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바쁜 일도 있었고, 여기저기 놀러 다니느라 몇 달 동안 업데이트를 못했다. 무사히 논문을 제출했고 귀국해서 한국살이 적응 중이다. 구두시험이 남아있어 다시 영국에 들어가야 하지만 당분간은 여행도 다니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면서 한국을 즐겨볼 생각이다.
이화여대 국제개발협력연구원에서 여름까지 연구실과 도서관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도와줘서 가끔 지하철 2호선을 타기도 한다. 새롭게 한국생활에 적응하는 나를 위해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는 친구들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지내고 있다. 그간 내가 얼마나 지지리궁상을 떨었는지 속옷이며 쌀까지 챙겨보내는 친구들이 있다. 밥값이라도 낼라치면 당황스러워한다. 내가 여기까지 온 게 내 혼자 힘이 아닌 걸 알았지만 많이 부끄럽고 고마웠다. 연구실에서 필요한 문방용품을 무료로 제공해주는데 공부하려면 필요한 게 많다며 만날 때마다 이것저것 문방용품을 챙겨오는 친구도 있고, 주문도 안한 물건들이 택배로 도착해 당황하고 있으면 주문하면서 하나 더했어, 하는 친구의 메시지가 도착하기도 한다. 나의 인복은 머무는 곳을 가리지 않는 것 같다.
영국에서부터 준비했던 인터뷰는 거의 끝났고 설 지나 몇 분만 더 만나면 종료해도 될 것 같다. 한국에서 아프리카 관련 일하시는 분들을 주로 만났었는데 직접 같이 일은 안했지만 어떤 사람들이 그런 일을 하고 있고, 어떤 나라에서 어떤 일들을 주로 하는지 대충 그림은 그려볼 수 있었다. 마음을 열고 진심으로 답변을 해주시는 분들도 있었고, 나를 마치 경쟁자로 여기면서 그 자리를 불편하게 만든 분들도 더러 있었다. 어쨌거나 좋은 경험이라 생각한다. 귀국 비행기에서 맛있는 음식 실컷 먹을 수 있고, 친구들과 가족들도 자주 만날 수 있으니 한국에서 자리를 잡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깐 하기도 했는데 사람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한국에서 적응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앞선다.
아빠가 안 계신 집을 상상할 수 없었는데 아빠의 부재 말고는 모든 게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가니 신기하다. 아빠가 떠난 새 집에서 엄마와의 동거에 문제가 발생할 거라는 생각을 전혀 못했는데 엄마는 내가 스카이프에서 만났던 베스트 프렌드가 아니었다. 내가 언제나 응석을 부리고, 먹고 싶은 걸 요구할 수 있는 엄마는 온데간데 사라졌고, 엄마는 늘 신경써야하는 룸메이트가 되어 있었다. 밥을 먹고 나면 알아서 설겆이를 해야하고, 청소도 말 나오기 전에 해야하고, 엄마 분위기가 안좋다 느껴지면 평소 귀찮아하시는 화장실 청소를 자원해서 하기도 한다. 공밥 먹고 편하게 지내던 시절은 이제 옛날 일이 되어 버렸다. 엄마랑 싸웠다는 사람들을 이해 못했는데 엄마랑 처음 티격태격한 날 충격 속에 엄마는 도심을 방황했고, 난 친구 집으로 도망을 가버렸다. 3시간을 못 버티고 걱정이 되어 엄마를 찾아 나섰지만 아주 색다른 경험이었다.
설이 지나고 엄마와 일본 온천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박사과정이 끝난 후 어떤 밥벌이를 하게 될 지 충분히 설명을 안 한 상태에서 엄마는 내가 도대체 무슨 돈으로 친구들을 만나고, 매주 책들을 사다 나르는지 궁금해 하신다. 그런 차에 당장 해외여행을 떠날 테니 준비를 하라고 하니 의심의 눈초리를 날리시는데 그래도 좋긴 좋은가 보다. 만나는 사람들한테 우리 둘째가 갑자기 일본여행을 가자는데 난 별로 가고 싶지 않아서 말이야...하면서 맘에 없는 소리를 늘어 놓으신다. 아빠와 셋이서 해외여행을 한 적은 여러 번 있는데 엄마와 단 둘이는 처음이라 이번 여행은 나도 기대가 된다. 일본 다녀오면 통장잔고가 드디어 마이너스가 될 게 분명하지만 확실히 재미있을 것 같다.
한국에 오니 가족들과 친구들을 자주 만나고, 전철에서 와이파이가 빵빵 터지고, 문 밖을 나서면 바로 한국음식 천지인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주문하면 그날 도착하는 책들이 감동이라면 감동이다. 이제 적응 중이라 내가 이방인이라는 느낌이 들 때가 여전히 많지만 '이 또한 다 지나가리니'라고 여유롭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 글을 읽으면서 '한국에 왔으면서 연락도 안하나, 이 괘씸한 인간...' 하는 분들도 있을 지 모르겠다. 메일 주소도 모르겠고, 전화번호도 바뀐 분들은 지금 수소문 중이니 조금만 기다려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