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겸, 산책겸 시장에 다녀왔는데 갈 때 만났던 빨간 자켓의 아가씨를 집에 오는 도중에 또 만났다. 갈 때는 서로 모른 척 했는데 돌아오던 길에는 그 아가씨도 날 알아보고 살짝 웃어주는 바람에 가벼운 목례와 함께 서로 눈인사를 주고 받았다. 아가씨는 여전히 쏟아지는 웃음을 억지로 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아가씨가 내 앞에서 10미터도 더 된 거리에 있는 횡단보도를 웃으면서 건너는 모습을 볼 때만해도 그런가 보다 그랬다. 그런데 그 아가씨가 나를 스쳐 지나가면서도 계속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어 슬슬 아가씨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저 빨간 자켓의 아가씨는 도대체, 오늘, 아니 지금, 무슨 좋은 일이 있어 저렇게 혼자 즐겁게 웃을까에 대해 10가지만 생각해 보자며 손가락을 꼽아봤다. 시험에 합격? 그럴 수 있지. 취직일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면, 아이패드 미니가 갖고 싶었는데 누가 선물한다고 했나? 인도 너머의 아시아 지역 배낭여행을 위한 항공기 티켓을 방금 끊었나? 장거리 연애 중인 남자친구를 지금 만나러 가나? 로또 당첨? 아니야, 엄청난 상금의 복권에 당첨되고도 저 정도 평정심을 유지한다는 건 사람으로서 불가능한 일이지. 오매불망 좋아하던 남자를 좀 전에 만났나, 그것도 우연히? 자기를 예뻐해주는 할머니 혹은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건 아닐까? 그러기엔 웃는 게 좀 오바고. 친구의 저녁 초대, 혹은 친구들의 파티 초대? 복장이 쪼옴 아니지...
이렇게 계속 생각을 이어가다 결국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도 잊고 말았는데 그 아가씨를 또 만나니 내가 몇가지를 생각해냈지, 하면서 손가락을 다시 꼽아보기 시작했다. 여러 상황을 고려해 내가 내린 결론은 한가지. 박사논문이 통과되어 학교에서 증명서를 받아오던 길이 아니었을까. 논문 제출하고 나면 나도 누가 보던말던 좋아서 거리를 활보하며 미친듯이 웃을 것 같다. 오늘 만난 빨간 자켓의 아가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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