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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1.29 기숙사 백태-아프리카 학생들

몇주 전이다. 밤늦게 도착하는 학생이 있어 다른 기숙사 사감한테 계약서 등을 인계해주고 오는데 창문까지 열어놓고 시끄럽게 떠드는 애들이 내 눈에 딱 걸렸다. 시간은 거의 자정을 달리고 있었다. 담당사감한테 연락을 했는데 마침 방에 있었다. 사감 일을 시작한 지 일주일도 안된 친구라 좋은 샘플이 될 것 같아 같이 가주기로 했다. 현장에 당도하니 전부 아프리카에서 온 학생들로 정말 엄청나게 떠들고 있었다. 멀리서 음악소리는 못들었는데 스피커에서 뿜어져 나오는 소리가 아주 요란했다. 화장실에 숨어 있었던 학생들까지 모두 여섯이었다. 새로 와서 기숙사 룰을 몰랐다고 변명을 하는데 내 학생이 거기 둘이나 있었다. 규정을 다시 이야기해주고, 아이디를 확인하고 모두 돌려 보냈다. 그리고 끝난 줄 알았다. 


헌데 방주인이 나와 다른 사감을 못가게 막고는 아주 격하게 불만을 토로했다. 다른 애들은 떠들어도 그냥 두면서 왜 우리한테만 이러는 거냐, 이건 명백히 인종차별이다, 라는... 이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게 이 일을 하는 중인데 좀 쇼킹했다. 그 친구 방 바로 윗방은 거의 날마다 떠드는데 왜 단속을 안 하느냐고 그러는데 내 구역이 아니라 나는 모르는 일이었고, 새로 일 시작한 사감도 그런 일이 있는 줄 전혀 몰랐던 터라 우린 둘다 당황했다. 어쨌거나 그런 일은 있을 수 없고, 우린 규정대로 처리한다고 이야기해주고 거길 나왔다.


아 이런, 방으로 돌아가다 또 한 방이 걸렸다. 홍콩 그룹 다섯명이다. 상습범들이다. 그 중 한명은 걸핏하면 뭘 집어던지면서 화를 내는데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하도 시끄러워 노크를 한 후 방 주인한테 손님이 있느냐고 했더니 저 혼자란다. 방문을 열어달라고 했더니 왜그러느냐면서 주저한다. 화장실에서 네명의 학생이 커튼 뒤에 숨어 있다 멋적어하며 나왔다. 손을 씻고 나오려던 참이었단다. 넷이서? 그리고 자기네들은 방 주인의 손님이 아니고 친구이니 거짓말을 한 건 아니라고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했다. 규정을 이야기해주고 아이디를 확인하고 있는데 오 이런, 좀 전에 만났던 아프리카 학생이 맞은편 방에 놀러 왔다가 멈춰 서서는 내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주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난 규정대로 처리하는 중이었고, 아이디를 확인한 후 학생들을 돌려보냈다.


그리고 어제 저녁. 노이즈 이슈는 아니었고, 불쌍한 아프리카 학생들과 다시 조우하게 되었다. 시간은 오후 10시. 홍콩 그룹이 파티를 하는 지 요란하게 요리를 하는 광경을 저녁 8시쯤 봤는데 그 시간까지 학생들이 공용부엌을 점거하고 있었다. 그러려니 했다. 근데 생각해보니 부엌 옆의 아프리카 학생들도 요리를 한다고 시장을 봐 온 걸 봤는데 어디서 요리를 했을까 궁금했다. 다른 부엌은 열쇠가 달라 들어갈 수가 없는 상황이고. 괜한 오지랖에 노크를 했더니 학생들이 아직까지 거기 있었다. 맛있게 저녁 먹었냐고 했더니 다른 학생들이 부엌을 사용하고 있어 떠날 때를 기다리고 있는 중인데 벌써 두시간째란다. 아, 이런 불쌍한 친구들. 당장 부엌에 가서 파티가 끝났는지 홍콩 그룹에게 물었다. 부엌을 쓰고 싶다면 다른 부엌이라도 열어 줄 생각에서였다. 왜 그러냐고 퉁명스럽게 묻길래, 다른 친구들이 요리를 못하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너네들이 더 부엌을 사용하면 다른 부엌을 이용하게 해주려고 한다고 설명해줬다. 다행히 홍콩 그룹은 주섬주섬 그릇들을 챙겨 서둘러 부엌을 떠났고, 저녁 10시 반이 되어서야 아프리카 친구들은 저녁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냥 같이 인사하고, 요리를 하지 그랬느냐고 했더니 뭐 괜찮단다. 아프리카 지네 나라 가면 가드에 메이드가 수명이 딸린 왕자님들일 텐데 먼나라 와서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리를 해야하는 데 사람들이 많아 불편하다 싶으면 우리 건물의 아무 사감이나 연락하라고 그랬다. 당장 요리를 할 수 있게 해줄 거라고. 그리고 다른 사감들에게 이런 학생들이 있으니 주의 깊게 지켜봐 달라는 메일을 띄웠다.    


좀 전에 밖에 나갔다오다가 빌딩입구의 게시판을 보는데 기숙사 사감리스트에 있는 내 사진 정 한가운데에 누가 압정을 꼽아 놓은 게 눈에 확 띄었다. 얼굴을 도려내거나 아니면 바늘을 촘촘하게 꼽아 얼굴을 분간도 못하게 만들어놓기도 하는데 내 사진은 아직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하면 스트레스가 풀리나? 사람 얼굴에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지 난 이해가 안되지만 그런 애들이 종종 있다. 시끄럽다고 잔소리를 했던 아프리카 학생들일 수도 있고, 홍콩 그룹일 수도 있고, 또 다른 학생들일 수도 있다. 압정을 뽑아봤자 또 꼽아 놓을 것 같아 그냥 내버려뒀다. 그런 내 사진을 볼 때마다 부두인형이 된 기분이 든다. 내 코가 제자리에 제대로 붙어 있는지 궁금해 스윽 한번 문질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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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