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방학이다. 한학기를 어떻게 버틸까 내 스스로가 의심스러웠는데 결국 시간이 해결해줬다.
바쁘다는 핑계로 블로그 관리도 제대로 못했는데 날마다 60 정도에서 조회수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걸
보고 이곳에 꾸준히 오시는 분들이 어떤 분들인지 살짝 궁금해졌다.
하라주쿠의 오모테산도 힐즈 내부
지난 주 대학원 다닐때의 선생님이 도쿄에 오셨었다. 자칫 못 만날 수도 있었는데 연락이 겨우
닿아 만나뵐 수 있었다. 프로젝트 때문에 오셨는데 내게까지 연락을 해 주신 덕분에
좋은 말씀도 많이 듣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오랜만에 눈요기도 실컷했다.
선생님을 만나러 가는 길까지의 차비만 달랑 들고 갔었는데 가난한 유학생의 지갑 사정을 너무나
잘 아시는 선생님의 배려 덕분에 짧지만 내겐 아주 즐거운 여행이었다.
롯본기 힐즈 52층에 있는 모리 미술관에 가서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작품들을
보며 오감이 요동치는 경험을 했다. 우리나라에서 이름깨나 날리는 건축가들이 이 사람에게 빚을 많이
지고 있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현대 건축은 아직도 이 사람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도. 산토리 미술관에서는 '물과 삶'이라는 주제로 진행되는 전시를 감상했다. 흔한 테마인데 전시
구성이 독특해 아, 또 감동받았다. 물이 주는 그 다양함이라니. 무리를 해서 들어간 신국립미술관의
'일본 미술 100년전'도 역시나 가기 잘한 전시였다. 우리나라 미술대전이 여전히 일본의 그늘 아래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나만의 착각인가.
참고로, 롯본기역을 중심으로 갤러리들이 많아 동선을 잘짜면 하루에도 여러 곳을 둘러볼 수 있다.
전시만으로도 배가 부를 지경이었는데 쇼핑을 가면 언제 뒤에 따라오셔서 내가 집었던 물건들을 다
계산하시는 통에 돌아오는 길에 가방이 묵직해질 수 밖에 없었다.
잔돈까지 탈탈 털어서 돌아가는 길에 차비에 보태라고 하신 후 선생님은 떠나셨다. 내가 지지리
궁상을 떨지 않았음에도 원래 유학생은 가난한 법이야, 이렇게 즐겁게 뭔가 베풀 수 있게 해줘서
오히려 내가 고마워, 이러시는데 할 말이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나도 언제가 될 지 모르겠지만 고학하는 유학생을 만나면 꼭 갚아야지,
그랬다. 한 여름에 도쿄를 다녀가신 산타클로스 덕분에 살면서 해야 할 일이 또 하나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