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매일 진도 4.x의 여진으로 건물이 흔들리는 경험을 하고 있지만 센터도 집도 지진 전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변화라면 동석한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게 테이블을 흔들 때 또 지진이 아닌가, 잠깐 공포에 떨 때가 있고, 그리고 집에서 밥을 해 먹는다. 10년 넘게 유학생활하면서 소꿉장난하듯이 밥 해먹던 생활이 지겨워 네팔에 와서는 늘 사서 먹었다. 물이 안 좋아 그릇이나 야채손질하는 것도 일이라는 생각에 귀찮기도 했고. 지진이 났을 때 자주 가던 식당들이 문을 닫아 밥 먹을 곳을 찾아 헤매는 날이 많아지면서 결국은 사 먹는 걸 포기하고 해먹게 되었다. 야채가 워낙 싸고, 일본 슈퍼마켓에 가면 우리가 먹는 쌀도 구할 수 있는 데다, 지난 번에 네팔을 방문한 지인이 된장, 고추장, 쌈장을 선물해 웬만한 한국음식들은 요리가 가능하다. 그래서 다시 소꿉장난하듯이 밥을 해먹고 있다.
2.
긴 공부가 끝나고 다시 해외생활을 하게 되면 자전거를 일상으로 타는 나라에 가야지, 생각했었고, 그곳이 일본이 아니라면 북유럽 어디쯤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 네팔에 오게 되었다. 그런 생각지도 못했던 네팔에서 매일 자전거를 타고 있다. 카트만두에 도착한 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일본식당 '코테츠(こてつ)' 쉐프한테 임기가 끝나고 일본으로 돌아가는 자이카(JICA, 우리나라 한국국제협력단/KOICA 같은 단체) 단원들 중에 자전거를 처분하려는 사람들이 있으면 이야기해 달라고 했는데 쉐프가 즉석에서 집에서 노는 자전거가 있으니 필요하면 그냥 가져가라는 게 아닌가.그때 선물로 받은 자전거를 지금도 타고 다닌다. 센터에서 집까지 걷기에는 좀 멀고, 택시를 타면 10분 정도 걸리는데 매번 가격을 흥정해야한다. 자전거로는 15분 정도 걸리는데 그중 절반이 비포장 도로라서 매일 출퇴근 시간에 어드벤처 트레킹을 하는 느낌이다. 출근하고나서 자전거는 센터 직원들 차지가 되는데 가드 할아버지가 점심드시러 가실 때, 카페 스탭들이 식료품을 사러 다닐 때 다들 내 자전거를 타고 나간다. 무단으로 자전거를 타는 대신에 갑자기 비가 오는 날 내가 신경을 쓰지 않아도 가드 할아버지는 자전거를 실내에 들여놓고,바람이 빠지면 알아서 바람도 넣어놓고, 집에 갈 시간이면 자전거 키 비밀번호를 풀어서 내가 타고 가라고 대문 앞에 세워놓으신다. 참, 같은 날 파견되어 끈끈한 전우애(?)를 느끼는 중인 한국인 동료가 내 강요에 못 이겨 자전거 헬맷을 선물했고, 나는 그 동료의 강요에 못 이겨 결코 싸지 않은(?) 자전거 전용 라이트를 선물했다.두 가지 자전거 액세서리는 지금도 잘 사용 중이다.
3.
카트만두에는 아직 본격적인 몬순이 온 것 같지 않은데 가끔 천둥을 동반한 비가 쏟아지곤 한다. 출근하는 시간에 비가 쏟아진 적은 한번 뿐이라서 아직까지 네팔 날씨에 우호적이다. 일본에서 학교 다닐 때는 비가 오면 한 손에 우산을 들고 곡예를 하듯 자전거를 타고 다녔는데 여기는 도로가 위험천만해서 그런 짓은 엄두도 못낸다. 자전거 전용도로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비가 오면 그냥 택시를 탈 생각이다. 지난 번에는 비가 약해 우비를 입고 출근을 했었다. 여름으로 진입한 것 같긴 한데 한낮에는 날이 몹시 뜨겁고,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하다. 날이 뜨거워도 다른 동남아국가들처럼 습하지않아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또 시원하다. 카트만두 날씨가 좋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겪어보니 겨울은 난방시설이 없는데다 고산지대라 정말 짜증이 날만큼 추웠는데 여름은 견딜만하다. 아니 다른 어떤 동남아국가들보다 좋다. 겨울에도 아침저녁은 뼈가 사무치도록 춥지만 대낮의 썬샤인은 네팔이 가히 자랑할만하다. 예정대로라면 이번 주에 한국에 가야했는데 그놈의 메르스 때문에 당분간은 카트만두를 지켜야할 것 같다. 오늘도 대낮의 카트만두는 몹시 뜨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