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를 잡아야 뱃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물을 던져 잡든 바늘로 잡든 뱃사람이라면 물고기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기 물고기 안 잡는 뱃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배에서 생활한다. 뭍에 내려오기도 하지만 물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고 뱃사람인 탓에 배에서의 생활이 몸에 배어 있다. 그들은 배 위에서 먹고 배 위에서 배설하고 배 위에서 씻고 배 위에서 잠잔다. 이러니 뱃사람이 아닌가.
인천 제1국제여객터미널에 가서 중국행 배에 오르면 이런 뱃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뱃사람 중에는 조선족도 있고 (북한 억양이 섞인) 조선어가 아닌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중국 한족도 있다. 더러 한국인 뱃사람도 만날 수 있다. 이들은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물건을 교역하는 일에 종사한다. 한국 물건을 중국에 내다 팔기도 하고 중국 물건을 한국으로 들여오기도 한다. 국제여객터미널의 짐 붙이는 곳에 가면 우리 눈에 익숙한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가 아닌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가 표기된 커다란 박스가 산처럼 쌓인 채 승선을 기다리고 있다. 천진항이 목적지인 김 박스도 있고 단동항이 목적지인 라면 박스도 있다.
배에는 화장실과 샤워실이 있고 화장실 안에는 탈수기까지 갖춰져 있다. 속옷을 비롯해 건조를 기다리는 옷가지들이 복도 여기저기에 내 걸려 있다. 열 대여섯 시간에서 스물 네 시간 배 여행을 하면서 빨래를 하는 여행객들은 거의 없다. 대부분 이 뱃사람들 것이다. 그들은 승선하자마자 자리를 잡고 제빨리 빨래를 해서 넌다. 일반 관광객들이 티켓에 적힌 자기 자리를 찾아 헤매는 동안 이 사람들은 이미 샤워까지 끝낸 상태다. 마치 집에 돌아온 사람들처럼 배 안에서의 모든 게 아주 익숙하다.
배가 인천항을 떠나고 나면 이들은 부산스럽게 돌아다니며 정보를 주고 받기도 하고 카드 놀이로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배가 중국의 항구에 도착하면 이들은 제일 먼저 하선을 한다. 대개 단체 여행객들이 많아 배에서 내리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짐을 붙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바퀴도 안 달린 검은색의 커다란 이민 가방을 직접 메고 배에 오른다. 배에 올라 그 자리에서 거래를 하기도 하고 중국의 항구에서 수요자에게 직접 물건을 전달하기도 한다. 배에서 교역이 끝난 사람들은 하선을 하지 않고 그대로 그 배를 타고 인천으로 돌아 온다.
비록 잡아야 할 게 물고기는 아니지만 이 사람들도 고기를 잡기 위해 바다와 싸워야 하는 사람들만큼 거칠고 억세 보인다. 배 안에서 서로의 애환을 들어주기도 하지만 자리 때문에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고 물건 때문에 몸싸움을 하기도 한다. 가족의 안부를 걱정하다가 편을 갈라 다른 사람 험담을 하기도 한다. 사람 사는 곳이라면 배 위라도 다를 게 없다. 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여기에서도 그대로 재연된다.
인천과 중국을 오가는 배에는 물고기를 잡지 않는 뱃사람이 타고 있다. 배 위에서 바다와 직접 싸우지는 않지만 삶과 싸우는 그들은 천상, 뱃사람 아닌 뱃사람이다. (2004.7~9 학위논문을 위한 북경 필드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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