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연구한다는 이유로 커피 보관방법, 커피 원산지, 혹은 커피 맛있게 추출하는 법 같은 걸 묻는 사람들이 많다. 매주 금요일 지도교수와 면담을 하면서 커피를 한잔씩 얻어 마시는데 선생님도 내게 오늘 커피 맛이 어떤지 꼭 물어보신다. 이 정도면 괜찮은 거지, 그런거지....하시면서.

요즘 한국은 커피가 붐이라서 시내를 돌아다니다보면 두서너집 건너 하나가 커피 전문점이고, 일반인들도 집에 도구를 갖춰놓고 커피를 즐긴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커피는 와인과 달라서 묵히면 고유의 맛이 사라지기 때문에 개봉하면 무조건 빨랑 해치울 생각을 해야한다. 에티오피아에서 현지조사 끝날 때 들고 온 커피를 다 마시고는 따로 사서 안 마신다. 금방금방 줄어들만큼 커피를 자주마시지도 않지만, 내가 뽑으면 영 맛이 없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맛있는 커피점에 가서 금방 내려준 커피를 마시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커피 전문점에 잘 가지 않았는데 엑시터에 와서는 카페네로(Cafe NERO)라는 커피 전문점에 가끔 간다. 시내에 네로, 스타벅스 이외에 코스타(Costa), 보스턴 티파티(Boston Tea Party)라는 커피 체인점도 있는데 난 주로 네로에 간다. 네로의 아메리카노는 다른 집보다 약간 진한 편이지만 이게 내 입에 맞아서다. 학교에서는 연구실이 있는 건물 4층의 카페에서 블랙필터커피를 늘 마신다. 네로에서는 자체 블랜딩한 커피를 내리는 것 같고, 4층의 카페는 독일산 치보(Tchibo) 커피를 내려준다. 한국 사람들은 이탈리아 일리(Illy) 커피도 많이 좋아하는 것 같은데 나한테는 치보가 맞는 것 같다. 커피라는 게 재료에 따라, 뽑아 주는 사람에 따라, 그리고 마시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얼마든지 맛이 달라지기 때문에 이게 좋다, 저게 좋다 해서 따라갈 이유가 없다고 본다. 난 그저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참 맛있다, 그러면서 커피를 마신다. 

난 좋은 커피 만드는데 시간을 많이 안쓰고, 그냥 커피 공부하는 게 재미있어서, 책으로 공부를 한다. 그리고 맛있는 커피는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편하게 사서 마신다. 좋은 커피 만드는 일은 내 길이 아닌 것 같아서다. 부활절 휴가가 시작되어 4층 카페도 문을 닫아 오늘은 연구실에서 한참을 걸어야하는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셨다. 햇살도 좋고, 분위기도 여유로운 카페였는데 늘 마시던 게 아니라서 그런지 커피맛을 제대로 즐길 수가 없었다. 4층 카페는 4월말에나 다시 문을 연다니 그때까지 참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Posted by 윤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