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 평양식당 해당화

북경 유학 시절, 친구를 통해 평양식당인 ‘해당화’를 우연히 알게 되었다. 우리 돈으로 천 원도 안 되는 몇 원짜리 중국 음식에 길들여져 있다가 해당화에서 먹었던 북한 음식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특히 '해당화'의 ‘가재미 식혜’는 제일 좋아하는 음식 목록에 올려 놓고 있다.


북경에 있는 한국 식당에 가끔 가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값만 비싸고 한국에서 먹었던 맛과 달라서 갈 때마다 후회를 했던 기억이 난다. 중국에서 운영하는 한국 식당은 대부분 주인만 한국 사람이고 주방에 있는 사람들이나 종업원들이 조선족들로 구성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조선족들은 한국 사람과 말은 통하지만 그들은 한국 문화를 잘 모르기 때문에 한국식 서비스에 길들여져 있는 사람들은 낯선 경험을 많이 하게 된다. 음식 맛도 대부분 중국에서 생산되는 재료들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변형된 맛, 그러니까 중국스러운 비빔밥에 중국스러운 불고기가 나온다.


그러나 ‘해당화’는 달랐다. 북한에서 직접 들여온 재료로 음식을 만들기 때문에 ‘두릅나물’ 같은 경우는 향이 얼마나 진한지 모른다. ‘평양 통김치’는 한국에서 먹어 본 김치 맛 그 이상이었다. 서비스 하는 종업원들도 전부 북한의 고려호텔을 비롯한 고급 호텔에서 소양교육을 받고 파견된 사람들로 식당에 들어서는 순간 북한을 느낄 수 있다. 음식 이름들도 백두산 들쭉술, 단고기무침 등 ‘조선어’를 그대로 사용한다. '해당화'를 찾는 사람들은 북한 사람들 보다, 중국 사람들 보다, 오히려 한국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한국 사람들이 '해당화'를 많이 찾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우리가 쉽게 접하지 못하는 북한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해당화'의 음식 맛을 빼놓을 수가 없다. 음식점에서 맛은 손님을 끌어들이기 위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니던가.

북한 문화를 파는 해당화
'해당화'는 대개 저녁 9시 반까지 영업을 한다. 손님이 많은 시간에는 홀에서 서비스를 하던,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종업원 몇 명이 무대에 올라가 기타와 아코디언을 연주한다. 반주에 맞춰 귀에 익은 ‘반갑습네다’ 같은 북한 노래를 부르기도 하는데 '해당화' 버전으로 부르는 ‘아침이슬’은 들을 때마다 묘한 감동이 밀려 온다. 가끔씩 흥에 취한 한국 손님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무대에 올라가 같이 부르겠다고 마이크를 달라며 성화를 대거나 사진을 찍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도 일종의 공연이다. 공연이 끝나고 정중히 양해를 구해 사진을 찍을 수 있는데 영 보기에 민망하다.

외국에 나가 있는 한국 식당, 특히 중국에 나가 있는 한국 식당은 ‘해당화’에서 배울 점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장의 비용 몇 푼을 아끼려고 한국적인 것을 보여주어야 하는 곳에서 내용은 빠진 겉만 번지르르한 한국 식당이 너무 많다. 한국 음식이 그리워 마음 먹고 찾아간 식당인데 전혀 한국 음식 맛을 느낄 수가 없을 때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차라리 조선족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저렴하게 먹고 나오면 억울하지나 않을 텐데 말이다. 한국 식당을 이용하는 많은 한국 사람들은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중국에서 뭘 크게 기대하겠느냐는 거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한국 식당을 이용하는 중국인이나 다른 외국인이 이런 음식 맛을 한국 맛이라고 오해하는 것이다. 기와 지붕에 상호만 한글 식당이면 뭐하나. 안에 들어가면 조선족 주방장이 중국산 재료로 만든 음식이 나오고, 조선족이 중국식으로 서비스를 하는데 그게 어디 한국 식당인가.

‘해당화’는 북한 음식만 파는 곳이 아니다. 북한 문화를 파는 곳이다. 우리 눈에는 낯설고 때론 촌스럽기까지 한 것들이지만 그들에게는 그것이 하나의 문화이다. 북한 문화. 우리로서는 ‘북한스럽다’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그런 문화를 그들은 철저히 돈으로 바꿀 줄 아는 사람들이다. GDP는 우리가 월등히 높지만, 문화를 파는 재주에 관한한 ‘해당화’의 그들이 한 수 위로 보인다. 오늘도 한국 사람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 그들은 찌개를 나르다 기타를 메고 아코디언을 연주하며 ‘반갑습네다’를 외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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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