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24: 한국/2014 2014. 9. 11. 23:47

1.

길거리에 아직도 반소매를 입고 다니는 건강한 청년들이 많이 보이지만 그러기에는 좀 춥다.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자기에도 너무 추워졌고. 얄포름한 스카프를 하나 장만했는데 이런 계절에 딱이다. 저녁을 일찍 챙겨먹고 커피 잘 뽑는 커피숍에 와서는 잠이 안 올까봐 카모마일 티를 한 주전자 시켜 마셨다. 계산하는데 종업원이 도장을 한 개만 더 받으면 공짜로 차를 한 잔 더 마실 수 있다고 했다. 씐난다.


2.

계절의 변화를 모를만큼 바쁘게 사는 것도 아닌데 좀 무심했다. 노트북을 안 열어보고 산지도 너무 오래되었다. 구글 이메일 계정 비번 500만개가 러시아에서 유출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이메일 계정 비번이나 바꿔야지 하는 생각에 열었는데 아 내가 블로그를 가지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을러도 너무 게을렀다.


3.

후임한테 인수인계가 필요하지 않아도 되는 시점에서 연구소를 그만두고 백수생활을 시작했다. 백수생활은 생각보다 꿀맛이다. 주변에 연대를 해도 좋을만큼 백수가 많아져서 별로 쪽팔리지도 않다. 엄마가 좀 걸렸는데 오히려 왜 더 놀지 일찍 직장생활을 시작했느냐며 이참에 아주 푹놀라고 하셔서 다리 쭉 뻗고 노는 중이다. 책도 읽고, 가끔 자원봉사도 하고, 골목산책도 하고, 졸리면 근심없이 그냥 잔다. 한병철 씨가 <피로사회>에서 언급한 '깊은 심심함'이 자주 찾아와 이러다 예술을 하는 거 아닌지 고민이 될 정도다. (엄마 왈: 뭐 하게되면 하는 거지 고민은 무슨...)


4.

추석즈음에 걸린 감기가 아직도 안 떨어지고 따라다닌다. 감기는 약 먹으면 7일, 안 먹으면 일주일이라는데 나한테는 더이상 안통하는지 원. 면역력이 확실히 약해지긴 약해진 것 같다. 강철같은 체력을 타고났다고 자랑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젠 이상한 피부질환에 걸리지를 않나 감기도 한번 걸리면 오래간다. 참, 장미색비강진은 언제 그랬냐는듯 흔적없이 나았다. 피부 속은 잘 모르겠지만...운동도 하고, 좋은 것도 잘 챙겨먹고, 마음도 편하게 먹으니 곧 다 좋아지겠지.  


5.

말을 하는 게 귀찮아져서 사람들은 거의 안 만나는 중인데 9년 전 에티오피아에서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이 연락을 해서 정말 9년 만에 만났다. 서로 금방 알아볼 수 있어 좋았다. 광장시장 마약김밥이 유명하다고 해서 거기서 만났는데 기대를 너무 했는지 맛은 그다지 감동스럽지 않았다. 난 아무 선물도 준비하지 않았는데 상대방은 만나자마자 메시지와 함께 장 지오노의 <나무 심는 사람>을 전해줬다. 마음이 참 따뜻한 사람이다. 내용은 책으로도, 애니메이션으로도 본 적이 있는데 다시 읽어도 감동이다. 요즘 푹 놀다보니 엘제아르 부피에의 고독이 잘 이해가 간다. 이제 나무 심는 일만 남은 건가.


커피숍 문 닫는단다. 슬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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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