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대영박물관 서점. 아시아 코너인데 한국 관련 도서는 단 한 권도 없다. 기념품 코너도 마찬가지였다.

서울시가 진행하는 재외동포초청프로젝트 덕분에 올여름 잠시 서울에 다녀왔다. 2005년 이후 서울의 여름을 접할 기회가 없었는데 적응안돼 아주 혼났다. 날씨가 덥기도 더웠지만 어찌나 습하던지 돌아다니기가 쉽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반갑게 맞이해 주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서울시가 재외동포를 초청한 목적은 서울을 해외에 좀더 알리고자 함이었다. 밖에 나와 있다보니 외국 사람들이 서울은 물론 한국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 놀랄 때가 많다. 연구실의 내 뒷자리 박사과정 학생은 내가 쓰는 말이 중국어인 줄 안다.  올림픽도 열렸고, 월드컵도 개최한 국가인데 누굴 탓해야 할 지 모르겠다. 

커피 투어리즘을 공부하면서 커피숍 뿐만아니라 시내의 여행사들도 자주 다니는데 갈 때마다 새로 나온 여행 책자들을 들고 나온다. 여행사가 취급하는 각 나라의 여행지를 화려한 사진과 함께 소개하는 두툼한 책자인데 공짜다. 주로 아프리카, 아시아 쪽 책자가 내 관심분야이다. 지금은 그러려니 그러지만 처음 아시아 소개책자를 보고 많이 놀랐었다. 대여섯군데 유명 여행사 안내 책자 중에 서울이 소개 된 곳이 하나도 없었다. 아시아 하면 중국, 일본, 인도,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의 여러 도시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한국은 아예 내용에서 빠져있는 것이다. 중국은 베이징, 상하이가 일본은 교토, 나라, 오사카 등이 근사한 사진들과 함께 소개되는데 한국은 아예 없다는 말이다. 내 느낌에 한국의 서울이나 제주도는 아시아의 매력적인 여행지로써 베트남의 하노이나 인도네시아의 발리 등에도 밀린다.  최근에 지정된 하회/양동마을까지 합쳐서 세계유산을 10개나 가지고 있는 나라인데 어찌 이다지도 해외에 안 알려졌는지,  그리고 안 알려지는지 모르겠다.  2010년 현재 대한민국과 수교국이 188개나 되는데 여기 담당하는 외교관들이 한나라씩만 집중해서 한국을 홍보해도 이정도로 세계가 한국을 모르지 않을 텐데 참으로 아쉬운 노릇이다.  

런던의 대영박물관 3층에 가면 중국관과 일본관 사이에 한국관이 초라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소장된 작품들 면면을 살펴보면 자랑스럽기 그지 없는 보물들이지만 중국관, 일본관과 비교하면 작품수에서 한참 밀린다. 2000년에 한빛문화재단 한광호 이사장이 기부한 100만 파운드로 유물을 구입해 전시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현재까지 소장된 작품만으로는 각 시대를 이해하기도 힘들고, 문화적 특징을  잡아내기도 힘든 실정이다. 기념품 판매점에 가면 더 기가 막히다. 일본, 중국, 인도가 아시아 문화를 대표하고 있다. 심지어 전시되지도 않은 작품들이 도안으로 사용된 기념품들이 일본 코너에 전시되어 있다.  대한항공이 2009년부터 대영박물관에 외국어 안내 서비스 단말기를 후원하고 있는데 덕분에 이제 한국어로도 작품 설명을 들을 수 있다.  기념품 코너를 지나 박물관 입구쪽으로 나오다 보면 오른쪽에 보이는 단말기 대여코너의 대한항공 마크에 우울한 마음을 위로받곤 한다.

세계가 한국을 많이 기억하면 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 할 지 모르겠지만 문화가 국력인 시대가 이미 와 버렸다. 문화의 나라에서 만든 차는 프레미엄이 붙어 비싸도 사지 않는가. 삼성이나 엘지가 초박형 TV나 모바일을 해외에 팔면서 한국을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않는 이유다. 삼성이나 엘지를 일본기업으로 기억하는 외국인들이 많고, 굳이 싸구려 이미지를 가진 나라를 홍보하면서 제품 이미지까지 영향을 줄 필요가 없지 않겠나.

사건이 하나 터지면 벌떼처럼 모여 경찰들도 두손두발 들게하는 우리나라 네티즌들이 그 능력, 그 에너지를 해외에 한국을 홍보하는 일에 쏟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두루 돌아다녀보니 한국처럼 네티즌들이 센스도 넘치고, 그 결집력이 대단한 나라를 못 봤다. 영문 위키피디아에 소개되지 않은 한국의 작가들, 예술가들이 있다면 간단하게라도 소개해주고, 한국을 대표하는 물건들이나 사람들, 사상들이 빠져 있으면 채우는 일들에 이들이 앞장 섰으면 좋겠다.  그리고 매년 해외로 나가는 공무원들, 상사주재원들, 외교관들, 유학생들, 배낭여행객들이 조금만 한국 알리는데 노력을 해도 지금보다 더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을 기억하지 않을까 싶다. 드라마 한편으로 순식간에 한국이 일본의 가장 가까운 나라가 되지 않았나. '문화의 힘'이란 그런 것이다. 
Posted by 윤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