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월요일 도쿄를 출발, 간사이와 두바이를 거쳐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도착했습니다. 계절은 냉건기라서 낮에는 무지하게 뜨겁고 밤에는 두툼한 자켓이 필요할 만큼 아주 춥네요. 우리나라 교육부에 해당하는 일본의 문부과학성이 제가 다니는 학교에 학생 지원 프로그램을 하나 제공했고, 제가 첫 수혜자가 되어 이번에 에티오피아를 다시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좀 앓았습니다. 기후탓인지 고산지대라서 그런지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호텔에서 그저 잠만 잤는데 역시나 몸이 안 좋을 때는 수면탕이 최고더군요. 끊어놓은 비행기표를 변경할 수가 없어 몸을 대충 추슬러 지난 주말에 하라르라는 곳으로 이동했습니다. 아디스아바바(Addis Ababa)에서 디레다와(Dire Dawa)라는 에티오피아의 제 2도시까지 비행기를 탔고, 디레다와에서 버스로 다시 하라르까지 왔습니다. 아디스아바바에서 하라르까지 버스가 다니지만 저 같은 외국인이 혼자 가기에는 위험하다고 해서 일부 노선만 비행기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디레다와는 작년 여름에 홍수피해가 심해서 사람들이 많이 죽은 곳입니다. 작년에 TV에서 헬기로 유엔 구호물자가 도착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아주 평화롭네요. 참고로 디레다와는 에티오피아의 국내 도시지만 디레다와행 비행기는 국제선 청사를 이용해야 합니다.

비행기에서 독일인 친구를 만났는데 기내에서 제공한 빵과 주스를 먹는 저를 아주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더군요. 사실 작년에 저도 저걸 어떻게 먹나 그랬었거든요. 1년 반을 이곳에 있었다면서 암하릭어로 숫자를 10까지 세어 주면서 중요하니 배우라고 해서 제가 100까지 세어줬습니다. 디레다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호객꾼들과 실랑이를 벌여야 했지만 뭐 이젠 많이 익숙해져서 괜찮습니다. 공항에서 디레다와 시내까지 가는데 40birr(1USD≒9.04birr)를 요구해서 못 들은척 하고는 결국 10birr에 해결을 했습니다. 차를 타고 버스터미널까지 왔는데 친절한 젊은 친구가 가방을 들어주길래 고마워했더니 하라르행 버스에 가방을 싣자마자 20birr를 내라고 하네요. 음…5birr 줬습니다. 가방이 무거우니 두 사람 몫의 차비를 달라고 해서 가방이 차지하는 공간이 크지 않고, 나보다 가볍다고 그냥 20birr만 내고 배째라고 했습니다. 디레다와에서 하라르까지 버스 요금은 11birr.

얼마 되지도 않는 금액을 그냥 주고 말지 그러느냐고요? 이 사람들이 너무 쉽게 돈 버는 것도 원하지 않고, 제 연구지역이 이곳이기 때문에 앞으로 여기서 지낼 날이 몇 년이 될 지 모르거든요. 처음부터 포지셔닝을 잘 하지 않으면 밑빠진 독에 계속 돈을 쏟아 부어야 할 겁니다. 디레다와에서 하라르까지는 중국인들이 도로를 싹 포장해놔서 그냥 씽씽 달렸는데 중간에 타이어가 터지는 바람에 그만 차도 길 바닥에 퍼져버렸습니다. 도로에서 한참을 서성거리고 있었는데 동네 사람들이 다 나와 저를 구경하더군요. 같이 차를 타고 온 사람들이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데 그냥 포즈 잡아줬습니다.

두어 시간을 땡볕에 서 있었는데 딱 한자리, 빈 좌석이 남은 차가 와서 누구 탈 사람 없느냐고 하는데 같이 길에서 서성이던 사람들이 전부 저를 먼저 보내야 한다면서 양보를 하더군요. 제게는 돈 다시 낼 필요 없고, 잊지 말고 이 친구를 호텔에 내려주라고 운전기사에게 당부까지 해주었습니다. 이렇게 친절한 사람들이 에티오피아에는 많습니다. 정부에서 운영한다는 호텔에 투숙을 하기로 했는데 방에 전화도 없고 물도 전기도 제한적으로 공급이 됩니다. 밤마다 바퀴벌레와 기타 등등의 벌레들이 제 신발바닥과 조우를 해야 하고요.

왜 거기 가서 그렇게 고생하느냐고요? 아직은 불편한 게 많지만 에티오피아, 정말 매력적인 곳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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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을 나와서 시청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곤다르 시장을 구경할 수 있다. 유칼립투스 나무로 얼키설키 비계(고층 건물을 지을 때 디디고 서도록 긴 나무나 쇠파이프를 얽어서 널을 걸쳐 놓은 시설)를 사용해 건물을 짓는 모습도 볼 수 있고, 길 양쪽에 도열해 있는 재봉사들도 큰 볼거리다. 가게 안이 아니라 전부 바깥에 재봉틀을 내 놓고 작업을 하는데 이제는 생활사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숯을 넣은 다리미로 쓰윽쓰윽 다림질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다운타운이라고 해봤자 우리나라 시골읍 정도의 규모지만 도시 곳곳에서 비교적 현대식 건물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토모에 따르면 이러한 현대식 건물들은 이탈리아 침략시기에 지어진 것들로 곤다르에만 약 300개 정도가 있다고 한다. 대부분 역사가 60여 년 밖에 안 된 건물로 시내 중심가에 있는 우체국 건물 등 주로 관공서 건물로 이용되고 있었다. 물론 주택으로 이용되는 경우도 있는데 철제 대문을 비롯해 화장실의 욕조나 변기 등은 지금도 이탈리아에서 수입해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성에서 나와 시청 반대쪽으로 길을 잡아 걷다 보면 파실라다스 왕의 풀장과 여행서에도 나오지 않는 쿠스쿠암(Kuskuam) 교회를 만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세례의식을 기념하는 날인 1 19일에는 파실라다스 왕의 풀장에서 대대적인 팀캇 페스티벌이 거행되는데 서로 물을 뿌려가며 축제를 즐기고 밤을 새워 예배를 보는 인파 덕분에 이 때가 되면 주변은 발 디딜 틈이 없다. 쿠스쿠암 교회는 시내를 벗어나 언덕을 몇 개 올라가야 하지만 가는 길목에 펼쳐지는 풍광이 나그네의 발걸음을 결코 억울하지 않게 한다. 특히, 교회의 천장화가 인상적인데 그 유명한 데브레 베르한 셀라시에(Debre Berhan Selassie) 교회의 천장화를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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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브레 베르한 셀라시에 교회는 17세기 이야수 1(혹은 조슈아 1)가 건립한 교회로 곤다르에 있는 44개의 교회 건물 중 1800년대 남()수단에서 쳐들어 온 이슬람 세력과의 전투에서 유일하게 살아 남은 교회다. 에티오피아의 최고 걸작이라고 하는 종교화가 이 교회에 있는데 에티오피아 국가 홍보물을 비롯해 관광상품에도 다양한 형태로 등장한다. 교회 안으로 들어가 천장을 올려다 보면 에티오피아 특유의 천사가 가득 그려져 있는데(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전부 80개라고 함.) 신기하게도 얼굴 표정이 같은 게 하나도 없다. 커다란 눈에다 몸통이 아닌 머리에 날개를 가진 천사들의 모습인데 전설에 따르면 이 천사들은 성 요하네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쿠스쿠암 교회 천장화의 천사들도 바로 이런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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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24: 일본/사람들2007. 11. 28.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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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니아에서 온 '알리'와 오늘 점심을 같이 먹었다. 4월에 만났을 때 언제 같이 점심이나 먹지, 했었는데 서로 뭐가 그리 바빴는지 오늘에야 만나 학교 구내 식당에서 각자 돈 내고 먹었다. 파인애플 양이 많아 같이 먹자고 했더니 지네 나라에서는 파인애플은 지천이라서 별로 안좋아하는데 내가 주는 거라 먹는다며 낼름 먹는거 아닌가.

2년간 히토쓰바시에는 아프리카에서 온 학생이 없어 많이 심심했단다. 그 동안 흑인이라서 차별 받은 적은 없었느냐고 물었더니 그 사람들은 차별을 했는지 모르지만 자기는 신경 안써서 잘 모르겠단다. 좋은 습관이다. 겨울이 되면 아무리 껴 입어도 대책없이 추워 그게 유학생활의 유일한 어려운 점이란다. 행복한 친구 같으니라고...

알리는 세네갈 정부에서 초청을 받아 거기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1년간 연구생 과정을 거쳐 올해 4월에 히토쓰바시대학 법학과 박사과정에 입학을 했다. 중간에 프랑스로 1년간 유학도 했다면서 살짝 자랑을 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얼굴에 성실, 이렇게 써 있는 친구다. 아프리카 연구를 하고 있다는 이유로 날 보면 늘 반갑게 인사를 했었다. 현재 '세계 평화를 위한 UN의 역할'이라는 거창한 주제로 논문을 준비하고 있는데 나중에 에티오피아에 있는 AU(아프리칸 연합)에서 일을 하면 좋겠단다. 혹시 에티오피아에서 나중에 만나면 서로 친하게 지내자고 그랬다.

요즘 유네스코에서 나온 자료들을 보고 있는데 꼭 보고 싶은 자료는 프랑스어로 나오는 통에 애를 먹고 있다고 그랬더니 당장 프랑스어 공부하잔다. 음...그래서 에티오피아 다녀오고 나서 문자 읽는 법부터 배우기로 했다. 오늘은 그거 기념으로 "메르씨 보꾸 Thank you very much" 와 "아나나스 a pineapple"을 배웠다. 기니아 말 몇 개랑. '안녕'은 기니아 말로 '이니케'.

'게무초'라는 사람을 안다고 했더니 기니아에서는 넘치고 넘치는 이름이 '게무초'란다. 게무초 이 친구, 지금 기니아 외교부에서 일하는데 기니아의 '철수'?

기니아는 서아프리카에 위치한 아주 작은 나라다. 국토 면적은 남북한 합친 것 보다 조금 큰 것 같다. 수도는 코나크리(Conakry). 아프리카에는 내륙국이 많은데 기니아는 복도 많지, 바다를 가지고 있다. 수도 코나크리는 항구도시다. 기니아 전체 인구는 1000만명 정도. 이슬람교가 국민의 90% 정도인데 기니아의 문화와 맞게 토착되어 율법이 그리 엄격하지 않단다. 이슬람교는 북아프리카 정도만 전파된 줄 알았는데 이미 9세기 경부터 기니아 사람들은 이슬람교를 믿었다고 한다. 1884년부터 1958년까지 프랑스 식민지였기 때문에 공용어는 프랑스어다. 프랑스 통치기에 종교에 대한 문제가 없었느냐고 했더니 이렇다 할 큰 변화는 없었다고 한다. 다른 아프리카 국가에 비해 소수민족이 적은 편인데 15개의 종족이 있다고 한다. 기후는 일년의 절반이 우기고, 또 절반이 건기에 기온은 22~3도에서 32~3도 사이를 왔다갔다 한단다. 현정부 관심은 오직 development라는데 그건 믿거나 말거나.

아프리카 사람들을 만나면 이 사람이 어느 나라 사람인 지 구분할 수 있느냐고 했더니 가능하단다. 내가 몇가지만 팁을 알려달라고 했더니,  서부 아프리카 사람의 경우 피부색이 검고 일단 키가 무지하게 크단다. 알리도 187cm다. 현재 전 세계 63개국이 가입되어 있는 프랑스어권 국가연합(OIF)의 사무국장(머릿속으로 이렇게 번역이 되었는데 확실하지 않음)이 세네갈 사람이라는데 키가 2m가 넘는단다. 피부는 훨씬 더 검고. 알리도 내가 보기에는 상당히 검은 것 같은데 자기는 아무 것도 아니란다. 그리고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숲이 많은 곳에 사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있는데 이 사람들은 키가 아주 작단다. 피부도 덜 검고. 특히 숲이 많은 지역의 사람들은 인육 이외에는 아무거나 다 먹기 때문에 딱 봐도 강단이 좋단다. 진짜 그런가? 그리고 몇 가지 더 알려줬는데 그새 다 까먹었다.

전 국민 1000만명 중에 뽑혀 머나먼 아시아까지 온 알리와 난 무슨 인연으로 또 이렇게 만나 밥을 먹으면서 프랑스어를 공부하고 또 기니아라는 나라에 대해서 알게 되었는지. 시간이 흐를수록 인생이라는 게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 바빠 오래 수다를 떨 수는 없었는데 어쨌거나 아주 유익한 점심 시간이었다.

지도출처: http://www.uneca.org/aisi/nici/country_profiles/Guinea/guineab.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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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최대의 교역 중심지 악숨

3세기에 세상을 움직이는 4 제국이 있었으니 바로 로마, 중국, 페르시아, 그리고 오늘 이야기 하려는 악숨제국이다. 앞의 나라는 비교적 익숙하지만 마지막의 악숨은 생소할지도 모르겠다.

 

악숨(Axum) 9세기까지 홍해를 지배한 악숨제국의 수도로 당시 아프리카 최대의 교역중심지였고, 지금의 에티오피아에 똑같은 이름으로 남아 있다. 악숨의 오늘은 조금 초라한 모습이지만, 3,000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의 에티오피아의 수도로 찬란한 문화의 도시였다. 악숨은 1세기경부터 로마제국, 비잔틴제국과 어깨를 견주었, 홍해 연안을 중심으로 무역으로 번성할 수 있었.

 

에티오피아가 지금은 바다를 잃고 내륙국 신세로 전락했지만 4세기 에자나왕의 시대에는 누비아(현재의 수단 지역) 예멘까지 아우르는 대제국의 시대를 구가할 있었다. 사실을 증명하는 석비가 1980년대에 농민에 의해 발견되었다. 석비의 내용은 에자나왕이 시대에 사우디아라비아를 정복했던 일을 신에 감사한다는 것으로 그리스어, 아랍어, 기에즈어 3개국어로 씌어있다.

 

전설에 따르면 모세의 십계 석판이 들어 있는계약의 상자 악숨의 교회에 안치되어있다고 한다. 계약의 상자는 에티오피아 초대 왕인 메넬리크 1세가 이스라엘에서 가지고 왔다고 하는데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서 주인공이 찾고 있는 법궤이기도 하다

 

악숨의 세계문화유산오벨리스크

본래 고대 이집트에서 태양 신앙의 상징으로 세워진 기념탑인 오벨리스크가 에티오피아 악숨에도 있다. 에티오피아의 오벨리스크는 크기와 무게에 있어 이집트의 것을 능가한다. 악숨의 상징이기도 한 오벨리스크는 왕의 권력을 드러내기 위한 비석으로 악숨제국 만들어졌다. 형태는 단순하고 몸체 표면에 새겨진 문양들은 이집트의 것들과는 다르다. 악숨에는 규모가 대형 오벨리스크가 64, 중형 오벨리스크가 246, 그리고 작은 크기의 오벨리스크들이 산재해 있으며, 이 오벨리스크들은 1980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오벨리스크는 장의 화강암을 조각해 만들었고 지하에는 무덤이 있다. 오벨리스크 가장 것은 높이가 33m, 무게가 100톤에 이르는데 이탈리아 침략시기에 붕괴되어 동강으로 나뉘어 쓰러져 있다. 에티오피아에는 아직 이걸 세울 힘이 없어 보인다. 번째로 것은 높이 24m 무게가 60톤이 나가는 1937 무솔리니가 로마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며 코끼리 500마리를 동원해 빼앗아갔다. 그러나 오벨리스크는 약탈된 지 68년만인 2005년에 러시아산 안티노프 124 화물기에 실려 악숨으로 돌아왔다. 당초 그 해 가을부터 제자리를 찾는 공사를 시작한다는 발표가 있었는데 2006년 현재 터 파기 공사가 진행 중이다. 번째로 것은 높이 23미터로 시온의 마리아 교회 근처 광장에서도 보인다. 오벨리스크들은 지금의 자리에서 20km 정도 떨어진 산에서 돌을 가공하여 코끼리와 인력을 동원해 세웠다고 한다.

2007.10.30 서울신문 <에티오피아를 가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71030500001&s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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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9일부터 20일까지 이틀간 진행된 제9회 2007 아프리칸페스타에 다녀왔다. 이런 행사를 개최할 수 있는 일본이 참 부러웠었다. 도쿄 중심의 히비야 공원은 이틀간 온통 아프리카 천지였었다. 도쿄에 있는 아프리카 각국 대사관이 중심이 되어 매년 개최되고 있는데 다음은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에 게재된 올해 행사 개최결과 보고다.


アフリカン・フェスタ2007(概要)
2007 아프리칸 페스타(개요)
 
平成19年5月5月19日(土曜日)及び20日(日曜日)、外務省主催にて、日比谷公園で「アフリカン・フェスタ2007」が開催されたところ、概要以下のとおり(後援:駐日各国アフリカ大使館及び東京都、千代田区)。
2007년 5월 19일(토)부터 20일(일)까지 외무성 주최로 히비야공원에서 진행된 <아프리칸 페스타 2007>이 개최된 바 개요는 다음과 같다.(후원: 재일각국아프리카대사관 및 도쿄도, 치요다구)

 
1. 「アフリカン・フェスタ」は、アフリカに対する日本国内各層の幅広い理解と関心を深め、国民の間に広くアフリカへの親近感を醸成する目的で開催してきており、今年で9年目となる。本年は2日間で約78,800人が来場し、過去最高の入場者数を記録した(前年比約15%増)。
아프리칸 페스타는 아프리카에 관한 일본국내 각계각층의 이해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아프리카에 대한 친밀감을 형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최되고 있는데 올해가 제9회째. 올해는 이틀간 약 78,000명이 참가했는데 이는 역대 최고 기록.(작년 대비 15%증가)

2. 開会式では、目賀田周一郎アフリカ審議官が主催者を代表して挨拶を行ったほか、矢野哲朗参議院自民党国対委員長・日本アフリカ連合(AU)友好議員連盟副会長、在京アフリカ外交団長であるハンナシ在京チュニジア大使(在京アフリカ外交団長)、服部禮次郎アフリカ協会会長がそれぞれ挨拶を行った。
개회식에서는 현 아프리카 심의관이 주최자를 대표해 인사를 했고, 이하 이런저런 대표자들이 각자 준비한 나름대로의 인사를 또 했단다.

3. 主要行事として、
주요행사는

(1)西アフリカの伝統楽器コラの奏者であるジェリ・ムサ・ジャワラ氏をはじめとするアフリカの音楽家やダンス・グループによる公演、
서아프리카 전통악기 '코라'연주자인 제리 섬 자와라를 시작으로 아프리카 음악가, 댄스그룹의 공연.

(2)元NHKアナウンサー宮本隆治氏らの司会により、アフリカ理解プロジェクト代表の白鳥くるみ氏、青年海外協力隊OBの堀内信輔氏がアフリカでの自らの体験を分かり易く説明する「プロフェッショナルAfrica」、
전 NHK 아나운서인 宮本隆治 씨의 사회로 <아프리카 이해 프로젝트> 대표자 시라토리씨, JICA(역자주: 자이카, 한국의 국제협력단인 KOICA 모델) 전 멤버인 堀内씨가 아프리카에서 자신들이 겪은 내용들을 알기쉽게 설명해준 <프로페셔널 아프리카> 코너.

(3)テレビ・映画にて活躍中のアドゴニー・ロロ氏と外務省職員によるトークショー、
TV, 영화에서 활약중인 '아도고니 로로' 씨와 외무성 직원과의 토크쇼.

(4)在京アフリカ大使館によるアフリカ物産等の展示や観光紹介、
在도쿄아프리카 각국대사관이 진행하는 아프리카 특산품 전시 및 관광안내.

(5)NGOや青年海外協力隊員OB/OG等による草の根レベルでのアフリカ支援活動紹介、
NGO와 JICA 멤버들의 아프리카 지원활동 소개

(6)「レクチャー・コーナー」の他、アフリカの文化・楽器・衣装等に直接触れることができる、「ワークショップ・コーナー」、「ファッション・コーナー」が実施された。また、アドゴニー・ロロ氏はトークショーを行ったほか、会場を巡回し来場者と積極的に触れ合った。
강의 및 아프리카 문화, 악기, 전통의상 등을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는 워크숍, 패션 코너. 그리고 아도고니 로로 씨의 토크쇼와 대회장 여기저기에서의 직접 대화 코너.

4. 外務省はブースを設置し、政府開発援助(ODA)に関する我が国の取り組みを紹介するパネル展示や対アフリカ支援等に関する各種パンフレットの配布を行い、我が国の対アフリカ支援等に関する広報活動を行った。
외무성은 따로 부스를 설치해 ODA(공적개발원조)에 관한 일본 정부의 진행상황을 소개하는 전시와 각종 안내자료 배포 등을 통해 일본 정부의 대아프리카 지원에 관한 홍보활동을 전개했음.


*이날 엄청나게 많은 아프리카 관련 NGO 단체가 행사에 참여했는데 나도 즉석에서 <아프리카 이해 프로젝트>라는 NGO에서 앞으로 열심히 활동을 하기로 했다.

*토크쇼를 진행하기도 하고 행사장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즉석 대화 코너를 진행한 '아도고니 로로'(사진에서 얼굴이 제일 크게 나온 남자. 머리를 양쪽으로 묶은 포스터 사진이 얼굴 옆에 걸려있다.)라는 친구는 아프리카의 베넹이라는 나라에서 왔다. 처음에 중국에서 2년인가 3년간 학위 목적의 공부를 하다 운명처럼 일본과 조우해 지금은 일본과 아프리카의 교류를 위해 온 몸을 다바쳐 열심히 사는 친구다. 일본어는 거의 네이티브 수준에 5~6개국어가 가능한 것 같다. 나를 중국인으로 착각해 한참 중국어로 이야기 하다가 내가 한국인이라고 했더니 즉석에서 한국어로 농담을 하는 게 아닌가. 참나. 일본내에서는 아주 유명한 사람이었다.

*사진 속의 예쁜 아가씨는 우간다에서 왔다. 입고 있는 옷은 우간다 전통 의상.

*아줌마들이 단체로 있는 사진은 나라는 까먹었는데 그 나라 외교관 부인들이다. 음식을 직접 만들어 팔고 있었는데 장사에는 별로 신경을 안 쓰고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신나게 즉석 포퍼먼스를 벌이고 있는 중이다. 그 사람들을 보기만 하는데도 어느새 내 몸이 그들과 함께 리듬을 타며 흔들흔들 움직이고 있었다.

*한국을 그냥 뭉뚱그려 아시아라고 하면 우리도 기분 나빠하는 것처럼 가나, 에티오피아, 베넹, 이런 나라들을 통째로 아프리카라고 묶어 이야기하면 그들도 기분나빠 한다. 미국이나 유럽만 공부하지 말고 이제 아프리카도 공부하자. 2010년 월드컵은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열리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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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렌지와 현지인의 탁구경기.
삽시간에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 승부 없는 경기를 즐겼다. 에티오피아 곳곳에서 탁구를 치는 젊은이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 또한 중국의 영향으로 보인다.

세계 최빈국이라는 에티오피아에 와서 이런저런 경험을 아주 많이 한다. 길거리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내밀어 구걸을 하는 사람들에는 아직도 적응이 안됐지만 무조건 헬로우, 하고 뛰어와 손만 잡고 그냥 도망치는 어린 꼬마들에게는 이제 적응이 되었다. 그래서 헤이, 차이나, 하고 누군가가 부르면 손을 내밀 준비를 한다.

 

에티오피아 전체에 도로를 까는 일을 거의 중국인들이 하고 있기 때문에 대도시든 시골이든 현지인들은 아시아인을 보면 무조건 차이나, 라고 부른다. 챙이 있는 모자에 커다랗게 태극기를 달고 다녀도, 그리고 그 태극기 아래에 노란색으로 선명하게 KOREA라고 박아 넣었는데도 그냥 차이나, 라고 부른다. 돌아보던 말던 그냥 일단 불러놓고 본다. 에티오피아 전체에 한국인은 약 150여 명, 일본인은 약 130여 명 정도가 체류하고 있고 중국인은 수천을 헤아리고 있다. 직접 만난 중국인은 약 7천명 정도가 살고 있다고 하는데 정부기관 사람들에 의하면 그 이상이라고 한다.

 

중국인들은 에티오피아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전체에 워낙 많이 들어와 살고 있기 때문에 중국 문화가 곧 아시아 문화로 둔갑을 해서 한국인도, 일본인도, 중국 사람과 같은 문화를 가지고 있느냐는 질문들을 많이 한다. 적어도 아프리카에서는 현재 중국이 아시아 문화를 대표하고 있다.

 

질 낮은 중국산 제품이 에티오피아를 점령한 지는 아주 오래되었다. 그 덕분에 한국에서 온 물건들은 중소기업 제품도 명품 취급을 받는다. 도로를 깔아도 금방 갈라지고 패는 통에 신뢰를 할 수 없다는 얘기를 하면서도 중국이 가지는 가격경쟁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금도 에티오피아 곳곳에서 중국인들이 도로 포장공사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 업체로는 유일하게 경남기업이 에티오피아에 와서 지방도로를 공사 중인데, 역시나 명품으로 인정 받고 있다.

 

에티오피아를 구성하는 민족 중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암하라족들의 주거주지인 바하르다르(Bahar Dahr)라는 곳이 있다. 에티오피아 최대 담수호로 면적이 3,000㎢나 되는 타나 호수와 나일강의 원류인 블루 나일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이 곳에서 버스로 30분 정도 가면 머라위(Merawi)라는 곳이 나오는데 이곳에 사는 중국인들은 먹는 것을 자급자족하고 있다. 수도인 아디스아바바 이외의 장소에서는 배추를 구경할 수가 없다는데 이곳 머라위에 가면 중국인들이 농사지은 배추를 구경할 수 있다. 먹는 게 안 맞는다고 언제 본국으로 돌아갈지 모르는데 직접 농사를 짓는 중국 사람들이다.

 

일본은 체류 인구수는 한국에 밀리지만 머무는 장소 수에서는 한국을 압도한다.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아디스아바바와 같은 대도시가 아닌 지방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다. 우리나라 국제협력단(KOICA, 코이카)의 모델인 일본국제협력기구(JICA, 자이카)의 자원봉사자들이 시골 구석구석까지 파견이 되어 그들의 기술과 문화를 전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하르다르에서 만난 코이카 봉사단원의 말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안전을 이유로 현재 대도시 위주로 파견을 하고 있다고 한다. 머라위에 갔을 때, 그 시골 구석에서 자이카 봉사단원을 만나 좀 놀랐다. 한국은 아프리카 4~5개국에 봉사 단원을 파견하고 있는데 일본은 현재 아프리카 대부분의 나라에 자이카 봉사단원을 파견하고 있다. 메켈레에서 만난 일본 자이카 시니어 봉사단원에 따르면 현재 약 600여 명의 자이카 봉사단원이 아프리카 곳곳에 파견되어 있다고 한다. 보통 파견 기간이 2년이니까 임기 후에 이들은 파견 지역의 전문가가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지금 에티오피아를 여행하면서 단지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로 자이카 봉사단원들을 많이 만나고 있다. 동네에 파렌지(현지어로 외국인을 의미)가 나타나면 현지인들은 부탁하지 않아도 그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안내를 한다. 자이카 봉사단원들을 만나면서 자기가 머무는 곳에 자기가 먹을 농작물을 재배하는 중국이라는 나라보다도 지구촌 곳곳에 일본 문화의 메신저가 될 사람을 심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참 부러웠다. 6,7년째 벼룩과 빈대 천국인 이 곳에서 아프리카 전체도 아니고 에티오피아에 있는 그 무엇을 연구하고 있는 일본 연구자들을 만났을 때는 참으로 존경스러웠다. 우리는 미국이 몇 개의 주로 이루어졌는지 아는 사람은 많아도 아프리카 대륙에 몇 개의 나라가 있는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아직은 더 많지 않는가. (서울신문, 게재날짜 기억안남)

Posted by 윤오순
채널24: 에티오피아2007. 4. 14. 16:56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주변에 미국이 몇 개의 주로 이루어졌는지 물었을 때 답변을 못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심지어 뉴욕이 어디에 있고 플로리다가 어디에 있는지도 그들은 훤히 잘 알고 있었다. 그곳을 방문한 적이 없어도, 또 그곳에 친척이나 지인이 살고 있지 않아도 그들은 그렇게 미국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엔 아프리카에 몇 개의 나라가 있는지 물어 보았다. 토고와 가나가 아프리카에 있다는 사실을 이번 월드컵을 통해 알았다는 사람이 적지 않았고 정확하게 그 숫자를 알고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아프리카에는 가장 최근에 에티오피아에서 독립한 에리트리아를 포함해 53개의 나라가 있다.(모로코까지 포함하면 54개국이지만 모로코는 아직 AU(African Union)에 가입하지 않았다.) 이 지구상에 아프리카라는 대륙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데 우린 마치 그런 세상이 없는 것처럼 살고 있다. 심지어 개별 국가의 고유성을 무시하고 아프리카에 있는 한 나라를 아프리카라고 하는 단일개념으로 이해하려고까지 한다. 한국이라는 나라를 아시아에 내포된 개념으로 동일하게 이해할 수는 없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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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프리카의 중심 에티오피아

세계 지도를 펼쳐 놓고 아프리카를 찾아보면 북동쪽 근방에 뾰족한 뿔 모양을 한 대륙 에티오피아가 보인다. 에리트리아, 지부티, 수단, 케냐, 소말리아는 에티오피아의 이웃 나라이다. 이집트도 이곳에서 아주 가깝다. 아프리카에서 전혀 아프리카답지 않은 땅 에티오피아에 대해 소개하려다 서두가 길어졌다.

아프리카에 대해 무지한 것처럼 우린 에티오피아에 대해서도 그리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 맨발로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아베베의 나라, 세계 최빈국으로 UN이나 NGO단체의 지원이 없으면 살지 못하는 나라, HIV/AIDS 천국의 나라, 이 정도가 우리가 에티오피아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 전부가 아닐까 싶다.

 

80여 여개 종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

에티오피아는 대한민국의 5배 정도 되는 땅덩어리에 현재 약 77백여만 명이 살고 있다. 민족 구성은 오로모족, 암하라족, 티그레이족, 거라게족 등 약 80여 개의 종족으로 이루어진 다민족 국가이다. 현재 총리를 비롯해 정치적 실권을 잡고 있는 사람들은 전체 인구의 약 4~5%를 차지하고 있는 티그레이족이고 상권을 쥐고 있는 사람들은 전체 인구의 약 4%를 차지하고 있는 거라게족이다. 특히 거라게족은 악착같이 돈을 모으는 민족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길거리에서 구두를 닦는 어린 꼬마나 차가 섰을 때 쏜살같이 뛰어가 화장지 꾸러미를 파는 청년들은 대부분 이 거라게족이다.


수도인 아디스아바바는 에티오피아의 중심에 위치해 있고 평균 해발 고도가 2,300m 정도의 고지대로 약 350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Addis아디스’는 여기 말로 ‘New’를, Ababa아바바’는 ‘Flower’를 의미한다. 공식 언어는 영어와 암하릭(Amharic)어로 간판 등에 영어와 암하릭어를 병기하고 있지만 암하릭어를 알면 에티오피아에서의 생활이 아주 편해진다.


서울에서 출발해 홍콩이나 태국의 방콕을 경유해서 이곳에 올 수 있다. 유럽에서 올 경우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하고 아프리카 항공을 이용할 경우 남아프리카공화국이나 케냐 등을 경유한다. 두바이 공항에서는 약 네 시간만 비행하면 아디스아바바에 도착한다. 역사가 60년이 넘는 에티오피아 에어라인이 한국에 취항하지 않는 관계로 에티오피아 땅을 밟으려면 아직까지는 몇 나라를 거치거나 공항에서 하릴없이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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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 때 지상군을 파견한 아프리카 유일의 나라

에티오피아는 한국전쟁 당시 아프리카에서는 유일하게 6천여명의 지상군을 파견한 나라이다. ‘칵뉴부대’라고 불리던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은 황제의 근위병들로 단 한명의 포로도 없이 전장에서 용감하게 싸웠으며, 전쟁이 끝난 후 잔류 부대원들은 DMZ근방에 고아원을 만들어 당시 전쟁고아들을 돌보기까지 했다. 지금은 우리가 국제협력단의 봉사단원 파견을 비롯해 정부차원에서 혹은 각 종 NGO 및 선교단체들이 에티오피아를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고 있지만 불과 50여 년 전에 에티오피아가 우리를 도와주던 시절이 있었다. 현재 한국에 참전용사후원회가 있어 아디스아바바에 참전용사회관을 건립하는 등 한국과 에티오피아와의 인연의 끈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1년은 13개월, 올해는 1999

아프리카 대부분의 나라가 영국이나 프랑스로부터의 오랜 식민지 경험이 있는 것에 반해 에티오피아는 이탈리아에 잠깐 점령당한 것 이외에는 식민지 경험이 없어 아프리카에서는 유일하게 고유의 문자를 사용하고 있다. 공식 언어로도 사용되는 암하릭어는 표음문자로 33자의 자음과 7자의 모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게다가 우리가 사용하는 보편적인 서역 Gregorian을 사용하지 않고 Julian Solar 캘린더를 사용하고 있어 에티오피아역으로 계산하면 1년이 12개월이 아니라 13개월이 된다. 한 달을 30일씩 계산하니까 남은 5일 혹은 6일이 이들에겐 13월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따지다 보니 우리의 신년이 에티오피아에서는 1 1일이 아니라 9 11일이 된다. 그래서 모든 에티오피아의 달력은 1월부터가 아니라 9월부터 시작한다. 물론 올해도 이곳은 2006년이 아니라 1999년이다. 전 세계 모든 나라가 다 치룬 밀레니엄을 이들은 지금부터 준비하고 있다.

 

고대 기독교 문명의 보고

아프리카 대부분의 나라는 고유의 토착종교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슬람교도 북아프리카 정도까지만 포교가 되었다는 아프리카에 수백년동안 번성했던 기독교 왕국이 있었으니 그곳이 바로 에티오피아이다. 교리상의 차이로 서구 기독교 문화와는 단절된 에티오피아만의 독특한 기독교 문화를 형성해 왔는데 현재 약 50%정도가 에티오피아 정교회 신자이고 이를 바짝 뒤쫓는 게 이슬람교 신자이다. 전설에 따르면 에티오피아 최초의 왕조인 악숨(Axum) 왕조는 이스라엘의 솔로몬 왕과 시바여왕의 후손이라고 한다. 이들 사이에 태어난 메넬릭(Menelik) 1세가 에티오피아의 초대 황제라고 한다. Lalibela 교회(거대한 돌 하나를 통째로 깎아 만든 교회)를 비롯해 악숨 오벨리스크, 곤다르(Gondar) 등 에티오피아 곳곳에는 기독교 문화유산을 비롯해 지난날의 번성을 짐작케 하는 문명의 보고들이 많이 남아 있고 이들 중 대부분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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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Paul Zizka


커피와 인류문명의 발상지

커피의 발상지가 어디인지 아는가. 그렇다. 에티오피아이다. 에티오피아를 설명할 때 이 커피를 빼놓을 수가 없는데 수출량의 대부분도 이 커피가 차지하고 있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커피를 ‘분나’라고 하며, 독특한 의식을 통해 커피를 마신다. 이를 ‘커피 세레모니’라고 하는데 에티오피아에서는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호텔이나 커피 전문점에서 전통적인 방식의 커피 세레모니를 만날 수 있다. 생두를 직접 볶아 이것을 절구에 곱게 빻은 후 이 가루로 커피를 만드는데, 우리가 마시는 커피는 에스프레소처럼 작은 잔에 담아 나온다. 향은 물론이고 색깔이나 그 맛이 아주 진하다. 여기에 홍차를 섞어 마시기도 한다.
 

한편, 에티오피아의 국립박물관에 가면 그들이 자랑하는 ‘루시’를 만날 수 있다. 에티오피아가 인류문명의 발상지라고 주장하는 것도 이 ‘루시’ 때문인데, 박물관 지하 한 켠에 350만년전 인류화석인 ‘루시’의 뼈 조각들을 전시해 놓고 있다. 이 화석은 현재도 조사 중이며, 지금까지 발견된 그 어떤 인류화석 보다 앞선 것이라고 한다.

이 밖에 에티오피아가 처음이라고 자랑하는 게 또 하나 있는데 바로 ‘블루 나일’이라는 것이다. 블루 나일은 이집트 나일강의 발원지이다. 화이트 나일의 발원지는 우간다의 그린 힐이고, 블루 나일은 이곳 에티오피아의 하이랜드가 그 원류이다. 아디스아바바에서 갈 경우 자동차로는 이틀을 잡아야 하고 비행기로는 45분이면 블루 나일에 도착한다. 처음 보는 사람은 그 장엄한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 한다.

 

아프리카의 허브 에티오피아

그간 우리가 알고 있는 미디어란 미디어는 온통 에티오피아의 가난과 기근밖에 보여 준 적이 없어서 비행기가 착륙할 공항이나 있을까 하는 심정으로 이곳에 왔다. 그러나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었다. 문명이란 잣대로 봤을 때는 우리 보다 조금 늦은 곳이고 환경이란 측면에서 바라봤을 때 이곳은 아직 자연과 많이 가까운 곳이다.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 나라가 얼마나 매력적인가 알 수 있을 텐데도 우리가 아프리카에 대해 무지한 것처럼 에티오피아라는 나라에 대해서도 그간 무관심으로 일관한 면이 없지 않다.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는 아프리카의 제네바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뉴욕, 브뤼셀, 제네바에 이어 세계에서 4번째로 외교공관이 많다. 한국에서는 자주 접하기 힘든 나라를 비롯해 100여개가 넘는 대사관들이 이곳에 터를 잡고 있다. AU(African Union), UNECA(UN Economic commission for africa) 등 주요 국제기구가 이곳에 본부를 두고 있다.
2006년 한국의 대통령은 에티오피아를 외면했지만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과 일본의 고이즈미 전 총리가 차례로 이곳을 다녀갔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소말리아와 에리트리아와의 불안한 관계가 지속되고 있지만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의 허브로서 여전히 그 존재가치를 무시할 수 없는 곳이다.

(월간 '문화공간' 2006년 11월호-세종문화회관 발간)

Posted by 윤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