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시터 세인트 데이비스역(St.Davids Station)에 도착하면 여기가 과연 엑시터인가 실망하는 분들이 많을 텐데 엑시터 대학 캠퍼스에 도착하면 그 상한마음 전부 보상 받을 수 있으니 처음부터 너무 낙담하지 마시길.  엑시터대학 캠퍼스는 영국내에서도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캠퍼스 안에 셀 수 없이 많은 종류의 꽃과 다양한 식물들이 여러분을 맞이할 것이다. 이곳에서 사계절을 다 보냈는데, 엑시터를 떠나면 가장 잊지 못할 것 중에 하나가 시원한 공기에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캠퍼스가 아닐까 싶다. 

엑시터에 도착하기 전에 궁금한 게 많을 텐데 그중 하나가 앞으로 묵을 숙소일 것이다. 대부분 신입생들은 학교에서 제공하는 기숙사에서 묵게된다. 물론 공짜는 아니지만 말이다. 신입생의 경우 7월말까지 신청할 경우 학교 기숙사에서 머물 수 있지만 그 이후에 신청하는 사람들은 보장할 수 없다고 학교 홈페이지에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이후에 도착한 학생들도 발품을 열심히 팔면 학교가 제공한 기숙사에서 머물 수 있다. 경험에 따르면 1년 정도는 학교 기숙사에서 지내는 게 좋을 것 같다. 엑시터 대학의 기숙사는 캠퍼스 안에도 있지만 캠퍼스 밖에도 있으니 신청 전에 꼭 문의해야 한다. 둘다 장단점이 있다. 학교 안의 경우 학교시설을 이용하는데 당연히 편리하고 학교 밖에 있는 경우는 시내가 가까워 쇼핑 등을 하기에 편리하다. 가격은 천차만별이며 방값은 주당 계산하지만 월별 혹은 1년치를 한꺼번에 계산할 수도 있다. 

대학내 기숙사 가격 관련 참고 사이트: http://www.exeter.ac.uk/accommodation/postgraduate/selfcateringprices.shtml 

모든 기숙사는 계약시 보증금을 내야 하며, 이 돈은 계약이 끝날 때 찾아갈 수 있지만, 계약을 변경하거나 파기할 경우 못 찾을 수도 있으니 계약서를 꼼꼼하게 읽어봐야 한다. 계약이 끝나기 전에 기숙사를 나가고 싶을 경우 반드시 새 입주자를 찾아야 방을 비울 수 있다. 아주 번거로운 일인데 학교내 게시판 여기저기에 지금 사는 기숙사 조건을 써서 붙여 놓거나 기숙사 관련 사무소(Accommodation Office) 앞에서 얼쩡거리다 보면 운좋게 방을 구할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방 종류는 여러가지가 있다. 용어가 낯설 텐데 몇가지만 소개한다. 학교 바깥에서 집 한채를 얻어 여러 학생들이 나눠 사는 경우가 있다. 이른바 shared house 혹은 shared flats이다. 장점은 학교 기숙사보다 저렴하며, 마음 맞는 외국학생들과 살 경우 다양한 문화교류도 가능하겠지만 전기세, 수도세 등을 따로 내야 하고 인터넷 관련해서도 계약을 새로 해야하는 게 이제 막 엑시터에서 생활을 시작하는 우리 같은 외국인들에게는 번거로운 일이다. 학교에서는 이런 숙소를 직접 안내해주지 않기 때문에 학교 밖의 전문 부동산 같은 곳을 이용하거나, 인터넷 혹은 주변 친구들에게 대개 정보를 얻는다. 

shared house 혹은 shared flats 관련 참고사이트 
  - http://www.exeterstudentpad.co.uk/ 
  - http://exeter.gumtree.com
  - http://uk.easyroommate.com

 방의 형태는 취사가능 여부에 따라 self-catering residences와 catered hall of residences로 나뉜다. self-catering은 공용 부엌이 있어 취사가 가능한 기숙사이며 catered hall은 부엌이 없는 대신 식사가 제공되는 기숙사이다. 이 방들은 다시 single standard, enhanced, en-suite, 그리고 studio형태로 나뉜다. 그 차이는 다음과 같다.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사진이 제공되므로 참고할 것).

- single standard: 가장 싸며 방안에 싱글침대, 옷장, 책상, 의자, 책꽂이가 구비되어 있다. 화장실 및 부엌은 공용이다.
- enhanced: single standard에 있는 게 다 제공되며 세면대가 추가된다. 화장실 및 부엌은 공용이다.
- en-suite: enhanced에 있는 게 다 제공되며 독립된 욕실이 있다. 부엌은 공용이다.
- studio: 욕실이며, 부엌까지 방 하나에 다 들어가는 기숙사이다. 가장 편하며, 또 가장 비싸다.
 
INTO University of Exeter에서 영어과정을 수강하는 학생들의 경우 INTO에서 제공하는 기숙사가 따로 있는데 이 학생들은 빈몸으로 와서도 바로 생활을 시작할 수 있도록 침대에는 침구가, 부엌에는 가재도구 등이 마련되어 있다. 그 이외 대학에서 운영하는 모든 기숙사에는 침구며 가재도구가 제공되지 않으므로 개인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1인실이지만 침대는 더블사이즈인 경우가 있으므로 확인하고 침구용품을 준비해야 한다. 시내의 숍들이 대부분 일찍 문을 닫기 때문에 늦게 엑시터에 도착하는 분들은 이불없이 잠을 잘 수도 있으니 이점 유념하기 바란다. 침구용품은 시내에서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부터 가져올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부엌에서 사용하는 가재도구도 발품을 조금 팔면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으므로 엑시터에 조금 일찍 도착해 시내에서 마련하길 권한다. 그래도 굳이 가져오고 싶으신 분들이 있다면 안 말린다.

요리에 재주가 있거나 즐기는 분들은 영국에서의 생활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시내에 중국인이 운영하는 오리엔탈숍이 있는데 왠만한 재료는 이곳에서 구할 수 있고, 엑시터의 부엌이라고 할 수 있는 Tesco나 Sainsburys 등의 수퍼마켓에서 왠만한 야채나 과일, 육류 등은 전부 구할 수 있다. 얼마 전에 생긴 이 오리엔탈숍에서 한국 된장, 고추장 등은 구할 수 있지만 구운김, 참기름, 콩나물, 오뎅, 멸치, 뭐 이런 건 못 산다. 가격은 물론 두세배 비싸다. 신라면 하나가 0.85파운드로 한국돈으로 1,700원 정도? 라면의 미덕이 저렴함이라면 엑시터의 신라면은 그것과는 거리가 너무 멀다. 한달에 한번씩 한국장터가 열리는데 시장처럼 팔고 사는 건 아니고 미리 주문한 걸 받아가게 되어 있다. 업자가 어디 사는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고, 이메일로 상품리스트를 약 2주 전에 유학생들에게 보내주면 리스트에 있는 것 중에 필요한 걸 주문한다. 그런 후 업자가 매달 셋째주 토요일 오전에 학교로 찾아오면 돈을 내고 주문한 물건들을 챙겨오면 된다.

일본에 있다가 엑시터에 처음 도착해 실망스러운 게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잘 정리되지 않은 것도 불만이었고, 지저분한 것도 불만이었고, 사람들이 친절하지 않은 것도 불만이었다. 그러나 지내고보니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란 생각이 들었고, 마음을 편하게 먹으니 여기 살이도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어디에 뭐가 있고, 어디가면 구할 수 있고, 이런 게 한두가지씩 쌓이다보니 여유가 생겨서 그런지 모르겠다. 처음 엑시터에 와서 적응 잘 못하는 분들이 있을 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다 해결해 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내가 이곳에 왜 왔는지만 부디 잊지 마시기를...


Posted by 윤오순

*사진: 런던의 신도림이라고 할 수 있는 패딩턴 역(Paddington Station) 이다. 역사 안에 화장실이 있는데 사용하려면 돈을 내야 한다. 안에 커피숍이나 패스트푸드점이 있긴 한데 편하게 앉아 있을 만한 공간이 없으니 표를 끊은 후 여유있는 분들은 패딩턴 역 밖으로 나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9월 1일이다. 한달 후면 새학기가 시작된다. 작년 10월 엉성하게 짐꾸려서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면서 엑시터에 도착하던 때가 떠오른다. 이곳에 오기 위해 꿈에 부풀어 있는 분들, 뭘 어떻게 준비해야할지 몰라 잔뜩 걱정만 하고 있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 분들을 위해 몇회에 나눠서 엑시터 관련 정보를 올릴 생각이다. 물론 여행을 오는 분들이 아니라 엑시터대학으로 공부를 하러 오는 분들을 위해서다. 오늘은 그 첫회로 히드로공항에서 엑시터까지 오는 방법이다. 게트윅 공항으로 오는 방법도 있고, 엑시터 공항으로 직접 오는 방법도 있다고 들었는데 이용한 적이 없어 잘 모르겠다. 

히드로공항에 도착하면 유학생들을 위한 입국심사 줄이 따로 있을 것이다. 입국심사장에서 언제든 쉽게 꺼내 보여줄 수 있게 다음과 같은 서류를 따로 준비하면 좋다. 서류미비로 다시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으니 주의해야한다. 서류는 그날 심사하는 사람 기분에 따라서라고 하니 어찌되었든 만일을 위해서 준비하는 것이다. 
1. Passport 여권 (안에 Student Visa 학생비자가 반드시 들어 있어야 한다.)
2. Visa Letter 학교에서 받은 학생비자관련서류
3. Academic Transcript 성적표
4. Bank Statements 비자 받을 때 냈던 재정보증관련 서류들
5. Medical Check-up Results 엑스레이 사진 등
6. Studentship Letter 장학금을 받을 경우 관련 서류들

커다란 지퍼백 같은 게 있으면 하나 사서 관련 서류를 전부 한꺼번에 넣어 놓고 있다가 요구하는 서류가 있으면 하나씩 꺼내서 보여주면 된다. 5번의 경우 의료시설이 낙후한 나라에서 온 학생들한테 주로 요구한다고 하는데 엑스레이 사진이 없다고 하면 입국심사장 옆에 가서 찍으라고 하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나는 일본에서 공부할 때 정기검진을 하면서 엑스레이를 찍은 적이 있는데 학교 건강상담실에 가서 당시 검사할 때 이상없었다, 는 내용의 서류를 영문으로 받아 챙겨왔다. 위의 6가지 서류를 모두 요구하는 경우도 있고, 여권이랑 여권안의 비자만 체크하는 경우도 있다는데 나는 후자의 재수좋은 경우였다. 학위를 받기 위해 오는 사람들은 공항검색대에서 큰 문제가 없는데 어학코스를 위해 오는 사람들이 서류 때문에 종종 문제가 생긴다고 들었다. 엑시터에는 INTO라는 어학코스가 있는데 이 과정으로 영어공부를 하러 오시는 분들은 공항검색대에서 불미스런 일이 안 생기도록 입국관련 서류를 꼼꼼하게 챙기시도록.... 서류를 제대로 못챙겨 열 몇시간 비행기를 타고 히드로 공항까지 왔다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면 이 얼마나 쪽필릴 일인가.

입국심사 시간은 천차만별이다. 한국인들만 오는 게 아니라 전세계 이런저런 나라에서 오는 학생들이 많아 심사하는데 30초도 안 걸리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두서너시간씩 걸리는 사람도 있다. 엑스레이를 찍어와라, 무슨 서류를 보여줘라, 왜 이런 서류는 없느냐, 왜 공부하러 오느냐, 왜 그 학교를 선택했느냐, 서류가 좀 이상하니 저기서 잠깐 서 있어라 등등 입국심사장에 서 있으면 다 체험할 수 있는 일들로 나쁜짓해서 서류를 꾸미지 않은 이상 그냥 자기 순서 기다리다 심사를 마치면 된다.  여권에 입국도장을 쾅, 찍어주면 끝이다.

그리고 짐가방을 찾아 기차역 혹은 버스터미널로 가면된다. 신입생의 경우 첫해는 학교에서 제공하는 기숙사에서 묵는 분들이 대부분일 텐데 기숙사가 시내에 있는 경우는 버스로,  기숙사가 캠퍼스 안에 있는 분들은 기차를 이용하는 게 편하다.  대낮에 히드로공항에 도착하는 경우 기차가 빠르고 편하다. 버스는 한번 밀리면 언제 도착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버스터미널은 시내에 있고, 기차역은 캠퍼스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걸린다. 참고로 엑시터는 어디든 가파른 언덕이 많다. 예쁜 구두보다는 운동화 혹은 등산화가 생활하는데 편하니 미리 준비하는 게 좋다. 

히드로공항에서 엑시터에 올 때는 늘 기차를 탔기 때문에 여기서는 기차로 엑시터까지 오는 방법을 소개한다. 가방을 끌고 공항을 나와 히드로 익스프레스(Heathrow Express)를 타고 패딩턴 역(Paddington Station) 까지 가는게 제일 편한 방법이다. 일반 전철도 있지만 시간이 제법 걸린다. 히드로 익스프레스의 경우 패딩턴 역까지 15분 정도 걸리며 가격은 다음 사이트를 참고하면 된다. http://www.heathrowexpress.com/ticket-prices

패딩턴 역에 도착하면 티켓 창구를 찾아가 다시 엑시터 세인트 데이비스 역(St.Davids Station)까지 가는 표를 끊어야한다. 가격이 천차만별인데 조금 기다릴 여유가 있으면 저렴한 OFF-PEAK Ticket을 달라고 할 것. 인터넷으로 예약하면 싼데 문제는 공항에서 언제 나올지 모른다는 단점이 있다. 예약 사이트는 다음과 같다. http://www.firstgreatwestern.co.uk/
기차에 따라 걸리는 시간이 조금 다른데 엑시터까지 두시간 반 걸리는 기차도 있고 4시간 정도 걸리는 기차도 있다. 기차 안은 노트북 충전이 가능한 객차도 있고, 인터넷 사용이 가능한 객차도 있으니 미리 문의할 것.

*사진: St Davids 역 전경

그렇게 기차를 타고 몇시간 후면 엑시터 세인트 데이비스 역에 도착하게 된다. 역은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아주 남루하니 너무 기대하면 마음 상한다. 9월인데도 이곳은 아침저녁으로 쌀쌀하니 한국 날씨 생각하고 반소매 차림으로 오면 고생한다. 역으로 나오면 오른쪽에 택시정류장이 있으니 숙소까지 택시를 타면 된다. 기숙사가 St Davids 역 근처의 Brunel Close나 Kingdom Mews의 경우 택시 탈 필요없이 걸어도 된다. 

다음 회는 엑시터대학 기숙사 편이다. 
Posted by 윤오순
무사히 영국에 도착했다. 학교 어드미션 오피스에서 비자레터를 너무 늦게 보내준 데다 일본의 실버위크까지 겹쳐 비자 신청이 한없이 늦어졌는데 역신 신은 내편이었다. 5일만에 비자를 받았다. 영국유학 관련 사이트들을 둘러보면 어느 나라나 영국비자센터의 서비스가 불친절하기 그지없고, 엄청 고압적이라고 들은 터라 나름 긴장하고 있었는데 일본의 영국비자 센터는 내게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했다. 11시 30분에서 1시 30분 사이에 비자가 도착하지 않으면 그날 비자를 찾을 수 없다는데 업무가 끝난 후에 담당직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다른 쪽 문으로 들어오게 해줄테니 비자를 찾아가라는 내용이었다. 9월 30일 오후 5시에 비자를 찾았고, 여행사에 들러 그날 비행기표를 끊었다. 그리고 10월 1일 아침 일본을 떠났다.

런던 히드로 공항은 13년 전보다 훨씬 후졌고 더러웠다. 나는 예외였지만 피부색깔이 다른 사람들은 입국심사 시간이 엄청 길었다. 엑스레이 사진촬영을 요구하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았다. 입국심사관 전공이 Geography였던 덕분에 난 30초도 안걸려 입국 스탬프를 받을 수 있었다. 행운을 빈다면서 쾅, 하고 도장을 찍어주는데 정말 내게 행운이 찾아 온 느낌이었다. 두개의 짐가방에 기타를 매고 허둥지둥하는 나를 본 한 영국청년의 도움으로 런던에서 엑시터까지 오는 기차를 탈 수 있었다. 땡큐, 제임스!! 영국의 친절함은 딱 여기까지였다.

도착하던 날 입김이 나올 정도로 추운 엑시터의 날씨가 나를 맞이했다. 영국은 생각보다 훨씬 춥고, 비도 많고, 더럽고, 불친절하고, 물가는 살인적이고, 중국인 천지다. 내가 사는 층은 나 빼고 전부 중국인인데 이보다 더 더러울 수 없을 정도로 공동시설을 엉망으로 사용한다. 돈 쓰는 것 보면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 이 사람들 위생개념이 전혀 없다. 한마디로 토 나올 정도다. 게다가 예의도 없어,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은 영어가 아니라 그냥 중국어로 말해버리고 미안하다는 말도, 고맙다는 말도 하지 않는다. 영국에 와서 중국어로 말하게 될 줄 몰랐는데 그 정도로 중국인이 많다. 일본에 살 때도 중국학생들은 자기들 방에 세면대가 있는데도 꼭 부엌 싱크대에서 세수를 하고 양치질을 하고 가래침을 뱉었는데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여학생들은 생리대를 그냥 휴지통에 버리고, 볼 일을 본 후 화장실 문을 활짝 열어 제치고 나온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학교 기숙사관련 사무소에 방을 옮겨달라고 부탁을 했다. 덕분에 지금 난 난민 신세다.

영국학교에서도 일본에서처럼 자전거를 타고 다녀야지, 하는 야심찬 계획이 있었는데 언덕 천지라 그건 포기했다. 하루에 한시간 이상 구보를 하는 것 같다. 많이 걸어야 하는 대신에 시에서 관리하는 보호림 지역이 학교안에 있어 마음껏 자연과 친구를 할 수 있어 좋다. 비가 자주 와 우산이 필수라는 게 좀 귀찮지만 비는 내가 맘대로 할 수 없으니 견딜 수 밖에.

학교 홈페이지를 보면 전부 유럽인들 이름뿐이라 좀 쓸쓸하겠다 싶었는데 왠걸, 올해 나를 포함해 세명(박가, 이가, 윤가)의 한국인이 우리 학과의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처음엔 경쟁하는 분위기에다 내가 무슨 말만 하면 잘난척으로 분류를 해버려 이거 아닌가 싶었는데 지내고보니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인 것 같다. 한 사람은 나랑 연구실도 같고, 지도교수도 같다. 무슨 이런 인연이 다 있는지. 이번주 일요일에 연구실 같이 쓰는 이가네 집으로 김치 먹으러 가기로 했다.

영국 오기 전에 일본에서 만난 한국인 부부에게 내가 가진 살림살이 전부를 주고 짐 한박스를 보내달라고 부탁했는데 우송료가 좀 과했나보다. 나보고 반을 부담하라는 연락이 왔다. 살림살이 일부를 주지말고 팔걸, 하고 심하게 후회하고 있다.

내가 떠나고 난 후에도 우편물이 올지 몰라 일본의 오카아상(일본어로 어머니) 기노시타 씨네로 내 주소를 이전해놓고 왔는데 의외로 우편물들이 많았다. 국민건강보험료와 카드대금이 남아 지불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아주머니가 전부 지불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메일을 보내주셨다. 게다가 여기저기서 온 우편물들을 전부 모아 계속 EMS로 보내주신다. 감사합니다!!이건 내게 여전히 남은 행운이다.

방문제가 해결되면 이제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루 빨리 난민신세에서 벗어나 연구에 집중할 수 있으면 좋겠다.  




'채널24: 영국 > 영국유학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엑시터 근황  (6) 2009.12.15
오죽헌 구용정 단상  (10) 2009.11.28
문화충격  (6) 2009.10.21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  (12) 2009.09.30
영국유학 이야기를 시작하며  (4) 2009.09.12
Posted by 윤오순
그간 내가 가진 영국의 이미지는 태양이 지지않는 나라가 아닌 태양이 자주 뜨지않는 나라였다. 지금부터 10여년전에 방문했던 영국은 하늘이 낮고 또 어두운 날들이 며칠씩 계속되었으며 한 여름인데도 날씨는 내가 가진 옷으로 막아내기에 너무 추웠다. 사실 따지고 보면 불친절한게 아니었는데도 영국인들이 뱉어내는 차갑고 무뚝뚝하게 들리는 발음들은 이방인을 심하게 외롭게 만들었다. 두툼한 털스웨터를 입고 다니는 사람도 쉽게 볼 수 있었고 추위에 떨던 나는 결국 최선의 선택으로 목도리를 장만해야했다. 버스터미널 화장실에서도 돈을 내고 볼일을 봐야하는, 우리 정서로는 많이 야박한 나라였고, 음식에 관해서도 영국은 내게 선진국이 아니었다. 광우병 영향도 있어 먹을 것 챙겨먹는데 신경이 많이 쓰였지만 선택의 폭을 생각한다면 여행객 입장에서 확실히 먹을 게 없는 그런 나라였다. 당시에는 말이다.


런던을 구경하고 캠브리지와 옥스포드 사이에서 갈등하다 캠브리지를 택했고 버스를 타고 몇시간을 달려 캠브리지대학의 캠퍼스에 도착했다.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기운이 감돌면서 이곳에서는 공부밖에 할 게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 대학생으로, 비탈에 위치해있던 인문대교실과 도서관을 격한 운동하는 심정으로 날마다 왕복해야했던 나는 평지 일색인 캠브지리대학 캠퍼스가 참 많이도 부러웠다.

그리고 북상하면서 에딘버러 페스티벌도 구경하고 당시 별볼일 없던 글라스고에도 들렀다. 맥도날드가 배안에 있을 만큼 규모가 큰 페리를 타고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에 갔었고, 아래로 아래로 내려오면서 아일랜드의 더블린, 코크를 거쳐 프랑스로 이동했다. 

그후 영국에 갈 일이 없었는데 이번에 다시 가게 되었다. 내 연구테마로 영어권 국가에서 공부를 하면 어떻겠냐는 의
견들이 자꾸 나와서 간 한번 보자 하는 심정으로 영국의 여러 학교에 연구계획서를 보냈다. 생각보다 반응들이 너무 좋았지만 박사과정 내내의 학비며 생활비가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연구계획서를 보낸 학교 중의 한 교수가 상당히 적극적으로 내게 컨택을 해왔다. 보통 학생이 나를 받아달라는 입장으로 열심히 학교에 컨택을 하는데 나는 그 반대였다. 두번째 메일에서 장학금 오퍼이야기가 나왔고 네가 바보같은 선택을 하지않았으면 좋겠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메일을 이어서 받았고, 그 다음부터는 내가 마치 그곳에 갈 것처럼 안내하는 메일들이 속속 도착했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아는 학교는 내 연구를 지도해줄만한 교수가 없었고, 설사 합격을 해도 당장 연구를 시작할 수 있는 형편이 안되었다. 도서관 자료가 풍성한 학교, 아프리카 연구가 활발한 학교는 내가 지원이 너무 늦어서 장학금 찾기가 힘드니 같이 한번 찾아보자는 연락들 일색이었다. 지금도 몇몇의 선생들은 장학금을 찾고 계시다.

그런데 다 포기하고 영국 서남부의 엑시터 대학(University of Exeter)에서 공부하기로 최종 결정을 내렸다. 이곳에서 박사과정을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장학금에 흔들린 건 사실이지만, 내겐 최상의 연구환경을 제공할 학교라는 확신이 들었고, 무엇보다 향후 내 지도교수가 될 클로크 교수의 적극성에 다른 학교는 미련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이 교수가 영국의 한 기관으로부터 펠로십 받을 때의 프로필과 사진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그걸 보고 아예 마음을 굳혔다. 슈렉 탈을 쓴 사람인형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클로크 교수 사진 아래에는 연구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건 내 사랑하는 두 딸과 아내, 기르고 있는 개라는 내용이 있었다. 보통 제한된 지면에 프로필을 적어야 할 때 사람들은 자기의 이력을 과대포장 하려고 바쁜데 어떻게 보면 프로페셔널하지 않을 수 있는 프로필과 푸근하게 웃고 있는 아저씨 같은 이 교수가 나는 마음에 들었다. 

영국의 입학 오퍼에는 언컨디셔널 오퍼와 컨디셔널 오퍼가 있는데 대학이 제시하는 조건에 하나라도 부합하지 않으면 합격을 하더라도 언컨디셔널 오퍼가 나오지 않는다. 이건 상당히 중요한데 컨디셔널 오퍼만으로는 영국비자신청이 안되기 때문이다. 지원서류에 필요한 게 다 있었는데 영어시험 성적표가 없었다. 한번 보려면 일본돈으로 26,000엔이 넘는 비싼 시험이다. 내가 외국인이라서 영어성적표는 입학사정에 필요한 중요한 서류 중의 하나였지만 내가 이 학교에 올 생각이 있으면 그것 없이 언컨디셔널 오퍼를 줄 것이며, 내가 오케이하면 올해 10월부터 공부를 시작할 수 있단다. 제공되는 장학금이 올해 10월에 반드시 학위 프로그램을 시작해야한다는 조건이 붙은 거라서 빨리 선택을 하라셨다.

유학에 대해 처음 고민할 때 영국 대학들이 대부분 가을에 학기를 시작하니 빨라도 내년 가을에나 유학을 갈 거라 생각했다. 박사과정의 경우 1월, 4월에도 시작할 수 있다고 하니 빠르면 그 중 하나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너무 빨리 유학이 결정됐다. 어제 드디어 언컨디셔널 오퍼를 받았고 그 학교에 가서 공부하겠다는 답을 보냈다. 학교에서도 최대한 서둘러 내가 영국입국에 필요한 서류들을 보내준다고 했는데 특급우편으로 장학금 관련 서류를 비롯해 비자신청 서류들이 도착하고 있다. 

도쿄에서 지낸 지 올해가 3년째인데 이제 보름도 채 남지않은 기간동안 여기 생활을 다 정리해야 한다. 기내로 혹은 수하물로 내가 가져갈 수 있는 짐의 무게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나머지는 미련없이 버려야한다. 일본 올 때 단출했었는데 그 사이 살림살이들이 엄청나게 늘었다. 그래도 다 버려야한다. 아무 준비없이 일본유학을 왔었는데 또 아무 준비없이 영국에 가게 되었다. 그간 이곳에서 겪었던 개고생들이 그곳에서의 시행착오를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진출처
위: http://rosskendall.com/photos/scenery/misty-morning-view-of-cambridge-university
아래: 엑시터 대학 홈페이지 http://huss.exeter.ac.uk/international/studying.php
    


'채널24: 영국 > 영국유학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엑시터 근황  (6) 2009.12.15
오죽헌 구용정 단상  (10) 2009.11.28
문화충격  (6) 2009.10.21
여기는 영국  (14) 2009.10.14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  (12) 2009.09.30
Posted by 윤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