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로루시'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8.04.13 새학기 기념 포스팅 3
  2. 2007.06.11 2007년 5월 나가사키(3) 2
  3. 2007.06.09 2007년 5월 나가사키 (2) 4


여러분 잘 지내셨어요? 겨울잠이 좀 길었습니다. 봄 방학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게 흘러갔고 어느새 새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작년에 오자마자 아는 사람도 없는 이곳이 참 낯설었는데 올해는 아주 씩씩하게 4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4월 초에는 다들 벚꽃놀이를 하는 분위기인데 바빠서 사쿠라 사진 한장 제대로 못 찍어 그건 아쉽네요. 학교는 수업 신청하느라 요즘 아주 부산해요. 듣고 싶은 강의라고 다 듣는 게 아니라 경쟁을 통과해야 들을 수 있는 강의가 있어 그럴싸하게 신청서 쓰느라 머리 좀 아팠습니다. 영상정보 처리 관련 수업이 1년간 개설이 되는데 소수정예라 경쟁이 아주 치열했죠. 결국 듣게 되었습니다. 영상 편집 스킬을 배울 수 있는 수업인데 아주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작품 만들면 여기에도 공개하죠.

올해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논문을 써야해서 더 바빠질 것 같습니다. 수업시간에 교수가 뭘 좀 하라는데 다들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어 제가 하겠다고 손을 번쩍 들었죠. 별로 시간도 안 걸리는 단순한 일인데 일본 애들도 참. 그런데 교수님이 윤상은 올해 논문 써야 하니까 거기에만 집중하라면서 벌써부터 스트레스를 살짝살짝 주시네요. 제가 문어발처럼 일을 깔아놓고 하는 걸 아시면 아마 펄쩍 뛰시겠죠.

기숙사에는 새로운 학생들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아프리카 학생도 4명이나 입주를 했는데, 제 프랑스어 선생님인 기니아 학생도 입주에 성공했습니다. 기니아 이외에 세네갈, 가나, 말리에서 온 학생들이 제 이웃이 되었습니다. 말리나 세네갈은 프랑스어권인데 다들 영어를 어찌나 잘하는지 놀랐습니다. 기니아에서 온 친구는 작년에 만났을 때 영어를 전혀 못했었는데 그새 배웠는지 대화에 무리가 없더군요.

그리고 작년 5월 나가사키에 갔을 때 만났던 벨로루시 학생이 쥐도새도 모르게 시험을 쳐 합격한 데다 기숙사 입주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아직 바빠서 못 만났는데 조만간 만나 저는 아시히에서 나온 프리미엄 맥주를, 그 친구는 기린 맥주를 마시기로 했습니다. 바레인에서 온, 일명 아라비아 왕자가 아랍어를 가르쳐 준다고 해서 매주 일요일 한시간씩 아랍어를 배우기로 했습니다. 에티오피아 공용어인 암하릭어에는 아라비어에서 온 단어들이 무우척이나 많아요. 3개월 속성, 뭐 이런 식으로 언어를 배우는 게 아니라서 천천히 문자 배우고, 기초 문법 배우고, 그러기로 했습니다. 이제 러시아어권 말고는 여행가서 굶어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저녁 초대를 받아서 이제 나가봐야 합니다.
여러분도 즐겁고 유익한 저녁 시간 보내세요.



Posted by 윤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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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회관 벽에 걸린 마리아 상이다. 아, 지극히 일본스럽지않은가. 무라사키시키부가 쓴 <겐지모노가타리>에 나오는 그림들이랑 아주 닮았다.


나가사키를 떠나오던 날 세 명의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첫번째 친구
짐을 다 꾸린 후 유스호스텔 식당으로 아침을 먹으러 갔다. 그 많은 자리를 놔두고 아주머니 한 분이 내 옆에 앉는 게 아닌가. 그리고는 계속 이것저것 묻는데 일본에 와서 참 낯선 경험이었다. 좀처럼 남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 일본 사람들이지 않는가. 가족이 다 있는데 주말에는 이렇게 혼자 산으로 들로, 때로는 좋은 온천을 찾아 여행을 한단다. 나이는 한 50대 정도. 그동안 여기저기 여행하면서 한국의 50대 아주머니가 호텔이 아닌 유스호스텔에 묵으면서 혼자 여행을 다니는 경우를 아직 못 만나서 이 아주머니가 하는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좀 끌렸다. 감성이 여전히 살아있었다. 호기심 천국에 사는 소녀처럼 이것저것 묻는 게 처음엔 어색했는데 나중엔 나도 여유를 부려가며 이렇게저렇게 대답해줬다. 우린 서로 약속하지 않았지만 천천히 보조를 맞추며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아무도 서두르지 않았고 커피까지 다 마신 후 헤어졌다. 느낌이 아주 좋았다.

두번째 친구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맡기고 평화공원 구역(나가사키 시내 여행은 동선을 고려했을 때 크게 두 구역으로 나눠 볼 수 있는데 하나가 나가사키역을 중심으로 하는 구역과 또 하나가 바로 평화공원 구역이다.) 쪽으로 방향을 잡아 나가려는데 한 일본인 친구가 말을 건다. 거참 아침부터 이상하네. 도쿄 근처의 가마쿠라에 살며 현재는 오하이오주립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는 학생이란다. 애들이 자꾸 일본에 대해 묻는 경우가 많아 방학을 맞아 본격적으로 여행을 하는 중이란다. 배낭을 딱 보니 두 서너달 짜리 여행자 같았다. 일본에서 대학을 다 떨어져 실의에 젖어 있다가 혼자 영어공부를 해서 대학에 붙었다며 그 부분을 아주 자랑스러워했다. 내가 봐도 그건 기특하네.
 
일본이 선진국이긴 한데 여러가지로 미국의 안 좋은 부분을 닮아가는 게 안타깝단다. 그건 나도 동감하는 바야. 약속한 건 아니었지만 이 친구와 평화공원 구역에 있는 여러 관광지를 같이 여행했다. 원폭자료관에 가서는 부탁하지 않았는데 이런저런 설명까지 곁들여줬다. 외국에 가서 현지인을 만나면 무조건 칭찬일색으로 가자, 가 내 신조였는데 이 친구랑 원폭자료관에 가서는 나도 모르게 일본에 대해 힐난을 해버렸다. 이 친구가 무슨 죄가 있다고. 원폭 자료관이랑 이런 저런 기념관에 갔는데 이런, 온통 주위에 '평화' 밖에 없는 거였다. 왜 일본이 원폭참사의 피해국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고 평화가 소중하다는 이야기 밖에 없는 거라. 그 친구도 동감은 한다는데 지금 생각하면 조금 미안하기도 하다. 또 다른 기념관에 갔다가 사람이 너무 많아 아쉽게도 이 친구와 헤어지고 말았다. 아직도 여행중일까. 아니면 미국으로 돌아갔을까. 이 친구는 나가사키에 대해 어떤 기억을 가지고 돌아갔을까. 교토에서 무려 12시간이나 버스를 타고 나가사키에 왔다고 했는데...

세번째 친구
평화공원 구역 여행을 끝내고 점심은 나가사키역 쯤에서 먹어야지 하고 카톨릭 회관에다 맡긴 짐을 찾는데 전화가 왔다. 확인해보니 이 전화가 처음이 아니고 같은 전화번호가 여러개 찍혀 있었다. 전날 스시집에서 만난 벨로루시 청년 '파샤'였다. 학교가 지금 끝났는데 괜찮으면 나가사키 시내를 안내해주겠단다. 계획한 여행은 이미 거의 끝났는데. 자전거가 있으니 금방이라고 해서 그럼, 금방 오라고 그랬다. 그리고는 파샤의 안내를 받으며 현지인만 아는 나가사키 구석구석을 여행할 수 있었다. 날씨는 어찌나 덥던지. 난 crazy wheather을, 파샤는 stupid wheather를 외치며 무슨 숙제하듯이 시내를 훑었다. 첫날 비가 와서 안개 속에 묻혀 잘 볼 수 없었던 바다를 마지막 행선지로 잡았다.

바다를 향해 가면서 작은 나라에 사는 사람의 애환, 외국인 유학생으로 사는 사람의 애환,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게 된 사람의 애환에 대해 들어줬다. 앞으로 국제관계를 공부하려는 파샤는 내가 벨로루시란 나라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좀 놀라웠단다. 그리고 EU에 27개 나라가 가입되어 있다는 걸 안다는 사실도 좀 의외였단다. 그러나 어쨌거나 국제개발을 전공하는 사람을 이 나가사키에서 만나 아주 반갑단다.

일본어는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 보지 않았지만 가장 높은 등급인 1급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대학교에 아시아 언어과가 있었는데 자기는 무슨 인연인지 모르겠지만 일본어를 선택했고 당시 선생은 벨로루시 사람이었단다. 배우는 데 한계가 있어 일본대사관에 연락을 해서 사정을 이야기하며 일본어가 너무 배우고 싶으니 선생과 교재를 좀 보내달라고 했단다. 대단한 열정 아닌가. 몇 번의 테스트를 거쳐 일본인 선생이 파견되었고 딱 두명의 학생이 그 선생한테 일본어를 배웠단다. 이것 보면 일본도 또 대단한 나라다. 그 후 자기는 일본어를 열심히 배웠고 일본 정부의 장학금을 받아 지금 일본에 와 있는 거란다. 중국이나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 온 사람들은 잘 모르겠는데 생긴 모습이 전혀 아시아쪽이 아닌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공부를 하든, 직장 생활을 하는 것 보면, 그 인연이 참 궁금해진다.

바다를 보고 난 후 우린 헤어졌다. 본의 아니게 시간을 많이 뺏어 미안하다고 했더니, 나가사키에서 자기를 찾아 온 손님에게 나가사키를 안내할 일이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 없을 거라 괜찮단다. 너네 학교에 꼭 갔으면 좋겠다, 고 해서 꼭 그러라고 했다.

Posted by 윤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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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에 다녀온 지 벌써 2주가 지난 것 같다. 이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어제 그곳에서 만난 친구한테 메일이 왔다. 내용인 즉슨 지금쯤 메일을 한 번 보내야 내가 그 친구를 잊지 않을 거래나 뭐래나.

마지막날은 호텔에서 묵지 않고 나가사키 시내에 있는 두 곳의 유스호스텔 중 카톨릭센터라고 하는 곳에서 묵었다. 이미 돌아가신 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묵었던 곳이란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아주 조용하고 정갈하며, 무엇보다 아침을 공짜로 준다.

일단 짐을 풀고 저녁을 어디서 먹을까 궁리를 하다가 데스크에 앉아 있는 복스럽게 생긴 아가씨한테 물어봤더니 스시집을 하나 추천해줬다. "미노부스시'라는 곳인데 한 접시에 100엔이라고 해서 처음엔 회전초밥집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냥 일반 스시집 같은 곳이었다. 다른 게 있다면 스시는 무조건 한 접시에 100엔이라는 거.

아직 일본 스시 이름을 아는 게 별로 없어서 막 고민하고 있는데 외국인 하나가 자리도 많은데 굳이 내 옆에 앉는 게 아닌가. 그리고는 막 잘난 척을 하면서 스시를 고르더니 종이에 스시 이름을 쓰는 게 아닌가. 다행이다. 영어로 쓰고 있었다. 참치 스시면 "MAGURO", 요렇게. 뭐 나도 그 정도는 안다고. 나도 한 두어개를 그런 식으로 시켰다. 그러나 스시 두 개로 한끼를 떼우기엔 난 너무 허기져 있었다.

내가 주문에 허우적대는 걸 보고 이 친구는 내가 외국인인 걸 바로 알아차렸다. 친절하게 스시는 말이지...일장 연설을 해준 덕에 겨우 4개를 더 시킬 수 있었다. 나보고 어디서 왔냐고 해서 한국이라고 했더니 아주 반가워 하면서 자기가 어디서 왔는지 맞춰 보라는 거 아닌가. 바로 그냥 "Where are you from?" 해버릴 생각이었는데.

딱 생긴게 유럽풍이다. 그것도 저 동유럽풍이다. 러시아 쪽 냄새도 좀 나고. 그래서 일단 발틱 3국부터 훑어 내려올 생각이었는데 내 입에서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라는 나라 이름을 듣고 이 친구 좀 놀라는 거 아닌가. 그래서 조금 더 내려 오려고 하던 차에 그냥 "나 벨로루시에서 왔어." 실토를 하는 거 아닌가. 일본에서 아직 한번도 자기 나라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댄다. 이런... 내가 그 심정 좀 알지. 모자에 태극기를 박아 넣고 아래에 KOREA라고 씌어 있어도 내가 한국 사람임을 모르던 나라에 내가 있어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대화의 물꼬가 스르르 풀리던 차에 일본에서 뭐하냐, 학교 다니냐, 어느 학교 다니냐까지 왔다. 그리고 내 입에서 히토쓰바시라는 얘기가 나오자 그냥 놀라더니 자기 친구한테 전화를 하는 게 아닌가. 러시아 말 같기도 하고. 나중에 물어봤더니 벨로루시 말이란다. 그리고는 10분도 안 되어 또 한 명의 벨로루시 청년을 만났다. 히토쓰바시라는 대학에 대해서 전혀 생각지 않았었는데 5명의 사람한테 추천을 받았고 이제 한번만 더 인연을 만나게 되면 이 학교에 원서를 넣을 생각이었단다. 이런. 무슨 이런 우연이 다 있나.

첫번째 만난 친구는 'IIYA'라는 친구로 현재 나가사키 의대에서 의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고 두번째 만난 친구는 'PASHA'라는 친구로 일본에서 대학원을 가기 위해 올해 4월에 나처럼 일본에 왔다. 우린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친구들처럼 아주 수다스럽게 떠들었고, 스시집에 왔으면서 스시는 뒷전이 되고 말았다.

학회가 끝나 나른하던 차에 실컷 떠들어 피곤하기까지 해 그만 헤어지자고 했더니 내일 또 보자는 게 아닌가. 그것도 '이이야'가 조용히 있는 '파샤'를 가르키며 이 친구는 늘 한가하니까 내일 네가 나가사키를 여행하는 걸 도와줄 수 있다는 거 아닌가. '파샤'가 당황해하는 것 같아 혼자 여행해도 된다고 했는데도 그게 아니란다. 그래서 뭐 시간되면 그렇게 하라고 하고 자리를 떴다.

교황이 머문 곳도 내가 머문 이 다다미방 같은 곳일까 생각하며 그날 아주 푹 잤다.
Posted by 윤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