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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슈의 뱃부에서 기차로 한 시간

츠쿠미라고 하는 재미있는 이름의 도시에서 지난 여름 한 달을 보냈다. 츠쿠미는 일본 남단 큐슈(九州) 동쪽의 오오이타현(大分県)에 있는 인구 2 3천 규모의 아주 작은 도시다. 한국인들이 온천욕을 즐기러 많이 찾는 뱃부(別府)에서 기차로 한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다. 이 작은 도시에 야구장이 있어 우리나라 두산베어스가 겨울이면 전지훈련을 한다고 한다. 남쪽이라 겨울에도 날씨가 따뜻하고 눈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이곳에 살고 있는 한국인은 없지만 가족 중에 한국인과 결혼한 사람들이 더러 있다.


츠쿠미는 오오이타현 내에서는 두 번째로 작은 도시인데, 호토지마(
)와 무쿠지마(無垢島)라는 두 개의 섬을 거느리고 있는 반도로, 일본내 생산량 1위를 자랑하는 석회석 광산을 보유하고 있다. 기간산업으로는 석회석 채굴 이외에 시멘트 산업, 밀감 농업, 참치로 대표되는 어업이 중심이다. 그러나 요즘은 손이 많이 가는 밀감 농사를 접고 광산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참치도 원양어선을 타는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츠쿠미 대표 브랜드로서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츠쿠미의 젊은 사람들이 더 이상 배를 타려 하지 않기 때문에 요즘은 동남아시아 사람들을 초청해 2, 3년간 연수를 시켜 배에 태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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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가 시멘트 원료로 재탄생

츠쿠미에는 일본 톱 3 규모에 해당되는 태평양 시멘트의 본사가 위치해 있다. 공장이 들어서면서 농사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시멘트 회사 덕분에 츠쿠미 사람들은 쓰레기 처리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일본도 쓰레기 처리로 전국이 몸살을 앓고 있다. 츠쿠미는 가정에서 수거한 쓰레기를 소각해 시멘트 원료로 사용하는 시스템을 갖추게 되면서 시민들의 쓰레기 처리에 대한 고민거리를 없애주었다.

종이류, PET, 캔류를 제외한 모든 쓰레기는 분리할 필요 없이 한꺼번에 수거를 해 가는데 이렇게 모아진 쓰레기는 전부 소각해 몇 차례의 과정을 거친 후 품질에 전혀 차이가 없는 시멘트로 만들어진다. 태평양 시멘트 회사에서는 쓰레기가 시멘트 원료로 탄생되는 과정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고 있는데 한국의 시멘트 회사에서도 단체 견학을 여러 차례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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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다다미 크기에 빌딩을 올린 호토지마

일본인들이 사는 집을토끼장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체를 있는 곳이 호토지마(保戶島)이다. 호토지마는 츠쿠미 시내에서 배를 타고 30 정도면 도착하는 곳이다. 섬의 토지가 넉넉하지 않아서 6조 다다미(다다미 한 장을 1조라 하며, 1조는 0.85평 정도) 크기의 넓이로 건물을 2, 3 올려서 지은 주택들이 여기저기에 가득하다. 6조 정도면 우리나라 아파트의 가장 작은 방 한 칸 정도 되는 넓이다. 집과 사이는 아주 좁은 골목들이 미로처럼 동네를 연결하고 있다. 할머니들이 어찌나 건강하신지 바구니들을 하나씩 지고 산비탈로 연결된 골목을 쉬지도 않고 올라 다니는 모습이 눈에 자주. 경사가 높아서 머리에 이기도 힘들고 들기도 힘들어서 여기 사는 할머니들은 커다란 바구니를 만들어 그곳에 짐들을 넣어 지고 다니는 게 일상이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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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을 찾아오는 사람들 보다 섬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아쉽게도 호토지마의 식당과 카페는 점점 문을 닫고 있는 추세다. 작은 섬 안에는 진자(神社)도 있고, 우리와 양식이 완전히 다른 절도 있으며,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는 골목을 실컷 볼 수 있다. 그러나 영화 마파도처럼 노인들만 사는 섬으로 변화가 진행 중이다.

                                                                                                            

1 3천만년 전 공룡이 살았던 무쿠지마

츠쿠미가 또 하나 보유하고 있는 무쿠지마(無垢島)는 아주 특이한 섬이다. 아직 외부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데 1 3천만년 전 공룡 화석이 발견되어 학계의 연구가 한참 진행 중인 곳이다. 매년 여름에 자연 학습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프로그램이 이 보다 더 알찰 수가 없다. 올해가 3회째로, 운영에는 큐슈의 4개 대학과 츠쿠미시가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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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쿠지마 자연학습 프로그램이 여타의 다른 체험 학습 프로그램과 다른 점은 큐슈의 4개 대학 교수진을 비롯해 환경, 천체, 지리 등 자연과학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한다는 것이다. 4개 대학은 학점교류가 진행 중인데 여름 방학기간 2 3일 동안 무쿠지마 자연학습 프로그램에 참가하면 대학에서 학점 이수가 가능하다. 참가 대학생들은 교육학 전공 학생들이 많은데 예비 선생님들이라서 그런지 초등학생 참가자들과 어울리는 모습이 예사롭지가 않다. 학생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참가가 가능하며, 참가에는 특별한 제한이 없다. 올해의 경우 135여 명이 무쿠지마를 찾아왔다. 좀처럼 보기 드문 이 프로그램을 취재하기 위해 오오이타의 지역신문을 비롯해 요미우리 신문, 아시히 신문 기자들까지 찾아와 함께 했다.


이 섬에는 바닷물 이외에는 물이 없기 때문에 비를 받아 가라앉혀 쓰거나 먹는 물의 경우는 전부 시내에서 배로 실어다 마시고 있다. 체험학습에 참가하기 위해 섬에 머무는 사람들은 물 한 바가지로 샤워를 마쳐야 하는 노하우를 재빨리 체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곳에서 태어나 섬을 떠나 본 적이 없는 한 주민에게 이 곳 생활이 불편하지 않느냐고 물어봤더니 살면 다 살아진다는 너무 간단한 대답이 돌아왔다.


섬사람들은 늘 가족같이 살아 온 경험 때문인지 아무 집이나 들어가서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고, 해수욕을 즐긴 후에는 문이 열린 집에 들어가 샤워도 가능하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물이 귀한 곳이기 때문에 화장실이든 샤워실이든 이용한다는 것 자체가 섬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미안한 일이라서 떠나올 때쯤에는 물 한 바가지로 샤워까지는 아니더라도 세수에 양치질까지 끝내는 요령은 터득했다.


호토지마처럼 무쿠지마도 섬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이제 이곳에 있는 중학교에는 학생이 달랑 세 명뿐이다. 이 세 명을 가르치기 위해 11명의 선생님이 근무를 하고 있다. 초등학교의 경우 선생님 한 사람이 모든 과목을 다 가르칠 수 있지만 중학교부터는 과목들이 다양해지고 좀더 심화되기 때문에 선생님 혼자서는 무리일 수밖에 없다. 집과 학교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아서인지 무쿠지마에서 학생과 선생님의 관계는 일반 학교의 사제지간과는 다르게 그냥 가족 같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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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 역사의 센스 오도리

~~, ~~라고 하는 독특한 절구로 시작되는 센스오도리(扇子踊) 츠쿠미를 대표하는 춤이다. 오른손으로 부채를 들고 8개의 문자를 그려나가는 동작이 계속 되풀이된다. 츠쿠미에 사는 사람들 아무나 붙잡고 센스오도리에 대해 물어보면 바로 이 기본 동작이 나온다.


지금부터
400 당시 오오토모씨(大友)의 지배하에 있던 츠쿠미는 전국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무참히 꺼져간 전몰용사와 농민들을 애도하기 위해 춤을 추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바로 센스오도리의 기원이다. 1964년부터 시민 오도리 대회를 개최하게 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으며, <츠쿠미 센스오도리 대회>라는 이름으로 매년 8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 열린다. 초등학교 학생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1,000명이 넘는 시민들이 츠쿠민(공모를 통해 정한 이름이라고 한다.) 시민공원에 모여 똑같은 부채를 쥐고 ~~, ~~ 리듬에 맞춰 미리 만들어놓은 트랙을 돌며 몇 시간에 걸쳐 춤을 춘다.
센스오도리가 시작되기 전 며칠 동안은 시내 어디에서나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부채를 펴 들고 휘휘 돌리며 센스오도리의 기본동작을 연습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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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쿠미 먹거리

츠쿠미 하면 밀감과 참치였는데 이것이 옛말이 되면서 자랑하며 내놓을 대표 음식이 이제는 별로 없다고 현지인들은 자신없이 이야기한다. 그래도 일본 특유의 정갈한 밥상은 시내 어느 식당을 들어가도 만날 수 있다. 마구로(참치) 스테이크, 츠쿠미 아이스(밀감 쉐이크), 가보스(라임과 비슷한 일본 과일)로 만든 소프트 아이스크림은 꼭 시식을 권한다. ‘사계라는 상호가 붙은 레스토랑에 들어갔더니 새로 개발한 마구로 짬뽕을 권하는데 나가사키에서 먹었던 나가사키 짬뽕보다 국물맛이 담백하면서도 깊었다. 츠쿠미를 찾는 분들에게 강추다.


츠쿠미는 올해 일본에서 개봉된
오바야시 노부히코(大林宣彦) 감독의 ‘22세의 이별(22)’ 로케이션 무대가 되기도 했는데, 자체에서 영화 제목인 ‘22세의 이별상표로 등록했다고 한다. 그리고 영화가 촬영되는 동안 처음 탄생한 상품이 ‘22세의 이별이라는 동명의 치즈 케이크다. 츠쿠미 시내에 있는 시장통의 빵집 한군데에서 만들어내기 때문에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천연 재료만을 사용한다고 하는데 그건 믿거나 말거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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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쿠미 찾아가는 법

운항 편수가 많지는 않지만 인천에서 오오이타현까지 직항이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후쿠오카나 나가사키까지 일단 비행기로 도착해 대중 교통수단을 이용해 움직일 수 있다. 패키지 여행 프로그램으로 뱃부까지 갔다가 온천욕을 즐기고 기차로 츠쿠미까지 이동해도 된다.


츠쿠미는 아직까지 찾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해변도 깨끗하고 무엇보다 바닷물이 아주 맑다. 해산물이 맛있는 비결이 이 맑은 물 덕분이라고 현지인들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을 했다. 1년 중 바다가 가장 아름다운 계절은 가을이라고 한다.

문화공간 2007년 11월호(세종문화회관 발간)

Posted by 윤오순