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장마시즌이 도래한다고 해서 나름 긴장하고 있었는데 어제 하루 쏟아붓더니 오늘은 다시 쨍-하고
해가 떴다. 어제 같이 앞으로 40일은 쏟아진다고 70이 넘으신 내 일본어 과외 선생이 그러셨는데.

또 다 졌겠다, 하는 마음으로 역에서 빠져나와 횡단보도를 건너려는데 왠 아주머니가 나를 빤히 바라보면서 빨간불로 바뀔 때까지 건너지 않고 그대로 서있는 게 아닌가.

아, 그런데 내가 아니었다. 내 뒤를 바짝 따라오는 초등학생을 바라보고 있었던 거였다. 내가 멈칫, 하는 사이에 둘은 만났고, 내 바로 앞으로 나란히 자리를 잡아 걸어가기 시작했다. 빗줄기가 거셌는데 두 사람은 각자의 우산 사이로 두 손을 내밀어 꼭 잡고 앞뒤로 흔들면서 내 앞을 걸어갔다.

호기심에 나도 모르게 거리를 좁혔는데 아무래도 모녀 사이 같았다. 교복을 입은 학생은 초등학교 4, 5학년 쯤. 아니어도 할 수 없고.

오늘 요시다가 학교에 안왔어.
왜?
감기에 걸렸대.
이런.

오늘까지 내기로 했던 숙제는 선생님이 내일 내도 된대.
잘 됐네. 걱정하고 있었는데.
내가 좀 도와줄까?
오늘 저녁에 좀 봐 줘.
그래.

엄마가 같은 학급의 학생 이름을 다 알고 있나보다. 아니면 특별히 친한 학생 이름일 수도 있고. 그리고 엄마랑 상의하면서 같이 숙제를 하기도 하나보다.

경험에 비추어보면 여자의 가장 좋은 친구는 엄마인 것 같다. 가끔 나 오늘 엄마랑 싸웠어, 이런 얘기를 들을 때가 있는데 이게 말이 되나 말이다. 엄마한테 대들었어, 라고 해야 옳지. 난 내 엄마가 세상 누구의 엄마도 아닌 내 엄마인 게 아주 행복한 사람이다. 그래서 엄마랑 싸웠다는 표현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어제 만난 빗속의 저 학생은 엄마를 좋은 친구로 둬서 외롭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저 친구도 아마, 엄마랑 싸웠다는 표현을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

엄마의 뒷모습은 정말 자유로운 체형의 전형적인 아줌마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딸과 손을 맞잡고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빗속을 걸어가는 모습이 아, 정말 아름다웠다. 나도 문득 내 엄마가 보고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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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윤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