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24: 한국/2014 2014. 12. 11. 15:46

한국에 와서 세 군데의 대학부설 연구소에서 일을 했다. 모두 장단점이 있는데 지금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고, 나중에 기회가 되면 여기에 쏟아놓겠다. 그리고 세 군데의 NGO(비영리기구)에 진지한 마음으로 원서를 넣었었다. 첫 번째 NGO는 면접을 위해 영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왔는데 그 마음이 전달되지 않은 것 같다. 나를 면접 본 날 새로운 사람을 채용하겠다는 공지를 홈페이지에 올려 떨어진 걸 알았다. 에티오피아에 파견을 한다고 해서 지원을 했는데 내부 사정으로 파견지가 케냐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면접일 바로 전날 알았지만, 이왕 원서를 넣었으니 합격하면 케냐에 갈 생각이었다. 이때만 해도 불합격의 충격이 그리 크지 않았다.


두번째 NGO는 아프리카 연구분야의 박사급을 채용하겠다고 해서 지원했었다. NGO지만 직책은 선임연구원이고, 연봉은 5,100 정도를 주겠다고 했다. 돈 때문은 아니고, 하는 일이 재미있을 것 같아 지원을 했는데 전부 석사급만 채용했다는 걸 나중에 들었고, 면접한 사람(들)이 내가 이전에 일했던 곳에 가서 내가 이곳에 지원했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걸 또 다른 사람들에게 들었다. 이 바닥이 이렇게 좁다. 합격자 발표가 난 이틀 후 다른 장소에서 이 NGO에서 일하는 사람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내 옆에 있는 교수에게만 자기 명함을 주고 나는 모르는 체해서 재미있는(?) NGO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떨어진 게 몹시 아쉬웠다.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 NGO는 이름은 많이 들어본 곳이었는데 실제 가서 보니 좀 웃기는 곳이었다. 프로젝트 매니저 포지션에 지원했는데 일단 1차 서류는 통과되었는지 면접에 오라는 연락이 왔다. 그런데 다른 NGO의 같은 포지션에서 지원해주는 정도의 지원은 힘든데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게다가 건강검진도 내가 해야하고, 파견지역에서 요구하는 주사도 내 돈주고 직접 맞아야 한단다. 직원의 복리후생에 전혀 관심이 없는 NGO라는 생각이 들어 왜 그렇게 공지를 했느냐고 묻고 싶었는데 일단 면접을 보고 싶었다. 그 포지션의 재원출처를 알고 있었지만 설마 굶겨 죽이기야 하겠나, 합격하면 2년간 에티오피아에 파견이 되는데 하는 생각에 면접에 가겠다고 했다. 면접관은 두 명이 나왔는데 면접이 시작되자마자 두 사람은 출퇴근은 8시에서 5시까지이지만 야근이 많고, 주말에도 일을 해야할 때가 많고, 프로젝트 매니저라고 하지만 다른 NGO와 다르게 내가 독자적으로 프로젝트를 꾸리는 게 아니라 잡일(그렇게 표현은 안했지만)을 하게 될 거라고 그랬다. 그러면서 애초에 내가 1차 합격하면서 들었던 수준의 급여를 제공하기는 힘들고 그것보다 금액이 훨씬 적을 거라는 걸 몇 번이나 강조했다. 그래서 도대체 얼마나 적은 금액을 주기에 그렇게 박봉을 강조하느냐고 되묻기까지 했다. 보통 기업에서 아프리카에 직원을 파견하면 위험수당에 이것저것 챙겨주는 게 많은데 해외에 직원을 파견하는 NGO들은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착취모드를 고수하는지 이해가 안됐다. 내가 파견기간 동안은 직원이지만 장차 그 NGO의 든든한 후원자가 될 수도 있고, 홍보활동에 힘을 실어주는 사람이 될 수도 있는데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그렇고, 면접만 보는 줄 알았는데 필기시험이 있었다. 부모님 이름을 한자로 쓰라는 문제도 있었고, 태극기를 그려보라고도 했고, 애국가 2절 가사를 쓰라고도 했다. 내가 그걸 다 했다고 했더니 친구들이 미쳤다고들 그랬지만 진짜 그걸 했다. 애국가 2절 가사에 '바람서리'를 '바람소리'라고 써서 잠시 쪽팔리기도 했다. 영어문장을 한글로 번역하는 40점짜리 문제도 있었는데 그건 그냥 안해버리고 거길 나왔다. 어차피 합격해도 일할 생각이 없는 곳이었다. 건물을 나오면서 만약 '합격하셨습니다' 라는 연락이 오면 '미안하지만 합격을 취소해달라'라는 말과 함께 꼭 해주고 싶은 말들을 생각해놓기까지 했다. 면접장에서 합격자 발표는 2~3일 후면 해주겠다고 했는데 거의 20일이 지나서 그 NGO에서 연락이 왔다. 합격은 했지만 내가 에티오피아로 파견을 하기에 경력도 모자라고, 부족한 게 많아 프로젝트 매니저는 힘들고 일반봉사단 자격으로 가란다. 내가 합격이 되었다고 연락이 오면 준비한 말들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에티오피아에 가고 싶었지만 가서도 계속 이랬다저랬다 할 게 뻔한 단체다.


열정페이, 열정페이 정말 말은 많이 들었는데 사람들이 이렇게 뻔뻔한 지 잘 몰랐다. 위에서 언급한 세 곳 말고, 사실 일하고 싶은 NGO가 있어 인사채용 담당자에게 영국에서 메일을 서너 번이나 보낸 적이 있다. 기부를 한다고 연락을 한게 아니라서 그런지 단 한번도 답변을 못 받았다. 그러다 올해 우연히 어떤 이벤트장에서 거기서 일하는 분을 만나게 되었다. 나를 기억하고 있었고, 대뜸 하는 말이 "그때 답장을 안 보냈었던가요? 이쪽이 진입장벽이 높아 일하고 싶다고 바로 일을 할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니에요." 였다. 일 자리를 달라고 했던 게 아니었는데 졸지에 나는 넓은 세상에서 배운 것들을 고국에 와서 나눠보고 싶은 사람이 아닌 일자리를 구걸하는 '저쪽' 사람으로 분류가 되어 있었다. '이쪽' 사람 앞에서 말이다. 들여다보면 다 거기가 거기인데 파이를 키워 더 나은 걸 모색해보자가 아니라 눈 앞의 내 파이들에만 관심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밖에서 공부할 때 금의환향해서 꼭 폼나는 일을 해야지, 그 따위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내 앞에 그런 목적들이 있었다면 내가 수년간 우직하게 한우물만 파면서 공부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냥 그렇게 공부하는 게 재미있었고, 시간 가는줄 모르고 공부를 하다보니 여기까지 온 것일 뿐이다. 공부가 끝나면 현장에서 일하고 싶었고, 그렇게 하는데 NGO가 적격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문을 두드렸었다. 굴욕적인 과정들을 겪으며 문을 두드렸지만 결국 내가 가진 것들을 많이 포기하면서까지 열심히 일하고 싶은 곳을 만나지 못했고, 이제 다시는 NGO 문을 두드리지 않을 것이다. 거기서 일하시는 분들이나 내 뒤에서 비슷한 길을 밟는 후배들에게도 좋은 사례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의 하러 오라고 해서 가면 두시간이고 세시간이고 강의를 시킨 후, 신분증에 통장사본, 이력서까지 요청해서 달랑 10만원을 입금시키는 곳들에서(세금 떼면 10만원이 안되는데 개인정보를 다 주고 과연 저걸 받아야하나 고민이 많았다) 지식을 풀어놓고 싶은 생각도 이제 없다. 남들이 이기적이라고 하던말던 그냥 하던 연구나 계속하면서 덜 상처받기로 했다. 가급적 평온하게 지내고 싶다. 물론 내가 기꺼이 일하고 싶은 곳을 만난다면 지금 한 이야기는 다 취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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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