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24: 한국/2014 2014. 7. 9. 11:52

겨울철 몸에 면역력이 떨어지면 감기에 걸리듯 환절기에 면역력이 떨어지면 피부도 감기에 걸린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른 바 '장미색 비강진'이다. 원발진이라는 게 있다는데 그건 내 몸 어디에 있었는지 모르겠고, 발진이 심해지거나 퍼지기 시작하면 놀라서 병원을 찾는 게 이 병 걸린 사람들의 수순인 것 같다. 모기떼에 물린 것처럼 우툴두툴 두드러기 같은 게 나서 응급실을 찾았는데 의사가 두드러기는 아닌 것 같다고 해 무슨 이런 병이 있나하고 피부과에 같더니 이름도 예쁜 장미색 비강진이란다. 대개 얼굴에는 안 올라온다는데 난 얼굴로 올라와 더 힘든 것 같다.


의사에게 어떻게 해야되느냐고 물으니 원인이 없기 때문에 특별한 치료법이 없단다. 첫번째 간 병원에서는 술만 마시지 말라고 그러고, 두번째 간 병원에서는 밀가루와 유제품, 육류를 끊으라고 했다. 두유도 한살림 같은 데서 나온 거 아니면 시중에서 파는 건 화학제품이 너무 많이 들었으니 먹지 말라고 했다. 실제로 몸에 나쁜 건 들어가면 심한 발진이 동반되는데 꾸준히 먹었던 두유들에서 그런 증상이 나와 두유도 멀리하게 됐다. 


병원 서너 군데를 다녀보고 알게된 사실인데, 이 병 증세가 보통 6주에서 10주 정도 가는데 한번 앓고 나면 면역이 생겨서 다음에 안 걸리는 사람도 있고, 환절기만 되면 병이 도져 고생을 하기도 한단다. 바이러스 혹은 면역체계가 무너져 생기는 경우가 많으니 혈액순환, 독소제거, 면역력 증강이 치료에 도움이 된단다. 유학생활 하는 동안 나쁜 음식들(?)을 많이 먹지도 않았고, 늘 울창한 숲에 둘러싸인 곳에 살았는데 갑자기 바뀐 서울살이가 병의 근원이지 아닌가 싶다. 그동안 한국에 와서 MSG가 흠뻑 들어간 음식들을 많이 먹기도 했고.


원인이 없다니 일단 평소 몸에 나쁘다고 하는 음식들부터 끊기 시작했다. 우유를 끊으려면 치즈, 케이크, 각종 커피음료 등을 안 먹어야하고, 밀가루를 끊으려면 빵, 면류 등을 멀리 해야한다. 육류를 끊으니 정말 서울 시내 갈 만한 식당이 없다. 비빔밥이 제일 만만한데 다진 소고기를 넣은 집들이 너무 많다. 콩나물국밥, 이거 괜찮을 것 같아 갔더니 장조림용 돼지고기가 비법인 집이었다. 야채김밥은 괜찮겠지 하는데 양념들에 화학제품이 들어갔는지 발진이 심해져 야채김밥도 못 먹고 있다. 이 병 덕분에 몸에 안 좋거나 몸에 갑작스럽게 열을 올리는 음식들의 구분이 가능해졌다. 설탕이 몸에 나쁜 이유도 이번에 확실히 알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최소 8주 동안 집밥 위주의 아주 엄격한 채식주의자가 되어보자고 마음 먹고 야채, 과일들을 챙기는데 과일도 당도가 높으면 발진이 심해진다. 


생야채, 현미, 된장찌개 같은 걸로 식습관을 개선하고 3주를 보내고 있다. 의사들의 통계에 따르면 아직도 몇주가 더 남았는데 평소 좋아하는 음식 냄새가 어딘가에서 풍겨오면 너무 힘들다. 연구소에도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는데 가끔 밖에서 밥을 꼭 먹어야할 때는 제대로 된 식당을 못 찾아 일행도 당황스러워하고, 나도 미안해 어쩔 줄을 모를 때가 있다. 식당을 못 찾아 의도치않게 혼자 금식을 해야할 때도 있고. 무슬림들의 라마단이 시작되었는데 무슬림도 아니면서 무슬림이 된 기분이다. 올 여름계획 중에는 맛있는 치맥집 순례가 있었는데 가을이 될 때까지도 치맥 옆에는 못 갈 것 같다. 이것도 다 서울살이 신고식이라고 위로를 하지만 하루하루 사는 게 쉽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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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