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엔 한 스페인 오타쿠가 쓴 <A Geek in Japan>을 읽었다. 일본의 다도 혹은 차도(Tea Ceremony) 관련 자료를 찾는데 이 책이 걸렸다. 책에서는 Tea Ceremony가 아주 짧게 소개되었는데 작가한테는 운이 좋았던 거지. 이런 식으로 책을 구입하는 사람이 있으니...커버며 편집은 마음에 안들었지만 일본문화에 대해 두루두루 손 안 댄 키워드가 없을만큼 아주 공들여 쓴 일종의 일본문화 탐험기였다. 일본을 처음 방문하는, 특히 서양인들에게 강추할 만한 입문서가 될 것 같다. 우리나라 문화 입문서로는 론리 플래닛 말고 어떤 책을 소개하면 좋을까. 아직 눈에 확 띄는 책을 발견하지 못했다. 영부인은 어차피 써야 할 예산이라면 그 좋은 재료들로 후세에 길이 남을 한국문화 입문서나 한권 만들 것이지....
책 읽으면서 느낀 건데 일본에 살면서 내가 의식하지 못했던 것들이 의외로 많았다. 작가는 오타쿠답게 관찰력이 아주 예리했다. 예를 들어 일본 사람들은 중고품 구매를 싫어한단다. 왜냐하면 모든 물건에 혼이 담겼다고 믿는데 중고품을 구입할 경우 이전에 사용하던 사람의 혼이 따라올지도 모르기 때문에 구입을 꺼린단다. 몰랐던 사실이다. 그럼 간다의 그 헌책방들은 왜 있는 거지? 전부 동의하긴 힘들었지만 그렇게도 볼 수 있구나, 하는 게 많았다.
일본의 첨단 기술에 대한 한없는 찬사에 작가가 아마 스페인 어디 시골 출신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사실 유럽애들 도쿄나 서울 오면 다 눈이 빙빙 돌아갈 거다. SF 소설에나 나올법한 세계에 사람들이 살고 있으니....작가가 2013년 서울의 무역센터 근처나 강남을 한바퀴 돌고 나면 현재 도쿄의 하이테크가 아무것도 아니란 거 느낄 지도 모른다. 아니 인천공항에 내리자마자 일본의 나리타 공항과 확 비교되는 시설들에 놀라 자빠질 듯. 나도 한국에 잠깐 들어갔다가 아주 깜짝 놀랐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스마트폰으로 무장을 하고 있고, 금방 지은 건물들은 내부 인테리어도 전부 새 것에다 번쩍번쩍 황홀하다. 영국 와서 놀란 게 패스트푸드점을 비롯해 건물 내부 시설들이 너무 낡았다는 것. 우리보다 수십년 먼저 오픈했을 테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작가가 침이 마르게 자랑하는 우수한 일본문화의 뿌리가 중국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고 싶지 않지만 설명에 한국이 철저하게 제외되었다는 것은 지적하고 싶다. 물론 작가의 탓은 아니다. 나도 일본에서 친일파 교육(일종의 문화연수)을 8개월 받은 적 있는데 그때도 느낀 거다. 외국인 대상의 일본역사 혹은 일본문화 관련 책자에 한국은 거의 등장을 안한다. 전부 중국에서 직접 일본으로 문화가 전수되었다는 식이다. 학위취득을 위해 일본에서 4년을 공부하고 한국에서 6개월간 한국어를 공부한, 한 외국인 청년이 내게 그랬다. 한국은 너무 자국 홍보에 인색하다고. 자기가 일본에서 일본이 오리지널이라고 배웠던 게 전부 한국에 있고, 역사가 훨씬 더 앞서 있다는 사실에 놀랐단다. 섬나라 일본이 한국이 필터가 되어 걸러진 문화를 받아들였다는게 상식일 텐데 일본에 있을 때는 중국에서 직접 문화를 전수받았다는 게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었단다. 한국문화 관련 자료는 영어로 된 게 거의 없어 찾아보기 힘들고, 한국은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어있는 별볼일 없는 나라라고 생각했단다. 저 스페인 오타쿠도 아마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레이디 프레지던트가 5년 동안 한국의 국격상승에 좀더 힘을 실어줬으면 좋겠는데 지금 시점에서 이런 거 기대해도 되나 모르겠다. 그 보다는 스페인 오타쿠처럼 한국을 매력적인 나라로 여겨 글도 많이 쓰고, 재미있는 영상도 많이 소개하는 이방인들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