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연구센터에서 아프리카 음식 축제가 열릴 예정이다. 복도가 시끄러워 나갔더니 이런 풍경이.... 외부에서도 손님이 많이 올 예정이라 미리 준비하는 것이다. 오래된 건물이 늘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는 이유에는 이런 노력이 있어서가 아닐까.

아프리카 음식 축제이니 에티오피아 주식인 인제라가 빠질 수 없다. 나도 만들라고 해서 급고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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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먹을 시간에 학생 다섯이 작은 카페에서 피아노 라이브 공연을 하니 같이 가자고 방문을 두드렸다. 최근에 학생들과 프로젝트를 두 가지 진행하고 있는데 두 프로젝트에 모두 관여하고 있는 학생들이기도 하고  늘 있는 일이 아니라 그 학생들을 따라 나섰다. 


장소는 교토에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분위기 좋은 작은 카페였고, 기계없이 손으로만 커피를 내리는 곳이었다. 진지하게 피아노 공연을 감상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는 단체손님 자리에 앉아 피아노는 뒷전으로 하고 저녁을 먹으며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는 그룹이었다. 


학생 중 하나가 일본 대기업 회장님 아들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학생을 대하는 다른 학생들의 태도가 너무 분명해 몹시 불편했다. 대놓고 도련님처럼 대하니 이야기가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복도를 오가며 자주 봤을 것 같은데 오늘 처음 인사를 나눈다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래서 다들 끼리끼리 논다는 이야기가 나오는지 모르겠다.  


내가 대학생일 때 다른 학과에 아버지가 장관인 학생이 있었는데 상식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루머가 엄청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 학생은 동급생으로 편하게 학교에 다니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잘 모르는 주변 사람들이 사실이 아닌 내용을 눈덩이처럼 굴려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


연구과의 봇짱(坊っちゃん, '도련님'이라는 의미)도 본인은 다른 학생들처럼 학창시절을 보내고 싶은데 주변에서 과하게 관심을 보이면서 학교 생활을 어렵게 느끼고 있지 않나 싶다. 중간에 학교를 그만두고 유학을 준비하기도 했다는데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고.


한국에서도 학생들과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면 헤아려야할 게 한 두가지가 아닌데 여기도 만만치 않다. 결론은 세상에 쉬운 일이 없다,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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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자정쯤 연구실을 나왔는데 연구센터 중정에서 왁자지껄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불이 환하게 켜져 있어 학생들끼리 뭘 하나보다 그러고는 집을 향했다. 다음날 알게 되었다. 그게 하나미(花見, 벚꽃놀이)라는 것을.

다음날 저녁 8시쯤 초대되어 갔는데 정말 장관이었다. 간이 고타츠도 등장했고, 학생들은 정말 많이 먹고 마셨고, 많이 소리 질렀다. 달 아래 흐드러진 벚꽃에 취해 난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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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다시 일본에 왔다. 이번엔 도쿄가 아니라 교토다. 교토대학의 아시아아프리카지역연구연구과에서 객원교수로 초청해 겨울과 봄을 교토에서 보낼 예정이다. 도착하자마자 이것저것 적어보려고 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2월이 되고 말았다. 10년도 전에 도쿄에서 유학할 때 교토에 몇 번 왔었는데 그때와 뭐가 달라졌는지 잘 모르겠다. 번화가는 서울의 다운타운과 다를 게 없어 잘 모르겠고, 교토대학 주변은 여전히 아날로그 감성이 숨쉬는 곳들이 많아 내마음의 일본 그대로 같아 잘 모르겠다.

도쿄에서는 겨울을 어떻게 보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데 아무튼 여기 엄청 춥다. 옆나라에서 수천년이나 온돌을 사용하며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고 있었는데 여기는 21세기인데도 여전히 잠들기 전에 오후로(お風呂, '목욕'의 의미) 말고는 다른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따뜻한 방에서 아침에 개운하게 일어나고 싶다. 아니면 빨리 봄이 오든지.

추운 것 말고는 다 좋다. 이렇게 연구환경이 좋은 곳에서 연구하는 학자들, 학생들이 너무 부럽다. 한국에서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정말 쓸데없는 일로 보낸 시간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돌이켜보니 억울하기까지 하다. 한국인이 이 프로그램에 초청된 것도 처음이고, 일본어를 하는 외국인 객원교수도 처음이라 다들 신기해하고 있다. 덕분에 도착한 다음날 오후부터 석사논문 발표회장에 들어가 코멘트를 해줘야 했다.

나는 여기서도 커피 투어리즘을 연구한다. 박사논문을 끝낸 연구보조원이 만든 교토의 카페 맵을 들고 카페들을 돌아다니기도 한다. 커피 관련 세미나나 이벤트, 잡지 기사들이 나오면 다들 챙겼다가 연구실에 놓고 간다. 프로그램이 끝날 때 한국에 돌아가기 싫어지면 어쩌나 걱정이 많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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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채널24: 일본/사람들2009. 9. 29. 08:24
영국으로 떠나기 전이라서 그런지 이런저런 식사모임이 많다. 일본에서 섬처럼 지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내가 떠난다니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아 놀라는 중이다. 어제 모임은 좀 웃기면서 특별했는데 처음에 나갈까말까 망설이다 결국 나갔다. 

올해 6월에 학교에서 장학생후보로 추천을 받아 그동안 면접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얼마전 영국유학을 결정하면서 장학생 사퇴서를 제출했었다. 신청서 및 관련서류는 장학재단에 이미 보내진 상태지만, 면접이 10월이고 난 곧 떠나야하니 장학생이 되든 안되든 포기한다는 내용의 서류였다. 그 장학재단에서 선고결과가 발표되었는데 이번에 응모자들 대부분이 훌륭한 학생들이라서 면접없이 서류로만 장학생들을 결정했단다. 그리고 재단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내가 평가가 제일 좋았단다. 한국인이 일본에 와서 아프리카쪽 연구를 하는 것도 참신한데 연구내용이 너무 유니크해서란다. 게다가 나의 수상한 이력 때문에 지금 한창 바쁠 때라 생각되지만 꼭 한번 만나고 싶으니 나올 수 있느냐고 묻는 게 아닌가. 처음엔 밥 사주지말고 그냥 돈으로 주시지, 라고 속물처럼 생각하다가 결국 그 자리에 나갔고, 도쿄에 있는동안 내가 방문한 가장 좋은 호텔일 것 같은 곳의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게 됐다. 

이사장은 91세의 할아버지에 이사는 거의 80에 육박한 할머니였다. 이 할머니는 40대에 접어들었을 때 10년간 돈을 벌어 50대에 미국유학을 다녀오신 재미있는 분이었다. 석사부터 박사까지 미국에서 하셨다는데 박사논문 제출까지 무려 8년이나 걸렸다며 이야기내내 오랜 미국생활을 자랑하시느라 여념이 없으셨다. 물론 나에 대한 무한애정을 드러내시며 마치 나를 당신의 손녀처럼 대해주셨다. 작년에 (럭셔리) 크루즈에서 만난 이 분들이 장학재단을 하나 만들자 의기투합을 했고, 올해 첫 결실을 맺은 거였는데, 내가 당신들의 장학재단 첫 장학생이 되지 못하는 게 몹시 아쉬워 식사초대 계획을 세웠단다. 어르신들이 연세에 비해 피부도 팽팽하고 아주 건강해보였는데, 그 이유가 돈 덕분인지 이분들의 건강한 삶 덕분인지 헷갈렸지만 나도 나이 들어 이분들처럼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학재단의 룰이 장학금은 일본에서 거주하는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수여하는 거라 나는 해당사항이 없지만 앞으로 어떤 형태로든 내가 가는 길을 당신네들 방법으로 응원하고 싶단다. 그래도 어차피 결정된 거 주시지, 라고 내 속마음을 드러내고 싶었는데 결국 잘 참았고, 내 코가 석자인데 앞으로도 공부만 하고 싶어하는 학생들 많이 지원해주셨으면 한다는 당부말을 날리며 자리를 마무리했다.

그림자처럼 내가 모르는 자리에서 내 삶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데 이 두 분도 그럴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여자분은 어제가 첫 만남이었는데 돌아가실 때 자기가 소장하고 있는 책을 나한테 다 줄 테니 좋은 곳에 써 달라신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속도로 내 인생이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때문에 요즘 내 마음이 정리가 잘 안됐었는데, 우울할 틈도 불안할 틈도 없이 난 그저 닥치고 열심히 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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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운동을 직접 하는 것 보다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현장에 가서 직접 보는 것 보다 구석구석 다 보여주는 TV 시청을 선호하는 편이다. 물론 해설자가 혀가 짧지 않아야하고, 수다스럽지 않아야하고, 너무 대한민국을 편애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그렇다. 집에 스포츠경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없어서 아주 어릴 때부터 혼자 보는 거에 익숙한데, 내가 TV를 보다가 박수치며 환호성을 지르면 가족들도 그러려니 그런다. 시차가 다른 나라에서 하는 올림픽대회나 세계선수권대회를 밤늦게 거실에 혼자 앉아 보는 나를 가족들은 좀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내가 그 경기를 보면서 느끼는 희열감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는 그런 것이다. 

그나마 외국 생활이 오래되면서 이제는 TV로 경기보는 일도 내겐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동영상 사이트들을 통해 볼 수 있지만, 이미 기사를 통해 경기결과를 알아버려 김이 빠진 상황이고, 그것도 유튜브가 아닌 이상 버퍼링 때문에 보는 일이 쉽지가 않다. 축구 국가대표 A매치 경기는 대부분 봐주는 편이었는데 요즘 그런 건 아예 포기했다. 좀 특이한 스포츠 기자가 그림처럼 경기관련 기사를 썼을 경우, 그 기사를 읽으면서 경기내용을 상상하는 것으로 대신할 때가 많다. 베이징 올림픽 때 일본 TV에서 찔끔찔끔 보여주는 한국팀 출전 경기를 볼 때는 아주 속터져 죽는 줄 알았다. 요즘은 꼭 보고 싶은 경기가 동영상으로 올라오면 그때 혼자 스크린 앞에서 경기를 보며 감격하는 일이 많다.

한국 유학생 하나가 왜 북경올림픽에 김연아와 쇼트트랙팀이 안나왔느냐는 생뚱맞은 질문을 해서 웃다가 내가 너무 오래 쇼트트랙에 무심했구나 하면서 동영상을 찾아봤다. 아직 한겨울은 아니지만 2009/2010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월드컵이 한창 열리고 있었다. 


안현수가 뛰는 경기를 다시 못봐서 아쉽지만 그래도 여전히 다들 어찌나 잘하는지 원. 순발력이 좋아서? 라고 단순하게 설명하기에는 대한민국 국가대표 쇼트트랙팀에게는 뭔가 특별한 게 있다. 한국 국가대표 출신 코치가 지도하는 외국 쇼트트랙팀이 일취월장하는 것 보면 한마디로 설명하기 힘든 비장의 무기가 확실히 있는 것 같다. 쇼트트랙 장거리 계주 경기는 끝날 때까지 순위를 예측하기 힘든데 언제나 한편의 영화로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토리노 동계 올림픽 때는 쇼트트랙 계주 경기를 보려고 수업을 빠진 적도 있는데, 고맙게도 우리 선수들은 수업 한 시간 빼먹은 게 아깝지 않을 명장면을 연출해주었다. 

우리나라 국가대표 쇼트트랙팀 경기 전략은 장거리 육상경기에서 아프리카 선수들이 뛰는 전략과 아주 비슷해 보인다. 계속 뒤따라가다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힘을 막판에 발휘, 눈깜짝할 사이 앞의 선수들을 쭈욱- 제치고 결승선에 제일 먼저 도착한다. 얼음판도 제대로 없고 선수 풀 자체가 다를 우리나라 선수들이 캐나다, 미국, 중국 선수들을 따돌리고 우승할 때는 내가 직접 경기를 한 것처럼 기쁘다. 

절대강자 대한민국 쇼트트랙 국개대표팀 출전 경기를 보면서 요즘 내가 시달리고 있는, 이유를 알 수없는 불안함과 우울함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실로 오랜만에 대한민국 만세다!! 
    
*사진출처
http://www.kyeongin.com/news/photo/200711/354403_55260_3759.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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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비자 신청도 끝냈고, 짐도 다 부쳤으니 마음이 홀가분해야할 것 같은데 이상하게 많이 불안하다. 일본에 올 때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당최 이유를 잘 모르겠다. 가서 개고생할 걸 생각하니 두려운 건지 내 마음이 정리가 잘 안된다.

이것저것 사용하던 이메일 주소를 하나로 통일하면서 나한테 한번이라도 메일을 보낸 사람들 중에 연락을 꼭 하고 싶었던 사람들에게 어제 메일을 죽 보냈다. 반송된 메일들이 의외로 많았다. 그것밖에 연락처가 없는 사람들은 이제 연락을 하고 싶어도 못하게 되어 아쉽다.

의외로 여전히 날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아 속속 답장들이 도착하는 중인데 사람들 사는 게 참 재미있다. 여자인 친구들은 대개 결혼을 해서 애가 하나 혹은 둘 이상이 되어 물어보지 않아도 아줌마생활에 완전히 적응들을 한 것 같고, 남자인 친구들은 문장에서 아저씨 필이 마구마구 느껴진다. 나처럼 여전히 헤매며 사는 사람들은 없는 것 같다. 대학 때 내 지도교수님은 내게 4년 내내 반말을 하셨었는데 지금은 깍뜻한 존칭어로 반가움을 표시해주셨다. 

10년도 전, 지금처럼 모두가 인터넷이랑 친하기 전에 웹진을 하나 만들다 결국 포기한 적이 있는데 그때 필진으로 참여했던 분들 중에 쟁쟁한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 생각해도 미안해서 다들 잘 있는지 궁금하다는 안부 메일을 띄웠는데 이 사람들이 아직도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인터넷 카페 비슷한 것을 운영하던 분이 계셨는데 좋은 추억이었다며 개인블로그를 알려주셨다. 여전히 마음이 따뜻한 글들을 업데이트하고 계셨다. 웹진에 문화계 기대주를 인터뷰하는 코너가 있어 첫 인터뷰 대상자로 장진 씨를 선정해 기사를 만들었는데 이제는 너무 유명해져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당시 장진씨를 인터뷰했던 친구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일을 하고 있다. 머리 숱이 적은 장진씨가 사진은 꼭 이것으로 실어달라고 직접 찍은 사진을 여러장 줬었는데 지금은 사진도 인터뷰자료도 남아있지 않다. 내 떠돌이 생활에 최후까지 살아남는 물건들이 뭐가 있을지 참으로 궁금하다. 난 그때 석공예가 곡천 김봉준 선생을 인터뷰했었는데 이분은 몇년전 돌아가셨다. 장지가 강원도 인제라서 친구와 새벽에 거기까지 가면서 곡천 선생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만날 때마다 예술이란 무엇인지, 예술가로 사는 삶이란 무엇인지, 한국의 아름다움, 인생을 즐겁게 사는 법 등을 아주 쉽게 설명해주셨는데 그 말씀이 몹시 선명해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당시 필진 중에 일본인도 한명 있었는데 다음주에 같이 밥 먹자는 답장이 왔다. 당시에는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제대로 몰랐는데 10년이란 세월동안 아주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웹진을 만들기 시작할 때부터 나를 도와줬던 친구가 있었는데 지금은 어디에 사는지, 어떻게 사는지도 모른다. 우리네 인생이 때론 내가 간절히 원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흘러갈 때가 있다.

세월은 변함없이 흘렀고, 나도 시간을 따라 여기까지 와 버렸다. 내가 잘 왔는지 잘 모르겠고, 지금 잘 가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내가 확실히 아는 한가지는 앞으로도 갈 길이 멀다는 것이다. 난 여전히 내 미래에 불안해하고 있지만 이렇게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 덕분에 어제 오늘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칭찬만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게 아니라 아름다운 추억도 상상할 수 없는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다시 그 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그때 만난 그 사람들 언젠가 다시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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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애니메이션 <짱구는 못말려>의 작가 우스이 요시토(臼井儀人)씨가 등산하다 실족사했다는 뉴스를 좀전에 봤다. 무슨 이런 일이 다 있나 싶었다. 

<짱구는 못말려>를 처음 본 건 한국이 아니라 중국에서였다. 중국 TV 에서도 방영이 되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직도 짱구의 목소리를 연기한 중국의 성우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워 후외이 라일러!!(저 왔어요!!)" 그 만화로 중국어 공부하는 유학생들이 많았는데, 처음엔 무슨 저런 어이없는 꼬마가 다 있나 그랬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짱구만화를 다시 볼 기회가 있었는데, 이런, 성우 목소리가 언어만 다르지 거의 흡사해 깜짝 놀랐다. 그리고 일본에 와서 다시 짱구를 만났다. 오리지널 짱구 목소리를 비로소 들을 수 있었는데 한국, 중국의 성우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게 되었다. 전부 한사람이 연기하는 것처럼 목소리가 아주 비슷하다. 만화를 그다지 좋아하지않아 전부는 못 봤지만, 내 생각에 <짱구는 못말려>는 어른 대상의 만화이지 아이 대상의 만화는 확실히 아닌 것 같다. 짱구가 하는 대화며 행동이 몸만 아이이지 이건 완전히 어른이다. 볼 때는 재미있게 봤지만 짱구 또래의 아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만화는 절대 아니었다. 그래도 이제 작가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니 많이 아쉽다.



한국에서 우스이 요시토 씨를 만난 적이 있었다. 만화페스티벌이었는지, 애니메이션페스티벌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 우스이 요시토 씨가 행사 참여차 한국에 왔을 때였다. 행사가 끝나고 이외수 선생님 댁으로 자리를 옮겨 담소를 나눴었는데, 그림 이야기가 나왔고, 기념하기 좋아하는 친구들 덕분에 난 우스이 씨가 그 자리에서 그린 춤추는 짱구 그림을 얻을 수 있었다. <아기공룡 둘리>의 김수정 선생님도 오셨었는데, 내게 요리하는 희동이 그림을 즉석에서 그려 주셨다. 두 그림 다 서울집 어딘가에 잘 모셔져 있을 텐데 문득 다시 보고 싶어졌다.

두분 모두 한 나라를 대표하는 만화작가였는데 그 위상의 차이가 엄청나게 커서 좀 놀랐었다. 김수정 선생님은 혼자 그곳에 오셨고, 당시 우스이 요시토 씨는 수행하는 사람만 여덟이 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출판 관계자, 작가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는 카메라맨, 매니저 등등. 내가 기억하는 우스이씨는 우울증이 있지 않나 싶게 감정의 기복의 커보였는데 그래도 만화작가답게 아주 유쾌한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왜 혼자 등산을 하다 그렇게 생을 마감했는지 의문이고, 이제 다시 그의 작품을 볼 수 없다니 안타깝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사진출처: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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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산책하러 나가다가 기숙사 앞에서 같은 층에 살던 한국인 유학생을 만났다. 1년 동안 교환학생으로 왔었는데 모든 과정이 끝나 오늘 한국으로 돌아간단다. 나리타공항까지 같이 갈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는데, 잠도 안오고 방에서 할 일이 없어 일찍 나와 그냥 서성거리고 있다가 나를 만난 거였다. 산책은 좀 늦게가지, 하면서 그친구와 두런두런 몇마디 나누었는데, 만날 때마다 늘 느낀 거였지만 참 야무진 학생이다.

유학와서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느냐고 물었더니, 후회는 하지말아야지 했는데 후회없으니 그런 것 같다고 당차게 대답하는 게 아닌가. 연구와 별개로 일본에 와서 책읽는 습관이 생겨서 좋고,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인정하게 되어 그것도 큰 소득이란다. 타인의 취향을 인정한다는 게 쉬운일이 아닌데 이 친구는 1년만에 그걸 터득했단다. 자기가 확실하게 내적으로 성장했음을 느꼈다고 말했을 때, 이 친구가 무척이나 대견스러웠다.

난 아직도 유학생이지만 외국에 나와 있으면서 그동안 많은 나라에서 온 유학생들을 만났다. 학위취득 과정이 아닌 유학생들 중에는 외국에 왜 나왔나 싶을만큼 엉망진창으로 생활하는 학생들이 많다. 특히 언어연수생이나 교환유학생들의 경우 현지에 적응하자마자 떠나야하는 경우가 많아 구체적인 계획없이 유학을 왔다가는 시간낭비하기 딱 좋다. 윗층에 사는 일본학생 하나는 꿈이 컸는데 사귀던 외국여학생이 덜컥 임신을 하는 바람에 모두 접고 여학생이 사는 나라에 가서 결혼해 아이 키우면서 영어교사로 살겠단다. 이제 스물이 좀 넘은 여학생은 일본어 공부하러 왔다가 1년동안 일본어도 못 배우고 아이만 하나 얻어 돌아갔다.

중국에서 유학생활 할 때는 나이 먹어서 유학 온 한국 남자들이 술마시고 추태부리는 게  늘 거슬렸는데, 일본에 유학와서는 이제 갓 스물 넘은 학생들이 이 사람 저 사람과 쉽게 동거하며 학업과는 거리가 멀게 생활하는 게 내 눈에 많이 거슬린다. 외국인과 사귀는게 무슨 훈장인지 묻지도 않았는데 제 남자친구가 외국인이거든요, 하면서 얘기를 꺼내는 한국인 여학생들이 의외로 많다. 며칠전 우리학교 유학생과의 과장님이 식사초대를 해서 만난 적이 있는데, 과장님이 하시는 말씀이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유학까지 와서 공부보다 아르바이트에 더 치중하는 학생들도 많고, 내가 유학을 왜 왔는지 방황하다 자살을 하거나 본국으로 그냥 돌아가는 학생들이 최근에 늘고 있단다. 유학의 본분에 충실하지 못한 학생들도 불쌍하지만, 자기관리 못하면서 문란하게 생활하는 애들 만나면 진짜 욕나온다. 

모든 유학생들이 오늘 아침에 만난 한국인 학생처럼 성실하게 유학생활을 한다면 유학은 장려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여전히 쟤는 왜 일본까지 와서 지 부모망신, 나라망신을 시키나 싶은 학생들이 눈에 많이 띈다. 이것도 타인의 취향이니 인정해줘야 하는 건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그 친구의 앞날에 다시한번 무궁한 영광이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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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면 추억  (2) 2009.09.07
Posted by 윤오순
일본에 와서 첫 한달간은 자전거 없이 지냈었다. 통학을 전철로 했었고, 왠만한 거리는 걸어다니던 습관이 있어 먼 줄도 모르고 처음에는 대개 걸어 다녔다. 그러다 게스트하우스에 사는 조선족 아가씨한테 자전거를 한대 얻었다. 산악자전거를 사게 되면서 필요가 없어졌단다. 내가 보기에 너무 멀쩡해서 덜컥 받은 후 거의 2년을 타고 다녔다.

그 사이 새것이나 다름없는 자전거가 두대나 생겼지만 전부 옆방의 김상한테 줘 버렸다. 늘 내 자전거를 빌려타는 통에 귀찮아서 내가 타던 헌 자전거가 아니라 새 자전거를 선물로 줬는데 한달도 안되어 잃어버렸단다. 그리고 몇개월간 내 자전거를 다시 빌려 탔었는데 또 한대의 자전거가 내게 생겼다. 이번에도 헌 게 아닌 새 것을 줬는데 그만 또 잃어버렸단다. 

자전거 세울 수 있는 곳이 아니면 가끔 날을 잡아 수거를 해가는데 아마 부주의하게 자전거를 세워놓는 바람에 그런 일이 생긴게 아닌가 싶다. 내 친구는 걔 혹시 중국인이냐고 물어보면서 아마 다른데다 팔았을지도 모른다고 그랬지만 난 김상을 믿기로 했다. 그러나 개인의 부주의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는 행동을 반복하는 사람을 난 신뢰하지 않는다.

Autumn Cycle
Autumn Cycle by moriza 저작자 표시


올초 공부 끝나고 돌아가는 한국유학생이 자전거를 두대나 선물로 줬다. 일본에 와서 다섯번째 자전거 선물이다. 다들 팔고 일본을 떠난다는데 그런 자전거들이 전부 나한테 돌아왔다. 이 두대의 자전거는 기어도 있고, 산지 얼마 안된 자전거라 내겐 거의 벤츠급이었다. 같은 층의 한국 학생이 돈 아낀다고 학교를 걸어다닌다는 얘기를 듣고 한대를 냉큼 줘버렸다. 나보다 과정 일찍 끝나면 팔지말고 다시 돌려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리고 드디어 헌 자전거를 옆방 김상에게 인도하고 요즘은 그 벤츠를 타고 다닌다.

김상에게 세번째로 자전거를 주면서 그 얘기를 넌지시 했다. 잃어버리지 마라. 누가 그러더라. 너 혹시 자전거 파는 거 아니냐고. 내 자전거 세우는 곳에 아직도 있는 것 보면 이번엔 안 잃어버리고 잘 타고 다니는 것 같다. 내 벤츠와 한국학생이 타던 벤츠는 내가 영국으로 떠나기 전 이곳에서 만난 한국인 부부에게 주기로 약속했다.

다들 몇대씩 잃어버리는 자전거를 지금까지 난 한번도 잃어버리지 않았지만 사고는 몇번이나 경험했고, 수술을 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그나마도 없어 부러워하는 자전거전용도로가 이곳에 마련되어 있지만 좁은 편이라 역주행하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위험하기 짝이 없고, 자전거전용도로와 자동차용도로 사이의 둔턱이 높아 비가 오는 날은 미끄러지기 십상이다.

오늘 학교에 가다가 자전거를 타기 일보직전의 할아버지 한 분을 보게 되었다. 신호가 급하게 바뀌는 바람에 졸지에 할아버지 꽁무니에서 자전거를 멈추게 되었다. 할어버지는 자전거전용도로에서 자전거를 끌고 도로로 이동하신 상태라 할아버지가 출발하시면 곧 출발해야지, 하고 대기중이었는데 그냥 계속 멈춰서 계시는 거였다. 그 할아버지는 전방의 신호등을 보시고, 앞뒤를 또 몇 번이나 보시고, 크게 숨도 몇번 고르시고, 그러고 나서 안장에 앉아 페달을 밟으시는 것이었다. 일본의 어른신들을 만나면 한국의 어르신들이 자주 떠오르는데 지혜롭고 매사 조심스러워하시는 게 서로 꼭 닮았다. 

할아버지가 출발하신 후 뒤따라 나도 힘차게 페달을 밟으며 할아버지처럼 자전거를 타고 다녔으면 사고 날 일은 없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더불어 했다. 내 경우 쌍방과실이었지만 좀더 여유롭게 출발하고, 저 할아버지처럼 앞뒤를 몇번이나 살피는 조심스러움이 있었다면 생기지 않았을 일이었다. 사고 나면? 나만 손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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