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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8.18 반가운 소식

중국에서 유학할 때 이외수 선생님과 사모님이 북경에 놀러오신 적이 있었다. 중국어로 이제 겨우 몇 마디 할 때라서 그 분들과 난 거의 매일 나폴레옹 놀이를 해야했다. 저긴 거 같아 가보면 아니고, 혹시 여긴 가 싶어 들르면 또 역시 아니고. 북경오리구이 전문점을 찾아 헤매다 들른 곳에서는 제대로 된 식기도 아닌 플라스틱 접시에 담긴 오리구이고기를 먹어야했고, 제일 유명한 곳이 왜 이 모양이냐는 사모님 불만에 진땀을 흘려야했다. 그날 식사가 끝난 후에 '뒤끝'을 걱정하느라 정신을 못 차리는 내게 사모님이 슬쩍 다가오시며 물으신다. 중국유학하면서 제일 필요한 게 뭐냐고. 네 친구들에게 물으니 남자 아니면 돈일 거라고 그랬다는데 사실이냐고. 그러시더니 내가 남자를 구해 줄 능력은 없으니 유학생활하는 데 보태라며 생각지도 않은 금일봉을 주시는 게 아닌가. 2010년에 한국에 들렀을 때 감성마을에 간 적이 있는데 그때도 요즘 선생님 잘 나가, 그러시면서 아주 두툼한 금일봉을 주셨다. 공부 끝나고 한국에 가면 나도 두툼한 금일봉을 사모님께 드려야 할 텐데...호텔에서 같이 묵자는 걸 굳이 기숙사에 가겠다고 고집을 피웠고, 그렇게 호텔과 기숙사를 며칠간 출퇴근하다 보니 몸무게가 5킬로가 넘게 빠졌다. 


그때 선생님 중국방문으로 만난 인연들이 여럿인데 유랑생활을 하면서 연락이 모두 끊어져 아쉬워하던 차에 한의사 아저씨 한분이 연락을 하셨다. 부산에서 한의사로 열심히 지내시는 줄 알았는데 상해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계신단다. 늦깎이 박사학생이 주변에 있었다는 걸 알았다면 자주 연락을 했을 텐데 많이 아쉽다. 그때 갓 태어난 아기가 하나 있었는데 이제 아가씨 '삘'이 나는 14살이 되었단다. 메일에 여전히 "오순여왕님 잘 지내시나요?"라고 물으셔서 혼자 부끄러웠다. 같이 한국에 있었을 때는 가끔 전화로 문진도 해주시곤 하셨는데 그런 일이 있었나 싶게 오래 잊고 지냈다. 입안이 헐어 아프다고 하면 죽염으로 가글을 해주세요, 같은....화장실은 잘 가세요, 생리는 규칙적인가요, 이런 이야기도 아무렇지않게 해주셨고, 북경에서는 놀러온 친구들과 아저씨네 방에 한데 모여 등짝에 부황을 떴던 기억도 있다. 물론 위옷을 훌렁 벗고 다들 누워 킥킥 대면서...


부황 뜨는 우리 주변을 돌아다녔던 그 아이가 벌써 14살이 되는 동안 난 뭘 했나 생각해봤다. 북경에서 공부가 끝나고 상해로 떠날 때 북경역까지 나와 환송해주던 그 사람들, 어디서 무얼 하고 지내는 지 궁금하기도 하고, 또 보고싶기도 하고. 감성마을의 이외수 선생님과 사모님은 요즘도 잘 지내시겠지. 정리하고 빨리 한국에 가고 싶다. 가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친구들이랑 정신없이 수다도 떨고. 요즘 부쩍 쓸쓸해하는 엄마 위로도 많이 해주고. 쌀 한말이 8만원이라면서 밥값이 아니라 쌀값만 내면 백수로 지내도 뭐라고 안 한다고 약속을 해서 한국에 가면 남들이 기대하는 훌륭한 일 하는 대신에 엄마랑 팡팡 놀며 지낼 생각이다. 이른 아침 반가운 소식에 내 마음은 중국에 갔다가 어느 새 한국에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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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