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히 영국에 도착했다. 학교 어드미션 오피스에서 비자레터를 너무 늦게 보내준 데다 일본의 실버위크까지 겹쳐 비자 신청이 한없이 늦어졌는데 역신 신은 내편이었다. 5일만에 비자를 받았다. 영국유학 관련 사이트들을 둘러보면 어느 나라나 영국비자센터의 서비스가 불친절하기 그지없고, 엄청 고압적이라고 들은 터라 나름 긴장하고 있었는데 일본의 영국비자 센터는 내게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했다. 11시 30분에서 1시 30분 사이에 비자가 도착하지 않으면 그날 비자를 찾을 수 없다는데 업무가 끝난 후에 담당직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다른 쪽 문으로 들어오게 해줄테니 비자를 찾아가라는 내용이었다. 9월 30일 오후 5시에 비자를 찾았고, 여행사에 들러 그날 비행기표를 끊었다. 그리고 10월 1일 아침 일본을 떠났다.

런던 히드로 공항은 13년 전보다 훨씬 후졌고 더러웠다. 나는 예외였지만 피부색깔이 다른 사람들은 입국심사 시간이 엄청 길었다. 엑스레이 사진촬영을 요구하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았다. 입국심사관 전공이 Geography였던 덕분에 난 30초도 안걸려 입국 스탬프를 받을 수 있었다. 행운을 빈다면서 쾅, 하고 도장을 찍어주는데 정말 내게 행운이 찾아 온 느낌이었다. 두개의 짐가방에 기타를 매고 허둥지둥하는 나를 본 한 영국청년의 도움으로 런던에서 엑시터까지 오는 기차를 탈 수 있었다. 땡큐, 제임스!! 영국의 친절함은 딱 여기까지였다.

도착하던 날 입김이 나올 정도로 추운 엑시터의 날씨가 나를 맞이했다. 영국은 생각보다 훨씬 춥고, 비도 많고, 더럽고, 불친절하고, 물가는 살인적이고, 중국인 천지다. 내가 사는 층은 나 빼고 전부 중국인인데 이보다 더 더러울 수 없을 정도로 공동시설을 엉망으로 사용한다. 돈 쓰는 것 보면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 이 사람들 위생개념이 전혀 없다. 한마디로 토 나올 정도다. 게다가 예의도 없어,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은 영어가 아니라 그냥 중국어로 말해버리고 미안하다는 말도, 고맙다는 말도 하지 않는다. 영국에 와서 중국어로 말하게 될 줄 몰랐는데 그 정도로 중국인이 많다. 일본에 살 때도 중국학생들은 자기들 방에 세면대가 있는데도 꼭 부엌 싱크대에서 세수를 하고 양치질을 하고 가래침을 뱉었는데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여학생들은 생리대를 그냥 휴지통에 버리고, 볼 일을 본 후 화장실 문을 활짝 열어 제치고 나온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학교 기숙사관련 사무소에 방을 옮겨달라고 부탁을 했다. 덕분에 지금 난 난민 신세다.

영국학교에서도 일본에서처럼 자전거를 타고 다녀야지, 하는 야심찬 계획이 있었는데 언덕 천지라 그건 포기했다. 하루에 한시간 이상 구보를 하는 것 같다. 많이 걸어야 하는 대신에 시에서 관리하는 보호림 지역이 학교안에 있어 마음껏 자연과 친구를 할 수 있어 좋다. 비가 자주 와 우산이 필수라는 게 좀 귀찮지만 비는 내가 맘대로 할 수 없으니 견딜 수 밖에.

학교 홈페이지를 보면 전부 유럽인들 이름뿐이라 좀 쓸쓸하겠다 싶었는데 왠걸, 올해 나를 포함해 세명(박가, 이가, 윤가)의 한국인이 우리 학과의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처음엔 경쟁하는 분위기에다 내가 무슨 말만 하면 잘난척으로 분류를 해버려 이거 아닌가 싶었는데 지내고보니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인 것 같다. 한 사람은 나랑 연구실도 같고, 지도교수도 같다. 무슨 이런 인연이 다 있는지. 이번주 일요일에 연구실 같이 쓰는 이가네 집으로 김치 먹으러 가기로 했다.

영국 오기 전에 일본에서 만난 한국인 부부에게 내가 가진 살림살이 전부를 주고 짐 한박스를 보내달라고 부탁했는데 우송료가 좀 과했나보다. 나보고 반을 부담하라는 연락이 왔다. 살림살이 일부를 주지말고 팔걸, 하고 심하게 후회하고 있다.

내가 떠나고 난 후에도 우편물이 올지 몰라 일본의 오카아상(일본어로 어머니) 기노시타 씨네로 내 주소를 이전해놓고 왔는데 의외로 우편물들이 많았다. 국민건강보험료와 카드대금이 남아 지불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아주머니가 전부 지불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메일을 보내주셨다. 게다가 여기저기서 온 우편물들을 전부 모아 계속 EMS로 보내주신다. 감사합니다!!이건 내게 여전히 남은 행운이다.

방문제가 해결되면 이제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루 빨리 난민신세에서 벗어나 연구에 집중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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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