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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1.29 연구자의 책임감 1
  2. 2013.11.17 있을 때 잘 해
  3. 2013.11.07 고마워요, 선생님!
  4. 2013.10.29 수돗물에 관하여 2
  5. 2013.10.20 나쁜 놈들!
  6. 2013.10.01 이모티콘 단상
  7. 2013.09.23 외국인이 본 한국문화 (1)
  8. 2013.09.22 잡스가 바꾼 문화
  9. 2013.08.25 일본인에 대한 편견 3
  10. 2013.08.18 반가운 소식

인터뷰가 필요해 여기저기 연락을 하는 중인데 다들 흔쾌히 시간을 내주겠다고 그런다. 내가 누군지도 잘 모르면서 이런저런 연구에 귀하의 말씀이 필요하다고 했더니 도움이 될 지 모르겠지만 만나주겠다고 겸손하게 얘기한다. 소속기관 홈페이지에 나온 이메일로 직접 연락한 사람들도 있고, 지인을 통해 몇 다리 건너 연락을 취한 사람들도 있다. 식사는 제가 대접할 게요, 커피는 제가 대접할 게요, 이런 분들도 있었다. 내가 부탁하는 입장인데 말이다.


다른 나라에서 연구자로 지내면서 인터뷰할 일이 많았다. 기사를 쓰기 위해, 혹은 논문을 쓰기 위해. 인터뷰를 요청하면 다들 거절하지 않고 시간을 내 준다. 어떤 인터뷰는 30분도 안 걸려 끝나지만, 어떤 인터뷰는 몇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준비를 많이 한 인터뷰일수록, 그리고 내게 호의적인 사람들과 하는 인터뷰일수록,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인터뷰 시간이 훨씬 오래 걸린다.


지식인의 책임감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공부하면서 연구자의 책임감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연구자의 할 일이라는 게 데이터의 수집과 분석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터. 내 개인적인 목적, 예를 들면 기사작성이나 학술논문 작성을 위해 난 사람들에게 귀한 시간을 공짜로 달라고 했다. 가끔 작은 선물로 사례를 하기도 했지만 대개는 인터뷰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기사가 났어요, 이런 논문을 썼어요, 라고 피드백을 줄 때도 있었지만 다시 못 만나거나 연락이 안되는 사람들에게는 그나마 피드백을 못하기 일쑤였다.  


내가 커피가 되었든, 관광 혹은 에티오피아가 되었든 분야를 가리지 않고 공짜로 컨설팅을 해주거나 강연을 해 줄 때 잘 모르는 사람들은 너 미쳤냐고, 사례비를 요구하라고 그런다. 일종의 프로보노 활동인데 그건 내가 바보이거나 미쳐서 그러는 게 아니다. 유학생활 초기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적이 있었지만 공부를 끝내는 동안 동문회 장학금, 기업 장학금, 외국 정부 장학금, 연구과 장학금 등 여러 단체에서 금전적인 도움을 많이 받았다. 자기 나라 사람도 아닌 외국인 유학생에게 기꺼이 장학금을 준 단체들이 한 두 곳이 아니었단 말이다. 영국에서 외국인 유학생이 장학금 받기가 힘들다고 들었는데 난 공부하면서 학교에서 받는 것 말고도 두 개의 단체에서 장학금을 따로 받았다. 그러니 누가 내 알량한 지식이 필요하다고 하면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사실 한국에 갈 때마다 지인들로부터 받은 다양한 금액의 금일봉들도 내가 프로보노 활동을 망설이지 않는 이유다. 나랑 같은 해에 영국으로 유학 온 분한테 박사과정 마무리하기까지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들었느냐고 물어봤더니 한 2억 쯤 쓴 거 같다고 그런다. 어떻게 보면 무일푼으로 영국에 와서 공부하는 동안 심각하게 돈 걱정 할 필요가 없도록 단체가 되었든 개인이 되었든 누군가가 내게 2억을 쏟아 부은 거다. 내가 무슨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 말이다. 


그렇게 난 그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경제적인 도움만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게 기꺼이 귀한 시간을 제공해줬던 사람들이 정말로 많았다.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는 '시간'을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기부받았던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내가 재능기부든 자원봉사든 프로보노 활동을 한다고 하면 내가 미쳐서가 아니라 내 나름의 은혜갚는 일이라 생각해주시면 고맙겠다. 물론 그럴 가치가 있는 곳에서 그런 활동을 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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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한국에 사는 외국인 친구한테 최근에 들은 이야기다. 왜 한국인 커플들은 공공장소에서 큰소리로 싸우느냐고. 주의 깊게 보지 않았는데 그런 것도 같다. 젊은 커플, 나이든 커플 연령 불문인데 심한 커플들 중에는 전철 같은 데서 여자가 남자 뺨을 때리기도 한단다. 자기는 무슨 일로 싸우는지 잘 모르겠지만 주변에 있는 한국인들은 그 사람들 이름은 뭔지, 뭐 때문에 싸우는지까지 다 알 거라고 그랬다. 나도 그렇게 싸우는 커플들 주변에서 아, 나라면 이랬을 텐데 감정이입까지 해 본 경험이 있어 친구 말이 맞다고 그랬다. 외국인한테 부끄러운 모습을 모여주지 말아야 한다는 사대주의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다. 같은 한국 사람 입장에서도 쪽 팔린 일 아닌가. 애들도 아니고 다 큰 어른들이 남들 보는 앞에서 무슨 짓인가. 사랑하기도 부족할 판에 폭행까지 동반한 언쟁을 공공장소에서 펼치는 건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좀 전에 헬기가 건물과 충돌해 기장과 부기장이 목숨을 잃었다는 기사를 봤다. 왜 짙은 안개를 뚫고 무리한 비행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고, 그 사람들이 아무 준비 없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에 내일 처럼 마음이 아프다. 내가 언제 죽을 지 알면 미리 버릴 물건, 남길 물건 등을 정리할 수도 있을 테고,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말들도 할 수 있고, 매듭을 제대로 풀지 못했던 인간관계들도 어떻게든 해결을 하려 노력하지 않을까. 오늘 아침 늘 출근하는 남편으로, 아버지로, 혹은 아들로 집을 나섰을 기장과 부기장은 그런 준비는 커녕 가족들에게 나 없이 잘 지내라는 말 한마디 못 하지 않았나. 그렇게 갑작스럽게 떠난 남편, 아버지, 아들을 남아 있는 사람들은 또 어떻게 기억할까.



엄마가 다니는 노인대학에서 노래를 한 곡 가르쳐줘서 배우는데 갑자기 아빠 생각이 나서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훔치는데 주변에 혼자된 사람들은 전부 고개를 들지 못하더란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수애가 나오는 '님은 먼 곳에'라는 영화에서 수애가 영화 타이틀과 같은 노래를 부르는데 그만 가사가 내 이야기가 되어 들리는 게 아닌가. ".....사랑한다고 말할 걸 그랬지 망설이다가 가버린 사람". 이 노래를 듣는데 그만 아빠 생각에 나도 눈물을 훔치고 말았다. 살아 계실 때 더 많이 사랑한다고 말 해줄 걸....



이것도 저것도 아니게 그냥 찜찜하게 지내던 사람이 있었는데 얼마 전에 내가 먼저 다시 잘 지내보자고 말을 건냈고 다음 주에는 같이 식사하자고 초대를 했다. 내가 굳이 사과까지 할 일은 아니었지만 그냥 그러고 싶었다. 마음 먹기가 힘들지 말을 뱉어내니 아무 것도 아니었다. 저쪽에서도 오해가 있었던 것 같은데...하면서 많이 미안해했다. 



가능하면 마음의 빚 없이 편하게 살고 싶다. 미안한 일, 잘못한 일 있으면 바로 사과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미루지 말고 그냥 내가 하면 된다. 갑자기 잘 지내라는 말 한 마디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말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조금 양보하면 공공장소에서 뺨까지 때리며 싸울 일은 없지 않을까. 서로 사랑해서 만난 사람들 아닌가. 시간 날 때 싸우느라 에너지낭비 많이 하지 말고 서로에게 좋은 말 많이 해주고, 좋은 시간 많이 보내자.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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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애플에서 공짜로 OS를 푼다고 해서 덜컥 다운로드를 해버렸고, 동기화가 안된 책들 약 3천 권이 사라졌고(자료 백업은 해 놓았지만 iBooks에 분류해서 다시 깔려면 시간이 걸린다), MS 워드는 종료될 때마다 이상한 메시지를 보여주고, 참고문헌 정리 소프트웨어인 엔드노트는 그만 먹통이 되어 버렸다. 



유료 소프트웨어를 여러 개 새로 깔아야 하는 문제도 걸려 있는 데다 이런 경우 애플스토어에서는 대개 고민하지 말고 전부 밀고 다시 깔라는 해결책을 준다. 지난 금요일에 연구과에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연락을 했더니 테크니션 둘 연락처를 줘서 메일을 띄웠는데 금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아무런 답을 못 받고 주말을 보내야 했다. 월요일에 그 중 하나한테 연구과에서 너한테 연락하라고 했다고 참조하는 메일과 함께 테크니션을 닥달하는 메일을 다시 띄웠다. 그 테크니션은 다시 내가 보낸 메일을 참조하게 해서 다른 테크니션에게, 난 맥 컴퓨터 담당이 아니니 네가 해결하길 바란다, 하는 메일을 내가 읽을 수 있게 보냈다. 허나 월요일, 화요일에도 난 아무 답변을 받지 못했고, 드디어 오늘. 수요일이었다! 아침 일찍 내겐 신과도 같은 지도교수께 이거 해결해줘라, 하고 그 동안 주고받았던 모든 메일을 참조하게 해서 메일을 띄웠다. 내 선에서 해결이 안되니 그냥 일러바친 거다.



마침 지도교수 만나는 날이라 학교에 갔는데 연구동 복도에서 연구과 스탭과 맥 전담이 아니라는 테크니션을 동시에 만났다. 연구과 스탭은 자기는 컴맹이라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도대체 모르겠으니 테크니션과 상의하라고 하고 바로 자리를 떴고, 테크니션은 너무 바빠 내가 보낸 메일을 읽지 못했고, 다른 테크니션은 치과치료를 하느라 학교에 안 나왔단다. 그리고 자기는 맥 담당이 아니라서 지금으로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고, 다른 테크니션은 이번 주에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분노와 짜증이 용솟음치는 걸 느꼈다.



나를 차갑게 대한 테크니션과 헤어진 후 바로 지도교수를 만났고, 커피 한 잔 얻어 마시며 나도 모르게 넋두리를 했다. 내가 보낸 메일 읽어 봤느냐, 지난 금요일부터 스트레스로 점철된 시간을 보냈다, 내가 아무래도 외국인 학생이라서 사람들이 무시하는 것 아닌 지 모르겠다, 더 이상 어떻게 나의 급한 마음을 저 게으른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는지 난 잘 모르겠다, 등등. 덧붙여 너 알다시피 난 좋은 건 여기저기 소문내는 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인데 우리 연구과를 어디 가서 좋다고 소문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등등.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교수는 즉시 책상으로 자리를 옮겨 독수리 타법으로 메일 한통을 쓰고는 내게 보여주었다. 맥 전문은 아니지만 연구과내 IT와 관련된 모든 이슈를 관리하는 그녀에게 보내는 메일이었다. 내용인즉슨, 



난 언제나 너에게 고마워하고 있고, 네가 바쁜 것 잘 알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바쁘고 급하다고 빨리 자기네들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너에게 연락을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바쁘고 급한 일도 현재 오순의 상황과는 비교할 수 없다.

난 네가 최선을 다해 그녀 일을 해결해줄 거라 믿는다.

그 일을 해결하는데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해라.



뭐 이런 정도의 짧지만 임팩트 있는 메일이었다. 아직 미팅이 남아 있는데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바빠서 내가 보낸 메일을 읽을 시간도 없어 네가 무슨 메일을 보냈는지 모른다던 그녀였다. 교수님은 친절하게도 라우드 스피커를 켜서 자신들의 대화를 들을 수 있게 해 주셨고, 그녀는 자기가 맥 전문은 아니지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다면서 전화를 끊었다. 교수님은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업데이트를 부탁했고, 난 고맙다고 인사하고 그 방을 나왔다. 



미팅이 끝나고 두 시간쯤 지나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소프트웨어를 구했으니 아직 학교에 있으면 행정실에서 만나자는 내용이었다. 메일도 읽을 시간이 없다던 그녀는 무려 4시간이나 내 맥북에어를 쪼물락거렸고, 정말 맥을 모르는 사람임을 내 앞에서 입증했다. 그렇게 그녀는 문제도 못찾았고, 해결도 못했지만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날 감동시켰다. 소프트웨어를 인스톨하고 이상한 메시지가 뜰 때마다 일일이 똑같은 사례를 웹에서 찾아 보는데, 덕분에 나도 IT 테크니션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가까이서 구경할 수 있었다. 감동은 감동이고, 결국 내 컴은 맥 전문 테크니션이 학교에 나오는 다음 주에 손을 보기로 하고, 연구과에서 노트북을 하나 빌리기로 했다. 더 이상 안되는 것 붙잡고 시간낭비 하는 게 싫어서 낸 결론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늘은 안되고 금요일에나 된단다. 맥이 아니라서 부팅하고 종료하는데 시간이 엄청 걸릴 걸 알지만 당장 딴 방법이 없었다.



미팅할 때 교수님이 왜 일찍 이야기하지 않고 며칠을 끙끙 앓았냐고 하시기에 내가 틴에이저도 아니고 이런 것도 혼자 해결 못하는 것 보여주기 싫어서 그랬다니까 일 생기면 혼자 해결하려하지 말고 그냥 무조건 자기한테 연락하란다. 내가 전생에 무슨 덕을 지어서 이런 좋은 지도교수를 만났을까, 영국에서 유학하는 내내, 매일매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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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영국 수돗물은 사용하고 시간이 흐르면 하얀 찌거기들이 주변에 눌러 붙어 보기에 안좋다. 필터로 걸러 마시더라도 여전히 찜찜한 이유다. 그래도 그 물에 세수도 하고 샤워도 하고 요리도 하고 다 한다. 


카타르 도하에 잠깐 머문 적이 있는데 바깥의 열기로 수돗물이 펄펄 끓어 제대로 손을 씼을 수 없었다. 그런 상황은 두바이에서도 마찬가지. 공항 화장실에서 양치질은 물론 세수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생수로 대충 씼고 나오면서 나라가 부자면 뭐하나 공공장소에서 편안하게 손 씼을 물도 없는 환경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균 기온이 30도가 넘기는 태국도 마찬가지. 찬 물을 틀어도 30도 이상의 따뜻한 물이 흘러 나와 땀 흘리고 한 샤워가 샤워가 아니다. 방콕의 괜찮은 호텔이라고 예약을 했는데 머무는 내내 밤새 에어컨을 틀어놔야해서 요란한 소음도 참아야 했다.


그리스 크레타에 갔을 때다. 수도 헤라클리온에서 제일 좋다는 별 4개 짜리 호텔에서 머물렀는데 역시나 물이 문제였다. 물탱크에 저장해 놓은 물을 써야 했는데 청소상태가 불량한지 냄새도 이상한 데다 수도 탭으로 온도조절이 안되어 이건 뜨거운 것도 차가운 것도 아닌 물이 흘러 나왔다. 나중에 양치질만은 생수로 하고 말았는데 샤워할 때마다 찝찝해 혼났다.    


북경에서 자주 가던 식당의 종업원이 자기 언니네 집에 초대를 해서 놀러간 적이 있다. 여덟 가구(여덟 명이 아님)가 수도 하나를 나눠 쓰고 있었는데 수도를 가운데 놓고, 사람들이 등목도 하고, 요리도 하고, 세탁도 하고 정말 다 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수돗물의 품질에 관한 논의는 사치겠지.


에티오피아 서남부의 카파에 있을 때 외국인들이 오래 거주했던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물렀는데 지붕 위에 큰 물탱크도 있고, 백열등 아래서 보니 깨끗해 보여 아무런 의심없이 양치질도 샤워도 그 물에 했었다. 허나 손톱 주변이 봉숭아 물을 들인 것 처럼 색깔이 변하고, 빨래한 옷들에 흙물이 드는 걸 보고 그제서야 이거 이상하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을 조사해 보니 필터로 제대로 거르지 않은 빗물이었다. 낮 시간에 샤워호수로 흘로 나오는 물 색깔을 본 후에는 그 물에 양치질은 꿈도 못 꾸는 일이 되어 버렸다. 비가 많이 내린 날은 흙물이 샤워호수로 그대로 흘러 나와 그나마 샤워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일주일간 물을 구할 수가 없어 물티슈로 고양이 세수를 해야했던 곳에 비하면 카파는 물 부족이 없는 곳이지만 깨끗한 물을 일상으로 사용하기는 힘든 곳이다. 관리인한테 물탱크를 자주 청소하느냐고 했더니 그럴 형편이 못 된다고 했다. 게스트하우스 운영에 대한 컨설팅을 부탁해서 외국인 게스트를 계속 받을 거면 물탱크도 청소하고 필터를 가는 게 어떠냐고 했더니 자기네들은 그 물을 음용수로 사용한다고 해서 지금은 물탱크 필터를 이야기할 단계가 아니란 걸 깨달았다. 큰 여행사를 통해 패키지 여행을 하는 외국인들은 수도 아디스 아바바에서 먹을 물 요리할 물을 차에 전부 싣고 여행한다.   


한국에 있을 때 수돗물을 그냥 마시면 큰 일 나는 줄 알았다. 허나 밖에 나와 보니 물만 보더라도 한국이 얼마나 살기 좋은 나라인지 새삼 느낀다. 수돗물을 사용하고 나면 그릇 주변이나 커피포트 주변에 하얀 결석 같은 것도 안 생기지, 좌우로 탭을 움직이면 찬물 더운물 온도 조절도 쉽지 않나. 공항에서 노숙 많이 하는 여행객들은 인천공항에 도착하면 천국이라고 생각할 것 같다. 한국인인 나한테도 그렇게 느껴지는데...


사진출처: http://together.khan.kr/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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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아직 밖이 어두운데 시끄러운 소리에 깼다. 문틈으로 들어오는 담배연기가 소음보다 더 강하게 전달됐다. 복도 끝 방에서 학생들이 아주 심하게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그저 조용히 하라고 얘기할 생각이었는데 문을 안 연다. 담배냄새는 계속 문틈으로 흘러 나오고 있었고, 내 목소리가 들렸는지 방 안에서 팬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끝내기는 그렇고 혼자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동료를 불렀다. 이른 시간이라 미안한데 어쩔 수가 없었다. 그냥 아무 일도 없었던 일로 하기에는 복도가 너무 좁고 내 목소리가 좀 컸다. 동료가 와서 문을 따고 들어가려는데 저쪽에서 저지를 했다. 바보들 아예 락을 걸고 있지! 


둘이 밀치고 들어가니 음식을 심하게 태운 것처럼 방안에 담배연기가 자욱했다. 하나는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었고, 얼굴을 아는 하나는 고개를 어디에다 두어야 할 지 모르는 듯 계속 두리번 거리기만했다. 화장실에 사람이 있는 소리가 있어 거기 신경쓰는 사이 수줍음 코스프레하던 학생은 도망을 가버렸다. 남자동료에게 화장실 안을 확인해보라고 했는데 문을 열자마자 소변 보는 소리가 들렸다. 나인 줄 알고 작정을 한 듯. 볼 일을 보고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화장실에 숨어 있던 학생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나를 보자 반갑게 인사를 했다. 친구들이랑 조용히 얘기 중이었는데 이 시간에 무슨 일이냐고 한다. 안에서 담배 피운 사람이 누구냐고 했더니 아무도 담배를 피지 않았는데 무슨 소리냐고 펄쩍 뛴다. 방에서 담배를 피면 안되고, 저녁 11시부터 다음 날 아침 7시 30분까지는 조용히 하라는 기숙사 규정을 읖조리는데 피식 웃으면서 다 아는 거니까 걱정 말란다. 나 혼자 거기 있었으면 정말 병신 될 뻔 했다. 


졸리니까 빨리 가라고 하고 내 방으로 돌아왔는데 내가 담배를 핀 것처럼 온 몸에 담배냄새가 진동을 한다. 어제도 열쇠 두고 온 학생들 때문에 아침 8시에 잠들었는데...샤워하면 또 그 시간이 될 듯. 시끄러움은 사라졌지만 갑자기 내가 무능하게 느껴졌다. 밖은 아직도 어두운데 기분이 아주 안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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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한국에서 오는 이메일들 특징 중에 하나가 제목은 물론 내용에 한가득 이모티콘들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제 이모티콘이 없으면 대화가 안 될 정도다. 서로 잘 아는 사이라면 무난하게 받아드릴 수 있지만 생전 모르는 사람이 이모티콘 한가득 담아 메일을 보내면, 보내는 사람한테도 신뢰가 안 가고, 그 사람이 제안한 일도 하기가 싫어진다. 넘치는 저 감정들을 나보고 어쩌란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한번은 나한테 뭘 따지겠다고 메일을 보낸 사람이 있었는데 중간중간에 ^^ 요런 이모티콘이 너무 많아 도대체 이 사람이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뭔지 도통 이해도 안 갔고, 내용도 두서가 없어 읽는 동안 짜증이 밀려왔다. 분명히 내용은 화가 나 있는데 문장 끝에 ^^ 이런 표시를 하면 나보고 어쩌란 말인가. 마침표가 ^^ 이 표시인 줄 아는 사람 같았는데 직업란에 작가라고 쓴다는 걸 알고는 사람이 한심해 보이기까지 했다.


친한 사람들끼리의 메일이나 텍스트 메시지라면 모를까 업무용 이메일에서만은 이모티콘 좀 자제하자. 어떤 사람이 대학 교양과정에 이메일 쓰는 법을 필수로 삼아야 한다고 하던데 찬성이다. 사람들이 글쓰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는데 남녀노소 이제 글쓰기는 피할 수 없는 일상이 되었다. 우린 매일 뭔가 쓰고 있고, 써야만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본인은 해당사항 없다고요? 여기 와서 글 읽는 분들, 오늘 몇개의 이메일을 보내셨고, 몇 개의 카톡 메시지를 보내셨나요? 따지면 이런게 다 글쓰기이다. 트위터의 경우 140자 안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잘 표현해야 하는데 글자 수에 크게 제한이 없는 이메일의 경우에도 문법에 맞게 자신의 생각을 잘 정돈해 표현하려면 훈련이 필요하다. 그런 훈련을 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제안 한가지가 업무용 이메일에서만은 이메티콘을 빼자는 것. 한 두개도 아니고 마침표 자리마다 따라오는 ^^ 요 이모티콘 보면 정말 짜증난다.


활기차게 아침을 시작해야하는데 쓰레기 같은 이메일 때문에 기분 잡쳤다. 게다가 오늘은 파전을 심하게 부르는 날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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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한국생활 어느덧 2년차에 접어든 외국인 친구가 들려준 한국문화 이야기 1탄.


1. 화려한 등산복

마치 히말라야에라도 갈 것 같은 폼으로 등산 가는 아줌마, 아저씨들의 옷 색깔이며 장비가 너무 화려하단다. 나는 직접 본 적은 없고, 포털사이트에서 관련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먹고 살기 힘들다고 하지만 이전에 비해 삶에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고, 속을 채우는 것 보다 과시하기 좋아하는 한국인 속성이랑 잘 맞아 떨어져서이지 않을까. 이곳 영국에서도 학생들을 비롯해 일반인들이 아웃도어용 옷들을 일상으로 입고 다니지만 한국에 비하면 가격이 그리 비싸지 않다. 한국은 아저씨, 아줌마, 청소년들이 그렇게나 많이 입고 사용하는데도 등산복이나 등산장비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다.


2. 자전거 장비

위에 등산복과 같은 맥락인데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복장이며 장비가 너무 고가에다 부담스러울만큼 화려하단다. 자전거를 일상으로 타는 중국, 일본, 영국에서 살아 본 바에 따르면 자전거에 그리 돈을 많이 쓰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일단 자전거가 그리 비싸지도 않고, 복장도 그냥 평상시 입는 옷 그대로 입고 자전거를 탄다. 영국의 경우 스피디하게 차를 모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헬멧을 쓰거나 저녁에 야광조끼를 착용하는 사람이 많지만 의무는 아니라고 했다. 여기서는 자전거를 안 타지만 일본에서는 학교 통학을 2년간 자전거로 했었다. 공부 끝나고 간 유학생이 준 중고 자전거를 아무 무리없이 탔고, 왕복 매일 한시간 정도 자전거를 탔지만 한번도 자전거를 타기 위해 복장을 신경 써 본 적이 없다. 안전을 위해 복장이며 장비에 신경을 쓴다면 할 말은 없지만 요즘의 한국 풍경은 너무 지나친 게 아닐까 싶다.


3. 전철에 탄 아기들

외국에서는 지나가는 아이 머리를 쓰다듬었다가 구속이 되는 일도 있는데 한국은 그런 면에서 굉장히 관용적인 나라다. 전철에 아기가 타면 그 아기는 모두의 아기가 된다. 아무리 시끄럽게 울어도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도 없고, 아기 옆의 어르신들은 마치 본인들 손주라도 되는양 아기 볼을 만지거나 심지어 아기 엄마에게 아기를 안아볼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친구가 탄 전철에 아기 엄마와 아기가 탔고, 전철에 타자마자 아기가 몹시 울었나 보다. 근처의 할아버지 한 분이 갑자기 엄마한테서 아기를 빼앗아 안고는 금방 울음을 그치는 마술을 시전했단다. 울음을 그치자 할아버지는 아기 엄마에게 아기를 돌려줬고, 전철 안에서 할아버지 행위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단다. 우리에겐 일상적인 풍경이지만 친구는 그 상황에 몹시 놀랐단다. 외국에서라면 사실 큰일 날 일 아닌가.


4. 치맥

한국처럼 닭을 많이 먹어 치우는 나라가 있을까 싶다. 삼계탕으로 먹어 치우고, 치킨으로 먹어 치우고.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에서 치킨 편을 본 적이 있는데 개사료로 가야하는 닭들이 음식에 사용된다고 해서 닭고기를 먹을 때 좀 찝찝하다. 요즘 한국에 치맥이라는 게 유행이란다. 아마 내가 한국을 떠나고 새로 생긴 문화로, 치킨과 맥주를 일컷는 말인 것 같다. 물론 내가 한국에 있을 때도 소주에는 삼겹살, 막걸리에는 파전, 맥주에는 치킨이라는 암묵적인 궁합이 존재했는데 먹기 좋게 치맥이라는 새로운 상품으로 개발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에 가면 늘 먹고 싶은 음식 리스트를 적어가곤 하는데 이번에는 치맥이 일순위이다. 독특한 한국문화로 치맥을 언급하는 친구에게 내가 치맥이 뭔지 모른다고 했더니 다음에 한국에 오면 치맥은 자기가 쏜단다. 그 친구 이야기가 닭요리 중 최고는 한국 치킨이란다. 오늘처럼 하늘도 낮고, 안개도 자욱한 날은 치킨이 더 맛있을 것 같기도 하다.


5. 테크놀로지

이건 나도 인정하는 바이다. 특히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노는 문화는 세계 최고가 아닐까. 스마트폰 문화는 빠른 것 좋아하고, 보여주기 좋아하는 한국인 성격에 딱 맞아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는 것 같다. 블로깅은 물론, 트위터나 페이스북, 카카오톡 등 SNS도 활발히 하고, 정보공유에도 굉장히 적극적이다. 친구 말에 따르면 일본이나 미국이 기술에서는 우위에 있을 지 모르지만 국민들이 일상으로 스마트폰을 즐기고 편하게 사용하는 문화는 한국을 따라올 수 없을 거란다. 이것도 인정.


6. 거리에서 침뱉기

베이징 올림픽이 개최되기 전 중국의 각종 매체에서는 공공장소에서 윗옷을 벗지 말 것, 차를 탈 때 꼭 줄을 설 것, 길 거리에서 침을 뱉지 말 것 등의 교양캠페인을 지속적으로 펼쳤었다. 한국은 중국, 인도, 아프리카 같은 개발도상국도 아니고, 부자 멤버십인 OECD에도 가입을 한 선진국이면서 왜 길 거리에 침뱉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다고 친구가 불만을 토로했다. 아, 그건 나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왜냐하면 나도 이유를 모르기 때문이다. 말할 때마다 욕을 달고 사는 사람이랑 이야기를 해야 할 때도 그렇고, 아무렇지도 않게 칙-하고 침을 뱉는 사람을 볼 때도 그냥 혼자 부끄러워하고 만다. 중국처럼 캠페인을 펼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참 부끄러운 한국문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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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이 바꾼 문화가 한둘이 아닐 것이다. 아빠 병문안 갔을 때 침상주변에서 다들 고개를 숙이고 만지작 거리던 것도 스마튼폰이었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살 때도 어디가 싼지 금방 검색이 가능하니 단골이라고 들러 기름을 사던 일도 이제 옛말이 되었다. 전자제품을 사러 용산에 갈 때도 스마트폰으로 대충 가격 검색을 끝낸 후 흥정에 들어간다. 인천공항을 가기 위해 공항철도를 타면서 기차 안에서 체크인을 한다. 원하는 좌석도 미리 지정할 수 있다. 스마트폰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처음 유럽 여행을 갈 때 두툼한 여행서를 사서 필요한 국가만 떼어 바인딩을 해 들고 갔었다. 그 이후 여행서를 들고 여행을 간 적이 없다. 일주일 이내 여행을 해야할 때는 현지 여행자 안내 센터에 들러 업데이트 된 지도도 공짜로 얻고, 맛있는 집 소개도 받고, 꼭 가봐야 할 곳들에 대한 정보도 얻는다. 어차피 다 못 보고 올 거라서 별로 아쉬움도 없다. 일주일 이상 좀 더 길게 여행을 떠날 때는 인터넷에서 지명들만 간단하게 찾아 현지에 머물면서 여행정보를 수집하는 편이다. 이렇게 설렁설렁 여행준비를 하다보면 제일 힘들면서 귀찮은 게 숙소찾기이다. 여행문화가 잘 정착된 선진국은 미리 예약을 하고 떠나고, 좀 불안한 곳은 첫날만 비싸더라도 비교적 좋은 숙소를 예약하고 그 이후에는 현지에서 정보를 얻어 해결한다. 역사가 오래된 호텔이라든가, 배낭여행객들한테 유명한 곳이라든가, 주인도 재미있고, 숙소도 재밋거리가 많은 곳이라든가 등등. 인터넷이 잘 되어 있는 선진국 (한국 보다 잘되어 있는 곳은 없다고 봐도 된다)으로 여행을 갈 때는 이제 그럴 필요마저 없어졌다. 스마트폰에서 현지 지역정보가 담긴 앱을 다운 받으면 숙소며, 이동거리, 볼거리, 맛집 정보가 모두 해결된다. 커피숍이나 호텔, 레스토랑 등 고객에게 무선인터넷을 공짜로 제공해 주는 곳들이 많기 때문에 정보를 업데이트하면서 여행을 즐길 수 있다. 모국어로 된 읽을 거리에 언제나 목이 말랐는데 이젠 어디서나 간편하게 읽을 수 있는 전자책이 있어 여행 날짜에 맞게 넉넉하게 준비를 한다. 


잡스형님은 스마트폰으로 이렇게 우리네 여행문화마저 완전히 바꾼 분이다. 이제 핸드폰 하나만 들고 여행을 떠날 수 있다. USB 포트 연결로 충전도 가능하니 무거운 글로벌 엑세스 어댑터 같은 걸 들고 갈 필요도 없다. 스마트폰 카메라가 왠만한 똑딱이 카메라 보다 성능이 좋으니 프로 수준의 사진촬영이 아니라면 용량 넉넉한 스마트폰 하나면 여행준비 끝이다. 미국에 다녀 오면서 아이패드 미니 하나 달랑 들고 갔었는데 일하는 것도, 여행하는것도 아쉬운 게 없었다. 현재 내 컴퓨터에서는 한글문서 작업이 불가능한데 아이패드미니에는 한글 오피스앱이 있어 문서작성도 뚝딱. 일을 해야하는 빌딩 1층에 커피빈이 있어 머무는 내내 내 전용사무실로 사용했다. 음료나 샌드위치 같은 간단한 음식을 늘 먹을 수 있고, 화장실, 인터넷도 무료도 이용할 수 있고. 도심 한복판이라 찾아오라고 이야기하기도 쉬워 언제든 그쪽으로 오면 날 만날 수 있다고 해서 오다가다 들르면서 친구가 된 사람들도 많다. 디저털 노마드라는 게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애플 제품들에  iOS 7을 업데이트 하면서 내 라이프스타일마저 바꿔버린 잡스형님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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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중국에서 유학할 때 일이다. 수업 시간에 각자 자기 나라의 애프터 서비스 문화에 대해 이야기 할 기회가 있었다. 제품 구입 후 파손 혹은 고장 시 어떤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느냐에 관한 것이었다. 유학 전에 프린터가 고장나 친절한 애프터서비스를 받은 경험이 있어 난 그 이야기를 했는데 중국인 선생님을 비롯해 개도국에서 온 친구들은 그런 문화가 있는 나라에서 사는 나를 몹시 부러워했다. 다들 자기네 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서비스라고 했다. 허나 교실에 일본 학생이 하나 있었는데 그 친구 한 마디에 난 아주 무안해지고 말았다. 아주 시니컬하게 자기네 나라는 물건이 고장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서비스가 필요없다는 게 아닌가. 일본 제품이라고 왜 다 고장이 안 나겠냐마는 자기 나라 제품에 대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그 친구의 자신감이 솔직히 부러웠다. 


시장을 보려고 자전거 바구니에 에코백 하나만 달랑 담아 집을 나섰다. 편의점에서 볼일을 보려고 자전거를 세워놓고 천가방만 들고 들어갔는데 어라, 지갑이 안 보였다. 놀라서 허둥지둥 나와보니 자전거 바구니에 지갑이 그대로 있었다. 유학시절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간사이에서 연수 받을 때 이탈리아에서 온 친구가 공중전화기 위에 지갑을 올려놓고 온 적이 있었다. 지갑에 카드도 여러 개 들어 있고, 일 때문에 현금을 많이 담아 놔 아무래도 찾기 힘들겠죠, 라고 걱정하며 선생님께 묻는데 선생님이 일단 신분증이 거기 들어있다면 기다려 보라고 그러셨다. 오전 수업시간에 그런 일이 있었는데 오후에 어떤 사람이 그 지갑을 들고 센터 리셉션을 찾아왔다고 했다. 그리고 카드며 현금이며 모두 그대로라고 했다. 나중에 들었는데 이탈리아 친구가 현금의 일부를 사례금으로 지급하겠다고 했더니 지갑을 들고 온 그 사람은 쑥쓰러워하며 그냥 돌아갔다고 한다.


전에 살던 기숙사에 일본인 선생님들 20명 정도가 연수를 온 적이 있었다. 내가 담당하는 건물의 여러 층을 나눠서 사용했는데 기숙사 공동구역을 함부로 쓰던 학생들만 상대하다 선생님들의 깔끔한 정리정돈에 날마다 탄복을 했었다. 기숙사가 그렇게 깔끔해질 수 있다는 걸 상상도 못 했었는데 "역시 일본인들이군!!"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이 떠날 때 체크아웃을 해야하는 데 이름이 일본인이면 일단 안심을 한다. 체크아웃 시간을 엄수하는 건 당연하고, 금방 도착한 방 처럼 정리를 해 놓고 떠난다.


에티오피아 현지조사 가기 며칠 전 동일본 대지진 참사가 일어났었다. 친한 지인들이 많아 연락을 했는데 다들 괜찮다고 나를 안심시키면서 다른 사람들이 연락을 못 할 지도 모르니 전화도 메일도 삼가라고 해서 놀랐다. 게다가 영상으로 본 그들의 극도의 침착함은 인간의 모습이라고 하기 힘들었다. 딸이 안 돌아와 조금 걱정이라던 전의 지도교수는 괜찮을 거라며 공부 열심히 하라고 오히려 나를 격려해 주셨고, 차량이 다니지 않아 집까지 걸어가야 하거나, 임시숙소에서 거쳐해야했던 다른 친구들은 마치 일상처럼 담담하게 그 이야기를 해주었다. 


일본에서 지냈던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지만 내가 경험했던 일본인들의 이미지는 아주 강렬했고, 난 일본에 대해 우호적인 편이었다. 가끔 내가 일본유학을 먼저 했다면 중국으로 유학을 떠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이렇게 일본에 긍정적인 내게 귀국하는 일본인 학생 방을 체크하라는 연락이 왔다. 좀 이른 시간이었지만, 체크아웃 시간은 물론 지킬 테고, 방은 당연히 깨끗할 테니 시간도 많이 안 걸릴 거라 기대하고 방문을 두드렸다. 이런, 방은 완전 난장판이었다. 냄비, 후라이팬 등 기숙사에서 지급한 물건들은 전부 그대로 두고 가야하는데 그걸 가방에 다 쌌다가 풀어놓을 때, 난 그 학생에 대한 기대를 접고 말았다. 카페트를 훼손할 경우 수십만원의 비용을 배상해야 하기도 하는데 여기저기 불에 그을린 자국이 많았다. 없어진 물품도 많고, 방 상태도 엉망이라 벌금이 통상의 보증금 500파운드를 훨씬 넘을 걸 생각하니 나중엔 그 학생이 불쌍하게 느껴졌다. 내가 만났던 그 어떤 학생보다 더러운 상태로 자기가 머문 자리를 떠난 사람이 일본인 학생이라 사실 당혹스러웠다. 아마 내가 가진 편견에 대한 심한 배신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밖에 나오면 일부가 전체로 여겨질 때가 많은데 오늘 만난 게으른 일본 학생 덕분에 일본에 대한 그간의 우호적인 감정이 신속하게 수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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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

중국에서 유학할 때 이외수 선생님과 사모님이 북경에 놀러오신 적이 있었다. 중국어로 이제 겨우 몇 마디 할 때라서 그 분들과 난 거의 매일 나폴레옹 놀이를 해야했다. 저긴 거 같아 가보면 아니고, 혹시 여긴 가 싶어 들르면 또 역시 아니고. 북경오리구이 전문점을 찾아 헤매다 들른 곳에서는 제대로 된 식기도 아닌 플라스틱 접시에 담긴 오리구이고기를 먹어야했고, 제일 유명한 곳이 왜 이 모양이냐는 사모님 불만에 진땀을 흘려야했다. 그날 식사가 끝난 후에 '뒤끝'을 걱정하느라 정신을 못 차리는 내게 사모님이 슬쩍 다가오시며 물으신다. 중국유학하면서 제일 필요한 게 뭐냐고. 네 친구들에게 물으니 남자 아니면 돈일 거라고 그랬다는데 사실이냐고. 그러시더니 내가 남자를 구해 줄 능력은 없으니 유학생활하는 데 보태라며 생각지도 않은 금일봉을 주시는 게 아닌가. 2010년에 한국에 들렀을 때 감성마을에 간 적이 있는데 그때도 요즘 선생님 잘 나가, 그러시면서 아주 두툼한 금일봉을 주셨다. 공부 끝나고 한국에 가면 나도 두툼한 금일봉을 사모님께 드려야 할 텐데...호텔에서 같이 묵자는 걸 굳이 기숙사에 가겠다고 고집을 피웠고, 그렇게 호텔과 기숙사를 며칠간 출퇴근하다 보니 몸무게가 5킬로가 넘게 빠졌다. 


그때 선생님 중국방문으로 만난 인연들이 여럿인데 유랑생활을 하면서 연락이 모두 끊어져 아쉬워하던 차에 한의사 아저씨 한분이 연락을 하셨다. 부산에서 한의사로 열심히 지내시는 줄 알았는데 상해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계신단다. 늦깎이 박사학생이 주변에 있었다는 걸 알았다면 자주 연락을 했을 텐데 많이 아쉽다. 그때 갓 태어난 아기가 하나 있었는데 이제 아가씨 '삘'이 나는 14살이 되었단다. 메일에 여전히 "오순여왕님 잘 지내시나요?"라고 물으셔서 혼자 부끄러웠다. 같이 한국에 있었을 때는 가끔 전화로 문진도 해주시곤 하셨는데 그런 일이 있었나 싶게 오래 잊고 지냈다. 입안이 헐어 아프다고 하면 죽염으로 가글을 해주세요, 같은....화장실은 잘 가세요, 생리는 규칙적인가요, 이런 이야기도 아무렇지않게 해주셨고, 북경에서는 놀러온 친구들과 아저씨네 방에 한데 모여 등짝에 부황을 떴던 기억도 있다. 물론 위옷을 훌렁 벗고 다들 누워 킥킥 대면서...


부황 뜨는 우리 주변을 돌아다녔던 그 아이가 벌써 14살이 되는 동안 난 뭘 했나 생각해봤다. 북경에서 공부가 끝나고 상해로 떠날 때 북경역까지 나와 환송해주던 그 사람들, 어디서 무얼 하고 지내는 지 궁금하기도 하고, 또 보고싶기도 하고. 감성마을의 이외수 선생님과 사모님은 요즘도 잘 지내시겠지. 정리하고 빨리 한국에 가고 싶다. 가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친구들이랑 정신없이 수다도 떨고. 요즘 부쩍 쓸쓸해하는 엄마 위로도 많이 해주고. 쌀 한말이 8만원이라면서 밥값이 아니라 쌀값만 내면 백수로 지내도 뭐라고 안 한다고 약속을 해서 한국에 가면 남들이 기대하는 훌륭한 일 하는 대신에 엄마랑 팡팡 놀며 지낼 생각이다. 이른 아침 반가운 소식에 내 마음은 중국에 갔다가 어느 새 한국에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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