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에 꿀 한 병을 선물 받았는데 잊고 있다가 오늘 처음 시식을 했다. 아주 잊은 건 아닌데 먹던 게 있어 다 먹으면 뚜껑을 따야지 했던 꿀이다. 상표가 하도 후져서 먹기에 좀 찜찜했는데 맛을 보니 진짜 유기농 꿀인 것 같다. 슈퍼에서 산 싸구려 꿀과는 차원이 다른 맛이다. 


에티오피아에서 조사지역을 옮기기 전에 알고 지내던 한국인한테 꿀을 선물 받은 적이 있다. 약 2킬로그램 정도 됐지 아마? 뭐라도 주고 싶은데 딱히 생각나는 게 없다면서 꿀이랑, 쌍화탕 한 병, 청심환 한 알을 일하는 친구를 시켜 보내주셨다. 꿀은 현지인한테 선물로 받은 건데 직접 먹어보니 좋은 꿀인 것 같다고 그러셨다. 마음이 듬뿍 담긴 선물이라 많이 감격했었다. 허나 큰 배낭에 2킬로그램이나 되는 꿀은 큰 짐이었다. 사람을 불러 다시 돌려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주변엔 딱히 아는 사람도 없었다. 결국 꿀을 처분할 방법을 못 찾고 매일 일어나자마자 공복에 한스푼씩 마시기로 했다. 처음 뚜껑을 딸 때만해도 이 꿀을 언제 다 먹나 했는데 매일 그렇게 떠 마시니 부피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맛없는 빵을 만났을 때도 난 냉큼 꿀병을 땄다. 유기농 꿀이라고 딱지 붙은 걸 이나라저나라에서 많이 먹어봤지만 에티오피아에서 내가 몇 개월 먹은 그 꿀이 진짜배기 유기농꿀이 아닌가 싶다. 아주 달지 않으면서 그래도 달긴 단 그런 꿀. 비는 날마다 쏟아졌지만 닦고 마실 물은 마땅찮은 곳에서 피부에 심각한 트러블도 없었고, 무엇보다 손발 차가운 증상이 싹 없어졌다. 꿀 말고는 따로 보약 비슷한 것도 챙겨먹은 적이 없으니 모든 공을 꿀에 돌릴 수밖에. 


선물 받은 꿀을 한 스푼 떠 먹으면서 에티오피아에서 먹던 꿀이 생각났다. 잡물이 하나도 섞이지 않은 것 같다. 저 아래 지중해에서 건너 온 1킬로그램 조금 못되는 꿀인데 아껴서 조금씩 먹어야겠다. 새봄이 오기 전 면역력 증강을 위해 뭘 좀 먹어줘야하지 않을까 고민했었는데 아주 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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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