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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19 가든힐 하우스 8
오자마자 시내의 Northernhay House라는 데서 살다가 학교 안의 가든힐 하우스라는 곳으로 이사를 왔다. 특별히 나을 건 없는데 연구실이랑 가깝고 게다가 많이 싸다. 엑시터에 오기 전에 학교 홈페이지에서 기숙사를 둘러보면서 '저 곳'에서는 절대 안 살 거야 했었는데 이사 오고나서 보니 바로 '그곳' 이었다. 기숙사가 얼마나 구리면 홍보용 사진을 저딴 걸 올릴까 했었는데 기대에 딱 부응하는 집구조에 방구조이다.


홍보용 가든힐 하우스 사진.              
사진출처: http://www.exeter.ac.uk/accommodation/guide/gardenhillhouse.shtml

방은 바닥의 높낮이가 달라서 움직일 때마다 비행기를 타는 기분인데 가격대비 엄청 넓어서 좋다. Northernhay House의 두배 정도 넓은 것 같다. 이곳도 중국인들이 많이 산다. 총 21명의 입주자 중 8명이 중국인이고 전부 내가 사는 동에 산다. 집은 두 동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어떻게 배정을 했는지 내쪽 동의 부엌이며 샤워룸, 화장실, 거실 비스무레한 곳은 늘 지저분하고 더러운데 다른쪽 동은 샤워룸이며 부엌이 늘 깨끗하다. 심지어 얘네들은 음식도 안해먹고 샤워도 안하나, 생각이 들 정도이다.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화가 나셨는지 내 동 부엌에는 거의 날마다 제발 화장실이며 부엌, 냉장고 상태를 깨끗이 유지하라는 메시지를 남겨놓으시는데 소용이 없다. 사진을 찍어, 이건 'O' 이건 'X', 이런 것도 게시판에 붙여놨는데 역시나 무용지물이다.

내년 6월까지 여기서 살 생각인데 내가 이웃들과 언성 높이는 일 없이 잘 지낼 수 있을까 의심이 드는 일들이 몇 가지가 있다. 처음에 왔을 때는 날씨가 따뜻해서인지 현관앞에 빨래들을 죽 널어놔서 짜증이 났는데 언제부터인가 안보여, 드디어 이게 별로 좋은 게 아닌가 알았나보다 그랬는데 웬걸, 복도의 난방기구에 속옷들이 뒤집어져서 널리기 시작했다. 가든힐 하우스의 기숙사는 세탁기 사용은 공짜인데 건조기 사용하는데 30분에 20펜스가 필요하다. 20펜스를 아끼려고 그러는 건지 아니면 건조기에 넣으면 옷이 상할까 그러는 건지 이유는 잘 모르겠다. 옷들이 그렇게 품질이 좋아 보이는 것 같지는 않은데 내 생각에 그냥 20펜스를 아끼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게다가 여학생들이 항상 생리대를 싸지 않고 뒤집어서 버리는 바람에 내가 괜히 창피하다. 부엌 싱크대에서 양치질하는 풍경은 일본에 있을 때부터 이미 익숙해져서 새로울 건 없는데 설겆이 그릇이 있어도 치우지않고 그냥 양치한 물을 내려보내니 주의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화장을 곱게하고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기숙사를 나서는 여학생들을 보면 난 만감이 교차한다.

직접 사진 찍은 가든힐 하우스.

얼굴빨개지는 아이, 인가 뭐 그런 동화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이 기숙사에도 그런 사람이 하나 산다. 내 동에 사는 영국인인데 나이는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쯤 되는 것 같다. 처음에 샤워실 문을 잘 못잠그는 바람에 샤워를 마치고 나는 벗은 상태에서 그 사람은 옷을 다 입은 상태에서 문이 열려 어색하게 인사를 하게 되었는데 뭐 그게 꼭 이유는 아니지만 긴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고 여전히 서먹하게 지낸다. 8년차 박사과정 학생인데 꿈이 캠프리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거란다. 그 꿈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인데 별로 그렇게 될 것 같지는 않다. 그 사람 방 옆에 세면시설이 하나 있는데 저녁 10시가 넘으면 사용을 못한다. 기숙사 룰에는 그런게 없는데 이 사람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시끄럽다고 뛰쳐나오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당근 사용 못한다. 1층의 부엌에 하나밖에 없는 세탁기나 건조기도 이 사람이 쉬는 시간에는 사용을 못한다. 1시간 빨래 건조를 위해 40펜스를 넣고 시간이 되었겠거니 하고 내려가보면 전원이 꺼져있을 때가 많다. 시끄럽다고 이 사람이 끄는 거다. 제발 그러지 말라고 메시지를 써서 붙여놨는데 그 앞에 보란듯이 종이를 갈기갈기 찢어놨다. 뭐랄까, 심술궂은 어린애 같다. 싱크대에 음식물 쓰레기를 그냥 흘려보내 싱크대 물을 철철 넘치게하는 주범인데 아무도 이 사람한테 이래라저래라 말을 못한다. 그랬다가는 큰일이 날 것 같은...아무튼 답이 안나오는 미스테리 인물이다.

이 기숙사에서 딱 세명의 학생이 심하게 담배를 피운다. 중국인 한명, 인도인 한명, 네팔인 한명. 실내에서는 담배를 못 피게 되어 있는데 복도며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고는 자기는 절대 안 피웠다고 한다. 얘네들도 나한테는 꼭 심술궂은 어린애들 같다. 이 인간들은 담뱃불을 붙일 때 꼭 부엌의 가스를 사용한다. 아주 오래된 건물이라 이상한 연기만 나도 화재경보기가 울려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건물 구조인데 이 인간들 때문에 알람이 울리면 새벽에도 벌떡 일어나서 밖으로 튀어나가야 한다. 참다가 안되면 학교 기숙사 안내 부서에 연락을 할 생각이다. 피곤해서 못 살겠으니 흡연자들은 입주를 금지하게 해달라고...

어제는 네팔 왕자(풍모가 왕자라서가 아니라 게으르기가 이를 데 없어 혼자 그렇게 부른다. 저 정도로 게으르면 그 나라에서 왕자가 아닐까 해서...)의 생일이라고 외부인들이 이 건물을 점거해 새벽 3시가 넘도록 시끌벅적 난리를 피웠는데 최근에 배우기 시작한 기타연주를 새벽 1시에 하는 바람에 결국 꼭지가 돌아 나갔더니 벌써 여러 학생이 조용히 해달라고 메시지를 전달했단다. 입에서 십원짜리 욕들이 튀어나오려고 했는데 겨우 참았다. 이 기숙사는 대학원생만 입주가 가능한데 거의 날마다 파티를 즐기는 학부생들이 대학원생들의 공부며 수면을 방해할까 하는 학교의 배려 때문이다. 네팔 왕자와 그를 추종하는 두명의 흡연자들은 석사과정에서 공부를 하는 대학원생들인데도 생활은 꼭 학부생들처럼 한다. 날마다 시끄러워 돌아버리겠다.

입주자들에게 냉장고 한칸씩이 배정되는데(그것도 처음엔 엉망진창으로 냉장고를 사용해 입주자들이 회의를 해서 고안해 낸 방법이란다.) 냉장고 크기도 작고 뭐 별로 넣을 게 없지만 그나마 없으면 불편하니 밖에 두면 상할 것들을 몇가지씩 넣어둔다. 그런데 저 네팔 왕자의 우유가 늘 속을 썩인다. 우유병 뚜껑 똑바로 안 닫으면 그냥 안 놔두겠다고 경고를 세번이나 했는데 말을 듣지않아 오늘 드디어 1000밀리리터 우유를 그냥 버렸다. 내 윗칸과 내 칸이 저 인간의 우유로 완전 난리가 났기 때문이다. 맥주 마시다 그냥 넣어둔 것, 치즈나 고기 등 먹다가 랩으로 싸지 않고 그냥 넣은 것들도 이제 내가 다 버릴 계획이다. 우유 버리면서 야채 상한 것, 음식 상한 것도 그냥 버렸다. 왜 벌레가 들끓는데도 그걸 안 버리고 그냥 지내는 지 모르겠다. 왜 먹던 음식을 그냥 넣는지 여전히 이해가 안된다. 왜 고기를 그냥 싸지않고 냉장고에 넣느냐고 했더니 중국인 애들이 하나도 아니고 전부다 왜 그걸 싸서 냉장고에 보관해야 하느냐고 되물어서 쇼크를 먹었다. 이건 이렇게 해야한다, 저건 저렇게 해야한다 내가 말할 입장도 아니고 말해도 달라지지 않으니 방법이 없다. 뭘 끓여먹으러 부엌에 가기가 싫다. 그러니 청소하는 아주머니는 얼마나 짜증이 나실까. 치워도 표도 안나니 말이다.

이곳에 와서 견고해진 생각이 몇 가지가 있다. 전에는 물론 심각하게 생각해 보지 않은 것들이다. 공부가 끝난 후 어디에 가서 정착을 할 지 잘 모르겠지만 내 빨래만 할 수 있는 세탁기, 내가 먹을 음식만 넣을 수 있는 냉장고가 있는 곳에서 살 생각이다. 자동차보다, 집보다 내겐 더 간절한 소망이 되었다. 프로젝트 때문에 계약서를 써야할 때 요 두 가지는 꼭 집어 넣어야지, 할 정도로 세탁기, 냉장고에 스트레스를 받고 산다. 그런 세탁기, 냉장고가 있을 때는 그게 얼마나 행복한 일이었는지 내 진정 몰랐었다.


기숙사 안은 스트레스 천지인데 그래도 밖에 나오면 행복하다. 계절에 따라 변화를 주는 자연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길을 따라 나는 날마다 연구실에 나간다. 그래서 내년 6월말까지 잘 버텨야지, 오늘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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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