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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24: 한국/사람들2007. 11. 9. 12:35
자전거 패달을 힘껏 밟아 학교에 도착했는데 외국인 선생이 감기 때문에 학교에 못나와 휴강한다는 메시지가 교실문 앞에 붙어 있었다. 체력은 국력이라는 데 꼭 해야 할 일을 몸이 아파 못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이제 몸 관리를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졸지에 시간이 떠 버려서 그 기념으로 포스팅한다. 어제에 이어 내가 만난 아름다운(내 맘이다.) 인연 3탄이다.

일본국제교류기금 초청으로 2005년 10월부터 2006년 5월까지 간사이에서 체류하면서 일본 축제 공부를 아주 실컷 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때쯤이었다. 3개월 후인 8월에는 에티오피아에 갈 계획이라 이 기간을 어떻게 알차게 보낼까 하던 참에 화천 나라축제조직위 기획팀장인 어랍쇼라는 친구와 연락이 닿았다. 사람이 많으니 특별히 할 일은 없지만 알바거리는 있단다. 그렇게 해서 강원도 화천에 가게 됐다.

정말 특별히 할 일은 없었지만 아주 바빴고 그 와중에 내가 꼭 해야하고 나밖에 못하는 일이 거기 있다는 걸 알았다. 화천 사람들은 어랍쇼를 비롯해 마치 동화 속에 있는 사람들 같은 이미지로 내게 다가왔다. 어디에도 없고 화천에만 있는 그런 사람들 덕분에 나의 3개월은 참으로 유익했고 또 행복했다.

화천에 갈 때까지만 해도 내가 여관살이를 그렇게 오래할 줄 몰랐다. 콘서트를 할 때는 유명 아티스트들과 함께 가기 때문에 지역에서 제일 좋은 호텔에서 머물렀는데 화천엔 호텔 자체가 없었다. 장급 여관이라고 강조를 했지만 나한테 여관은 참으로 낯선 곳이었다. 군장병들이 군민 수보다 많은 화천이라는데 여관을 드나드는 군인아저씨들은 또 얼마나 많던지. 어쨌거나 알바생 주제에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라 그냥 조직위에서 정해주는 <용화장>이라는 여관에 짐을 풀었다. 조직위에서도 나 같은 사람을 채용해 쓰는 게 처음이라 처우를 어떻게 해 줘야 할 지 모르겠다면서 나한테 물을 정도였으니 지금 생각하면 여관 독방도 과분했던 것 같다.

그냥 배낭여행을 하는 중에 잠시 들른 곳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지면서 여관살이가 적응이 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사장님(주인 아주머니)이 어찌나 친절하신지 퇴근하고 집에 오면 세탁물이 싹 개어져 방 앞에 놓여 있었고 맛있는 음식이 생기면 꼭 먹어보라고 방문을 두드리셨다. 여관의 벽 때문에 인터넷 사용하는데 무려 한달이 걸렸고 내가 지내던 방이 좀 습한 것 말고는 여관에서 석달을 보내는 데 큰 스트레스는 없었다.

그렇게 그렇게 일이 잘 끝나서 서울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화천 군수님이 밥을 사신다고 하셨는데 그냥 순대국밥 한 그릇으로 떼우게 되었고, 그러고나서 주인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드릴 생각이었는데 그날 하필 춘천으로 나들이를 가셨단다. 졸지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핸드폰으로 대신하고 쓰던 짐들은 알아서 처분해 주세요, 하고 화천을 떠났다.

조직위 장석범 본부장님이 겨울에 또 올거지, 이 말씀을 안 하셨으면 다시 화천에 갈 생각을 하지 않았을 텐데 에티오피아에 있으면서도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다 결국 작년 겨울에 다시 화천으로 향했다. 여름의 쪽배축제보다 규모가 훨씬 큰 대한민국 제1의 겨울축제인 산천어축제를 홍보하는 일이 내가 할 일이었다. 조직위가 아닌 화천군에서 지난 여름에 불편하셨던 것 같은데 이번 겨울에는 다른 곳에서 묵는 게 어떠냐고 의향을 물어와 춥지만 않으면 그냥 <용화장>에서 묵을 거니까 신경쓰지 말라고 하고 동서울에서 버스를 탔다.

화천에 가던 날 눈이 살짝 내렸던 것도 같고 아무튼 그날 몹시 추웠다. 조직위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용화장>으로 귀가를 했다. 아주머니가 어찌나 반가워 하시던지 그 겨울에 대한 예감이 아주 좋았다. 여름에 책상이 없어서 밥상을 하나 사서 노트북을 올려놓고 사용했는데 그걸 박스에서 꺼내 주시면서 다시 오실 것 같아 보관해 두고 있었다, 고 하셔서 감동을 흠뻑 먹었다. 또 내가 쓰던 샴푸며 비누며 하나도 버리지 않고 그것도 그대로 주시는 게 아닌가. 감동은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아침 8시만 되면 전화를 해서 얼른 와서 한술 뜨고 가쇼, 이 말씀을 하고는 대답도 안 듣고 끊으시는 통에 일주일을 버티다 여관집 안방에 들어가 아침까지 얻어 먹게 되었다. 내 밥그릇의 밥은 늘 막내 아들 밥보다 양이 많았는데 바깥 밥은 기름기를 걷어내서 영양가가 없으니 밖에서는 무조건 많이 먹어둬야 하니까 사양하지 말라시며 늘 산처럼 밥을 퍼 주셨다. 밥그릇에 밥이 거의 비워질 때쯤이면 아주머니는 옆에서 요쿠르트랑 이런저런 과일을 섞은 야채주스를 만드신다. 내가 밥상에 숟가락을 딱 놓으면 주스 한잔에 알로에 정제된 걸 더도 덜도 아닌 딱 여섯 알을 세어서 주셨다. 그리고 출근을 했다.

시골에서 고생한다고 친구들이 자원방래 할 때가 몇 번 있었는데 여관에서의 아침 식사는 친구들에게도 제공이 되었다. 이 친구들 왈, 여관에서 아침까지 얻어 먹을 줄 몰랐다면서 넌 어딜 가도 너한테 맞춰서 생활을 하는구나, 이러는 게 아닌가. 봉황이었던 사람들을 닭으로 만드는 건 많이 봤는데 넌 여관도 호텔로 만드는구나, 라고 덧붙이면서...

날씨가 많이 춥지 않아 축제가 잘 될 지 걱정을 했는데 산천어축제는 올해도 방문객 100만이란 숫자를 아주 가볍게 넘겼고 전세계 수십여개의 미디어에 화천이라는 이름을 확실히 홍보하면서 한국의 재미있는 겨울 축제로 대서특필 되었다. 축제 일도 재미있었고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 화천에서의 겨울나기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리 힘들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용화장 사장님을 다시 만나 따뜻한 인간미를 체험할 수 있어 참으로 좋았다. 서울로 돌아와 감사하다는 기념으로 뭔가 선물을 하고 싶었는데 딱히 떠오르는 게 없어서 칼날 튼튼한 믹서기를 하나 사서 택배로 보내드렸다. 다시 올거지유, 하셨는데 그냥 배시시 웃고 말았다. 그 이후 다시 화천 갈 일을 못 만들었고 여전히 난 일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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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