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워크숍이 있어 런던에 다녀왔다. 영국 왕립지리학회에서 하는 워크숍이었는데 건물내 전시실에서 여행가이며, 작가이며, 또 지리학자이기도 했던 이사벨라 버드(Isabella Lucy Bird)의 자취를 보여주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사벨라 버드가 지나간 길을 다시 더듬었던 가나사카 기요노리의 사진 작품도 같이 전시되었는데 이 전시회의 협찬과 후원기관들을 훑어보니 일본국제교류기금, 교토대학 등 일본관련 기관들 일색이다. 이사벨라 버드는 구한말 한국에도 머물렀으며 <조선과 이웃 나라들 Korea and Her Neighbours)>라는 책도 남겼다. 이 사람 전시회를 둘러 보면서 일본이 얼마나 조직적으로 해외에 자신들을 홍보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녀가 남긴 책에서 그녀가 찍은 사진들을 주제별로 뽑았고, 다시 그녀의 발자취를 따라 사진을 찍은 일본인의 작품을 적절히 섞어 전시하고 있었는데, 당시 그녀가 대한제국에서 받은 실물크기의 여권 복사본도 있었다. 가만히 전시회의 사진들을 들여다보니 일본은 다도, 절, 신사 등 고요하고 정적인 이미지 사진들 위주였다. 중국이나 남아시아 여러나라들은 지저분하고 소란스러운 시장통을 찍은 사진들이 많이 전시되고 있었다. 컬러플하며 역동적인 이미지로 볼 수도 있지만 현대의 중국이나 남아시아는 여전히 일본과는 거리가 먼 '다른' 아시아 국가 이미지로 전시를 기획한 것 같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가.
동대문과 남대문, 그리고 부산 시내 어딘가인 것 같은데 간판들이 다닥다닥 걸린 거리의 사진이 전시되었다. 동대문, 남대문의 글자와 양식들은 중국문화을 모방했다는 내용을 사진 아래에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었고, 어수선하게 정리되지 않은 한국이라는 내용도 빼놓치않고 있다. 그들이 본 당시의 이미지일 수도 있지만 왜 현재의 전시기획자들까지 그녀와 일본인의 많은 사진들 중에 그런 사진을 뽑아 전시를 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일본에 있을 때 텔레비전에서 쉽게 만날 수 있었던 시끄러운 오락 프로그램이나 상상하기 힘든 범죄사건들, 지진관련 내용들을 이곳 NHK를 통해서 볼 수가 없다. 영국의 NHK에서는 일본의 아름다운 경관, 조용하면서 신비함이 가득한 신사들, 특이한 취미를 가졌지만 거의 장인반열에 올라갈 만한 사람들 이야기, 외국인에 친절한 일본인들, 일본이 세계에 기여하는 활동들이 주로 소개되고 있다. 일본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에티오피아에서도 본 적이 있는데 마찬가지다. 시끄럽고 요란한 건 전혀 볼 수가 없고 지극히 정적인, 재미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지만 뭔가 있을 것 같은 그런 내용을 계속 반복해서 보여주고 있다. 일본이 밖으로부터 얻고자하는 이미지가 저런 것이 아닐까 싶다. 일본은 침략하고 약탈하고 예고없이 쳐들어와 말살해버렸던 그들의 이미지를 저런식으로 희석하는 활동들을 아주 오래전부터 해오고 있다.
이번 동계올림픽에서 일본은 금메달을 한개도 가져가지 못했다고 한다. 일본이 한국이 따낸 다섯개의 금메달을 무척이나 부러워할 것이란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나는 런던의 한 작은 전시실에서 한국은 왜 금메달에만 열광할까 그런 생각을 했다. 며칠동안 런던을 둘러보면서 나는 한국이 하나도 못 딴 금메달을 일본이 100개는 딴 느낌을 받았고, 일본이 하고 있는 국가이미지 홍보활동이 정말 부러웠고, 우리나라가 스포츠에서 금메달 따듯 그들의 활동을 그리 쉽게 따라가지 못할 것 같아 참으로 배가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