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24: 커피/사람들2019. 5. 26. 02:45

지난해 서울아프리카페스티벌이 끝나고 직업도 잃고 인간관계도 잃고 건강도 잃고 제로 상태가 되었을 때 당장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는 나를 만나 많이 놀랐었다.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구나......네팔에서 한국으로 돌아올 때도 그랬었다. 지진이 문제는 아니었다. 난 돌아갈 자리가 사라질 줄도 모르고 그저 열심히 일을 했는데 끝나고 나니 사람들은 자기 몫을 챙겨 모두 떠나버린 후였다. 마치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세상은 돌아갔고 지금도 그렇게 돌아가는 중이고 앞으로도 그렇게 돌아가겠지. 작년 겨울 에티오피아 정부가 커피 이벤트에 강연자로 초청하면서 무기력의 늪에서 깨어나게 된 것 같고 다시 현지조사를 하면서 내가 나를 생각하고 공동체를 생각하며 열심히 살고 싶은 마음을 먹을 수 있었다. 여름이면 왔는데 왜 안올까 걱정을 많이 했다는 현지 지인들에게 저간의 사정을 설명하지는 못했고 자주 오겠다고 약속했으니 에티오피아에는 이제 더 자주 가려고 하고 에티오피아 주제의 재미있는 이벤트도 더 많이 만들고 직접 참여도 하려고 한다. 교토대학 아시아아프리카지역연구연구과(ASAFAS)를 비롯해 여러 선생님들 덕분에 다시 학문분야에서의 활동과 내 역할에 대해서도 고민할 수 있었다. 작년 가을부터 뭐라도 좋으니 발표를 했으면 좋겠다고 일본아프리카학회의 회장님 푸쉬도 있었고 겸사겸사 일본에 놀러 오라는 지인들 성화로 다시 교토에 오게 되었다. 오랜만에 학자들 무리에 섞여 아프리카 지역연구 관련해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사람들 앞에서 연구성과를 발표하고 아쉬움이 생겼고 그런 일련의 느낌들이 소중하게 여겨졌다. 그동안 메일로 소식을 주고 받았던 IWCA Japan Chapter(https://www.iwcajapan.org)의 Yuko Itoi 회장님을 만나 교토 스페셜티 커피 전문 카페들을 둘러 보면서 다시 커피 연구에도 목표가 생겼다. 내가 다 잃었다고 착각하면서 세상에 무감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그 늪을 헤어나올 나를 위해 심장을 데워 둔 사람들이 여전히 많아 감사하게 생각한다. 엄청난 에너지를 받은 느낌이다. 그렇지,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지. 사랑도 받고, 격려도 받고, 존경도 받고, 인정도 받으며 더불어 사는 존재지. 

Posted by 윤오순

내일 연구센터에서 아프리카 음식 축제가 열릴 예정이다. 복도가 시끄러워 나갔더니 이런 풍경이.... 외부에서도 손님이 많이 올 예정이라 미리 준비하는 것이다. 오래된 건물이 늘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는 이유에는 이런 노력이 있어서가 아닐까.

아프리카 음식 축제이니 에티오피아 주식인 인제라가 빠질 수 없다. 나도 만들라고 해서 급고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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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자정쯤 연구실을 나왔는데 연구센터 중정에서 왁자지껄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불이 환하게 켜져 있어 학생들끼리 뭘 하나보다 그러고는 집을 향했다. 다음날 알게 되었다. 그게 하나미(花見, 벚꽃놀이)라는 것을.

다음날 저녁 8시쯤 초대되어 갔는데 정말 장관이었다. 간이 고타츠도 등장했고, 학생들은 정말 많이 먹고 마셨고, 많이 소리 질렀다. 달 아래 흐드러진 벚꽃에 취해 난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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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다시 일본에 왔다. 이번엔 도쿄가 아니라 교토다. 교토대학의 아시아아프리카지역연구연구과에서 객원교수로 초청해 겨울과 봄을 교토에서 보낼 예정이다. 도착하자마자 이것저것 적어보려고 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2월이 되고 말았다. 10년도 전에 도쿄에서 유학할 때 교토에 몇 번 왔었는데 그때와 뭐가 달라졌는지 잘 모르겠다. 번화가는 서울의 다운타운과 다를 게 없어 잘 모르겠고, 교토대학 주변은 여전히 아날로그 감성이 숨쉬는 곳들이 많아 내마음의 일본 그대로 같아 잘 모르겠다.

도쿄에서는 겨울을 어떻게 보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데 아무튼 여기 엄청 춥다. 옆나라에서 수천년이나 온돌을 사용하며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고 있었는데 여기는 21세기인데도 여전히 잠들기 전에 오후로(お風呂, '목욕'의 의미) 말고는 다른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따뜻한 방에서 아침에 개운하게 일어나고 싶다. 아니면 빨리 봄이 오든지.

추운 것 말고는 다 좋다. 이렇게 연구환경이 좋은 곳에서 연구하는 학자들, 학생들이 너무 부럽다. 한국에서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정말 쓸데없는 일로 보낸 시간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돌이켜보니 억울하기까지 하다. 한국인이 이 프로그램에 초청된 것도 처음이고, 일본어를 하는 외국인 객원교수도 처음이라 다들 신기해하고 있다. 덕분에 도착한 다음날 오후부터 석사논문 발표회장에 들어가 코멘트를 해줘야 했다.

나는 여기서도 커피 투어리즘을 연구한다. 박사논문을 끝낸 연구보조원이 만든 교토의 카페 맵을 들고 카페들을 돌아다니기도 한다. 커피 관련 세미나나 이벤트, 잡지 기사들이 나오면 다들 챙겼다가 연구실에 놓고 간다. 프로그램이 끝날 때 한국에 돌아가기 싫어지면 어쩌나 걱정이 많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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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작년 5월에 아프리카학회 때문에 교토에 간 적이 있다. 그때 짬짬이 읽으려고 도서관에서 책을 몇권 빌렸다. 다녀와서는 물론 모두 반납을 했다.

지난 월요일 박사진학시험 1차시험 결과발표가 있었다. 합격했단다. 3월2일에 있을 2차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이 생긴 것이다.

발표가 난 다음날 도서관에 가서 책을 몇권 빌려왔다. 대출한 책 중 5월에 교토에 갔을 때 빌렸던 책이 포함되어 있었다. 주르르 책장을 넘기는데 눈에 익은 메모지가 꽂혀 있었다. 머물던 호텔의 레터지에 교토에서 방문했던 곳을 적어두었었는데 그게 그대로 있었다. 아니 꼭 그대로는 아니었다.

방문할 곳을 일본어로 적었었고, 다녀와서 그때의 느낌을 영어로 간단하게 메모했었다.

金閣寺ーexcellent
清水寺ーgood


이런식이었다.

그런데 메모지에는 간단한 느낌과 함께 관광지 두군데가 추가되어 있었다. 덕분에 교토 여행이 즐거웠다는 두줄의 영어소감도 있었다. 일본어 필체는 별로인데 영어 필체는 아주 마음에 들었다. 누굴까?

오늘 책을 반납하면서 다음에 또 보자고, 나도 메모지에 한줄을 추가했다. 2009년 5월 어느날 똑같은 책을 다시 대출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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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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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의 킨카쿠지(金閣寺)에 다녀왔다.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금각사'의 바로 그 금각사이다. 1397년에 창건되어 약 600년 동안 잘 버텨오다 1950년 한 학승에 의해 소실이 되었는데 복원된 게 지금의 모습이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었다."가 학승의 범행동기란다. 숭례문 소실 사건이랑 아주 비슷하다. 약 50년 간의 복원작업을 거쳐 지금의 모습으로 탄생되는 데까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는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현재는 교토를 찾는 외국인이라면 누구나 방문하고 싶은 장소 넘버 원이란다. 가로 세로 약 10cm 금박 20만장을 강력한 소재의 접착 재료를 사용해 작업했기 때문에 향후 600년간은 너끈히 버틸 수 있다고 한다. 절을 감싸고 있는 숲에 들어가니 기분이 아주 좋아졌다. 5월의 금각사도 좋지만 겨울의 금각사도 좋다.


Posted by 윤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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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도 마지막 날이다. 요 며칠 화창했는데 그제부터 기온이 뚝 떨어진 데다 비까지 내린다. 종로빈대떡에 가서 녹두전에 막걸리 한잔 마시면 딱 좋을 것 같다.

하도 오랜만에 한글로 뭘 쓰려니 낯설다. 4월 말쯤이다. 신입생 환영 파티가 끝난 다음 날 학생 하나가 방에서 조용히 숨진 채로 발견됐다. 올해 히토쓰바시대학에 입학한 일본인 학생이었다. 사망 원인은 급성알콜중독. 꿈이 많았을 텐데 많이 안타까웠다. 자숙하는 의미로 5월은 기숙사에서 파티를 자제하는 분위기였고, 학교에서는 '학생제군에게 알림'이라는 타이틀로 경고성 안내문을 곳곳에 게재했다. 당시 같이 자리를 했던 학생들을 전부 소환해 조사했다는 데 결과는 잘 모르겠다. 99년 6월 구마모토 의학부 1학년 학생이 서클 환영파티가 끝난 후 급성알콜중독으로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경찰은 동석했던 19명을 전부 소환해 조사했고, 후쿠오카 고등법원에서는 그중 8명에게 '안전배려의무' 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1300만엔을 지불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세상에 무리해서 좋은 건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는 게 결론이다.

4월, 5월 두 차례나 자전거 사고가 일어났고, 그 주인공이 나인 바람에 아주 심하게 고생을 했다. 거의 날마다 눈썰매장 다녀 온 다음 날의 몸 상태로 지내야 해서 아주 죽을 맛이었다. 오른 손에 아직 붕대를 감고 있지만 재활치료 결과도 좋고, 이젠 좀 살만해졌다. 1월부터 병원 신세를 많이 졌는데 이걸로 액땜은 끝~~~,이었으면 좋겠다. 옆 방의 중국인 유학생이 빨리 좀 나으라고 성화다.

지난해 도쿄의 히비야 공원에서 열렸던 아프리칸 페스티벌이 올해는 요코하마에서 열렸는데 못갔다. 내년에는 가야지. 제4회 아프리카 개발회의(TICAD)에 아프리카 각국 정상 42명이 모였다는데 거기도 못 갔다. 장소는 요코하마였고, 참가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관뒀다. 차이나 아프리카 포럼이 열리던 2006년에 아프리카의 각국 정상 41명이 중국에 모였는데 일본은 이번에 한명이 더 왔다고 아주 우쭐해한다. 에티오피아의 제나위 수상도 요코하마에 왔다. 같은해 있었던 '한국 아프리카 포럼'에는 5개국 정상과 25개국 각료가 한국에 왔었다. 쪽팔린다. 도대체 게임이 안된다.

제 45회 아프리카학회가 지난 주말 교토에서 열렸다. 발표의 질은 작년에 비해 떨어진 것 같았고, 아디스 아바바에 있는 코리아빌리지를 연구하는 일본인이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학회가 끝나고 금각사와 은각사, 기요미즈테라를 다녀왔다. 절을 둘러싸고 있는 숲이 내 지친 심신을 정화해 준 덕분에 돌아오는 신간센에서 앞으로도 더 열심히 살아야지, 하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사진: 내 방에 등장한 공기정화식물. 흙에서 자라고 있는 것들이었는데 PET병을 잘라 물에서 키우고 있다. 나 말고 살아있는 게 있어 방 분위기가 달라졌다. 지금은 아이비와 싱고늄 두가지인데 조만간 수가 늘어날 것 같다.

Posted by 윤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