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에서 3주 일정으로 영어연수를 왔던 E가 드디어 떠났다. 무슨 말을 하면 다 알아들었다는 듯이 예스예스, 라고 하지만 눈빛으로는 영 무슨 말인지 못알아듣겠다는 표현을 해대는 통에 무척이나 난감했었다. 내가 담당하는 애들 중에 러시아에서 온 학생들이 있나 찾아봤지만 어쩜 한명도 없었고,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아제르바이잔에서 온 학생이 보여서 노크를 했다. 너 러시아어 할 줄 알지, 대뜸 그랬더니 네가 어떻게 그걸 아냐면서 당황스러워한다. E에 대한 사정을 얘기했더니 걱정하지 말란다. 시내에 어떻게 가야하는지를 비롯해 학교가는 방법, 버스타는 방법 등을 러시아어로 쉽게 설명해주라고 부탁을 했었다.
지내는 동안 아제르바이잔 학생한테 얼마나 신세를 졌는지 모르겠지만 내 방문은 거의 매일 두드렸다. 첫날 거의 자정무렵에 도착했는데 히터가 안돌아간다고 문을 두드리기 시작해, 쓰레기통이 안열린다 (발로 눌러야 하는데 그게 고장이 나는 바람에...), 계약서에 이런 표현이 있는데 무슨 뜻이냐 등등 쉴새없이 노크를 했다. 기숙사 사감일을 하면서 내가 유학생들의 엄마가 된 느낌을 많이 받는데, E가 내 방문을 두드릴 때도 그 생각이 들었다.
E가 나를 찾아올 때마다 오늘은 뭐 배웠냐, 친구는 많이 사귀었냐, 시장은 잘 찾아갔냐, 버스는 탈 줄 아느냐 등등을 묻곤 했는데 3주간 영어가 그렇게 많이 는것 같지 않다. 체크아웃 리스트에 싸인을 하면서도 여전히 놀란 표정으로 눈빛을 깜빡깜빡, 잘 모르겠다는 신호를 보낸 것 보면. 우리 언제 다시 만나게 될 지 모르지만 네 앞날에 행운이 있기를 빈다고 짧은 포옹을 하고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