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있다. 배로 부친 짐이 아직도 도착을 안해 가지고 있는 옷들 이것저것 겹쳐 입었는데도 오늘 같은 날은 솔직히 찜질방이 그립다. 뼈가 시릴 정도로 춥다고 영국의 겨울을 표현하던데 요며칠 겪어보니 한겨울은 정말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숙소문제는 여전히 해결기미가 보이지 않고, 학기는 시작한지 얼마되었다고 겨울방학을 향해 달리고 있다. 같은 연구실의 '이가'는 학교에 도통 나오지 않아 살았는지 죽었는지 궁금하던 차에 전기밥솥 구할 수 없느냐 전화를 했더니 받는다. 살아 있었다. 밥솥은 내년 여름이나 되어야 구할 수 있을 것 같단다. '박가'는 처음엔 의욕적으로 마구 밀어붙이는 인상이었는데 요즘은 모범생 신드롬인지 슬럼프에 빠진 것 같다. 생각대로 일이 잘 안풀리나 보다. 모범생들은 그저 칭찬이 약인데 주변 사람들이 그걸 잘 모르는 건 아닌지. 아무튼 잘 극복했으면 좋겠다.
그간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국제우편으로 이것저것 많이 보내줬는데 보냈다는 연락만 받았지 실제 내 손에 들어온 게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래도 중간에 집을 옮겨서 그런 것 같다. 국제우편물은 위치추적이 가능해 다들 알아보았다는데, 나는 아니지만 누군가가 받았다고 싸인까지 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지난번에 살던 기숙사에서는 내 이름으로 된 우편물은 본 적이 없다는데 그것들이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학교주소로 된 물건들은 아무 문제 없이 도착하고 있는 중인데 기숙사 주소가 문제인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기숙사를 나오기 잘한 것 같다.
방문제만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지끈 우울모드였는데 어제는 하루에 네명의 스타를 직간접적으로 만났다.
첫번째 별과의 만남은 한국에서 전국 순회공연 하면서 알게된 이 무지치(I MUSICI) 그룹의 리더 루치오(Lucio). 오랜만에 그에게서 메일이 한통 왔다. 이 무지치는 일본에서는 한물간 그룹인데 한국에서는 비발디의 '사계' 하면 이 사람들을 연상할 정도로 여전히 독보적인 그룹이다. 공연 당시 루치오는 더블베이스를 연주했고, 아내는 챔발로를 연주했었다. 부부의 연주모습도 인상적이었지만 50년 넘게 전세계를 돌며 연주 여행을 하면서 늘 함께 했다는 이 노부부의 평범한 생활인으로서의 모습들이 여전히 내 기억에 많이 남는다. 2007년에 은퇴를 해서 이제는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평화롭게 'doing nothing'을 즐기면서 산단다. 루치오에게서 온 소식은 나를 행복하게 했다.
두번째는 첼리스트 레슬리 파나스(Leslie Parnas). 한국에서 두번인가 공연하면서 친구가 되었는데 내 친구 중 가장 나이가 많다. 아내가 세상을 떠나 몹시 슬프단다. 중요하지 않은 내용을 언제나 대문자로 보내던 사람이었는데 이번에는 전부 소문자로 된 편지를 보냈다. 편지를 읽으면서 나도 슬퍼졌다.
세번째는 괴물 작가 박민규.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은 기사를 통해 알았는데 '윤오순 박사님'이라 부르며 친필 사인과 함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라는 신간을 보내줬다. 일본에서 박사과정 시작할 때는 아무도 나를 박사님이라 부르지 않았는데 영국에 오고 나서는 다들 나를 박사님이 부르고 있어 나를 아는 사람들이 어딘가에서 몰래 만나 뭔가 모의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문득, 불현듯 들었다. 갈길이 먼데 사람들은 벌써 저 앞에 가고 있다. 책은 서문만 읽고 책장을 덮고 말았다. 박민규 작가의 다른 책과 마찬가지로 재미있을 것 같아서다. 주말에 펼쳐 볼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이 사람.
아프리카 타악기 워크숍이 있다는 광고 전단지를 보고 재미있을 것 같아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물어물어 찾아갔다. 빈자리가 딱 하나밖에 없어 아무 생각없이 앉았는데 옆에 앉은 아주머니가 손을 내밀며 먼저 인사를 청한다.
"나는 엠마에요." "어디에서 왔어요?"
"저는 윤오순이에요. 한국의 서울에서 왔어요."
이때까지 난 이 사람이 그 유명한 엠마 톰슨(Emma Thomson)인 줄 몰랐다. 자기가 너무나 가고 싶은 나라 중에 하나가 한국이며 서울이란다. 도쿄는 책 출판 때문에 간 적이 있는데 '러블리 서울'은 아직 가 본 적이 없어 언젠가 가고 싶단다. 엑시터 대학에서 무슨 공부를 하느냐고 해서 커피 투어리즘 연구를 하고 있으며, 조사지역은 에티오피아라고 했더니 갑자기 얼굴 표정이 밝아진다. 엠마는 프로젝트 참가차 에티오피아에 간 적이 있었고, 여러 지역을 여행한 터라 에티오피아에 대한 이야깃거리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 연기 뿐만 아니라 글도 쓰고, 소수자의 권익보호를 위한 활동에도 앞장 서고 있어 평소에 좋아하던 배우였는데 이렇게 마주 앉아 내 사는 이야기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정말 교통사고 같은 일이었다. 엠마는 에티오피아의 독특한 커피 세러모니가 매우 인상적이었다며 별로 관심도 없어하는 옆사람들한테 너네 그거 알아, 하는 표정으로 에티오피아에 대해 '짤막 연설'을 시작했다. 연설을 끝내더니 네 연구에 관심이 아주 많고, 네가 그 연구를 꼭 잘 해낼 거라 믿는다며 엄청난 격려를 해주는 바람에 좀 당황했다. 한시간 동안 우간다에서 온 친구한테 다양한 아프리카 타악기 리듬을 온몸으로 익힌 후 다음에 또 보자고 하고 엠마와는 헤어졌다. 엠마와는 나중에 어딘가에서 정말 또 다시 만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숙소문제는 여전히 해결기미가 보이지 않고, 학기는 시작한지 얼마되었다고 겨울방학을 향해 달리고 있다. 같은 연구실의 '이가'는 학교에 도통 나오지 않아 살았는지 죽었는지 궁금하던 차에 전기밥솥 구할 수 없느냐 전화를 했더니 받는다. 살아 있었다. 밥솥은 내년 여름이나 되어야 구할 수 있을 것 같단다. '박가'는 처음엔 의욕적으로 마구 밀어붙이는 인상이었는데 요즘은 모범생 신드롬인지 슬럼프에 빠진 것 같다. 생각대로 일이 잘 안풀리나 보다. 모범생들은 그저 칭찬이 약인데 주변 사람들이 그걸 잘 모르는 건 아닌지. 아무튼 잘 극복했으면 좋겠다.
그간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국제우편으로 이것저것 많이 보내줬는데 보냈다는 연락만 받았지 실제 내 손에 들어온 게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래도 중간에 집을 옮겨서 그런 것 같다. 국제우편물은 위치추적이 가능해 다들 알아보았다는데, 나는 아니지만 누군가가 받았다고 싸인까지 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지난번에 살던 기숙사에서는 내 이름으로 된 우편물은 본 적이 없다는데 그것들이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학교주소로 된 물건들은 아무 문제 없이 도착하고 있는 중인데 기숙사 주소가 문제인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기숙사를 나오기 잘한 것 같다.
방문제만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지끈 우울모드였는데 어제는 하루에 네명의 스타를 직간접적으로 만났다.
첫번째 별과의 만남은 한국에서 전국 순회공연 하면서 알게된 이 무지치(I MUSICI) 그룹의 리더 루치오(Lucio). 오랜만에 그에게서 메일이 한통 왔다. 이 무지치는 일본에서는 한물간 그룹인데 한국에서는 비발디의 '사계' 하면 이 사람들을 연상할 정도로 여전히 독보적인 그룹이다. 공연 당시 루치오는 더블베이스를 연주했고, 아내는 챔발로를 연주했었다. 부부의 연주모습도 인상적이었지만 50년 넘게 전세계를 돌며 연주 여행을 하면서 늘 함께 했다는 이 노부부의 평범한 생활인으로서의 모습들이 여전히 내 기억에 많이 남는다. 2007년에 은퇴를 해서 이제는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평화롭게 'doing nothing'을 즐기면서 산단다. 루치오에게서 온 소식은 나를 행복하게 했다.
두번째는 첼리스트 레슬리 파나스(Leslie Parnas). 한국에서 두번인가 공연하면서 친구가 되었는데 내 친구 중 가장 나이가 많다. 아내가 세상을 떠나 몹시 슬프단다. 중요하지 않은 내용을 언제나 대문자로 보내던 사람이었는데 이번에는 전부 소문자로 된 편지를 보냈다. 편지를 읽으면서 나도 슬퍼졌다.
세번째는 괴물 작가 박민규.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은 기사를 통해 알았는데 '윤오순 박사님'이라 부르며 친필 사인과 함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라는 신간을 보내줬다. 일본에서 박사과정 시작할 때는 아무도 나를 박사님이라 부르지 않았는데 영국에 오고 나서는 다들 나를 박사님이 부르고 있어 나를 아는 사람들이 어딘가에서 몰래 만나 뭔가 모의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문득, 불현듯 들었다. 갈길이 먼데 사람들은 벌써 저 앞에 가고 있다. 책은 서문만 읽고 책장을 덮고 말았다. 박민규 작가의 다른 책과 마찬가지로 재미있을 것 같아서다. 주말에 펼쳐 볼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이 사람.
아프리카 타악기 워크숍이 있다는 광고 전단지를 보고 재미있을 것 같아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물어물어 찾아갔다. 빈자리가 딱 하나밖에 없어 아무 생각없이 앉았는데 옆에 앉은 아주머니가 손을 내밀며 먼저 인사를 청한다.
"나는 엠마에요." "어디에서 왔어요?"
"저는 윤오순이에요. 한국의 서울에서 왔어요."
이때까지 난 이 사람이 그 유명한 엠마 톰슨(Emma Thomson)인 줄 몰랐다. 자기가 너무나 가고 싶은 나라 중에 하나가 한국이며 서울이란다. 도쿄는 책 출판 때문에 간 적이 있는데 '러블리 서울'은 아직 가 본 적이 없어 언젠가 가고 싶단다. 엑시터 대학에서 무슨 공부를 하느냐고 해서 커피 투어리즘 연구를 하고 있으며, 조사지역은 에티오피아라고 했더니 갑자기 얼굴 표정이 밝아진다. 엠마는 프로젝트 참가차 에티오피아에 간 적이 있었고, 여러 지역을 여행한 터라 에티오피아에 대한 이야깃거리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 연기 뿐만 아니라 글도 쓰고, 소수자의 권익보호를 위한 활동에도 앞장 서고 있어 평소에 좋아하던 배우였는데 이렇게 마주 앉아 내 사는 이야기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정말 교통사고 같은 일이었다. 엠마는 에티오피아의 독특한 커피 세러모니가 매우 인상적이었다며 별로 관심도 없어하는 옆사람들한테 너네 그거 알아, 하는 표정으로 에티오피아에 대해 '짤막 연설'을 시작했다. 연설을 끝내더니 네 연구에 관심이 아주 많고, 네가 그 연구를 꼭 잘 해낼 거라 믿는다며 엄청난 격려를 해주는 바람에 좀 당황했다. 한시간 동안 우간다에서 온 친구한테 다양한 아프리카 타악기 리듬을 온몸으로 익힌 후 다음에 또 보자고 하고 엠마와는 헤어졌다. 엠마와는 나중에 어딘가에서 정말 또 다시 만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