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0.03.12 밖에서 보는 한국 4
  2. 2009.09.14 자전거 소회 4
  3. 2009.08.28 발효된 의문들 답을 얻다 4
  4. 2008.07.28 내 그럴 줄 알았다 15
  5. 2007.05.02 에티오피아에서 만난 아시아
Daum 파워에디터동계올림픽이 끝났다고 한다. 한국팀이 참가하는 국제규모의 이벤트였는데 이번엔 단 한 게임도 구경을 못했다. 2008년 북경올림픽도 자국위주의 중계방송을 하는 일본에 있었지만 유도도 (확실히) 봤고, 야구도 봤(나?)는데 영국에서는 한국팀의 경기를 한번도 못 봤다. 김연아 경기는 보고 싶었는데 며칠 전 BBC 홈페이지에서 프리경기만 봤다. 경기를 못 본 이유를 굳이 분석해 보자면 텔레비전이 없었고, 시간을 챙겨 인터넷으로 보면 되는데 열정이 부족했고, 또 어디서 하는 지도 모르겠고, 많이 바빴고, 그래서 포기했는데 벌써 올림픽이 끝났단다. 세계 5위라니 우리 선수들이 참으로 자랑스럽다.우리나라 스포츠가 성장하듯 다른 분야도 그렇게 쑥쑥 자라면 얼마나 좋을까.

며칠 전 워크숍이 있어 런던에 다녀왔다. 영국 왕립지리학회에서 하는 워크숍이었는데 건물내 전시실에서 여행가이며, 작가이며, 또 지리학자이기도 했던 이사벨라 버드(Isabella Lucy Bird)의 자취를 보여주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사벨라 버드가 지나간 길을 다시 더듬었던 가나사카 기요노리의 사진 작품도 같이 전시되었는데 이 전시회의 협찬과 후원기관들을 훑어보니 일본국제교류기금, 교토대학 등 일본관련 기관들 일색이다. 이사벨라 버드는 구한말 한국에도 머물렀으며 <조선과 이웃 나라들 Korea and Her Neighbours)>라는 책도 남겼다. 이 사람 전시회를 둘러 보면서 일본이 얼마나 조직적으로 해외에 자신들을 홍보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녀가 남긴 책에서 그녀가 찍은 사진들을 주제별로 뽑았고, 다시 그녀의 발자취를 따라 사진을 찍은 일본인의 작품을 적절히 섞어 전시하고 있었는데, 당시 그녀가 대한제국에서 받은 실물크기의 여권 복사본도 있었다. 가만히 전시회의 사진들을 들여다보니 일본은 다도, 절, 신사 등 고요하고 정적인 이미지 사진들 위주였다. 중국이나 남아시아 여러나라들은 지저분하고 소란스러운 시장통을 찍은 사진들이 많이 전시되고 있었다. 컬러플하며 역동적인 이미지로 볼 수도 있지만 현대의 중국이나 남아시아는 여전히 일본과는 거리가 먼 '다른' 아시아 국가 이미지로 전시를 기획한 것 같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가. 

동대문과 남대문, 그리고 부산 시내 어딘가인 것 같은데 간판들이 다닥다닥 걸린 거리의 사진이 전시되었다. 동대문, 남대문의 글자와 양식들은 중국문화을 모방했다는 내용을 사진 아래에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었고, 어수선하게 정리되지 않은 한국이라는 내용도 빼놓치않고 있다. 그들이 본 당시의 이미지일 수도 있지만 왜 현재의 전시기획자들까지 그녀와 일본인의 많은 사진들 중에 그런 사진을 뽑아 전시를 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일본에 있을 때 텔레비전에서 쉽게 만날 수 있었던 시끄러운 오락 프로그램이나 상상하기 힘든 범죄사건들, 지진관련 내용들을 이곳 NHK를 통해서 볼 수가 없다. 영국의 NHK에서는 일본의 아름다운 경관, 조용하면서 신비함이 가득한 신사들, 특이한 취미를 가졌지만 거의 장인반열에 올라갈 만한 사람들 이야기, 외국인에 친절한 일본인들, 일본이 세계에 기여하는 활동들이 주로 소개되고 있다. 일본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에티오피아에서도 본 적이 있는데 마찬가지다. 시끄럽고 요란한 건 전혀 볼 수가 없고 지극히 정적인, 재미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지만 뭔가 있을 것 같은 그런 내용을 계속 반복해서 보여주고 있다. 일본이 밖으로부터 얻고자하는 이미지가 저런 것이 아닐까 싶다. 일본은 침략하고 약탈하고 예고없이 쳐들어와 말살해버렸던 그들의 이미지를 저런식으로 희석하는 활동들을 아주 오래전부터 해오고 있다.  

이번 동계올림픽에서 일본은 금메달을 한개도 가져가지 못했다고 한다. 일본이 한국이 따낸 다섯개의 금메달을 무척이나 부러워할 것이란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나는 런던의 한 작은 전시실에서 한국은 왜 금메달에만 열광할까 그런 생각을 했다. 며칠동안 런던을 둘러보면서 나는 한국이 하나도 못 딴 금메달을 일본이 100개는 딴 느낌을 받았고, 일본이 하고 있는 국가이미지 홍보활동이 정말 부러웠고, 우리나라가 스포츠에서 금메달 따듯 그들의 활동을 그리 쉽게 따라가지 못할 것 같아 참으로 배가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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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일본에 와서 첫 한달간은 자전거 없이 지냈었다. 통학을 전철로 했었고, 왠만한 거리는 걸어다니던 습관이 있어 먼 줄도 모르고 처음에는 대개 걸어 다녔다. 그러다 게스트하우스에 사는 조선족 아가씨한테 자전거를 한대 얻었다. 산악자전거를 사게 되면서 필요가 없어졌단다. 내가 보기에 너무 멀쩡해서 덜컥 받은 후 거의 2년을 타고 다녔다.

그 사이 새것이나 다름없는 자전거가 두대나 생겼지만 전부 옆방의 김상한테 줘 버렸다. 늘 내 자전거를 빌려타는 통에 귀찮아서 내가 타던 헌 자전거가 아니라 새 자전거를 선물로 줬는데 한달도 안되어 잃어버렸단다. 그리고 몇개월간 내 자전거를 다시 빌려 탔었는데 또 한대의 자전거가 내게 생겼다. 이번에도 헌 게 아닌 새 것을 줬는데 그만 또 잃어버렸단다. 

자전거 세울 수 있는 곳이 아니면 가끔 날을 잡아 수거를 해가는데 아마 부주의하게 자전거를 세워놓는 바람에 그런 일이 생긴게 아닌가 싶다. 내 친구는 걔 혹시 중국인이냐고 물어보면서 아마 다른데다 팔았을지도 모른다고 그랬지만 난 김상을 믿기로 했다. 그러나 개인의 부주의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는 행동을 반복하는 사람을 난 신뢰하지 않는다.

Autumn Cycle
Autumn Cycle by moriza 저작자 표시


올초 공부 끝나고 돌아가는 한국유학생이 자전거를 두대나 선물로 줬다. 일본에 와서 다섯번째 자전거 선물이다. 다들 팔고 일본을 떠난다는데 그런 자전거들이 전부 나한테 돌아왔다. 이 두대의 자전거는 기어도 있고, 산지 얼마 안된 자전거라 내겐 거의 벤츠급이었다. 같은 층의 한국 학생이 돈 아낀다고 학교를 걸어다닌다는 얘기를 듣고 한대를 냉큼 줘버렸다. 나보다 과정 일찍 끝나면 팔지말고 다시 돌려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리고 드디어 헌 자전거를 옆방 김상에게 인도하고 요즘은 그 벤츠를 타고 다닌다.

김상에게 세번째로 자전거를 주면서 그 얘기를 넌지시 했다. 잃어버리지 마라. 누가 그러더라. 너 혹시 자전거 파는 거 아니냐고. 내 자전거 세우는 곳에 아직도 있는 것 보면 이번엔 안 잃어버리고 잘 타고 다니는 것 같다. 내 벤츠와 한국학생이 타던 벤츠는 내가 영국으로 떠나기 전 이곳에서 만난 한국인 부부에게 주기로 약속했다.

다들 몇대씩 잃어버리는 자전거를 지금까지 난 한번도 잃어버리지 않았지만 사고는 몇번이나 경험했고, 수술을 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그나마도 없어 부러워하는 자전거전용도로가 이곳에 마련되어 있지만 좁은 편이라 역주행하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위험하기 짝이 없고, 자전거전용도로와 자동차용도로 사이의 둔턱이 높아 비가 오는 날은 미끄러지기 십상이다.

오늘 학교에 가다가 자전거를 타기 일보직전의 할아버지 한 분을 보게 되었다. 신호가 급하게 바뀌는 바람에 졸지에 할아버지 꽁무니에서 자전거를 멈추게 되었다. 할어버지는 자전거전용도로에서 자전거를 끌고 도로로 이동하신 상태라 할아버지가 출발하시면 곧 출발해야지, 하고 대기중이었는데 그냥 계속 멈춰서 계시는 거였다. 그 할아버지는 전방의 신호등을 보시고, 앞뒤를 또 몇 번이나 보시고, 크게 숨도 몇번 고르시고, 그러고 나서 안장에 앉아 페달을 밟으시는 것이었다. 일본의 어른신들을 만나면 한국의 어르신들이 자주 떠오르는데 지혜롭고 매사 조심스러워하시는 게 서로 꼭 닮았다. 

할아버지가 출발하신 후 뒤따라 나도 힘차게 페달을 밟으며 할아버지처럼 자전거를 타고 다녔으면 사고 날 일은 없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더불어 했다. 내 경우 쌍방과실이었지만 좀더 여유롭게 출발하고, 저 할아버지처럼 앞뒤를 몇번이나 살피는 조심스러움이 있었다면 생기지 않았을 일이었다. 사고 나면? 나만 손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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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1. 닛산 MARCH 오렌지색

한국에서도 박사과정 학생들의 생활은 유학생들과 그리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지극히 단조롭고 때론 심심해보이기까지 하다. 사실 마음은 한없이 조금하고 여유가 없지만 말이다. 아침에 일어나 책상에 앉아 좀 꿈지럭거리다 밥먹고 학교가서 또 꿈지럭거리다 때되면 또 밥먹고 또 꿈지럭거리다 해 떨어지면 집에 온다.
날마다 주말이라서 토요일 일요일이 특별하지도 않다. 이런 생활에 변화라면 내 경우 집근처 숲길 산책이나 시립도서관에 다녀오는 일이다. 읽을만한 책 수는 학교 도서관과 비교할 수 없지만 영상물 대출도 해주고, 없는 책들은 주문하면 며칠 후에 받아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학교도서관보다 가깝다.

기숙사에서 도서관으로 향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기숙사 정문에서 출발해 직진 우회전 다시 직진하는 방법, 우회전하다 한없이 직진하는 방법, 수도 없이 우회전 마지막으로 직진하는 방법 등이다. 이 중에서 직진 우회전 다시 직진하는 방법으로 갈 경우 우회전하기 직전에 이 문제의 차를 만날 수 있다. 닛산 MARCH 오렌지색 소형차이다.

내가 지금 기숙사에 온지 올해 3년째인데 이 차는 한번도 그 자리를 떠난 적이 없다. 적어도 며칠 전까지 말이다. 주차장이라지만 천장이 없고 쇠줄 하나로 경계를 표시한 정도인데 내가 그 앞을 지날 때 그 차는 늘 그 자리에 버티고 있었다. 아침에도 저녁에도 사쿠라가 필 때도 장대비가 쏟아질 때도 찬바람 불고 다시 눈이 내리던 그 때도 오렌지색 그 차는 거기에 있었다.

차는 항상 세차되어 있었고 내가 차의 안위를 걱정할만큼 요지부동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떤 날은 꿈을 꾼 적도 있다. 이 차가 몇년째 탈출을 시도했는데 그러지 못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탈출을 한 후 도로에서 카퍼레이드를 하는 꿈이었다. 도로 한가운데 이 차가 움직이고 다른 큰 차들이 보디가드처럼 따라가는 걸 보고 안심하며 잠을 깼는데, 싱거우면서 내 스스로 어이가 없어 그날 하루종일 실실 웃었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그 집 앞에 가서 그 차가 여전히 그곳에 있음을 확인하고 돌아온 적도 있다.

지난 주말에 드디어 이 차의 운전자를 만났다. 운전이 가능할까 싶은 할머니가 운전대에 앉아 계셨다. 옆자리에는 애완견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반가워 손을 흔들었는데 할머니도 반갑게 손을 흔들어주셨다. 3년째 궁금했던 의문이 그렇게 풀렸다. 좀 아쉽다.




2. 쓰레기통 옆의 물병 두개

기숙사 방에서 나가 엘레베이터로 가는 좌측에는 분리수거함과 함께 몇개의 쓰레기통이 항상 도열해 있다. 빈깡통만 넣는 통, 빈유리병만 넣는 통, PET병만 넣는 통, 그리고 불에 타는 것, 안타는 것을 나누어 담는 통. 외국학생들이 통 표면의 글자를 못 읽을까봐 친절하게 그림도 그려 붙여놨다. 근데 그뿐이다. 시청에서 지적도 받았다고 하고,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더 이상 8층의 쓰레기는 수거해가지 않는다고 엄포를 놓는데도 소용이 없다.

나도 왜 다들 분리수거에 동참하지 않는지 잘 모르겠다. 8층 쓰레기통에 까마귀떼들이 시도때도없이 방문하면서 일이 좀 커졌다. 비닐봉지에 닥치는대로 담은 쓰레기를 제대로 통에 넣지 않아 이 까마귀들이 와서 성찬을 즐기다 돌아가면 쓰레기통 주변이 완전 난지도로 바뀌는 것이다.
관리실에서 경고차원으로 사진을 찍어서 붙이고 이틀전부터는 불투명 쓰레기통이 투명 쓰레기통으로 바뀌어 놓여져 있다. 남의 나라에 와서 뭘 열심히 배우겠다는 사람들일 텐데, 쓰레기통 앞에 섰을 때, 공동부엌 개수대 앞에 섰을 때 8층 거주자들의 개념없음에 확 밀려오는 짜증을 주체하기 힘들다.

이 쓰레기통 옆에 내가 이사올 때부터 1.5리터 짜리 PET병 두개가 항상 물이 가득 담긴 채 놓여 있었다. 내가 궁금해 몇번 자리를 옮겨 봤는데 다음날 보면 역시나 원래 자리로 돌아가 있었다. 병 표면은 그리 깨끗하지 않았지만 물은 누가 갈아 주는지 늘 깨끗해 보였다.
화재예방차원으로 세워 놓기에는 물의 양이 적어 보였고, 누가 저걸 늘 같은 자리에 가져다 놓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뚜껑을 열어 냄새를 맡아보니 확실히 물이었다. 그 중의 한 병의 물을 따라 버리고 병을 PET병 수거함에 버린 적이 있는데 그 다음날 보면 또 그 자리에 물이 담겨 놓여 있었다.

참으로 의문이로고. 닛산 오렌지색 경차만큼 내겐 미스테리였는데 오늘 아침 드디어 그 의문이 풀렸다. 이런.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쓰레기통에서 쓰레기들을 꺼내 옮긴 후 손을 닦기 위해 가져다 놓은 것이었다. 아, 쪽팔려. 허무하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고. 그게 그건가. 배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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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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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사 뜨뜻미지근하게 처리하더니 결국 독도가 분쟁지역으로 분류가 됐나보다. 21세기에 우리가 뭐가 부족해서 가만히 앉아 요렇게 당해야 하냐고. 국민세금으로 월급 타가는 넘들 다 반납해야하는 거 아닌가? 그리고 지금 이 상황에서 우리가 왜 미국한테만 독도가 우리 땅임을 인정받아야하는 지도 좀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닌가. 날도 더워죽겠고만 제 할일 안하고 삽질만하는 넘들 생각하면 부하가 치민다.
 
교토에 가면 우리나라 서울의 한강처럼 '가모가와'라는 도심을 흐르는 강이 있다. 강변에는 늘 데이트하는 커플로 넘치는데 가만히 보면 참 웃긴게 누가 시키지않았는데도 다들 줄과 간격을 딱 맞춰 앉아 연애질을 한다. 예를 들어 처음에 1m 간격으로 앉기 시작하면 그 옆 커플도 적당히 1m 정도 떼어 앉는 식이다. 더 이상 1m로 앉지 못할만큼 수가 많아지면 그 다음 커플들은 1m 사이의 중간인 50m 정도에 자리를 잡는다. 이렇듯 남을 불편하게하지 않아야 한다는 게 몸에 배어있는 민족이 일본이다. 이런 사람들이 때되면 한번씩 독도 관련 망언을 날리는 데에는 정치적인 의도가 깔려있다고 봐야하는 거다. 이제 정신 좀 차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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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가 기무치가 된 지 오래다. 기숙사의 베트남, 인도네시아, 독일, 중국 애들 다들 수퍼에서 '기무치' 사다가 먹는다. 난 달고 영 맛 없어 못 먹겠는데 애들은 조금 맵지만 맛있단다. 기숙사로 이사와 처음에 냉장고 열어보고 김치통이 한 두개가 아닌 거 보고 놀랐다. 비빔밥도 건강식품으로 이곳에서 아주 인기다. 웃긴 건 비빔밥 재료가 식당마다 거의 다 똑같다는 거다. 우리는 남은 반찬 때려넣고 고추장 넣고 슥슥 비비면 그게 비빔밥인데 일본에서는 비빔밥의 위상이 달라도 한참 다르다. 최근에는 덮밥(일본에서는 '돔부리'라고 함)에 일본식 재료를 넣고 고추장을 가미한 '무슨무슨 비빔밥 돔부리'도 식당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뭔가 표준화하기를 좋아하는 일본 사람들은 한국에서 들여 온 음식들을 누구나 만들 수 있게 표준화해서 지들 걸로 만들어 재포장해 팔고 있다. 표준화가 되면 이곳이 아닌 저곳에서도 만들 수가 있다는 거 당연하지 않은가.

일본의 한국음식점에서는 고기를 구워먹든 찌개를 심하게 끓여먹든 다 먹고 나도 냄새가 안난다. 종로에서 삼겹살에 술 한 잔하고 마지막 전철타고 돌아올 때 차 안에서 그날 먹은 음식 냄새로 구역질 경험할 때 없으셨는지. 일본놈들은 참, 같은 한국음식인데도 무슨 처리를 했길래 식당에 오래 앉아 있어도 옷에 냄새도 안배고, 불고기든 비빔밥이든 서민음식이 아닌 고급음식으로 둔갑을 시켜버리지?

사실 일본에 오리지널이 어디 있냐. 다 베껴다 지들 걸로 만든 게 대부분이지. 한자로 지금 히라가나 가타가나 만들었지, 기모노도 뭐 지들 거냐. 차도(티 세레모니)는 어떻고. 스모는. 지금 전세계에 일본 아이콘으로 강력하게 부상한 것들 중 오리지널이 뭐가 있냐. 그치만 배 아프다. 김치, 비빔밥, 불고기 이제 곧 일본을 대표하는 음식될 날 얼마 안남았다. 대한민국 심하게 정신차려야 한다.

주변 섬 이제 다들 지네 거라고 하고 있는데 우린 왜 아직도 당사자인 일본이랑 직접 대화할 생각안하고 미국 눈치를 보고있고, 미국에다가 독도가 우리 땅 아니냐고 묻고 있느냐 말이다. 외교부에서 미국에다 물어보려고 했는데 주말이라 근무안한다고 그랬단다.

사진출처:
1. 독도: http://sports.chosun.com/news/entertainment/200807/20080716/87p75106_2.jpg
2. 가모가와: http://allabout.co.jp/travel/travelkyoto/closeup/CU20030504A/kamo.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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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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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렌지와 현지인의 탁구경기.
삽시간에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 승부 없는 경기를 즐겼다. 에티오피아 곳곳에서 탁구를 치는 젊은이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 또한 중국의 영향으로 보인다.

세계 최빈국이라는 에티오피아에 와서 이런저런 경험을 아주 많이 한다. 길거리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내밀어 구걸을 하는 사람들에는 아직도 적응이 안됐지만 무조건 헬로우, 하고 뛰어와 손만 잡고 그냥 도망치는 어린 꼬마들에게는 이제 적응이 되었다. 그래서 헤이, 차이나, 하고 누군가가 부르면 손을 내밀 준비를 한다.

 

에티오피아 전체에 도로를 까는 일을 거의 중국인들이 하고 있기 때문에 대도시든 시골이든 현지인들은 아시아인을 보면 무조건 차이나, 라고 부른다. 챙이 있는 모자에 커다랗게 태극기를 달고 다녀도, 그리고 그 태극기 아래에 노란색으로 선명하게 KOREA라고 박아 넣었는데도 그냥 차이나, 라고 부른다. 돌아보던 말던 그냥 일단 불러놓고 본다. 에티오피아 전체에 한국인은 약 150여 명, 일본인은 약 130여 명 정도가 체류하고 있고 중국인은 수천을 헤아리고 있다. 직접 만난 중국인은 약 7천명 정도가 살고 있다고 하는데 정부기관 사람들에 의하면 그 이상이라고 한다.

 

중국인들은 에티오피아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전체에 워낙 많이 들어와 살고 있기 때문에 중국 문화가 곧 아시아 문화로 둔갑을 해서 한국인도, 일본인도, 중국 사람과 같은 문화를 가지고 있느냐는 질문들을 많이 한다. 적어도 아프리카에서는 현재 중국이 아시아 문화를 대표하고 있다.

 

질 낮은 중국산 제품이 에티오피아를 점령한 지는 아주 오래되었다. 그 덕분에 한국에서 온 물건들은 중소기업 제품도 명품 취급을 받는다. 도로를 깔아도 금방 갈라지고 패는 통에 신뢰를 할 수 없다는 얘기를 하면서도 중국이 가지는 가격경쟁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금도 에티오피아 곳곳에서 중국인들이 도로 포장공사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 업체로는 유일하게 경남기업이 에티오피아에 와서 지방도로를 공사 중인데, 역시나 명품으로 인정 받고 있다.

 

에티오피아를 구성하는 민족 중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암하라족들의 주거주지인 바하르다르(Bahar Dahr)라는 곳이 있다. 에티오피아 최대 담수호로 면적이 3,000㎢나 되는 타나 호수와 나일강의 원류인 블루 나일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이 곳에서 버스로 30분 정도 가면 머라위(Merawi)라는 곳이 나오는데 이곳에 사는 중국인들은 먹는 것을 자급자족하고 있다. 수도인 아디스아바바 이외의 장소에서는 배추를 구경할 수가 없다는데 이곳 머라위에 가면 중국인들이 농사지은 배추를 구경할 수 있다. 먹는 게 안 맞는다고 언제 본국으로 돌아갈지 모르는데 직접 농사를 짓는 중국 사람들이다.

 

일본은 체류 인구수는 한국에 밀리지만 머무는 장소 수에서는 한국을 압도한다.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아디스아바바와 같은 대도시가 아닌 지방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다. 우리나라 국제협력단(KOICA, 코이카)의 모델인 일본국제협력기구(JICA, 자이카)의 자원봉사자들이 시골 구석구석까지 파견이 되어 그들의 기술과 문화를 전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하르다르에서 만난 코이카 봉사단원의 말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안전을 이유로 현재 대도시 위주로 파견을 하고 있다고 한다. 머라위에 갔을 때, 그 시골 구석에서 자이카 봉사단원을 만나 좀 놀랐다. 한국은 아프리카 4~5개국에 봉사 단원을 파견하고 있는데 일본은 현재 아프리카 대부분의 나라에 자이카 봉사단원을 파견하고 있다. 메켈레에서 만난 일본 자이카 시니어 봉사단원에 따르면 현재 약 600여 명의 자이카 봉사단원이 아프리카 곳곳에 파견되어 있다고 한다. 보통 파견 기간이 2년이니까 임기 후에 이들은 파견 지역의 전문가가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지금 에티오피아를 여행하면서 단지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로 자이카 봉사단원들을 많이 만나고 있다. 동네에 파렌지(현지어로 외국인을 의미)가 나타나면 현지인들은 부탁하지 않아도 그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안내를 한다. 자이카 봉사단원들을 만나면서 자기가 머무는 곳에 자기가 먹을 농작물을 재배하는 중국이라는 나라보다도 지구촌 곳곳에 일본 문화의 메신저가 될 사람을 심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참 부러웠다. 6,7년째 벼룩과 빈대 천국인 이 곳에서 아프리카 전체도 아니고 에티오피아에 있는 그 무엇을 연구하고 있는 일본 연구자들을 만났을 때는 참으로 존경스러웠다. 우리는 미국이 몇 개의 주로 이루어졌는지 아는 사람은 많아도 아프리카 대륙에 몇 개의 나라가 있는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아직은 더 많지 않는가. (서울신문, 게재날짜 기억안남)

Posted by 윤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