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사는 곳으로 이사온지 이제 딱 한 달이 되었다. 오던 날 눈뜨고 볼수 없을만큼 더럽던 방이며 부엌은 많이 깨끗해졌다. 내가 여기서 방을 공짜로 쓰면서 하는 일은 세 빌딩에 흩어져 사는 53명의 학생들을 관리감독 하는 것이다. 

전임자가 내 방을 너무 더럽게 써서 청소하는 데만 거의 한달이 걸렸다. 붙박이장이 부서져 벽이 휜히 보이는데도 그냥 살았나보다. 고쳐달라고 보고를 했는데 눈이 와서 사람이 못 오네, 휴일이라서 안되네, 이런저런 말도 안되는 핑계를 대더니 15일만에, 그것도 간단하게 고쳤다. 참나원. 이런데서 어떻게 음식을 해먹나 싶었던 부엌은 전단지를 방 앞에 붙이고 하룻만에 해결했다. 시간을 하루 줄테니 각층 6명이 상의해서 청소를 하든지, 만일 안하면 전문 청소원을 부를 것이고, 이럴 경우 1인당 100파운드 벌금에 청소원 부르는 값을 나눠서 걷을 테니 마음대로 하라고 그랬다. 하루 지나서 전단지는 필요없어졌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걸 왜 안하고 사는지 원. 여긴 경관도 좋고, 방값이 비싼만큼 시설도 좋은 편이라 조금만 정리하고 살면 쾌적하게 지낼 수 있을 텐데 도저히 이유를 모르겠다. 

난 이런 일을 하던 전임자가 살던 방에 살고 있는데 아무래도 그 영국여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화장실을 어떻게 썼는지 청소아줌마가 일주일을 매일 와서 청소를 해 겨우 얼룩을 제거했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거실에 이삿짐을 흩어놓고는 거의 보름이 지나 가져갔다. 사무실에 보고를 했는데 또 핑계가 똑같다. 눈이 와서 못하는 것 같다, 휴일이라서 못하는 것 같다 등등. 내 층에 사는 애들이 나한테 그런다. 냄새나는 쓰레기 봉지를 부엌에 몇개나 내놓더니 우리한테 치우라고 했다고. 도대체 어떻게 사는지 그 방 구경하고 싶었다고. 그 게으른 영국여자는 다른 기숙사에서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 

지난 2월 1일에 6명씩 사는 각 층을 전부 돌아다니며 학생들을 만나 불편한 것은 없는지, 고장나 수리할 것은 없는지 물어봤다. 다들 하는 얘기가 우리가 보고하면 뭔가 바뀌는 게 있느냔다. 당연히 바뀌지, 했는데 학생 하나가 작년 10월부터 화장실 전구좀 갈아달라고 했는데 여전히 어둠속에서 산단다. 설마 하면서 불만사항을 접수했는데 이게 엄청났다. 어떻게 다들 비싼 등록금에 비싼 방값을 주고 살면서 이렇게 무감하게 살 수 있나 싶었다. 당장 그날밤에 보고서를 작성해 사무실에 보고를 했다. 

그리고 지난주 목요일. 내 층 부엌이랑 내방 전체가 전기가 나갔다. 담당부서에 전화를 했는데 전기점검 중이라 한시간 후에 들어온댄다. 아무 생각 없이 연구실에서 11시쯤 나와 방에 돌아왔는데 여전히 전기가 안들어온다. 게다가 인터넷도 안된다. 재앙이 따로 없었다. 그리고 화요일 아침까지 그 상황이 지속되었다. 사무실의 시설관리 담당자한테 날마다 보고를 했는데 달라지는 게 없었다. 그래서 너는 누구한테 보고를 하느냐고 했더니 건물 하나를 알려준다. 그 건물을 찾아가 담당자를 불러 내 상황이 보고가 되었느냐고 했더니 보고가 안되었단다. 그럼 그렇지. 그 건물을 나와 지난주에 보고한 게 어느 정도 진행이 되었는지 불만을 얘기했던 학생들을 찾아가 물어봤더니 아무도 오지 않았단다. 원래 그렇단다. 영국사람들은 원래 그렇단다. 무슨 이런 개같은 경우가 다 있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고, 기다리는 일만 남았는데 생각해보니 도저히 안되겠다. 화요일 새벽에 학생복지를 담당하는 최고 상관한테 장문의 불만메일을 보냈다. 난 도저히 너네가 하는 일을 잘 모르겠다. 학생들이 담배피면 그 자리에서 벌금을 내라고 하고, 부엌을 더럽게 써도 벌금을 내라고 하고, 등록금이며 방값을 제때 안내면 이유를 막론하고 쫓아내던지 이자까지 청구하지 않느냐. 그러면 너네도 학생들이 요구하는 게 있으면, 그럴 때 바로바로 시정을 해야하지 않느냐. 화장실이 막혔다고 보고를 했는데 왜 일주일이 넘도록 아무 피드백이 없느냐. 내 경우도 마찬가지다. 전기가 나가 생활을 못한다고 보고를 했으면 누가 와서 체크라도 해야하지 않느냐. 내 층은 내가 살고 있으니 뭐가 잘못되면 내가 계속 너네한테 보고를 하는데 다른 층은 어떻겠느냐. 이런 시스템으로 어떻게 학생들을 계속 받을 것이며, 대외적으로 좋은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겠느냐는 내용이었다.

그날 오전에 상관은 뭐가 문제인지 각 담당자를 불러 체크를 할 것이니 기다리라는 메일을 보냈고, 담당자는 나한테 네가 보낸 보고 내용이 너무 많아 한번에 처리를 할 수 없으니 좀 인내를 하라는 메일을 화가 난 뉘앙스로 보냈다. 그리고 전기문제는 보고를 했는데 그쪽 건물 담당자가 내 방을 못찾아서 체크를 못했다는 말도 안되는 변명을 했다. 그냥 알았다고 답변을 보냈다. 

어제 내 방이며 부엌에 전기가 들어왔다. 서로 하는 일이 다른 사람들이 어제 오늘 우리 층에 많이 다녀갔다. 부엌에 있는, 전기로 쓰는 레인지에 불이 안 들어오는 게 많다고 보고했는데 그것도 오늘 다 고쳤다. 아니 새로 다 바꿔줬다. 내 층에 작년부터 살던 친구 하는 말이 지난 여름부터 레인지에 문제가 있었단다. 무던한 사람들. 환기구 담당하는 사람들, 전구 담당하는 사람들, 화장실 배수 담당하는 사람들이 점검을 하기위해 차례로 다녀갔다. 지금도 계속 오고 있다. 조금 전 환기구 점검하던 영국청년에게 지금 이층만 하느냐고 했더니 빌딩 6개 전부를 점검 중이란다. 홍콩에서 온 패니한테 네 방의 파일함 문짝 부서진 거 수리되었느냐고 물었더니 어제 누가 와서 고쳐놨단다. 작년 12월부터 보고를 했다는 데 이제야 수리된 것이다. 폭풍이 지나간 느낌이다.

런던이 세계창조도시 수도를 꿈꾼단다. 우리나라 공무원들이며 창조도시 관계자들이 발이 닳도록 뭘 배우겠다고 출장들을 오고 있다. 과거의 명성을 되찾자며 1980년대부터 크리에이티브 브리튼을 외치고 있는 영국이지만 단언컨데 영국은 다시 세계무대에서 주역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들이 너무나 많다. 미안하다, 영국아. 지켜주지 못해서.

그나저나 계약기간 6월이 되면 불만이 너무 많다고 아무래도 이 일에서 짤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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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