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가 필요해 여기저기 연락을 하는 중인데 다들 흔쾌히 시간을 내주겠다고 그런다. 내가 누군지도 잘 모르면서 이런저런 연구에 귀하의 말씀이 필요하다고 했더니 도움이 될 지 모르겠지만 만나주겠다고 겸손하게 얘기한다. 소속기관 홈페이지에 나온 이메일로 직접 연락한 사람들도 있고, 지인을 통해 몇 다리 건너 연락을 취한 사람들도 있다. 식사는 제가 대접할 게요, 커피는 제가 대접할 게요, 이런 분들도 있었다. 내가 부탁하는 입장인데 말이다.


다른 나라에서 연구자로 지내면서 인터뷰할 일이 많았다. 기사를 쓰기 위해, 혹은 논문을 쓰기 위해. 인터뷰를 요청하면 다들 거절하지 않고 시간을 내 준다. 어떤 인터뷰는 30분도 안 걸려 끝나지만, 어떤 인터뷰는 몇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준비를 많이 한 인터뷰일수록, 그리고 내게 호의적인 사람들과 하는 인터뷰일수록,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인터뷰 시간이 훨씬 오래 걸린다.


지식인의 책임감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공부하면서 연구자의 책임감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연구자의 할 일이라는 게 데이터의 수집과 분석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터. 내 개인적인 목적, 예를 들면 기사작성이나 학술논문 작성을 위해 난 사람들에게 귀한 시간을 공짜로 달라고 했다. 가끔 작은 선물로 사례를 하기도 했지만 대개는 인터뷰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기사가 났어요, 이런 논문을 썼어요, 라고 피드백을 줄 때도 있었지만 다시 못 만나거나 연락이 안되는 사람들에게는 그나마 피드백을 못하기 일쑤였다.  


내가 커피가 되었든, 관광 혹은 에티오피아가 되었든 분야를 가리지 않고 공짜로 컨설팅을 해주거나 강연을 해 줄 때 잘 모르는 사람들은 너 미쳤냐고, 사례비를 요구하라고 그런다. 일종의 프로보노 활동인데 그건 내가 바보이거나 미쳐서 그러는 게 아니다. 유학생활 초기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적이 있었지만 공부를 끝내는 동안 동문회 장학금, 기업 장학금, 외국 정부 장학금, 연구과 장학금 등 여러 단체에서 금전적인 도움을 많이 받았다. 자기 나라 사람도 아닌 외국인 유학생에게 기꺼이 장학금을 준 단체들이 한 두 곳이 아니었단 말이다. 영국에서 외국인 유학생이 장학금 받기가 힘들다고 들었는데 난 공부하면서 학교에서 받는 것 말고도 두 개의 단체에서 장학금을 따로 받았다. 그러니 누가 내 알량한 지식이 필요하다고 하면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사실 한국에 갈 때마다 지인들로부터 받은 다양한 금액의 금일봉들도 내가 프로보노 활동을 망설이지 않는 이유다. 나랑 같은 해에 영국으로 유학 온 분한테 박사과정 마무리하기까지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들었느냐고 물어봤더니 한 2억 쯤 쓴 거 같다고 그런다. 어떻게 보면 무일푼으로 영국에 와서 공부하는 동안 심각하게 돈 걱정 할 필요가 없도록 단체가 되었든 개인이 되었든 누군가가 내게 2억을 쏟아 부은 거다. 내가 무슨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 말이다. 


그렇게 난 그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경제적인 도움만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게 기꺼이 귀한 시간을 제공해줬던 사람들이 정말로 많았다.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는 '시간'을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기부받았던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내가 재능기부든 자원봉사든 프로보노 활동을 한다고 하면 내가 미쳐서가 아니라 내 나름의 은혜갚는 일이라 생각해주시면 고맙겠다. 물론 그럴 가치가 있는 곳에서 그런 활동을 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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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