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를 어떻게 해야 잘할 수 있을까요. 일본국제교류기금 간사이센터에서 일본어 공부할 때 내 튜터가 그랬다. 네가지를 동시에 해야한다고. 읽기, 쓰기, 말하기, 그리고 듣기. 읽을 때는 소리내서 크게 읽고, 손이 다 기억하기 때문에 쓰면서 공부하고, 좋아하는 목소리를 정해 그 사람 목소리를 흉내내라 그랬다. 아이가 "엄마"를 부르는 데는 같은 단어를 적어도 1000번 이상 반복해서 듣는 과정이 필요하다지. 네가지 방법 중 손이 기억하니 쓰면서 공부해야한다는 말이 참 인상적이었다. 요즘 다들 컴퓨터, 스마트폰 등 기계를 사용하니 손으로 글씨를 쓸 기회가 별로 없다. 그러니 손이 내가 한 공부를 얼마나 기억하는지 확인해볼 기회 또한 거의 없다.


카레 만들어 먹는다고 양파를 썰다 한순간이었다. 왼쪽 검지에서 피가 막 뿜어져 나왔다. 한시간이 넘도록 지혈이 안돼 걱정스런 마음에 인터넷 검색을 했더니 심장 위쪽으로 손을 들라고 그런다. 입은 옷으로 피가 흘러 내릴까봐 베인 곳을 그냥 손으로 꾹 누르기만해서 지혈이 안되었던 거다. 화장실 세면대에 몸을 기대고 손을 번쩍 들고 있은 지 얼마 지나지않아 다행스럽게 지혈이 되었다. 상처가 심해보여 걱정하는 마음에 병원에 갔더니 손가락이 잘려 나가지 않는 한 수술같은 건 필요없단다. 2주 정도 물이 안닿게 잘 관리를 하라며 반창고 하나 붙여주고는 그냥 가라는 거다. 기뻐해야할 것 같은데 혼자 소동피운 생각을 하니 뭔가 좀 억울했다. 떨어진 살이 보이니 적어도 몇바늘은 꼬매야되는 줄 알았다. 


일본에 있을 때 자전거 사고로 왼쪽 장지를 다친 적이 있는데 거기에 비하면 검지 손가락 끝의 베인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때는 장지 마디 끝, 그러니까 바닥과 연결된 곳이라 왼쪽 손을 전혀 쓰지 못했다. 샤워할 때도 요리할 때도 물이 닿을까봐 장갑을 껴야했다. 의사가 그러라고 그랬다. 근데 검지는 간단했다. 이번에도 샤워할 때, 요리할 때는 라텍스 장갑을 사용하긴 했는데 낫기까지 확실히 수월했다. 손 씻을 때도 손가락 보호대를 끼거나 아니면 손가락을 살짝 들면 그만이었다. 2~3일에 한번씩 반창고만 갈아주면서 그렇게 조심한 끝에 상처가 아물었는데 그런 일이 있었나싶게 감쪽같다. 우리 몸의 자연치유력에 감동을 했더랬다.


근데 문제는 요즘도 손을 씼을 때 나도 모르게 손가락을 살짝 들거나 하면서 베었던 자리에 물이 닿을까 조심을 한다는 거다. 거참 신기하다. 일본어 선생님이 얘기했던 손이 기억한다는 말이 이런 게 아닐까 싶다. 괜히 옛날 생각이 나서 아침먹고 노트에 히라가나를 한번 죽 써봤다.



'채널24: 영국 > 영국유학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책  (0) 2012.09.12
가을에 듣는 겨울  (0) 2012.09.09
후루룩 국수 시식기  (0) 2012.09.06
9월 망중한  (2) 2012.09.05
새로운 커피투어리즘 연구자  (2) 2012.09.01
Posted by 윤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