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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2, 에티오피아가 드디어 새천년을 맞이했다. 매년 9 11일은 에티오피아의 설날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4년에 한번씩 2 29일이 찾아오듯이 4년에 한번씩 에티오피아의 설날은 9 12일이 된다. 미디어에서 에티오피아의 밀레니엄을 9 11, 혹은 9 12일 들쭉날쭉 소개하고 있는데 이런 혼란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올해는 9 12일이 설날이라서 본격적인 새천년 맞이 행사는 오늘부터 시작된다.

 

에티오피아는 국민 절반이 에티오피아 정교회를 믿고 있다. 정교회 신자들은 수요일과 금요일에 금식을 하는데, 이 날 생선은 먹어도 육류는 절대 안 먹는다. 여행 중 정교회 신자들이 운영하는 식당에 가면 육류가 들어간 음식을 주문할 수 없는 이유다. 대개 설날에는 양을 잡아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 잔치를 벌인다. 그러나 올해는 그만 설날이 수요일인 바람에 정교회 신자들은 양을 잡을 수가 없게 되어 천 년에 한번 맞이하는 설날이 참 쓸쓸하게 되었다.

 

한편, 에티오피아의 국민 절반은 이슬람교 신자들이다. 무슬림들에게 아주 큰 행사인 라마단은 보통 설날이 한참 지난 후 찾아오는 데 올해는 공교롭게 9 13일 목요일부터 시작된다. 물론 무슬림들은 수요일과 금요일에 금식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라마단이 시작되면 금식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 전날에는 대부분 양을 잡는다. 올해는 정교회 신자들이 양을 잡고 싶어도 잡지 못하는 수요일, 즉 밀레니엄이 시작되는 날 에티오피아의 무슬림들은 양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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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특수를 노리고 있는 에티오피아 정부 차원에서 이런 복잡한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서인지 멜레스 제나위 에티오피아 총리는 이례적으로 이번 주 수요일, 목요일, 그리고 금요일을 모두 공휴일로 선포했다. BBC에서는 밀레니엄을 맞이하는 현지 분위기가 썰렁하다고 보도했는데 주에티오피아 한국대사관 관계자에 따르면 늘 맞이하는 설날과는 분위기가 확실히 다르다고 전했다. 외국인 입장에서는 수요일에는 무슬림 친구 집을, 목요일에는 에티오피아 정교회 신자 친구 집을 찾아가면 양고기 포식을 할 수 있겠다.

 

일본에서는 9 9일 일요일에 자이카 글로벌 프라자에서 에티오피아 밀레니엄 기념 행사를 가졌다. 에티오피아인은 물론 에티오피아 연구자들, 30년 전에 자이카(일본국제협력기구) 자원봉사자로 에티오피아에 파견된 사람들까지 에티오피아와 조금이라도 인연이 있는 사람들은 전부 모인 것 같았다. 주일에티오피아대사인 Abdirashid Dulane도 에티오피아 전통 의상으로 성장을 하고 이 행사에 참여했다. 그는 에티오피아의 매력에 대해 30분 정도 직접 프리젠테이션도 하고 행사 마지막에는 참가자들과 함께 전통 춤을 추기도 했다.

 

행사를 기념하기 위해 에티오피아에서 장미 수 천송이가 공수되어 왔다. 에티오피아의 장미는 일반 장미보다 줄기가 튼튼하고, 꽃송이의 볼륨이 컸으며, 색깔이 무척이나 화려했다. 에티오피아 하면 커피가 유명하지만 꽃과 가죽제품도 주요 수출품목에 포함되어 있다. 행사가 끝난 후 돌아가는 사람들 손에는 저마다 부담스럽게 꽃송이가 큰 에티오피아산 장미다발이 들려있었다. 에티오피아산 레드 와인인 구다르(GOUDER)와 악수마이트(AXUMIT)도 자리를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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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를 구성하는 80여개의 소수민족 중 구라게 그룹이 있다. 가장 부지런한 민족으로 알려졌는데 에티오피아의 상권 대부분을 이 사람들이 장악하고 있다. 이 그룹의 전통 춤 스탭이 일본 토쿠시마(德島)의 전통 춤인 아와오도리(阿波踊)와 많이 닮았다. 행사 마지막 부분에는 토쿠시마의 아와오도리 팀이 참가해 일본 사람들은 구라게 그룹의 춤을 배우고,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토쿠시마의 아와오도리를 배우는 시간이 있었다. 피부색도 다르고 말도 다른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춤을 추면서 이날의 분위기는 최고조에 이르렀다.

 

과거 일본이 이탈리아와 손 잡으면서 에티오피아와의 관계가 불편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일본은 아프리카의 그 어떤 나라보다도 에티오피아와 가까운 나라로 보인다. 현재 AU(African Union, 아프리카 연합)는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 아바바에 본부를 두고 있다. 아프리카 53개 나라의 표 관리를 잘 하려면 에티오피아라는 나라를 홀대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신문 2007.9.12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70912500006&spage=1

Posted by 윤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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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일본어로 '히라메'라고 하는 광어를 대규모로 양식하는 다케오(竹尾)씨를 만났다. 양식장에 가서 청소도 좀 해주고 사는 이야기나 들어야지 했는데 이 분 에너지가 장난이 아니었다. 시청 직원들이 단단히 마음 먹고 가라고 하길래 뭐, 그런가 보다 그랬는데 아주 쉴 틈이 없다.

츠쿠미 출신의 여자 연예인을 좋아한다는데 온 벽에 도배가 되어 있었다. 1년 열두달 일을 하느라 휴가를 못 내는데 얼마 전 삿뽀로에서 그 여자 연예인의 공연이 있어서 열일 제치고 다녀왔단다. 핸드폰의 배경화면에 그 여자 연예인과 나란히 찍은 사진이 있었다.

광어 먹이도 주고 바닥 청소까지 해준 댓가(?)로 점심은 광어회와 전갱이 구이, 이름도 모르는 조개, 소라 구이가 한상 차려져 나왔다. 다른 것도 다 맛있었지만 전갱이 구이가 그렇게 맛있는 음식인 줄 몰랐다. 이유는 바닷물이 맑아서란다. 세상에 제일 바보가 광어를 앞에 두고 맥주를 안 먹는 사람이라고 해서 아사히 한 캔을 반주로 곁들였다. 그러면서 광어를 앞에 두고 소주가 아니라 맥주를 마시는 사람이 바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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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츠쿠미 여성단체 회원들을 만나서 화천 산천어축제 소개도 하고  지역 발전을 위한 여성의 역할에 대해 아주 쬐금 이야기했다. 이런 걸 하면 어떨까요, 하는 제안들을 해서 그건 좋고요, 그건 이래서 문제고요, 아, 그건 정말 좋은 아이디어네요, 하면서 맞장구를 쳐줬다.

미팅이 끝난 후에는 츠쿠미에서 차로 1시간을 달려야 하는 벳부로 향했다. 벳부는 온천 휴양지로 한국에 많이 알려진 곳인데 역시나 한국 관광객이 많았다. 이 곳에서 고토 사요코(後藤 佐代子)씨를 만났다. 오전의 다케오 씨 못지 않게 에너지가 넘치는 분이었다.

고토 씨는 우리 나라 공무원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일촌일품' 운동 관계자다. 일촌일품 운동은 일본판 새마을 운동으로 오오이타현이 그 발상지이다. 오오이타현의 오오야마(大山)라는 곳에서 그 기운이 태동하고 있었는데 1979년에 부임한 히라마츠 모리히코(平松 守彦) 지사가 제창하면서 지역혁신 운동으로 일본에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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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마츠 전(前)지사는 퇴임해 현재 도쿄에 살고 있다. 고토 씨는 현청에서 과장까지 근무하다 퇴직했고, 현재는 NPO법인 오오이타 인재육성/지역문화교류협회를 만들어 국제협력부장 일을 하고 있다. 전세계 안다닌 곳이 없다는 데 내가 보기에도 오오이타는 그녀에게 좁아 보였다.

고토 씨는 부인회('부인회'라고 하니까 좀 웃긴데 '여성단체'로 끌어안을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데 참고가 많이 되었다. 예정은 1시간이었는데 인터뷰하는 데 거의 3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 멀리서 왔다고 계속 이야기를 끊지 않는 통에 결국 내가 먼저 자리를 터는 시늉을 했다.

학위 논문에서 일촌일품 운동을 좀 써먹어 볼까 궁리 중인데 아직 이거다 싶은 건 발견을 못했다. 현재 일본 정부는 JETRO(일본무역진흥기구), JICA(일본국제협력기구)등과 손을 잡고 일촌일품 운동을 아프리카에 전수하기 위해 조용히 움직이고 있다. 아프리카의 말라위에 사무소가 하나 있고 우간다와 가나에 전문가를 파견해 조사를 마친 바 있다.

참고자료: http://www.meti.go.jp/english/information/data/OVOP.html
Posted by 윤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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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렌지와 현지인의 탁구경기.
삽시간에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 승부 없는 경기를 즐겼다. 에티오피아 곳곳에서 탁구를 치는 젊은이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 또한 중국의 영향으로 보인다.

세계 최빈국이라는 에티오피아에 와서 이런저런 경험을 아주 많이 한다. 길거리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내밀어 구걸을 하는 사람들에는 아직도 적응이 안됐지만 무조건 헬로우, 하고 뛰어와 손만 잡고 그냥 도망치는 어린 꼬마들에게는 이제 적응이 되었다. 그래서 헤이, 차이나, 하고 누군가가 부르면 손을 내밀 준비를 한다.

 

에티오피아 전체에 도로를 까는 일을 거의 중국인들이 하고 있기 때문에 대도시든 시골이든 현지인들은 아시아인을 보면 무조건 차이나, 라고 부른다. 챙이 있는 모자에 커다랗게 태극기를 달고 다녀도, 그리고 그 태극기 아래에 노란색으로 선명하게 KOREA라고 박아 넣었는데도 그냥 차이나, 라고 부른다. 돌아보던 말던 그냥 일단 불러놓고 본다. 에티오피아 전체에 한국인은 약 150여 명, 일본인은 약 130여 명 정도가 체류하고 있고 중국인은 수천을 헤아리고 있다. 직접 만난 중국인은 약 7천명 정도가 살고 있다고 하는데 정부기관 사람들에 의하면 그 이상이라고 한다.

 

중국인들은 에티오피아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전체에 워낙 많이 들어와 살고 있기 때문에 중국 문화가 곧 아시아 문화로 둔갑을 해서 한국인도, 일본인도, 중국 사람과 같은 문화를 가지고 있느냐는 질문들을 많이 한다. 적어도 아프리카에서는 현재 중국이 아시아 문화를 대표하고 있다.

 

질 낮은 중국산 제품이 에티오피아를 점령한 지는 아주 오래되었다. 그 덕분에 한국에서 온 물건들은 중소기업 제품도 명품 취급을 받는다. 도로를 깔아도 금방 갈라지고 패는 통에 신뢰를 할 수 없다는 얘기를 하면서도 중국이 가지는 가격경쟁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금도 에티오피아 곳곳에서 중국인들이 도로 포장공사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 업체로는 유일하게 경남기업이 에티오피아에 와서 지방도로를 공사 중인데, 역시나 명품으로 인정 받고 있다.

 

에티오피아를 구성하는 민족 중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암하라족들의 주거주지인 바하르다르(Bahar Dahr)라는 곳이 있다. 에티오피아 최대 담수호로 면적이 3,000㎢나 되는 타나 호수와 나일강의 원류인 블루 나일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이 곳에서 버스로 30분 정도 가면 머라위(Merawi)라는 곳이 나오는데 이곳에 사는 중국인들은 먹는 것을 자급자족하고 있다. 수도인 아디스아바바 이외의 장소에서는 배추를 구경할 수가 없다는데 이곳 머라위에 가면 중국인들이 농사지은 배추를 구경할 수 있다. 먹는 게 안 맞는다고 언제 본국으로 돌아갈지 모르는데 직접 농사를 짓는 중국 사람들이다.

 

일본은 체류 인구수는 한국에 밀리지만 머무는 장소 수에서는 한국을 압도한다.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아디스아바바와 같은 대도시가 아닌 지방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다. 우리나라 국제협력단(KOICA, 코이카)의 모델인 일본국제협력기구(JICA, 자이카)의 자원봉사자들이 시골 구석구석까지 파견이 되어 그들의 기술과 문화를 전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하르다르에서 만난 코이카 봉사단원의 말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안전을 이유로 현재 대도시 위주로 파견을 하고 있다고 한다. 머라위에 갔을 때, 그 시골 구석에서 자이카 봉사단원을 만나 좀 놀랐다. 한국은 아프리카 4~5개국에 봉사 단원을 파견하고 있는데 일본은 현재 아프리카 대부분의 나라에 자이카 봉사단원을 파견하고 있다. 메켈레에서 만난 일본 자이카 시니어 봉사단원에 따르면 현재 약 600여 명의 자이카 봉사단원이 아프리카 곳곳에 파견되어 있다고 한다. 보통 파견 기간이 2년이니까 임기 후에 이들은 파견 지역의 전문가가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지금 에티오피아를 여행하면서 단지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로 자이카 봉사단원들을 많이 만나고 있다. 동네에 파렌지(현지어로 외국인을 의미)가 나타나면 현지인들은 부탁하지 않아도 그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안내를 한다. 자이카 봉사단원들을 만나면서 자기가 머무는 곳에 자기가 먹을 농작물을 재배하는 중국이라는 나라보다도 지구촌 곳곳에 일본 문화의 메신저가 될 사람을 심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참 부러웠다. 6,7년째 벼룩과 빈대 천국인 이 곳에서 아프리카 전체도 아니고 에티오피아에 있는 그 무엇을 연구하고 있는 일본 연구자들을 만났을 때는 참으로 존경스러웠다. 우리는 미국이 몇 개의 주로 이루어졌는지 아는 사람은 많아도 아프리카 대륙에 몇 개의 나라가 있는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아직은 더 많지 않는가. (서울신문, 게재날짜 기억안남)

Posted by 윤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