가 없게 됐다. 동전까지 탈탈 털어 일단 입학금이 아닌 수업료를 먼저 냈다. 그걸 내면 이번 학기 수업료 면제 대상 심사를 받을 수 있단다. 그런데 사실 순서로 치면 입학금을 먼저 내야 말이 되는 거 아닌가. 아무튼 그냥 학교를 때려 칠 판이라고 생각해서 내 맘대로 그래버렸다.

지도교수가 먼저 연락하는 법이 없는데 뜬금없이 상담을 하고 싶으니 오란다. 뭐 때문일까 머리를 굴리다 갔더니 입학금 얘기를 하신다. 바보처럼 배시시 웃으면서 그냥 학교를 그만 두겠다고 그랬다. 그만 두면? 돈 벌어서 다시 오던지 아니면 뭐 다른 일을 해야겠죠. 지금까지 딴 학점이랑 아깝지 않아? 방법이 없네요.

10월 31일 오전에 다시 오라고 하셔서 갔더니 잔돈까지 딱 맞춰서 입학금 금액을 내 손에 쥐어주시는 게 아닌가. 일단 이걸로 입학금을 내고 그 다음을 생각하자고 그러셨다. 그러면서 입학금 내러 가면서 돈 잃어버리지 않게 가방에 잘 넣으라고 신신당부를 하셔서 난 또 바보처럼 그 앞에서 웃고 말았다. 하도 걱정을 하셔서 영수증을 들고 지도교수를 다시 찾아 갔다. 돈 잘 냈다고. 돈을 어떻게 갚을까요, 조심스럽게 여쭈었더니 통장으로 입금하면 수수료 드니까 매달 말일에 직접 10,000엔씩 갚으란다. 곧 받게 될 장학금 두달만 모으면 갚을 수 있다는 것 아실 텐데도 그냥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 별로 부끄럽지도 않았고, 알았다고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그 자리를 떠났다.

교수한테도 이제까지 없었던 일이고 나한테도 이제까지 없었던 일이다. 그냥 당연히 받아야 할 돈을 부모님한테 받은 사람 같았다. 이 교수와 나와의 만남도 분명 인연일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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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채널24: 에티오피아2007. 4. 14. 16:56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주변에 미국이 몇 개의 주로 이루어졌는지 물었을 때 답변을 못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심지어 뉴욕이 어디에 있고 플로리다가 어디에 있는지도 그들은 훤히 잘 알고 있었다. 그곳을 방문한 적이 없어도, 또 그곳에 친척이나 지인이 살고 있지 않아도 그들은 그렇게 미국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엔 아프리카에 몇 개의 나라가 있는지 물어 보았다. 토고와 가나가 아프리카에 있다는 사실을 이번 월드컵을 통해 알았다는 사람이 적지 않았고 정확하게 그 숫자를 알고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아프리카에는 가장 최근에 에티오피아에서 독립한 에리트리아를 포함해 53개의 나라가 있다.(모로코까지 포함하면 54개국이지만 모로코는 아직 AU(African Union)에 가입하지 않았다.) 이 지구상에 아프리카라는 대륙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데 우린 마치 그런 세상이 없는 것처럼 살고 있다. 심지어 개별 국가의 고유성을 무시하고 아프리카에 있는 한 나라를 아프리카라고 하는 단일개념으로 이해하려고까지 한다. 한국이라는 나라를 아시아에 내포된 개념으로 동일하게 이해할 수는 없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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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프리카의 중심 에티오피아

세계 지도를 펼쳐 놓고 아프리카를 찾아보면 북동쪽 근방에 뾰족한 뿔 모양을 한 대륙 에티오피아가 보인다. 에리트리아, 지부티, 수단, 케냐, 소말리아는 에티오피아의 이웃 나라이다. 이집트도 이곳에서 아주 가깝다. 아프리카에서 전혀 아프리카답지 않은 땅 에티오피아에 대해 소개하려다 서두가 길어졌다.

아프리카에 대해 무지한 것처럼 우린 에티오피아에 대해서도 그리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 맨발로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아베베의 나라, 세계 최빈국으로 UN이나 NGO단체의 지원이 없으면 살지 못하는 나라, HIV/AIDS 천국의 나라, 이 정도가 우리가 에티오피아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 전부가 아닐까 싶다.

 

80여 여개 종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

에티오피아는 대한민국의 5배 정도 되는 땅덩어리에 현재 약 77백여만 명이 살고 있다. 민족 구성은 오로모족, 암하라족, 티그레이족, 거라게족 등 약 80여 개의 종족으로 이루어진 다민족 국가이다. 현재 총리를 비롯해 정치적 실권을 잡고 있는 사람들은 전체 인구의 약 4~5%를 차지하고 있는 티그레이족이고 상권을 쥐고 있는 사람들은 전체 인구의 약 4%를 차지하고 있는 거라게족이다. 특히 거라게족은 악착같이 돈을 모으는 민족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길거리에서 구두를 닦는 어린 꼬마나 차가 섰을 때 쏜살같이 뛰어가 화장지 꾸러미를 파는 청년들은 대부분 이 거라게족이다.


수도인 아디스아바바는 에티오피아의 중심에 위치해 있고 평균 해발 고도가 2,300m 정도의 고지대로 약 350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Addis아디스’는 여기 말로 ‘New’를, Ababa아바바’는 ‘Flower’를 의미한다. 공식 언어는 영어와 암하릭(Amharic)어로 간판 등에 영어와 암하릭어를 병기하고 있지만 암하릭어를 알면 에티오피아에서의 생활이 아주 편해진다.


서울에서 출발해 홍콩이나 태국의 방콕을 경유해서 이곳에 올 수 있다. 유럽에서 올 경우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하고 아프리카 항공을 이용할 경우 남아프리카공화국이나 케냐 등을 경유한다. 두바이 공항에서는 약 네 시간만 비행하면 아디스아바바에 도착한다. 역사가 60년이 넘는 에티오피아 에어라인이 한국에 취항하지 않는 관계로 에티오피아 땅을 밟으려면 아직까지는 몇 나라를 거치거나 공항에서 하릴없이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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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 때 지상군을 파견한 아프리카 유일의 나라

에티오피아는 한국전쟁 당시 아프리카에서는 유일하게 6천여명의 지상군을 파견한 나라이다. ‘칵뉴부대’라고 불리던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은 황제의 근위병들로 단 한명의 포로도 없이 전장에서 용감하게 싸웠으며, 전쟁이 끝난 후 잔류 부대원들은 DMZ근방에 고아원을 만들어 당시 전쟁고아들을 돌보기까지 했다. 지금은 우리가 국제협력단의 봉사단원 파견을 비롯해 정부차원에서 혹은 각 종 NGO 및 선교단체들이 에티오피아를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고 있지만 불과 50여 년 전에 에티오피아가 우리를 도와주던 시절이 있었다. 현재 한국에 참전용사후원회가 있어 아디스아바바에 참전용사회관을 건립하는 등 한국과 에티오피아와의 인연의 끈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1년은 13개월, 올해는 1999

아프리카 대부분의 나라가 영국이나 프랑스로부터의 오랜 식민지 경험이 있는 것에 반해 에티오피아는 이탈리아에 잠깐 점령당한 것 이외에는 식민지 경험이 없어 아프리카에서는 유일하게 고유의 문자를 사용하고 있다. 공식 언어로도 사용되는 암하릭어는 표음문자로 33자의 자음과 7자의 모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게다가 우리가 사용하는 보편적인 서역 Gregorian을 사용하지 않고 Julian Solar 캘린더를 사용하고 있어 에티오피아역으로 계산하면 1년이 12개월이 아니라 13개월이 된다. 한 달을 30일씩 계산하니까 남은 5일 혹은 6일이 이들에겐 13월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따지다 보니 우리의 신년이 에티오피아에서는 1 1일이 아니라 9 11일이 된다. 그래서 모든 에티오피아의 달력은 1월부터가 아니라 9월부터 시작한다. 물론 올해도 이곳은 2006년이 아니라 1999년이다. 전 세계 모든 나라가 다 치룬 밀레니엄을 이들은 지금부터 준비하고 있다.

 

고대 기독교 문명의 보고

아프리카 대부분의 나라는 고유의 토착종교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슬람교도 북아프리카 정도까지만 포교가 되었다는 아프리카에 수백년동안 번성했던 기독교 왕국이 있었으니 그곳이 바로 에티오피아이다. 교리상의 차이로 서구 기독교 문화와는 단절된 에티오피아만의 독특한 기독교 문화를 형성해 왔는데 현재 약 50%정도가 에티오피아 정교회 신자이고 이를 바짝 뒤쫓는 게 이슬람교 신자이다. 전설에 따르면 에티오피아 최초의 왕조인 악숨(Axum) 왕조는 이스라엘의 솔로몬 왕과 시바여왕의 후손이라고 한다. 이들 사이에 태어난 메넬릭(Menelik) 1세가 에티오피아의 초대 황제라고 한다. Lalibela 교회(거대한 돌 하나를 통째로 깎아 만든 교회)를 비롯해 악숨 오벨리스크, 곤다르(Gondar) 등 에티오피아 곳곳에는 기독교 문화유산을 비롯해 지난날의 번성을 짐작케 하는 문명의 보고들이 많이 남아 있고 이들 중 대부분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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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Paul Zizka


커피와 인류문명의 발상지

커피의 발상지가 어디인지 아는가. 그렇다. 에티오피아이다. 에티오피아를 설명할 때 이 커피를 빼놓을 수가 없는데 수출량의 대부분도 이 커피가 차지하고 있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커피를 ‘분나’라고 하며, 독특한 의식을 통해 커피를 마신다. 이를 ‘커피 세레모니’라고 하는데 에티오피아에서는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호텔이나 커피 전문점에서 전통적인 방식의 커피 세레모니를 만날 수 있다. 생두를 직접 볶아 이것을 절구에 곱게 빻은 후 이 가루로 커피를 만드는데, 우리가 마시는 커피는 에스프레소처럼 작은 잔에 담아 나온다. 향은 물론이고 색깔이나 그 맛이 아주 진하다. 여기에 홍차를 섞어 마시기도 한다.
 

한편, 에티오피아의 국립박물관에 가면 그들이 자랑하는 ‘루시’를 만날 수 있다. 에티오피아가 인류문명의 발상지라고 주장하는 것도 이 ‘루시’ 때문인데, 박물관 지하 한 켠에 350만년전 인류화석인 ‘루시’의 뼈 조각들을 전시해 놓고 있다. 이 화석은 현재도 조사 중이며, 지금까지 발견된 그 어떤 인류화석 보다 앞선 것이라고 한다.

이 밖에 에티오피아가 처음이라고 자랑하는 게 또 하나 있는데 바로 ‘블루 나일’이라는 것이다. 블루 나일은 이집트 나일강의 발원지이다. 화이트 나일의 발원지는 우간다의 그린 힐이고, 블루 나일은 이곳 에티오피아의 하이랜드가 그 원류이다. 아디스아바바에서 갈 경우 자동차로는 이틀을 잡아야 하고 비행기로는 45분이면 블루 나일에 도착한다. 처음 보는 사람은 그 장엄한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 한다.

 

아프리카의 허브 에티오피아

그간 우리가 알고 있는 미디어란 미디어는 온통 에티오피아의 가난과 기근밖에 보여 준 적이 없어서 비행기가 착륙할 공항이나 있을까 하는 심정으로 이곳에 왔다. 그러나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었다. 문명이란 잣대로 봤을 때는 우리 보다 조금 늦은 곳이고 환경이란 측면에서 바라봤을 때 이곳은 아직 자연과 많이 가까운 곳이다.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 나라가 얼마나 매력적인가 알 수 있을 텐데도 우리가 아프리카에 대해 무지한 것처럼 에티오피아라는 나라에 대해서도 그간 무관심으로 일관한 면이 없지 않다.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는 아프리카의 제네바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뉴욕, 브뤼셀, 제네바에 이어 세계에서 4번째로 외교공관이 많다. 한국에서는 자주 접하기 힘든 나라를 비롯해 100여개가 넘는 대사관들이 이곳에 터를 잡고 있다. AU(African Union), UNECA(UN Economic commission for africa) 등 주요 국제기구가 이곳에 본부를 두고 있다.
2006년 한국의 대통령은 에티오피아를 외면했지만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과 일본의 고이즈미 전 총리가 차례로 이곳을 다녀갔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소말리아와 에리트리아와의 불안한 관계가 지속되고 있지만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의 허브로서 여전히 그 존재가치를 무시할 수 없는 곳이다.

(월간 '문화공간' 2006년 11월호-세종문화회관 발간)

Posted by 윤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