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이랑 가볍게 차 한잔을 하고 일어서려는데 그리스 친구가 내게 묻는다. 한국문화 관련 된 책에서 보니 기독교인 비율이 25% 정도에 불교를 믿는 사람들도 비슷한 수준으로 (두 종교 모두 30% 이상 되지 않나? 내가 직접 안 찾아봐서 정말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인구 절반 이상이 종교를 가지고 있는 데다 여자들은 굉장히 보수적이라고 들었는데 K-POP의 주인공들은 한국인이 맞느냐고... 왜 다 얼굴이 똑같고, 보여주지 못해 안달을 하느냐고 하는 데 할 말이 없었다. 옆에 있던 홍콩 친구는 자기 얼굴과 가슴 쪽을 두손으로 과장해 훑어 주면서 한국은 성형수술 세계 1위 국가라 그렇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자기가 아는 한국 여자들은 전혀 보수적이지 않고, 스킨십도 자유롭고, 잠자는 것도 자유로워 처음에 당황했다고 그랬다. 난 아직도 소녀시대와 원더걸스를 구분 못하는데 그 친구들은 애들 이름까지 다 알고 있어 좀 놀랍기도 했다. 안녕하세요, 사랑해요, 뭐 이런 말들은 깨끗한 발음으로 아주 쉽게 했다. 유튜브에 다 있단다. 걸그룹의 무대위 모습에서 한국의 군대문화가 보인다고 하는데 그건 한번 찾아봐야겠다. 둘 다, 한국 정부는 그게 무슨 자랑스러운 문화라고 홍보를 도와주느냐며 주변 아시아 국가에서 그런 식으로 자국문화를 홍보하는 나라는 처음 봤다고도 그러는데 한류의 부정적인 모습을 보는 것 같아 혼자 부끄러웠다.
연구실의 내 뒷자리에 앉아 있던 영국학생이 내게 처음 했던 질문이, 그것도 몇달만에, 너네 나라 사람들은 중국어로 의사소통을 하느냐, 였다. 무식한 인간 같으니라고. 우리가 남아시아 너머에 있는 나라들에 별로 관심이 없듯 사실 영국 사람들도 인도 너머의 나라들에 별로 관심이 없다. 따지고 보면 우리도 그루지아 사람들이 그루지아 말을 쓰는 지 러시아 말을 쓰는 지 잘 모르지 않나. 그래도 무식한 건 무식한 거지만. 싸이 덕분에 한국인이 중국어가 아닌 한국어를 사용한다는 게 많이 알려졌을 것이다. 좋아하는 가수와 연락하기 위해, 그 가수의 노래를 따라 부르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이 많다고 들었다. 분명 한류의 긍정적인 모습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서경덕 교수는 왜 또 비빔밥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알려서 외국인들이 비빔밥이 한국문화라고 알면 좋을 건 또 뭔가. 사람들이 비빔밥을 좋아해 이나라저나라에 비빔밥 집이 생기면 우리가 로열티를 받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런 일에 에너지를 쏟는 지 원. 그렇게 홍보하고는 꼭 한국매체에 홍보를 다시 하는 이유를 난 잘 모르겠다. 어차피 쓸 돈도 있고, 홍보도 할 계획이라면 광고효과에 대해서도 생각했으면 좋겠다. 무턱대고 한 방향으로 쏟아낸다고 홍보가 되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긍정적인 효과만 나타나는 건 아니지 않는가. 많은 세계지도들이 여전히 Sea of Japan 아래 Sea of China (황해쪽)를 표기하고 있는데 왜 굳이 Sea of Korea도 아닌 East Sea 표기에만 목을 매는지도 잘 모르겠고. 그런 지도 볼 때마다 바다도 없는 대한민국이 불쌍하긴 하다. 어쨌거나 좋은 일 한다고 광고도 몰아주고, 훌륭한 사람인 것처럼 무조건 포장해주고, 뭘 좀 잘못해도 무조건 칭찬해주고 하는 것도 못마땅하다. 민간차원에서 하는 일이라도 잘못된 건 말려야 할 판에 정부도 이 운동에 밥숟가락을 얹을 거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벌써 얹었는 지도 모르겠다.
한국에 있을 때 이주노동자들에게 매주 일요일 한국어를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몇년 한 적이 있다. 그때 알았다. 그렇게 우리나라에 온 사람들이 그 나라에서는 아주 엘리트 계층이라는 사실을. 당연하지 않나. 인터넷도 안되고, 정보접근도 쉽지 않은 나라에서 먼 나라까지 올 수 있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일까는...밥벌이랑 연관되니 절실한 이유도 있겠지만 머리가 좋아 말도 금방 배운다. 오히려 영어 가르치러 한국에 와서 몇년씩 체류하는 영미권 사람들이 한국어를 더 못한다. 알아서 통역도 해주고, 이래저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채널이 많아서겠지만. 금발에 백인이라면 국적불문, 배경불문하고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친절해지는지 다들 알지 않나.
이야기가 좀 산만해지긴 했는데 결론은, 내가 한국문화홍보 관련 일을 해야한다면 난 뉴욕의 타임스퀘어 광고판이나 K-POP의 해외마케팅 도와주는 일 등에 절대 돈이나 에너지를 쓸 생각이 없고, 이주노동자들의 권익신장에 더 힘을 쏟을 것 같다. 한국에서 유람을 한 게 아니라 정말 생활을 했던 이 사람들이 돌아가서 한국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가슴 뜨끔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공장에서 제대로 대우도 못 받고 팔 잘리고, 다리 잘리고 그 나라에 돌아가서 한국이란 나라에 대해 과연 어떻게 이야기를 할까? 한국에서 일하는 누이가 보내 준 삼성 카메라, 엘지 핸드폰 만지작거리며, 한국은 어떤 나라야, 라고 분명 물어볼 텐데 말이다. 한국 사람들은 비빔밥을 먹어, 이거 완전 코메디 아닌가. 왜 우린 여전히 잘 사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한테는 기도 제대로 못 펴면서, 우리보다 경제수준이 떨어지는 나라에서 온 나라 사람들은 제대로 대접을 안 해주는 지 잘 모르겠다. 몽고에서 대학교수하던 분이 한국의 남대문시장에서 옷장사를 하면서 겪은 일에 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마치 내가 그런 것도 아닌데도 그 분이 겪은 부당한 처우에 몹시 부끄러웠다. 그 사람이 살았던 나라가 가난한 거고, 그 나라가 가난한 게 그 사람의 죄는 아니지 않나.
대선 이후 한국포털도 아예 안들어가고, 뉴스도 읽지 않는데 이러다 5년 후에는 한국에 대한 관심이 뚝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면서도 위에 언급한 내용들이 들리면 여전히 솔깃해진다. 한국 소식으로 우울한 날 난 주로 한국이 배출한 넘사벽들 - 세리공주, 유나퀸, 빅토르 안 등등 - 의 황홀한 포퍼먼스를 좀 오래 감상하곤 한다. 오늘도 그래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